542화
강진은 아침 일찍 강남의 한 아 파트 주민센터에 줄을 서고 있었 다. 오늘은 사월 총선 날이었다.
줄을 선 강진의 옆에서 배용수 가 말했다.
“선거 끝나면 오자명 의원님과 이유비 의원님, 다시 오기 시작 하겠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보고 싶어?”
“자주 보던 단골인데 안 오시니 보고 싶지. 그리고 TV에서 보는 소리 지르는 정치인이 아니라 좋 은 일 하는 정치인들이잖아.”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정 치인 중 한 명은 무소속이고, 한 명은 강진이 좋아하지 않는 당 소속이지만…… 둘 다 국민을 위 해 일을 하는 좋은 정치인이었 다.
“그나저나 두 분 당선되면 좋겠 다.”
“좋은 분들이니까. 사람들이 알 아봐 주겠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며 슬며시 물었다.
“귀신들은 이런 당선 결과 같은 것 미리 알고 그러지 않나?”
“귀신 별것 없다는 것 알면서 그런 말을 하냐?”
“장난이지.”
“그래서, 넌 누구 찍을 거야?”
“내가 보기에 잘할 것 같은 사
람.”
“그래서 누구?”
“비밀 선거 모르냐. 말 그대로 비밀이다.”
강진의 말에 입맛을 다신 배용 수가 투표소를 보았다. 투표소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배 용수가 말했다.
“여섯 시 땡 하고 왔는데……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요즘은 일찍 선거하고 놀러 가 는 것이 대세 아니겠어?”
“그래‘?”
“넌 안 그랬어?”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아침에 모여서 식사하 고 아홉 시쯤에 다 같이 가서 선 거를 했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말했다.
“숙수님 안 본 지도 오래됐네.”
“그래? 가서 인사도 좀 드리고
해라.”
“그래야겠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강진의 차례가 되었다. 그에 강진이 신 분증을 꺼내 확인을 하고는 투표 용지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생각을 해 둔 사람에게 도 장을 찍은 강진이 투표함에 표를 집어넣었다.
‘내 표로 우리나라가 조금은 나 아지기를……
강진의 표는 하나일 뿐이지
만…… 그 표가 모여서 국민의 선택이 된다.
선거를 한 강진은 점심 준비를 하며 TV를 보고 있었다. TV에 서는 강건희 회장의 장례식이 나 오고 있었다.
[오성그룹 강건희 회장의 발인
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강건희 회장은…….]
TV를 보던 배용수가 중얼거렸 다.
“오성그룹 회장이 대단하기는 하네. 장례식을 TV에서 보여주 고.”
“대단하기는 하지.”
TV를 보며 중얼거린 강진이 입 맛을 다셨다.
“귀신 되지 말고 잘 승천하셨으 면 좋겠다.”
“승천하셔도......" 지옥 꽤나 걸 리실 것 같던데.”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이야기하는 것 들으니 지 옥이 무섭기는 해도 자기가 한 일이니 피할 생각은 없으신 것 같더라.”
“그 많은 재산으로 좋은 일 좀 많이 하시지. 그럼 이승에서 잘 산 것처럼 저승에서도 잘 살았을
텐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중얼거렸다.
“민성 형이 착한 일 할 기회를 좀 많이 찾아봐야겠어.”
“그래야겠다. 저 회장 보니까, 민성 형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 어.”
강건희에게 하는 JS 금융의 대 접을 생각하니 황민성의 JS 행이 걱정되는 둘이었다.
부자들이 돈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만큼, 돈으 로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도 많으니 위험한 것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가게 문이 열렸다.
띠링!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진 이 고개를 돌렸다. 입구엔 임대 강이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임 대강을 보며 강진이 손을 들 때,
그 뒤를 김영지와 할머니가 함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분이 대강이 할머니신가 보 구나.’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김영지가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저희 어머니세요.”
김영지의 말에 강진이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무척 정정해 보였다.
머리도 검게 염색을 해서인지 차달자보다 젊게 보였다.
‘아저씨 나이 생각하면 할머니 나이가 팔십은 넘으실 것 같은 데…… 진짜 정정하시네.’
대강이를 학교 보내고 난 후에 며느리하고 요가로 하루를 시작 한다고 하더니…… 확실히 정정 했다.
게다가 임플란트인지는 모르겠 지만 웃는 입술 사이로 깨끗한 치아도 돋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고개 를 숙였다.
“한끼식당 이강진입니다.”
강진의 인사에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이리 앉으세요.”
강진의 말에 손님들이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김영지가 강진을 보았다.
“선거하셨어요?”
“아침 여섯 시에 가서 줄 서서 선거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선거 하셨어요?”
“저는 방금 어머니하고 대강이 데리고 가서 선거하고 왔어요. 선거했으니 외식하고 들어가려고 요.”
김영지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 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임대강을 보았다.
“그런데 대강이도 데리고 다녀 오셨네요?”
“남편이 있을 때부터 대강이하 고 저희 가족은 다 같이 선거를 다녔어요. 선거하는 것을 보는 것도 대강이한테는 좋은 일인 것 같아서요.”
“대강이 좋은 공부 하고 왔네 요.”
강진의 말에 김영지가 작게 웃 으며 고개를 끄덕일 때, 할머니 가 강진을 보았다.
“괜찮으면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말씀하세요.”
“우리 때문에 영업 방해되는 건 아닌가요?’’
“손님도 없는데 괜찮습니다.”
선거하는 날이라 회사들도 쉬고 해서 오늘 점심 장사는 바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점심시간까지 시간 도 있고 말이다.
강진의 말을 들은 할머니가 웃
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우리 며느리 말이, 사장님이 손주들한테 밥도 주고 용돈도 주 셨다고 해서요. 뵙고 감사 인사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제가 알고 있던 애들인걸요.”
‘그리고 손주들이라…… 좋네 요.’
강진은 속으로 웃었다. 손주가 아니라 손주들이라고 하는 할머 니의 마음이 좋았다.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강진
의 모습에 할머니가 웃었다.
“참 좋은 분이시네요. 사장님 같은 분만 있으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일 것 같아요.”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머리를 긁었다.
“그런 말을 너무 앞에서 하시 니.. 민망하네요. 하하하!”
강진의 웃음에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일하시는데 방해한 것 같아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럼 음식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강진의 물음에 할머니가 임대강 을 보았다.
“대강이 뭐 먹고 싶어?”
어느 가정이나 그렇겠지만, 외 식에서 주인공은 아이들이었다.
“조금만 먹을래요. 이따가 종수 만나기로 했어요.”
“오늘도 종수 보기로 했어?”
“종수하고 피시방 가기로 했어
요.”
임대강의 말에 할머니가 웃었 다.
“그래. 한참 친구 좋을 나이지. 저녁에 종수 데리고 집에서 밥 먹어.”
“네.”
그러고는 할머니가 다시 강진을 보았다.
“나는 김치볶음밥을 먹고 싶군 요. 며늘 아가 말 들으니 사장님 이 해 준 김치볶음밥이 우리 아
들이 해 준 것하고 비슷하다고 하더군요.”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힐끗 임 호영을 보았다. 그 시선에 임호 영이 씁쓸한 얼굴로 할머니를 보 며 말했다.
“저희 어머니가 입맛이 없고 밥 하기 싫어하실 때는 제가 김치볶 음밥을 만들어 드리고는 했습니 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할머 니를 보았다.
“제가 맛있게 해 드릴게요.”
“우리 아들이…… 김치볶음밥을 잘했어요.”
할머니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 또한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더 특별하고 맛있게 해 드려야겠네요.”
“아니에요. 평소처럼 해 주세 요.”
“아닙니다. 평소보다 특별하고 스페셜하게 해 드려야죠.”
그러고는 강진이 임대강의 어깨 를 손으로 잡았다.
“오늘 음식 대강이가 해 드릴 겁니다.”
아들이, 남편이 해 준 음식을 먹고 싶다면, 자신보다는 손주이 자 아들인 임대강이 해 주는 것 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임대강은 놀란 눈으로 강 진을 올려다보았다.
“제가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할머
니와 김영지를 보았다.
“제가 김치볶음밥 하나부터 열 까지 완벽하게 알려주겠습니다. 나중에 아버님이 해 주셨던 김치 볶음밥 드시고 싶으면 대강이한 테 해 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걱정스러 운 얼굴로 임대강을 보았다.
“우리 대강이 요리해 본 적이 없는데.”
“누구는 처음부터 잘하나요? 그 리고 김치볶음밥은 쉬우니 대강
이도 쉽게 배울 겁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임대강을 보았 다.
“어때, 할 수 있겠어?”
강진의 말에 임대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하고 엄마 좋아하는 거 니까 배울게요.”
임대강은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가 해 주었고 두 분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배 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임대강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데리고 주방으 로 들어갔다.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네.’
손님이 있었다면 임대강을 주방 으로 들이는 것은 좀 무리였을 것이다.
임대강을 데리고 들어온 강진이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하고는 앞 치마를 둘러주었다.
그러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냈 다.
“김치볶음밥에서 가장 중요한 게 김치인 건 알겠지?”
“네.”
“김치는 집에 있을 거니까 그거 쓰면 되고, 김치볶음밥에는 간장 하고 계란만 있으면 돼. 아! 돼 지고기나 참치, 아니면 햄을 넣 어도 되고.”
그러고는 강진이 재료들을 꺼내 놓았다.
“오늘은 돼지고기 있는 걸로 하 자.”
강진은 프라이팬 세 개를 꺼내 서는 말했다.
“일단 일 인분씩 하고, 집에 가 서 식구들하고 먹을 때는 양 조 금씩 늘려서 해 봐.”
“네.”
임대강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것 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어머 니가 드신 김치볶음밥의 김치는 잘게 썰은 김치야.”
“그럼 잘게 썰어요?”
“응. 잘게 썰어.”
강진의 말에 임대강이 김치 통 에서 김치를 꺼내려다가 그의 눈 치를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편하게 해. 자신감 있게.’’
강진의 말에 임대강이 김치를 집어서는 도마에 올렸다. 그런 임대강을 임호영이 기특하다는 듯 지켜보았다.
“내가 살아 있었으면 같이 음식 도 하고 했을 텐데…… 아이쿠 이 녀석아, 칼을 다룰 때는 손가 락을 다 펴면 안 돼. 손을 오므 려야지.”
임호영의 말에 강진이 임대강에 게 주의를 주었다.
“손가락을 그렇게 펴고 있으면 다쳐.”
“아……
임대강이 손을 떼자 강진이 웃 으며 손을 살짝 오므렸다.
“이렇게 손끝을 오므리고 해야 칼에 베이지 않아. 손가락은 오 므리고 칼은 이렇게.”
강진이 가르쳐 주는 것에 임대 강이 어색하게 손가락을 오므렸 다.
그러고는 천천히 칼질을 하자, 임호영이 말했다.
“칼은 곧게, 사선으로 세우지 말고, 누르지 말고 썰어야 해. 누 르면 으깨지지만 썰면 잘린단 다.”
임호영이 옆에서 하나하나 알려 주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그가 하는 말을 전해 주었다.
보통 음식은 딸이 엄마에게 배 우는데, 지금은 아들이 아빠에게 배우고 있었다.
스륵! 스륵!
임호영의 가르침에 따라 임대강 이 김치를 썬 뒤 프라이팬에 기 름을 두르고 파를 볶았다.
그 후 재료를 순차적으로 넣고 볶자 김치볶음밥이 완성이 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지. 간장은 살짝 태워야 향이 좋아지고 밥 전체에 맛이 골고루 스며들어.”
임대강이 진지한 얼굴로 김치볶 음밥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임호 영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