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화
김봉남과 악수를 하며 강진이 말했 다.
“자주 찾아와야 하는데 죄송합니 다.”
“죄송은 무슨…… 자기 식당 두고 여기 자주 오면 내가 혼을 냈을 거 야.”
기분 좋은 얼굴로 김봉남이 웃자 마주 웃은 강진이 물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다현 스님이 많이 좋아졌다고, 이 제 약식만 해도 관리될 거라고 하더 구나.”
“약식요?”
“몸에 좋은 식재로 밥 해 먹으라는 거지.”
그러고는 김봉남이 강진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다현 스님이 자네 한 번 찾아오라고 했었네.”
“저 를요?”
“이야기나 좀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군.”
“알겠습니다.”
다현 스님이라면 저승식당에 대해 알고 있으니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 기에도 좋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마 따나 이것저것 이야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강진이 다현 스님을 떠올릴 때, 김 봉남이 이진웅을 보았다.
“간식은 자네가 할 거겠지?”
운암정 직원들은 점심 장사 시작하 기 전에 이른 점심을 먹는다. 그리 고 점심이 끝나면 또 간단하게 참을 만들어 먹는다.
특히 이진웅은 운암정에 오면 참을 자신이 만들고는 했다.
“제가 이번에 해남에서 국수를 하 나 발견했는데 면이 좋더군요.”
“그래?”
“오늘 쓰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드 셔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소개해 드 리겠습니다.”
“그럼 점심은 잔치국수인가?”
“잔치국수하고 비빔국수로 하려고 합니다.”
이진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김 봉남이 강진을 보았다.
“강진이도 같이 해 보겠어?”
“주방에 외부인 못 들어가지 않나 요‘?”
“용수한테 음식을 배웠으면 남이라 고 할 수는 없지.”
웃으며 말을 한 김봉남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자, 이진웅이 임수령을 보았다.
“당신은 직원들하고 있어요.”
“알았어요.”
임수령도 운암정은 자주 왔기에 불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 는 여자 직원들도 있고 말이다.
김봉남과 이진웅을 따라 강진은 후 원에 있는 뒷■문을 통해 주방에 들어 갔다.
주방 입구에 있는 발판에다 발을 닦고 싱크대에서 손을 씻은 강진에
게 김봉남이 두건을 내밀었다.
“머리에 두르게나.”
“알겠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게 두건을 두 른 강진이 주방 안을 둘러보았다. 주방에는 열 명이 넘는 요리사들이 주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김봉남과 이진웅이 들어 오자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런 이들 을 보던 강진이 문득 뒤를 보았다.
배용수가 주방 입구 앞에 서서 안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왜 안 들어오느냐는 강진의 눈빛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혼 나.”
강진이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볼 때, 옆에 귀신이 다가갔다.
“용수 왔구나.”
한복을 입고 있는, 조선시대 귀신 처럼 보이는 노인에게 배용수가 고 개를 깊숙이 숙였다.
“숙수님을 뵙습니다.”
“그래. 잘 지내고 있느냐.”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배용수의 모습에 강 진이 의아한 듯 노인을 보았다.
그런 강진에게 배용수가 조용히 말 했다.
“숙수님의 할아버지로, 대령숙수 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신기하다는 듯 노인을 보았다. 대령숙수라는 말 은 강진도 알고 있는 단어였다.
대령숙수는 쉽게 말하면 왕실에서 일하던 남자 요리사였다.
배용수가 강진에게 설명을 하자, 노인이 강진을 보았다.
“자네 귀신을 보는 건가?”
노인의 물음에 강진이 뭐라 말을 하려 할 때, 김봉남이 말했다.
“이리 오거라.”
그에 강진은 노인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배용수에게 눈짓을 했다.
노인을 맡으라는 의미였다. 그러고
는 강진이 김봉남에게 가자 배용수 가 말했다.
“저승식당이라고 귀신들에게 밥을 주는 식당의 사장입니다.”
“저승식당? 음…… 이야기는 들어 보았는데 저 이가 그곳 사장이군.”
“저승식당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 까?”
“나도 오고 가는 귀신들을 꽤 만나 봤으니까.”
노인은 강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았다.
운암정도 식당인 만큼 귀신들이 오 갈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다 보니 귀신들 몇이 드나들곤 했는데, 그들 을 통해 저승식당이라는 곳에 대해 서 들어 본 적이 있는 노인이었다.
그래서 호기심도 있었다. 귀신들에 게 음식을 주는 식당의 주인이…… 귀신이 아니라 이승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운이 안 좋은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보게 된 것이다.
노인은 김봉남의 소개로 주방 식구
들과 인사를 하는 강진을 보다가 배 용수를 보았다.
“그런데 용수…… 뭔가 다르구나.”
노인의 말에 배용수가 자신을 보다 가 무슨 말인지 알고는 고개를 숙였 다.
“귀신의 기운을 지우는 향수를 뿌 려서 그렇습니다.”
“장을 치를 때 JS 직원들이 뿌리는 소금을 말하는 것이냐?”
옛날 조선 시대 때에는 직원들이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소금을 뿌렸
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직원들이 뿌리는 것도 변했을지 모를 일이었 다.
“그와 비슷합니다.”
배용수의 말에 노인이 물었다.
“그럼 귀신의 기운이 없는 셈이 군?”
“네.”
“들어오너라.”
“제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귀신의 기운이 없다면 식재에 영 향을 주지는 않겠지.”
그제야 배용수는 환하게 웃으며 주 방을 보다가 슬며시 한 걸음을 내디 뎠다. 그렇게 주방에 들어선 배용수 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귀신 생활을 하면서 가끔 운 암정이 생각나면 찾아왔었다.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귀신이 사 람과 가까이 있어서 좋은 것이 없거 니와 운암정에 악영향을 줄까 봐 가 끔씩만 와서 보고 자리를 떴었다.
하지만 주방에는 끝끝내 들어갈 수 없었다. 운암정의 대령숙수인 노인 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인이야 배용수를 알고 안쓰럽게 생각을 하지만, 신성한 주방에 귀신 이 들어오는 것을 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노인 역시 귀신이고 지박령이 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귀기가 사라졌으니 주방에 들어와도 되는 것이다.
배용수가 들어오자 노인은 강진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게 그 국수인가?”
이진웅이 가져온 국수를 보며 김봉 남이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풍에 말린 국수인데 일반 국수 보다 쫄깃해서 맛이 좋습니다.”
이진웅의 말에 김봉남이 국수 가닥 을 하나 집어 보았다. 일반 국수에 비해 조금 더 노란색을 띠는 것을 보던 김봉남이 그것을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씹던 김봉남이 말 했다.
“고소하면서 살짝 단맛이 나는 데…… 고구마나 옥수수를 섞어서 만든 건가?”
“저도 그런 생각을 해 봤는데, 사 장님이 안 알려주시더군요.”
“후! 그러실 테지. 배합 비율이 그 집의 비법일 테니.”
그러고는 김봉남이 강진과 이진웅 을 보았다.
“비빔국수는 강진이가 해 보고 진 웅이가 잔치국수를 해 보거라.”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제가요?”
“요리사가 주방에 왔으면 뭐라도 해야지. 그냥 먹고 가기만 할 생각 이었느냐?”
“그게......"
강진은 주위에 있는 숙수들의 눈치 를 살짝 보았다.
“해도 될지.”
그러자 숙수 중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용수 선배한테 음식 배웠다면서 요?”
조금 젊어 보이는 숙수의 말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용수 선배가 해 준 비빔국수 한번 해 주세요. 선배한테 배웠으면 그것도 배웠을 것 같은데.”
옆에서 듣고 있던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암. 해 주고 말고. 한다고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말했다.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그리고 사장님이 도라지 보내 주신 것 잘 먹었습니다.”
도라지라는 말에 강진이 김봉남을 보았다. 그 시선에 김봉남이 웃으며 말했다.
“전에 네가 준 도라지 직원들하고 조금씩 나눠 먹었지.”
“그러셨군요.”
“그래서 할 건가?”
김봉남의 물음에 배용수가 급히 말 했다.
“하겠다고 해.”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김봉남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직원들과 함께 주방을 나섰 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이진웅은 익숙하게 냉장고를 열어
서는 필요한 식재들을 알아서 꺼내 기 시작했다.
그가 운암정을 떠난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식재 관리하는 시스 템은 변하지 않았기에 전과 같은 자 리에 식재가 다 있었다.
그 人}이, 주방을 나가지 않은 좀 앳되어 보이는 남자가 강진을 보았 다.
“필요한 식재가 있으세요?”
강진이 보자 남자가 조금은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조창정입니다. 여기 막내입 니다.”
“아! 이강진입니다.”
둘이 인사를 나눌 때 이진웅이 말 했다.
“필요한 식재나 도구 필요하면 창 정이한테 말을 해.’’
이진웅은 기름을 두르지 않은 프라 이팬에 멸치를 살짝 볶다가 면 포에 담았다.
마른 멸치라도 한 번 이렇게 프라 이팬에 볶아서 넣으면 육수가 더 진
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그는 파를 손으로 툭툭! 잘라 넣고 는 다른 육수 재료들도 넣었다.
강진이 그런 이진웅을 볼 때, 배용 수가 말했다.
“시간 없어. 빨리 해야 해.”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말을 덧붙 였다.
“간식으로 먹는 음식은 이십 분 내 에 후다닥 해서 내야 해. 그래야 직 원들이 빨리 먹고 쉬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여기 직원들 꽤 많아 보이던 데…… 그 많은 인분을 이십 분에?’
물론 메뉴를 여럿 하지 않고 한 가지만 대량으로 만들면 가능은 하 겠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 다.
“깍두기하고 김치, 그리고 파김치 꺼내 주라고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조창정에게 재료 이야기를 하자, 그가 재료들을
가져다주었다.
“칼 좀 달라고 해.”
강진은 칼꽂이에 꽂혀 있는 칼을 보았다.
‘저거 쓰면 되는 것 아냐?’
강진이 다시 배용수를 보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는 칼은 다 주인이 있는 칼이야. 남의 칼 함부로 가져다 쓰 면 칼 맞는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이며 조창정을 보았다.
“저기, 칼 좀 주시겠어요?”
그에 조창정이 주방 한쪽에서 식칼 을 가지고 왔다.
“식칼은 이거 쓰시면 됩니다.”
“혹시 요리사님 칼 주신 건가요?”
“아니요. 이건 그냥 잡다한 것 썰 때 쓰는 식칼이에요. 하지만 깨끗하 게 관리하는 거라 쓰셔도 돼요.”
조창정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김치 통을 열었다.
“몇 인분 해야 하냐고 물어봐.”
강진이 그대로 묻자 조창정이 말했 다.
“칠십 인분 하시면 됩니다.”
“칠십 인분?”
강진이 놀라 보자 조창정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 직원들이 백 명 조금 넘거든 요.”
“백 명?”
“비빔국수하고 잔치국수 넉넉하게
백사십 인분 정도 해야 더 드실 분 은 더 드시고 하실 거예요.”
엄청난 직원 수에 강진이 놀랄 때, 배용수가 말했다.
“시간 없어. 어서 해.”
그에 강진이 꺼내 놓은 김치들을 보았다.
“배추김치는 조금 얇게 썰어. 파김 치는 손가락 세 마디 정도로 썰고, 깍두기는 한 피스를 네 조각낸다 생 각해서 썰어. 깍두기는 식감으로 먹 게 할 거니까.”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치들 을 꺼내 썰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안에 칠십 인분에 쓰일 재료들을 준비하려면 궁금한 것은 일단 넣어 둬야 했다.
강진이 빠르게 칼질을 하자 조창정 이 옆에서 그것을 유심히 보았다.
“칼 잘 쓰시네요.”
“저도 식당 하니까요.”
강진의 말에 조창정이 그를 보다가 다시 칼질을 지켜보았다.
서걱! 서걱!
강진이 칼질을 하는 것에 노인 귀 신이 그것을 지그시 보다가 말했다.
“용수가 칼질을 가르친 것이냐?”
“네.”
“잘 가르쳤구나.”
노인 귀신의 칭찬에 강진이 작게 웃었다. 대령숙수를 하던 귀신에게 칼질 잘한다는 칭찬을 받은 것이니 말이다.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이제 겨우
칼 좀 잡는 수준이죠.”
옆에서 날아오는 지적에 강진이 슬 쩍 보자, 배용수가 어서 움직이라는 듯 칼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빠르 게 깍두기를 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