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화
자유이용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온 강진이 만복을 보았다.
“뭐부터 하고 싶어요?”
만복은 신기한 듯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소리쳤다.
“바이킹!”
만복의 말에 신수조가 고개를 끄덕 였다.
“갑시다!”
“위치 아세요?”
“저도 여기 몇 번 왔어요. 저만 따 라오세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수조 를 따라가다가 달래를 보았다.
“누나 가죠.”
강진의 말에 달래가 그를 보다가 슬쩍 한쪽을 보았다.
“여기도 귀신이 있다.”
강진은 그녀가 보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희미하지만 곰 인형 탈을
쓴 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곰 인형 탈을 쓰고 죽은 건가?’
놀이공원 알바라면 그럴 수도 있겠 다는 생각을 하며 강진이 달래에게 말했다.
“귀신 없는 곳이 어디 있나요. 가 시죠.”
달래는 불쌍하다는 듯 곰 인형 탈 을 쓴 귀신을 보다가 마지못해 걸음 을 옮겼다.
“누나는 뭐가 가장 하고 싶어요?”
“만복이가 바이킹 타자고 했잖아.”
“놀이 기구 타기 싫으면 다른 곳으 로 가도 되죠. 아마 가서도 줄 서야 할 것 같은데.”
“그럼…… 나는 저기.”
달래가 가리킨 곳엔 커다란 성이 있었다.
“저기 가고 싶어요?”
"응."
흐.
“그럼 우리는 그쪽으로 가죠.”
“그래.”
강진이 신수호에게 소리쳤다.
“저희는 달래 누나하고 저 성이 있 는 곳에 있을게요!”
강진의 외침에 만복이 그를 보았 다.
“같이 안 타?”
“달래 누나는 저기가 가고 싶대요. 바이킹 타고 저쪽으로 오세요. 성 구경하고 있을게요.”
“알았어!”
만복이 외치고는 신수 형제들과 가
자, 강진이 달래와 함께 성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을 구경하는 강진에게 달래가 말 했다.
“여기 위로는 못 올라가나?”
“글쎄요.”
강진은 내부를 살피다가 한쪽에 있 는 계단을 보고는 가리켰다.
“저기 계단이 있네요.”
강진은 달래를 데리고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성 위에는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개장함과 동시에 들어와 서 그런지, 이렇게 경치를 구경하러 온 사람은 몇 안 되는 모양이었다.
“이야, 좋다.”
달래는 성 위에서 기분 좋게 아래 를 내려다보다가 훌쩍 뛰어서는 난 간 위로 올라갔다.
“위험……하지 않군요.”
귀신이 떨어진다고 죽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달래가 난간에
서서는 주위를 보다가 웃었다.
“영화 같은 곳에서 이런 성 난간에 이렇게……
그대로 걸터앉은 달래가 웃었다.
“걸터앉은 사람들 보면 참 시원하 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좋다.”
“그러게요. 좋네요.”
물론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면 바 로 안전 요원이 뛰어 올 테지만 말 이다.
높은 성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무 척 보기 좋았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판타지 풍의 건물들이 있고, 꽃이 있었다.
그리고 아까 본 귀신처럼 인형 탈 을 쓴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손을 흔 들고 있었다.
‘참 평화로운 곳이네. 이래서 아이 들이 놀이공원을 좋아하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달래가 말했다.
“이리 와 봐. 가까이.”
강진을 옆에 불러 세운 달래가 그 가 입고 있는 티셔츠를 보았다.
티셔츠 속 그림은 웃고 있는 표정 이었다. 강진이 최광현에게 몽타주 를 부탁한 뒤, 웃고 있는 표정으로 수정을 해 달라고 해서 넣은 것이 다.
“엄마 아빠도 이런 것 보니 좋죠?”
달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가슴을 더 앞으로 내밀었다.
“좋아서 더 보고 싶으시다네요.”
강진의 말에 달래가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비명소리에 한쪽으로 고 개를 돌렸다.
비명소리가 들린 것은 한 놀이기구 였다. 높이 올라갔다가 그대로 뚝 떨어질 때 지르는 비명이 여기까지 들려온 것이다.
“와…… 저거 되게 무서운가 보 다.”
“딱 봐도 무서워 보이네요.”
강진이 질린다는 듯 놀이기구를 보 고 있을 때, 달래가 말했다.
“우리 저거 타자.”
“저걸요?”
“응. 타고 싶어.”
달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다 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만복 형 오면 그때 가죠.”
“줄 오래 서야 한다고 하지 않았 어?”
“오픈하고 바로 들어왔는데 설마하 니 줄이 길겠어요? 제가 전화 해 볼게요.”
강진은 신수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거기 줄 많이 길어요?”
[아뇨. 이제 막 타고 있어요.]
“신수조 씨는 안 타세요?”
[무슨! 나도 오랜만에 왔는데 타야 죠.]
“그럼 그거 타고 저쪽 위에서 아래 로 의자 막 떨어지는 것 같은 데로 오실래요?”
[자이안 드롭요?]
“이름은 잘 모르겠어요.”
[알았어요.]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달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려오세요.”
강진의 말에 달래가 그 손을 잡고 는 뛰었다.
“가자.”
성을 내려온 둘은 자이안 드롭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허공에 손을 뻗은 채 걷고 있는 자신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
만, 강진은 오늘만큼은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달래 아버지 대신 그녀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서 놀아주고 싶었다.
일일 아빠처럼 말이다. 아이들에게 놀이공원은 역시 아빠 엄마와 함께 오는 것이 가장 좋으니 말이다.
자이안 드롭 앞에서 만난 일행들은 줄을 섰다. 인기가 많은 놀이 기구 라 그런지 꽤 줄이 길었다. 하지만
비교적 줄이 빠르게 줄었다.
한 번에 여러 명이 타는 데다 기 구를 타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럼에도 워낙 사람이 많아 기다리 는 데 꽤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줄을 서서 저거 잠깐 타고 떨 어지는 거라.’
강진이 조금은 허탈한 눈으로 놀이 기구를 볼 때, 신수조가 말했다.
“강진 씨는 이거 탈 거예요?”
“안 탈 건데요.”
“그럼 강진 씨하고 큰 오빠 안 타 는 걸로 하면 되겠네.”
“신수호 변호사님도 이런 것 안 좋 아합니까?”
“타라고 하면 타기는 할 건데....
오빠하고 언니 탈 자리 두 개는 따 로 준비를 해야 해서요.”
신수조의 말에 달래가 강진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 강진이하고 탈래.”
“그럴래요? 그럼 큰오빠하고 귀 오 빠가 쉬어요.”
신수조가 결정을 내리자 강진이 침 을 삼키고는 자이안 드롭을 보았다.
“꺄아악!”
“으아악!”
휘익!
하늘 높이 솟구쳤던 기구가 뚝 떨 어지는 걸 보며 강진이 침을 삼켰 다.
“저기 누나, 나는……
“같이 타. 누나가 손잡아 줄게.”
달래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자신의 가슴에 그려져 있는 달래 부모님을 보았다.
‘아버지의 길이란…… 참 힘든 거 군요.’
아버지라면 타기 싫은 놀이 기구도 아이가 원하면 타야 하는 것이다.
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삼킨 강진은 멍하니 자이안 드롭을 보다가 줄이 줄어들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2분만 참으면 되겠지.’
고작해야 기구를 타고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2분을 참지 못하진 않겠 지, 하는 생각을 하며 강진이 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드디어 강진 일행의 차례가 되었다.
“자, 순서대로 앉으시면 됩니다.”
직원이 안내를 하자 신수조가 급히 직원에게 다가갔다.
“저희 일행 중 둘은 안 탈 것이니 두 자리만 비워 주실 수 있을까요?”
“ 네?”
“저희 부모님 기일인데…… 부모님 이 한 번도 이런 것을 못 타 보셨 거든요. 그래서 오늘 형제들끼리 같 이 놀이공원을 왔어요. 어차피 줄을 선 사람들이 타는 거니까 저희 둘은 안 타고 두 자리만 비워 주세요. 부 탁드려요.”
신수조가 옷을 보여주며 말하자, 직원이 조금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 녀를 보았다. 하지만 곧 웃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보통은 자리 채워서 출발을 하지만
가끔은 세팅을 한 상태에서 못 타겠 다고 내려 달라고 하는 손님들이 있 다.
그럴 경우에는 그 손님만 후딱 내 려주고 바로 출발하기도 한다.
그 빈자리를 다시 채우겠다고 손님 들을 들이면서 시간 지체하는 것보 다는 차라리 한 타임 돌리는 것이 더 빨랐다.
그리고 지금 손님한테 안 된다고 하면 말이 길어질 테고, 그러면 놀 이기구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
이럴 때는 융통성 있게 바로 진행 을 하는 것이 더 나았다.
직원의 허락에 뒤에 있던 신수호와 신수귀가 재빠르게 퇴장하는 곳으로 움직였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을 보아하니 기구를 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부럽다.’
직원이 나머지 사람들의 탑승을 확 인하는 사이, 자신의 양쪽에 달래와 만복을 앉힌 강진에게 신수조가 말
했다.
“오빠하고 언니 두 손 꼭 잡으세 요.”
“손요?”
강진이 달래를 보았다. 달래는 그 렇지 않아도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 다.
“아까 바이킹 타다가 만복 오빠 날 아갈 뻔했어요.”
신수조가 말을 이으려 할 때 안전 장치가 아래로 내려왔다.
푸쉭!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어깨와 허리를 조이는 안전장치에 강진이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자이안 드롭이 위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르륵! 도르륵!
뭔가 긴장이 되는 소리와 함께 장 치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강진이 침을 삼켰다.
‘긴장되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신수조 가 말을 이었다.
“의자 같이 앉는 건 귀신들도 앉을 수 있는데, 이런 안전장치는 귀신들 한테 영향을 안 주더라고요.”
말을 하며 신수조가 달래의 몸을 뚫고 내려가 있는 안전장치를 가리 켰다.
“아......"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잡아줘서 인간 안전장치 역할을 해야 해요.”
말을 하며 신수조가 손으로 달래의
어깨를 감싸듯이 눌렀다. 안전장치 때문에 좀 자세가 이상했지만 달래 를 누를 정도는 되었다.
양쪽에 앉은 신수조와 신수용이 달 래와 만복의 어깨를 손으로 누르고 있는 것을 보며, 강진이 두 귀신의 손을 꼬옥 잡았다.
“후우!”
강진이 깊게 숨을 토할 때, 달래가 웃었다.
“무서워?”
“누나는 안 무서워요?”
“나는…… 좋은데.”
달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하늘하고 가까이 있잖아.”
그런 달래를 보던 강진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하늘 높은 곳에 서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익!
한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강 진은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리고 공원 내에 있는 호수가 보였
다.
봄볕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가 예쁘 다고 생각하던 강진이 말했다.
“누나, 호수 반짝이는 것……
하지만 강진은 말을 끝내지 못했 다.
덜컥!
소리와 함께 강진의 입에서는 비명 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에 이어 추
락하는 것 같은 감각이 온몸을 집어 삼켰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떨어지고 있는 게 맞긴 했 지만....
비명을 내뱉던 강진의 입에서 더 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방금 전까지는 자신이 놀라서 지른 거라면, 지금은 만복과 달래의 모습 때문에 놀라 지른 비명이었다.
신수조와 신수용이 두 귀신의 어깨 를 누르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두 귀신의 몸이 거의 뒤 집어질 정도로 허공에 붕 떠서 떨어 지고 있었다.
이러가다가는 두 귀신이 허공으로 튕겨져 나갈 것 같다는 생각에 강진 이 급히 두 귀신을 잡아당겼다.
“크하하하!”
“캬하하하!”
기절할 것 같이 놀란 강진의 마음 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귀신은 천 진난만하게 웃으며 소리를 지를 뿐 이었다.
두 번 죽지 않는 귀신에게는 이런 죽을 위기의 상황도 그저 재밌을 뿐 이었다.
“으아아아악!”
“카하하하!”
“너무 재밌다!”
강진의 비명과 두 귀신의 웃음소리 가 크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