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화
기구 의자에서 내린 강진은 비틀거 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너무 재밌다. 우리 한 번 더 탈 까?”
달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 다.
“그럼 저는 잠시 쉴게요.”
“헤헤헤! 농담이야.”
강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는 일행들과 함께 출구 쪽으로 나왔 다.
“아! 용수도 부르자.”
“용수요?”
“용수도 이런 곳 좋아할 것 같아.”
만복의 말에 강진이 잠시 숨을 고 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이라 사람처럼 즐기기는 어렵겠지만, 구 경할 것도 많으니 직원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
‘올 때 같이 올걸. 미안해지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귀신들을 모두 불렀다.
화아악! 화아악!
배용수와 여자 귀신들이 모습을 드 러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생각을 못 했어요.”
“뭐를요?”
“공원은 가족들하고 와야 하는 건 데…… 만복 형하고 달래 누나만 생 각을 하다 보니 여러분들은 빼놓고
와 버렸지 뭐예요. 죄송하고 미안해 요.”
강진이 진심을 담아 사과하자 이혜 미가 웃었다.
“불러 주셨으니 됐어요. 그리고 저 희야 서울에 사니 오고 싶으면 버스 타고 오면 돼요. 설마 우리한테 요 금 받겠어요?”
이혜미가 미소를 짓자, 강진도 웃 으며 말했다.
“요금은 안 받아도 사고 싶은 것 사지는 못하죠. 자! 지금부터라도
다 같이 재밌게 놀죠.”
강진의 말에 웃던 배용수는 그의 뒤에 있는 자이안 드롭을 보고는 말 했다.
“저거 재밌겠다. 저거 타자.”
강진은 눈을 찡그렸다.
“난…… 됐다.”
“왜? 재밌겠구만. 와! 사람들 비명 지르는 것 봐라. 되게 무서운가 보 네.”
“너 저런 것 좋아해?”
“내가 또 스릴 있는 스포츠와 이런 기구 광 아니겠냐. 왜, 무섭냐?”
배용수의 농 섞인 말에 강진이 피 식 웃으며 말했다.
“호오! 안 무섭다 이거지?”
“그럼 당연하지.”
“그럼 가서 타고 와라. 나는 방금 타고 와서 좀 무섭다.”
“짜식! 저게 뭐가 무섭다고.”
배용수가 마치 아랫사람 보는 것처 럼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그래. 가서 타라.”
“그런데 내 자리 있으려나?”
“아까 보니까 사람들 몇 타려고 했 다가 포기하고 내리더라. 그 자리에 가서 앉으면 돼.”
“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배용수는 사람들 사 이로 파고들더니 자이안 드롭으로 뛰어갔다.
‘귀신이라 줄을 안 서는 건 좋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배용수 의 외침이 들렸다.
“강진아! 나 탔다!”
용케 빈자리를 찾은 배용수는 자이 안 드롭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달래가 말했다.
“근데 저거 누가 안 잡아 주면 튕 겨 나갈 것 같은데?”
달래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괜찮아요. 스릴 있는 것 좋아한다 니 튕겨 나가면 더 좋아하겠죠.”
‘맛 좀 봐라.’
강진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배 용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귀신인데 저기서 떨어졌다 고 죽기야 하겠어요?”
“하긴…… 죽지도 않고 더 다치지 도 않으니 상관없겠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말 대로 귀신은 다치거나 죽지도 않으 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배용수가 탄 자이안 드롭이 정상에서 멈춰 서더
니 잠시 후 그대로 떨어졌다.
“캬아악!”
“으아악!”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강진이 웃었 다. 자이안 드롭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배용수가 허공에 붕 떴다가 자유낙하하는 것이 보인 것이다.
“으아악!”
배용수의 것인지 사람들의 것인지 모를 비명에 강진이 웃었다.
‘근데 설마 아프지는 않겠지?’
“으아아악!”
땅으로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배 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빠르게 중얼 거렸다.
“배용수, 배용수, 배용수!”
강진의 외침과 함께 땅에 막 떨어 지려던 배용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화아악!
그리고 곧장 강진의 앞에 나타났 다.
화아악!
실제로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말 그대로 ‘털썩’ 땅에 떨어진 배용수 를 보며 강진이 웃었다.
“와! 용수 엄청 재밌게 타네. 역시 스릴 있는 기구 즐기는 프로는 달라 도 뭐가 다르다.”
배용수는 멍하니 땅에 누워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원래라면 고함을 치든 화를 낼 배용 수지만 많이 놀란 듯 멍한 상태였 다.
“와…… 죽을 뻔했네.”
“귀신이 또 어떻게 죽냐?”
“야, 그래도…… 와…… 위험했다.”
화를 낼 정신도 없는 듯 고개를 저은 배용수가 자이안 드롭을 보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다음에 탈 때는 우리 중 한 명 옆 에 앉아. 그럼 우리가 잡아서 튕겨 나가지 않도록 잡아 줄 테니까.”
“아니야…… 더는 못 탈 것 같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자, 잡아.”
고개를 젓는 배용수를 보던 강진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엄마, 저기 아저씨 혼잣말해.”
배용수를 일으키던 강진은 지나가 던 아이가 자신을 보며 하는 말에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는 달래를 보았다.
“이제 뭐 하고 싶으세요?”
“회전목마도 타고 싶고, 사자도 보 고 싶어.”
“그럼 회전목마 타고 사파리에 가 보죠.”
“좋아!”
강진 일행은 회전목마가 있는 곳을 걸음을 옮겼다.
회전목마와 여러 놀이기구를 탄 일 행은 식사할 수 있는 곳에서 도시락 을 꺼내 놓고 있었다.
“와, 재밌다.”
만복이 웃으며 하는 말에 달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에 놓인 콜라 에 고개를 숙였다.
쪼오옥!
콜라를 빨대로 빨아 마시는 달래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캔은 움직이시면 안 돼요.”
“알았어.”
이 콜라는 우에서 가져온 콜라였 다. 음식은 강진이 준비를 했지만, 달래가 콜라를 워낙에 좋아하니 JS 에서 몇 캔 사 온 것이다.
그리고 빨대도 검은색으로 준비를 해서, 마실 때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안에서 콜라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 지 않았다.
즐거워하는 두 귀신을 보던 강진이 직원들을 보았다.
“여러분들은 어때요?”
직원들도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 은 채 답했다.
“좋았어요. 저기 플라워 랜드, 정말 좋던데요?”
“정말 너무 좋더라. 장미꽃이 너무
예뻐.”
이혜미의 말에 달래도 고개를 끄덕 였다. 산에도 꽃은 많지만, 이렇게 꽃이 한가득 피어 있는 걸 보는 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귀신들이 밝은 얼굴로 웃고 떠드는 것을 보며 강진이 도시락을 펼쳐 놓 았다.
“와! 맛있겠다.”
뚜껑이 열릴 때마다 소리치던 만복 은 서둘러 김밥과 닭 다리를 들었 다.
강진이 오늘 준비한 음식은 김밥만 이 아니었다. 유부초밥, 과일, 치 킨…… 치킨엔 간장과 콜라로 맛을 낸 닭 날개도 있었다.
“이거 만든다고 강진이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만복은 강진을 향해 엄지를 세워 주고는 김밥과 치킨을 먹기 시작했 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직원 귀신들을 보았다.
“여러분도 드세요.”
“같이 드시죠.”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 다.
“일단 먼저 드세요.”
원래 제삿밥은 귀신이 먼저 먹고 사람이 먹는 법이다. 그래서 강진은 먼저 먹으라고 권한 것이다.
귀신 직원들은 그제야 음식을 하나 씩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 진과 신수 남매도 음식을 먹었다.
강진은 귀신들이 손을 댄 부분의 음식들을 먼저 먹었다. 닭 날개를 하나 뜯어 먹으며 강진이 말했다.
“이 닭 날개, 콜라하고 간장만 넣 고 만든 겁니다.”
“ 진짜요?”
신수조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강진 을 보았다. 음식 만드는 것에 관심 이 있는 그녀다 보니 이 레시피에 관심이 가는 것이다.
“우리 배 숙수가 해 보라고 한 건 데 이런 맛이 나더라고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닭 날개를 먹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TV 보니까 콜라를 넣 더라고요. 맛있어 보여서 해 봤는데 괜찮더군요.”
“이 녀석이 한식 정통 숙수라고 이 런 사파 같은 레시피 안 좋아하는데 오늘은 공원 간다고 이렇게 만들었 더라고요.”
콜라를 안 넣고 일반 양념으로 닭 날개 조림을 만들어도 좋지만, 콜라 로 만들었다고 하면 일단 재밌는 음 식이 되니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이
다.
“세심하셔라.”
신수조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재밌는 장소에 재밌는 음식이 있 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나중에 저 레시피 좀 알려 주세 요.”
배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콜라하고 간장 배합만 잘 하면 맛 이 좋더군요. 배합하는 것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조리법에 대한 이야기가 얼추 끝나 자, 김밥을 먹고 있던 만복이 물었 다.
“이거 먹고 우리 뭐해?”
강진은 주머니에서 놀이공원 지도 를 꺼냈다.
“여기에서 타고 싶은 것 골라서 타 거나 구경하면 될 것 같아요. 골라 보세요.”
강진이 지도를 탁자에 펼쳐 놓자 만복과 달래가 다가와 구경을 했다.
어디를 갈지 논의하며 식사를 한
일행은 다시 공원을 구경하러 움직 이기 시작했다.
놀이공원에서 재밌게 놀고, 영화관 에 들러 영화까지 본 만복과 달래를 데리고 강진은 강원도 산골 마을에 도착했다.
“오늘 진짜 재밌었어요.”
“그래? 재밌었어?”
“네!”
“오늘 강진이가……
“이거 봐요. 오늘 이것도 타고, 이 것도 타고…… 아! 이거 타다가 용 수 튕겨 나가서 그대로 땅에 떨어질 뻔했다니까요.”
만복은 강진이 핸드폰으로 찍었던 사진을 할머니들에게 보여주었다. 핸드폰에 찍혀 있는 사진 속에 두 귀신의 모습은 없지만, 그들이 탔던 놀이기구와 구경했던 경치, 동물들 은 있었다.
“아주 재밌었겠구나.”
달래와 만복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러고는 강진에게 말했다.
“티셔츠 줘.”
만복의 말에 강진이 배낭에서 티셔 츠를 꺼냈다. 만복은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그것을 받아서는 활짝 펼쳤 다.
“저희 부모님이 그려진 티셔츠예 요.”
“오! 좋구나.”
“헤!”
웃으며 티셔츠를 활짝 펼쳐 보던 만복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본 곳엔 엉덩이를 땅에 붙인 채 이곳을 보고 있는 돼랑이 가족이 있었다.
돼랑이 가족을 보던 만복이 강진을 보았다.
“그것도 줘.”
강진은 이번엔 도시락통을 꺼냈다. 그 안에는 놀이공원에서 파는 간식 거리들이 들어 있었다.
“이것 좀 드셔보세요. 할머니들 생
각나서 제가 챙겨 왔어요.”
“맛있겠구나.”
놀이공원에서 파는 회오리 감자, 커다란 햄이 들어간 핫도그, 거기에 두툼한 빵과 샌드위치 등 평소 할머 니들이 먹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간식을 먹는 것을 보며 돼랑이 가족이 침을 홀리 자, 만복이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할머니 드시고 먹을 거 니까 기다려.”
돼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햄은 닭고기로 만든 거 라 너희들이 먹어도 된대.”
돼랑이가 이번엔 고개를 갸웃거렸 다. 사람의 말을 대충은 알아들어도 자세히는 못 알아듣는 것이다.
“그런 것이 있대.”
만복이 돼랑이 가족 주려고 핫도그 를 산다는 걸 알게 된 강진은 재료 가 무엇인지 판매처에 물어봤었다.
돼지고기가 들어 있어도 돼랑이는 잘 먹을 것을 알지만…… 아무래도 좀 걸리니 말이다.
할머니들이 맛있게 와플과 핫도그 를 먹는 것을 보던 달래가 음식 몇 덩이를 집어 돼랑이 가족한테 왔다.
“ 먹자.”
몸을 숙인 달래가 와플을 내밀자 돼랑이와 새끼들이 그것을 입으로 받아먹었다.
달달한 것이 맛있다는 듯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돼랑이와 새끼들을 보며 달래가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돼랑이 옛날에는 작았는데.”
달래의 말에 돼랑이가 그녀를 보았
다. 그러자 달래는 빙긋 미소 짓고 는 계속해서 돼랑이를 쓰다듬었다.
그 사이 만복이 도시락통들을 들고 와서는 한쪽 나무판 위에 탁탁 털었 다.
“자, 먹어라!”
만복의 외침에 돼순이와 새끼들이 그쪽으로 가서는 음식을 먹기 시작 했다.
그것을 보던 만복이 웃다가 가만히 서 있는 돼랑이를 보았다.
“너도 가서 먹어.”
돼랑이는 작게 고개를 젓고는 그를 보았다.
“자식! 의리가 있구만!”
웃으며 돼랑이 머리를 툭툭 친 만 복이 강진을 보았다.
“강진아.”
“네.”
“저 집, 앞으로 네 집이야.”
만복이 자신의 보물들이 있는 집을 가리키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형 집이잖아요.”
만복은 웃으며 그를 보다가 말했 다.
“앞으로는 김치 저장고에서 이쪽으 로 오지 말고, 내 집으로 왔다 갔다 해.”
그러고는 만복이 할머니들을 보았 다. 할머니들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잘 가.”
“먼저들 가.”
할머니들의 말에 만복이 웃으며 손 을 흔들고는 강진을 보았다.
“자주 찾아와. 할머니들 심심하시 니까.”
강진은 그제야 ‘아……하고는 만 복과 달래를 보았다.
“가……시는 건가요?”
“실컷 놀았어. 그리고……
만복은 손에 쥐고 있던 티셔츠를 크게 펼쳐서는 보았다.
“아빠 엄마 보고 싶다.”
만복의 말과 함께 달래가 강진의 품에 안겼다. 강진의 배에 얼굴을 묻은 달래는 그의 가슴에 그려진 부 모님을 잠시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웃으며 강진을 올려다보 았다.
“오늘…… 아빠 해 줘서 고마워.”
“그럼 먼저 간다. 다음에 또 보자.”
만복이 손을 내밀자 강진이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달래 누나 잘 챙겨 주세요.”
“ 알았
화아악!
만복이 희미한 빛과 함께 사라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달래가 속삭였다.
“고마워……
달래의 모습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툭!
만복이 쥐고 있던 티셔츠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본 강진이 작게 한숨 을 쉬고는 옆에 있는 돼랑이를 보았 다.
돼랑이는 사라진 만복과 달래가 있 는 곳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 다.
‘돼랑이가…… 영물은 영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