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 화
촤아악! 촤아악!
임대강이 프라이팬 하나를 잡고 열심히 주걱을 움직이는 것을 보 며 강진은 두 손으로 다른 프라 이팬을 움직였다.
요리 초보인 임대강이 프라이팬 세 개를 동시에 쓸 수는 없으니, 강진이 나머지 두 개를 잡고 요 리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재료는 다 임대강이 손질
한 것으로 쓰고 말이다.
“다 됐다. 이제 밥그릇에 옮겨 담자.”
강진은 적당히 속이 깊은 밥그 릇을 임대강에게 내밀었다.
“여기다 담아요?”
“일단은 거기다 담아. 볶음밥이 뜨거우니 한 손에 행주 깔고.”
임호영이 하는 말을 강진이 따 라 해주자, 임대강이 한 손에 행 주를 올리고는 주걱으로 볶음밥 을 떠서 밥그릇에 담았다.
스윽! 스윽!
“살짝 톡톡톡! 두드린다는 느낌 으로…… 너무 강하게 누르면 떡 처럼 눌리니 적당히 흩어지지만 않게 한다는 느낌으로.”
임호영이 임대강에게 하는 말을 따라하며 강진도 밥그릇에 볶음 밥을 톡톡 담았다.
볶음밥을 다 덜자 사용했던 프 라이팬을 닦고는 불을 올렸다. 그리고 기름을 두른 강진이 계란 을 툭툭 까며 말했다.
“대강아, 계란 프라이 정도는 해 봤지?”
“네.”
강진은 가스레인지의 화력을 살 짝 줄이며 말했다.
“처음에 계란 프라이를 센 불로 겉만 한 번 익히고 바로 약한 불 로 속을 익혀. 그럼 부드러운 식 감의 계란 프라이를 만들 수 있 어.”
강진은 하얀 접시를 세 개 꺼내 놓고는 자신이 담은 볶음밥 밥그
릇을 들었다.
“자, 봐.”
볶음밥 밥그릇 위에 접시를 덮 은 강진이 그것을 휙 하고 뒤집 었다.
그러고는 접시 위에 놓이게 된 밥그릇을 살살 좌우로 돌리며 들 어 올렸다.
스윽!
그러자 접시 위에 김치볶음밥 언덕이 소복하게 만들어졌다.
“와! 중국집 볶음밥 같아요.”
“중국집도 이런 식으로 볶음밥 모양 만드니까. 한 번 해 봐.”
임대강은 강진이 했던 것처럼 조심히 접시를 밥그릇 위에 올려 서는 뒤집었다.
그러곤 천천히 밥그릇을 들어 올리자 볶음밥 언덕이 나왔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서 모양 이 잘 나왔다.
“이제 계란 프라이 올리자.”
강진이 잘 익은 계란 프라이를
밥 위에 하나씩 올리고는 반찬들 을 쟁반에 담아 홀로 가지고 나 왔다.
“김치볶음밥 나왔습니다. 드시 고 계시면 국물 음식 하나 만들 어 오겠습니다.”
말을 하며 강진이 음식을 하나 씩 놓고는 임대강이 만든 김치볶 음밥을 두 사람 앞에 놓았다.
“3인분 전부를 대강이가 만드는 건 무리인 것 같아서, 2인분은 제가 하고 이건 대강이가 한 겁 니다.”
“이걸 대강이가요?”
“우리 손주 잘 만들었네.”
임대강이 만든 김치볶음밥을 보 던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도 김치볶음밥을 하 면 이렇게 모양을 내고 위에 계 란 프라이를 올려 주었는데.”
할머니의 말에 임호영이 웃으며 말했다.
“나야 그냥 먹으면 되지만, 엄 마가 먹을 건 예쁘게 해서 줘야 지.”
자신이 먹을 때야 프라이팬에 있는 그대로 먹으면 되지만, 어 머니 드시는 걸 그렇게 줄 수는 없었던 임호영이었다.
그러했기에 그는 일부러 모양을 낼 밥그릇과 담는 접시까지 써서 김치볶음밥을 예쁘게 만들곤 했 다.
이렇게 하면 설거지할 그릇이 두 개나 더 생기는데도 말이다.
“엄마, 어서 먹어 봐.”
나이 많은 아저씨의 모습을 한
임호영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나왔다.
나이가 많든 적든…… 역시 남 자에게 어머니는 엄마라는 단어 가 가장 편한 것이다.
임호영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 처럼, 할머니는 잠시 김치볶음밥 을 보다가 한 숟가락 떠서는 입 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할머니, 어때요?”
살짝 불안한 기색인 임대강이 묻자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대강이, 다 컸네.”
“맛있어요?”
“아주 맛이 좋네. 네 아빠가 해 준 맛 같아.”
할머니는 웃으며 슬며시 김영지 의 손을 쥐고는 말했다.
“너도 먹어 보렴.”
“네.”
아들이 처음으로 만든 김치볶음 밥을 맛본 김영지는 임대강을 보
았다.
“아들, 가끔 할머니하고 엄마한 테 이거 해 줘야 해.”
“맛있어?”
“맛있으니 또 해 달라고 하지.”
김영지는 김치볶음밥을 한 숟가 락 더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맛이 좋아.”
김영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식사 편히 하세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편히 드세요. 같이 드실 계란국 끓여 오겠습니다.”
강진이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 어가자, 할머니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좋은 사람이구나.”
“그렇죠?”
“사람을 배려해 주는 마음이 있 어.”
자신이 직접 김치볶음밥을 하는
것이 더 쉽고 간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대강에게 알려줘서 음 식에 의미를 만들어 주었다.
아들이 해 주던 김치볶음밥을 아들의 아들이 해 주는 것으로 말이다.
그래서…… 맛이 더 있고 가슴 이 따뜻했다.
“종수가 대강이한테 좋은 형을 소개해 줬구나.”
임대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 형 좋은 사람이에요.”
임대강의 말에 할머니는 강진이 들어간 주방을 한 번 보고는 김 치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후, 임대강 식구들 은 강진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 었다.
“손님이 이리 없어서 어떻게 해 요?”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가게를 보 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저희 가게는 평일 직장인들 위
주로 영업을 해서요. 오늘 같은 날은 손님이 많이 없습니다.”
“그래도…… 여기 임대료도 상 당할 것 같은데.”
할머니 집도 상가가 있다 보니 이런 임대료에 대해서 좀 아는 것이다.
“다행히 이 건물이 제 거라서 요. 임대료 걱정은 없습니다.”
“호오! 이 동네 비쌀 텐데…… 젊은 사장님이 성공하셨네요.”
성공이라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젓다가 김영지를 보며 슬며시 말 했다.
“어머니, 봉사 활동 어떻게 생 각하세요?”
“봉사 활동요?”
“대강이하고 이야기하다 들었거 든요. 어머니 집에만 계셔서 답 답해하신다고요.”
할머니가 싫어해서 집에 있는 것이지만 강진은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
강진의 말에 김영지가 당황스러
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대강 엄마, 집에만 있어서 답 답했니?”
“아니에요.”
연신 고개를 젓는 김영지를 할 머니는 안타까운 눈으로 보았다.
사실 그녀도 며느리가 밖에 나 가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젊은 여자가 집에서 애 학교 보
내고 자신과 운동하거나 산책하 고 놀러 다니는 것…… 좋아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김영지를 밖이 아닌 자신의 옆에 두고 싶었다.
외국에서 시집 온 여성을 은근 히 깔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싫 고, 과부라고 무시당할 것도 싫 었다.
-외국에서 온 여자들, 한국에 올 때 남자친구하고 같이 들어온
대.
-돈 보고 오는 거지, 남자 보고 오는 거겠어?
-내가 아는 집 며느리도 베트 남에서 왔는데, 세상에. 오고 딱 일 년 살고는 돈 들고 도망을 쳤 다니깐?
할머니는 걱정이라는 이름하에 며느리 험담을 하며 비꼬는 친구 들과 대판 싸우고 연을 끊은 적 도 있었다.
그래서 김영지가 밖에서 일하는 것이 걱정이고 또 걱정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정이 있고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알지만, 일부 사람들은 남 의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후벼 파기도 하니 말이다.
과부에 외국인인 김영지가 혹시 라도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다가 상처받을까 봐 늘 걱정인 것이었 다.
그래서 할머니는 김영지를 자신 의 옆에 두고자 했다. 나이 많은
아들 따라 온 착한 며느리를 보 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며느리가 일하고 싶다고 하면 슬며시 만류하곤 했 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냐고, 돈 필요하면 애들에게 집에 보내는 돈을 더 보내라고 하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할머니의 얼굴에 어린 안쓰러움 을 본 강진은 의외로 말이 잘 통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가 집밖을 나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아닌 안쓰러
움…… 내가 생각했던 그런 것은 아닌가 보네.’
임호영에게 김영지의 사정을 들 었을 때, 강진은 ‘할머니가 걱정 하시는 게 며느리가 새 남자를 만나는 건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 걱정을 하는 게 이해도 됐 었다. 며느리가 새 남자를 만나 시집을 새로 가면 이별해야 하니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할머니의 얼굴을 보니…… 그게 아니었음을 강진 은 알아챘다.
당황해하는 김영지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는 할머니에게 강진이 말했다.
“다문화 가정 지원 센터가 있더 군요.”
“다문화 가정 지원 센터요?”
당황해하면서도 강진의 말에 관 심이 있는 듯 김영지가 되묻자 강진이 말을 이었다.
“다문화 가정 지원 센터에 한국 어를 배우는 외국 여성들이 있습 니다. 그곳에서 한국어도 가르쳐
주시고, 한국 문화를 비롯해 여 러 가지 한국에 살면서 알아두면 좋은 것을 가르쳐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가르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영지는 당황스럽다는 듯 그를 보다가 말했다.
“저 학교도 잘 안 나와서…… 제가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까 요?”
“가르치는 것이 별건가요? 한국
어로 이야기 나누시고,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모국어로 이야기 하시면 되죠. 그렇게 한국어와 베트남어 번갈아 사용하면서 말 하고 의문점 풀어 주시면 되죠.”
“아……
“어머님은 한국어와 모국어 둘 다 잘하시잖아요.”
“그야…… 오래 살았으니까요.”
“그리고 모국 이야기도 나누면 좋지 않겠어요?”
모국이라는 말이 나오자 김영지
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한국 에 있기는 하지만 고향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모국에 가는 비행기 표 값이 부담되는 처지는 아니라서, 여름과 겨울에 대강이가 방학을 하면 집에 다녀오고는 했다. 그 럼에도 고향 가족들이 그리운 것 은 어쩔 수가 없었다.
김영지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지그시 보던 할머니가 웃었다.
“잘 됐네.”
“네?”
“젊은 애가 집에만 있어서 답답 해 보였는데 그렇게 좋은 곳이 있으면 봉사도 하고 바람도 쐬고 얼마나 좋겠니.”
할머니의 말에 김영지가 그녀를 보았다.
“그럼 저 해도……
“네가 일을 한다고 하면 고생할 까 싶어 말리고 싶지만, 봉사는 네가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되는 것 아니겠니.”
“그야…… 그렇죠.”
‘그리고…… 같은 나라 사람들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보지도 않 을 것이고.’
속으로 중얼거린 할머니는 미소 를 지으며 강진을 보았다.
“고마워요.”
“네?”
“우리 며느리 생각해서 이것저 것 알아봐 준 거잖아요.”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저 여기 오는 손님들한테 들 었을 뿐이에요.”
“그래도 물었으니 들었을 것 아 니겠어요. 고마워요.”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핸드폰을 꺼냈다.
“제가 좀 알아봤거든요.”
“알아보셨어요?”
“이건 구청에서 운영하는 다문 화 가정 지원 센터인데요. 구청
내에 문화 센터도 있으니 할머니 도 같이 가셔서 여가생활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말을 하며 강진은 핸드폰으로 구청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러곤 다문화 가정 지원 센터와 문화 센터가 찍힌 사진을 찾아 두 사 람에게 보여주었다.
할머니와 김영지가 그것을 유심 히 보더니 말했다.
“저희 동네 구청은 아니네요.”
“그쪽 동네도 있기는 한데……
어머니 봉사활동 가시면 할머니 심심하실 것 같으니 이쪽이 괜찮 을 것 같더라고요.”
김영지 혼자 외출하는 걸 반대 할 경우를 대비해서 아예 같이 갈 수 있는 곳까지 찾아본 강진 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유가 있 습니다.”
“뭔데요?”
“거기 구내식당이 맛있대요.”
“구내식당?”
김영지가 의아한 듯 보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회사를 다녀 보니, 맛있 는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가 최고 더라고요.”
강진의 말에 김영지가 피식 웃 었다. 그녀도 남편과 같이 일할 때, 점심에 뭘 먹나 하는 걱정은 많이 했었던 것이다.
미소 짓는 김영지를 보던 강진 은 힐끗 임호영을 보았다.
옆에 서 있던 임호영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고개를 숙였기 때 문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강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들어오자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