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555화 (553/1,050)

555화

멍한 얼굴로 차 속에 박혀 있는 자신의 몸을 보는 남자를 지나친 강 진이 눈을 찡그렸다.

아까 보기는 했지만, 자동차 속 남 자는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 었다.

아마도 사고가 날 때 운전석 유리 창을 머리로 박은 모양이었다.

“목에 손을 대세요.”

허연욱이 직접 목에 손을 대며 위 치를 잡아 주자, 강진이 그곳에 손 을 가져다 댔다.

강진의 손을 통해 남자의 맥을 짚 은 허연욱이 눈을 찡그렸다.

“어때요?”

허연욱은 남자를 보다가 힐끗 조수 석을 보았다. 조수석에는 장난감 상 자가 있었다.

‘ 피규어?’

액션 히어로 피규어 상자를 본 강 진은 만복을 떠올렸다. 만복의 보물

집에도 이런 피규어가 많이 있으니 말이다.

“힘들겠군요.”

“네?”

허연욱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영혼 을 보았다. 영혼은 멍하니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허연욱의 말을 들었는지 천천히 그를 보았다.

“죽…… 죽어?”

허연욱은 안타까운 얼굴로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사실을 알고 망연히 서 있던 남자는 조수석에 있는 장난 감 피규어를 보았다.

“도......" 도와......"줘.”

“이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고통만 심할 뿐입니다.”

허연욱의 말에도 남자는 피규어 상 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내……일…… 죽게…… 해 줘

천천히 중얼거리듯 말하는 남자를 보던 강진은 의아했다.

‘살려 주세요, 가 아니라 내일 죽 게 해 달라고?’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말에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볼 때, 남자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오늘......" 아들......" 생일......" 내 일…… 죽게…… 해 줘. 도…… 도 와줘.”

남자의 말에 허연욱이 입을 벌렸 다.

“아들…… 생일날 죽을 수 없다는 겁니까?”

남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 슬퍼......"

남자의 말에 강진이 입술을 깨물었 다.

지금 남자는 영혼만 나온 상태라서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아들 걱정을 하고 있었다.

오늘 죽으면, 아들의 생일날과 자 신의 기일이 같게 되니 말이다.

남자가 여전히 장난감을 보는 것에 강진도 그것을 보았다.

‘저게…… 생일 선물이구나.’

장난감을 보던 강진이 허연욱을 보 았다. 강진의 시선에 허연욱이 잠시 남자를 보다가 말했다.

“의식을 놓지 마십시오. 고통스러 워도 최대한 버티세요. 버티고 또 버티셔야 합니다.”

남자는 허연욱을 멍하니 보다가 고 개를 끄덕였다.

“버……텨.”

목소리에 담긴 결의 같은 것을 느 낀 허연욱이 강진을 보았다.

“제가 가리키는 곳을 아주 강하게 누르세요.”

“그럼 치료하는 겁니까?”

허연욱은 고개를 저었다.

“치료가 아니라…… 몸을 깨우는 겁니다.”

“고통스러울 텐데요?”

“고통은 살아 있다는 증거죠. 그리 고 영혼이 몸 밖으로 나와 있는 건

아주 좋지 않습니다. 나와 있는 만 큼 생기도 빠져나가니까요. 일단은 영혼을 안에 넣는 것이 먼저입니 다.”

허연욱이 남자의 몸 몇 곳을 손으 로 가리키자 강진이 슬쩍 손을 대고 는 강하게 눌렀다.

그러자 남자의 영혼이 그대로 안으 로 빨려 들어갔다.

스르륵!

영혼이 몸 안으로 스며들자마자 남 자가 작게 신음을 토했다.

“으…… 사람…… 살려.”

“곧 119가 올 겁니다. 조금만 참으 세요.”

“크으응!”

영혼으로 나왔을 때의 일을 기억 못 하는 듯한 남자가 작게 신음을 토했다.

그런 남자를 보던 강진의 귀에 사 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강진이 주위를 볼 때, 택시 기사가

다가왔다.

“119 오는 모양입니다.”

택시 기사는 좌우로 고개를 돌리다 가 한쪽을 보고는 크게 손을 흔들었 다.

“여기요! 여기!”

택시 기사의 말과 함께 구급차가 다가왔다.

애앵앵! 앵앵!

사이렌 소리와 함께 멈춰 선 구급 차에서 구조대원들이 급히 내렸다.

그들이 급히 차를 살피는 것을 보며 강진이 가운데 차를 가리켰다.

“저기 가운데 차 환자가 가장 위험 해 보입니다.”

강진의 말에 구조대원 중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가 차를 보다가 말 했다.

“신고해 주신 분이신가요?”

“네.”

“신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부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저기 뒤에 있는 차, 음주 운전인 것 같습니다. 확인하세요.”

택시 기사의 말에 구조대원이 눈을 찡그리고는 세 번째 차량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사고 날 때 보셨습니까?”

“저는 저기 앞에 식당 장사하는데 쾅 소리 나서 나왔거든요. 그래서 사고 나는 것은 못 봤습니다.”

구조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리려 할 때, 강진이 말했다.

“오늘이 생일이래요.”

강진의 말에 멈칫한 구조대원이 그 를 보았다.

“가운데 차에 타신 분 자녀가 오늘 생일이래요. 꼭 살려 주세요.”

구조대원은 가운데에 있는 차를 보 았다. 다수의 구조대원이 그 차에 붙어서 환자를 살피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구조대원이 고개를 끄 덕였다.

“반드시 구하겠습니다.”

* *  *

서둘러 두 번째 차로 향한 구조대 원은 다른 대원들에게 상황을 전달 받으며 본격적으로 구조 작업을 시 작했다.

첫 번째 차량과 세 번째 차량 운 전자는 다행히 많이 다친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강진의 말대로 세 번째 환자에게서는 알코올 냄새가 나는 것이 음주 운전이 의심되었다.

물론 음주 운전을 했다고 부상자를 안 구하지는 않는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고, 구조대는 부상자를 구한다. 그것이 나쁜 놈이든 착한 사람이든 말이다.

대원들이 다른 두 부상자를 차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보던 구조대원 이 가운데 차에 다가가 안을 보았 다.

상태를 확인한 그는 눈을 찡그렸 다.

‘안 좋은데……

수많은 구조 경험상, 지금과 같은 상태면 매우 좋지 않음을 알았다. 특히 차체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는 걸 보아 사고 당시 운전자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차체에 껴 있는 경우, 부상자를 급히 빼내면 막혀 있던 혈 류가 뚫리면서 더 심각한 부상이 되 는 경우도 많았다.

심란한 얼굴로 운전자를 보던 구조 대원의 눈에 조수석에 있는 장난감 이 보였다.

-가운데 차에 타신 분 자녀가 오 늘 생일이래요. 꼭 살려 주세요.

방금 본 시민이 했던 말을 떠올린 구조대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또 한 한 명의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자식의 생일날 초상 치르게 할 수 는 없지.’

각오를 다진 그는 차 안을 살피고 는 부상자를 빼낼 조치를 시작했다.

강진은 식당 앞에서 구조대원들이 부상자들을 구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가운데 차 쉽게 못 꺼내 시네요.”

구조대원들이 왔을 때는 금방 환자 를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몇 분이 지났는데도 부상자는 아직 차 체 내에 있었다.

강진의 말에 택시 기사가 커피를

마시다가 말했다.

“차가 워낙에 찌그러져서…… 그리 고 찌그러진 차체가 사람 몸을 어떻 게 압박하고 있을 줄도 모르니 쉽게 못 건드는 거지.”

택시 기사는 차를 걱정스러운 얼굴 로 보았다. 그런 택시 기사의 모습 을 보던 강진이 힐끗 그 뒤에 있는, 정장을 입은 수호령을 보았다.

수호령은 배용수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호오! 조폭이셨구나.”

“아......" 네.”

“그럼 저 택시 기사분은요?”

“제가 모시던 형님입니다.”

“지금은 은퇴하셨나 보네요?”

“저 죽는 것 보고는 그만두셨습니 다. 저를 많이 예뻐하셨거든요.”

“그쪽 세상은 쉽게 못 나온다고 하 던데?”

“……쉽게 나오신 것은 아닙니다.”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택시 기 사를 보자, 조폭 귀신이 급히 말했

다.

“저희 형님, 조폭이기는 하셨지만 좋은 분이십니다.”

“조폭이 좋아 봤자 조폭이지.”

“그건......"

조폭 귀신이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 니 양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최소한 자신이 나쁜 짓 하던 놈이라는 건 아는 모양이니 말이다.

두 귀신의 대화를 듣던 강진이 택 시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기사님은 안 가셔도 괜찮 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택시 기사가 커피를 마저 마시고는 말했다.

“사람 구조되는 건 보고 가야지. 이러고 가면 걱정되잖아.”

어느새 말을 편하게 놓고 있는 택 시 기사를 보며 강진이 물었다.

“영업에 지장 있으실 텐데요?”

“후! 이래 보여도 개인택시야. 내 가 사장인데 영업 좀 쉬지 뭐.”

두 사람이 구조 현장을 보며 이야 길 이어나가던 사’이, 추가로 온 구 급차가 사고 현장 근처에 멈춰 섰 다. 그 구급차에서 하얀 가운을 입 은 의료진들이 급히 내렸다.

*  * *

구급차에서 내린 의사는 구조대원 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부상자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요. 여기서 꺼내다가 바로 일 날 것 같 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 대원님이 내 친구 살려서 데려 왔는데 부르면 언제든지 와야죠.”

“그건 제가 할 일이었습니다.”

“그 말대로 저는 사람 살리는 것이 일이죠. 일단 환자부터 보죠.”

의사는 구조자에게 다가갔다.

“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

“크으윽! 네…… 들려요.”

“의식 놓지 마시고요. 곧 구해 드 릴게요.”

신음을 토하는 환자를 보던 의사가 몸을 이리저리 보았다.

‘다행히 의식이 있군.’

“어떻습니까?”

“의식이 있는 건 일단 좋은 현상이 죠.”

환자를 살펴보던 의사는 힐끗 조수 석을 보았다.

“ 장난감?”

의사의 중얼거림에 구조대원이 말 했다.

“오늘 자녀 생일이라고 합니다.’’

“아......"

“병원에서 가족한테 죄송하다고 말 해야 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특히 오늘 생일인 그 자녀에게는 요.”

구조대원의 말에 의사가 입맛을 다 시고는 환자를 보았다.

“그럼…… 뜯어내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여기에 계속 둘 수는 없으니 뜯으 세요. 최대한 신속하게 해서 환자한 테는 충격 없도록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환자 보호자하고 통화했으 면 합니다.”

의사의 말에 구조대원은 아까 알아 낸 가족 번호를 확인했다.

“……지금 환자분께서는 차에 끼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내출혈이 심한 상태라 차체에서 꺼내는 순간 위험해질 겁니다. 해서 여기에서 응 급 개복 수술을 하려고 합니다.”

의사의 말에 구조대원이 놀란 눈으 로 그를 보았다.

“개복 수술?”

그리고 그것은 옆에서 유심히 듣고 있던 허연욱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배를 연다고?”

허연욱이 놀란 눈으로 의사를 볼 때, 의사와 함께 온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 잘 해요.”

그 귀신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 런데 한국 군복은 아닌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배를 엽니 까?”

“여기보다 더 안 좋은 곳에서도 까 는 녀석입니다. 믿으세요.”

허연욱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여기보다 더 안 좋은 곳?’

도로 한가운데보다 더 안 좋은 곳

에서 개복했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 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고 현장보다 더 안 좋은 개복 장소는 얼마 없으니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