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554화 (552/1,050)

554화

눈가가 촉촉한 돼랑이를 보던 강진 이 그 머리를 쓰다듬고는 바닥에 떨 어진 티셔츠를 주었다.

툭툭!

흙과 나뭇잎들을 손으로 털어낸 강 진은 한숨을 쉬고는 할머니들을 보 았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할머니들은 힘이 빠진 얼굴로 마루에 주저앉아 있거나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할머니들에게 만복과 달래는 이 마 을에서 유일하게 활기를 느끼게 해 주는 존재였다.

그런 둘이 승천을 했으니 좋으면서 도…… 아쉬운 것이다.

할머니들을 보던 강진은 핸드폰을 꺼내, 신수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금 달래 누나하고 만복 형 승천 하셨어요.”

[그렇군요.]

덤덤한 신수호의 목소리에 강진이 물었다.

“혹시 짐작하셨어요?”

[달래 누나가.. 아마 오늘 갈 것

같다고 살짝 말을 해 주었습니다.]

“달래 누나가요?”

[아까 영화 보고 난 뒤 팝콘 먹고 싶다고 해서 사러 갔을 때…… 누나 가 그러더군요. 그동안 고마웠다고.]

덤덤했던 목소리가 살짝 떨려오는 것에 강진은 그의 진심을 알았다.

신수호는 그저…… 표현을 잘 못할 뿐이었다.

“추모식이라고 하기는 그렇지 만…… 이렇게 두 분 보내는 것이 아쉬워서요. 그리고 할머니들도 많 이 아쉬워하시고.”

[용이한테 이야기하겠습니다.]

“ 변호사님은?”

[두 분 저승에 갔으니 제가 마중을 나가 봐야지요.]

“아…… 그럼 돼랑이가 슬퍼하더라 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핸드폰을 다시 켰다. 그러고는 톡으로 이혜미에게 문자를 보냈다.

〈만복 형하고 달래 누나 승천했어 요. 용수한테 장례식장 음식 재료 준비 좀 해 주라고 해 주세요. 여기 서 작지만 두 분을 위한 추모식을 하려고 합니다.〉

톡을 보낸 강진이 돼랑이를 툭 쳤 다.

“나 좀 태워줘.”

그러자 돼랑이가 그에게 등을 내밀 었다. 거기에 올라타려던 강진은 멈 칫하더니 돼랑이에게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만복이의 보물이 있는 집으 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집 문을 조심스레 열었 다.

덜컥!

문을 연 강진이 안을 들여다보았

다. 안에 쌓여 있는 장난감들과 피 규어들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이 집 이제 제 거네요.”

어두컴컴하지만 이상하게 잘 보인 다는 생각을 하며 방안을 둘러보던 강진은 한쪽에서 시선을 멈췄다.

자신이 준 만복의 부모님 액자가 장난감들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은 나지막하게 말 했다.

“앞으로 자주 올게요.”

만복이 자신의 보물 집을 준다고 했을 때 의아했는데…… 이제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김치 저장고에서 이쪽 으로 오지 말고 내 집으로 왔다 갔 다 해.

즈에서 오고 갈 수 있는 곳은 남이 와도 상관이 없는 곳이나 자신의 소 유로 된 집뿐이다.

그러니 만복이 이 집을 자신에게

준 것이다.

앞으로는 김치 저장고에서 돼랑이 타고 오지 말고, 바로 이리로 오라 고 말이다.

“집도 주고…… 참 좋은 형이네 요.”

집을 보던 강진이 벽을 툭툭 치고 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조명 공사는 좀 해야겠 다.”

어두워서 밤에 오면 방이 잘 안 보일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웃으며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돼랑이를 향 해 소리쳤다.

“가자!”

돼랑이가 다가와서는 등을 대자 강 진이 거기에 올라탔다.

파앗!

그날 저녁,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는 저승식당이 열렸다. 만복과 달래 를 추모하기 위해 강진이 출장 저승 식당을 연 것이다.

* *  *

점심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은 가게 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월이라…… 어린이날이 있는 날 이네.”

배용수가 작게 투덜거리는 것에 강 진이 그를 보았다.

“오월 일일부터 어린이날을 기다리 는 거냐?”

“기다리는 건 아니고.”

“그럼 너 어린이날 싫어해?”

“싫은 날일 수도 있고 기분 좋은 날일 수도 있고…… 반반이지.”

“무슨 소리야?”

“어린이날이라고 운암정에도 어린 손님들이 많이 오거든. 그걸 멀리서 보면 참 보기 좋은데……

“가까이서 보면 안 좋아?”

“애들은 소리 지르고, 화초 뜯어내 고, 작은 쓰레기 버리고…… 한 번

은 애 하나가 난 화분을 떨어뜨려서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하아!”

한숨을 쉬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 이 웃었다.

“그래서 반은 좋고 반은 싫은 거 야?”

“그런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참된 숙수지만…… 사 실 우리 운암정 음식은 애들보다는 어른들 입맛에 더 맞잖아.”

“그건 그렇지.”

음식 본질의 맛을 살리는 것을 추 구하는 운암정이다 보니 아이들 입 맛에는 그리 맞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어린이날에는 평소보다 신 경을 써야 할 것이 많아. 애들 입맛 에 맞추자니 어른들이 걸리고, 어른 들 입에 맞추자니 아이들이 걸리고. 그래서 그날은 아이들 입맛에 최대 한 맞추면서 어른들에게는 양해를 구하지.”

“그러면 좋아해?”

“맞추기 힘들 뿐이지 못 맞출 건 없지. 한국 애들은 기본적으로 한식 을 먹으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이다가 말했다.

“그런데 집이 좀 사는 애들인가 보 다. 운암정에 밥을 먹으러 다니는 거면?”

“그런 셈이지.”

운암정은 단품 메뉴보다는 세트 메 뉴 위주로 판매를 하니 좀 문턱이 높은 편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은 시간을 보 았다.

“그나저나 운암정 한 번 가야 하는 데……

평일에는 가기가 힘들었다. 점심과 저녁 장사라는 건 그 사이에 몇 시 간 남지 않으니 말이다.

“쉬는 날 가자.”

“안 아쉬워?”

“아쉽기는 하지. 근데 어쩔 수 없 잖아.”

배용수는 가게를 둘러보며 말을 이 었다.

“주방장이 내 가게를 놔두고 돌아 다닐 수 있나.”

“하긴, 그것도 그러네.”

강진은 웃으며 홀을 마저 정리했 다.

정리를 끝낸 강진이 배용수와 커피 를 한 잔 마시고 있을 때였다.

“깜짝아!”

갑작스러운 굉음에 직원들이 놀라 뛰쳐나오는 사이, 강진도 몸을 벌떡 일으켰다.

“무슨 일이지? 사고라도 났나?”

강진과 용수, 그리고 여자 직원들 은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화물차 가 맨 앞에 있고 그 뒤로 승용차가 줄줄이 박은 상태였다.

게다가 중간의 차는 뒤에 있는 차 와 화물차에 끼어 거의 샌드위치가

되어 있었다.

“사고 났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두말하지 않 고 앞치마를 풀어서는 크게 휘저었 다.

휙휙! 휙휙!

강진은 앞치마를 휘저으며 사고가 난 차량에 다가갔다.

“와! 와! 와!”

소리를 지르며 미친놈처럼 차로 뛰 어가는 강진의 모습에 배용수가 놀

란 눈을 하다가 급히 그 뒤를 따라 갔다.

그 사이,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 었다.

“사고 났나 봐.”

사람들이 사고 현장을 보며 웅성거 리는 사이, 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 간 강진은 핸드폰을 꺼내 급히 119 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자동차 사고요. 세 대 사고 가 났고요. 위치는…… 네. 빨리 와 주세요.”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자동차 를 볼 때, 차들이 옆으로 비껴서 가 기 시작했다.

‘이럴 때 좀 도와주지.’

혹시라도 사고가 난 차량들을 뒤에 서 차가 다시 박을 수도 있는데 말 이다.

“미친놈아! 도로를 그렇게 뛰어가 면 어떡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 다.

“몰라. 나도 모르게 앞으로 갔어.”

말 그대로 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뛰어나왔을 뿐이었다. 생각 할 시간이 있었다면 강진도 저기 길 거리에서 핸드폰으로 사고 현장을 찍고 있는 사람처럼 서 있었을 수도 있었다.

‘사진 찍을 거면 와서 좀 도와주 지.’

뒤에서 차들 오지 않게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텐데 말이 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택시 한 대가 빵빵 소리를 내며 유턴을

했다.

유턴 지역이 아닌데도 천천히 유턴 한 택시는 사고 차량 뒤에 비스듬히 멈춰 서고는 비상등을 켰다.

그 택시에서 내린 건장한 체격의 아저씨는 트렁크에서 간이용 바리케 이드 같은 것을 꺼내 택시 뒤에 설 치 했다.

번쩍! 번쩍!

붉은 등이 좌우로 움직이며 빛을 뿜어내는 걸 확인한 택시 기사는 강 진에게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택시 기사가 그의 손 에 들린 앞치마를 보았다.

“그쪽도 이거 보고 도우러 온 건데 나한테 감사해할 이유는 없죠. 아이 고…… 이거 사고가 크게 났네.”

택시 기사는 트럭 뒤에 박혀 있는 차 운전자를 보며 눈을 찡그렸다.

에어백에 고개를 박은 채 미동도 없는 남자를 보던 택시 기사는 차를 앞뒤로 보며 상황을 살폈다.

“사람을 꺼내야 할 것 같은데요.”

강진의 말에 택시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교통사고 났을 때는 119 올 때까 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아요. 괜 히 뼈 다친 사람 강제로 꺼내다가 척추라도 다치면……

택시 기사가 입맛을 다시는 것에 강진이 “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러고는 슬쩍 택시 기사 뒤를 보 았다. 택시 기사 뒤에는 짧은 스포 츠머리에 검은 정장을 입은…… 딱 봐도 조폭인 것 같은 이십 대 초반

정도의 남자가 있었다.

‘수호령인가?’

팔다리가 부러진 듯 흐느적거리기 는 했지만 택시 기사 뒤에 떡하니 서 있는 남자는 듬직한 모습이었다.

강진이 그를 보고 있을 때, 택시 기사의 욕설이 들렸다.

“이런 씨..

그 소리에 강진이 택시 기사를 보 았다. 그는 맨 뒤에 있는 자동차 안 을 보며 욕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이 자식 술 처먹고 운전했네.”

택시 기사의 말에 강진이 차에 다 가가 안을 보다가 눈을 찡그렸다.

밖에서도 맡아질 정도로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아니, 대낮에 무슨 술을 이렇게?”

“술 먹는 놈들한테 밤낮이 따로 있 나.”

택시 기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에 있는 사람이 작게 중얼거렸다.

“끄응! 나…… 안 취했어.”

운전자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그럴 때 택시 기사가 강 진을 보았다.

“여기 좀 보고 있어요.”

택시 기사는 앞으로 가서는 트럭 운전자석을 확인했다.

“이봐요. 정신 있어요? 그럼 움직 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혹시 모 르니까.”

다행히 트럭 운전자는 의식이 있는 듯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던 택시

기사는 강진을 보았다.

“119 불렀어요?”

“네!”

강진의 말에 택시 기사가 훌쩍 트 럭에서 내릴 때, 강진이 눈을 찡그 렸다.

중간에 끼어 있던 차에서 희끄무레 한 영혼이 나오고 있었다.

“죽었어?”

강진이 놀라 중얼거리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그래?”

“장두준 아빠처럼 몸에서 혼만 나 온 거야. 귀신보다 더 희뿌옇잖아.”

유도 선수 장두준의 아빠도 병원에 서 오랜 기간 누워 있다가, 가끔씩 이렇게 영혼이 나왔었다.

“그럼 무척 위험한 것 아냐?”

배용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를 보았다.

“허 선생님 불러.”

그에 강진이 허연욱을 급히 불렀 다.

화아악!

모습을 드러낸 허연욱이 사고가 난 차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릴 때, 강진이 앞 차를 가리켰다.

“저 기.”

허연욱은 희뿌연 영혼을 보고는 눈 을 찡그렸다.

“사고군요.”

“네. 일단 사람부터 좀 보시죠.”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영혼에게 다 가갔다. 영혼은 멍하니 주위를 보다 가 차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의아한 것이다. 귀신과 달리 몸 밖 에 나온 영혼은 조금 많이 멍한 상 태이니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