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화
100인분이 넘는 국수를 만드는 것 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시간만 넉 넉하다면 국수 100인분 정도는 아 무것도 아닐 테지만…… 지금은 20 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었다.
특히 국수를 삶고 찬물에 씻을 때 강진은 자신이 면을 씻는 건지 빨래 를 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 였다.
100인분이 넘는 국수는 그야말로
한 솥이니 말이다.
“힘 팍 주고 빨래하는 것처럼 빡빡 문대. 그래야 전분이 잘 빠져.”
‘알고 있다.’
국수를 강하게 문대면 으깨질 것 같지만 생각보다 으깨지지도, 부서 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강진도 한끼식당에서 국수 씻을 때는 빨래하듯이 강하게 문대 곤 했다.
하지만 지금 더 힘든 것은…….
“빨리해! 이러다가 국수 다 퍼지겠 다.”
배용수의 잔소리였다. 쉬지 않고 계속 잔소리를 하는 배용수 때문에 강진은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다.
게다가 옆에 사람들이 있어서 배용 수에게 하지 말라고 말도 못 하고 그냥 듣기만 해야 했다.
물론 배용수의 마음이 이해는 되었 다. 정말 오랜만에 주방 식구들에게 음식을 해 준다는 생각에 쉬지 않고 계속 잔소리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자신이 하지는 못하지만, 강진을 통해 자신의 음식을 내 보이는 만큼 세세한 것까지 신경이 쓰이는 모양 이었다.
“더 박박 日]벼!”
배용수의 잔소리에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더욱 강하게 국수를 비볐다.
다 만들어진 국수를 배식하기 위해 직원들이 음식을 들고 홀로 나갔다.
커다란 통에 국수와 양념, 그리고 육수를 들고 가는 직원들을 보며 손
을 닦은 이진웅이 말했다.
“같이 가서 한 젓가락 하세.”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여기 정리 좀 하고 갈게요.”
“정리야 이따 애들이 와서 할 텐 데.”
“남이 제 주방 쓰고 정리 안 해 놓 으면 싫을 것 같아서요.”
강진의 말에 이진웅이 더는 권하지 않았다. 자신 또한 자신의 주방에 외부인이 와서 어지럽히면 기분이
많이 안 좋을 것이니 말이다.
이진웅이 주방을 나서자 강진이 따 로 빼놓은 비빔국수를 꺼내 노인과 배용수에게 내밀었다.
“이것 좀 드세요.”
강진이 혼자 남은 건 귀신인 둘에 게 음식을 챙겨주기 위함이었다.
노인은 국수를 보았다. 그에 배용 수가 말했다.
“저승식당 주인이 손맛이 담기면 보통 음식보다 더 맛이 있습니다.”
“그런가?”
“네.”
배용수의 말에 노인이 젓가락을 들 었다.
‘ 왼손잡이신가?’
스르륵!
노인은 국수를 젓가락으로 한 번 젓고는 입에 넣었다.
후루룩!
크게 한 입 넣어 씹은 노인이 미 소를 지었다.
“음…… 백 년 동안 내가 먹은 제 삿밥 중에 최고의 맛이군.”
그러고는 노인이 강진을 보았다.
“묘한 맛이군.”
“그러세요?”
“맛은 내가 기억하는 그런 맛인 데…… 기억 속에서는 낼 수 없는 맛이야.”
재료들은 모두 노인이 아는 맛인 데, 그것 말고도 뭔가 오묘한 맛이 나는 것이다.
귀신의 입에 가장 좋은 맛은 저승 식당 주인의 손맛인데, 저승식당 음 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노인은 그 맛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라 묘하다 고 표현한 것이다.
“다행입니다.”
강진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 고는 국수를 후루룩! 먹었다. 그것 을 보던 강진이 주방을 정리하기 시 작했다.
식기들이야 자신이 어디에 놓을지 모르니 일단 씻어 놓고 한곳에 잘 모아 두었다.
강진이 청소를 하는 것을 보며 배 용수가 슬며시 말했다.
“제 국수도 드십시오.”
“ 너는?”
“저야 가게 가면 많이 먹는걸요.”
배용수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국수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 다.
염치 차리고 거절하기 힘들 정도 로, 백 년 만에 처음 먹는 제대로 된 맛이었다.
그런 노인을 보던 배용수가 강진에 게 말했다.
“대령숙수 김밥 어른이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둣 그를 보았다.
“김밥?”
강진의 시선에 배용수가 웃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강진은 의아한 듯 노인을 보았다.
‘무슨 사람 이름에 밥이라는 이름
을 지어?’
살짝 웃기기는 했지만, 감히 웃을 수는 없었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국수를 먹던 노인, 김밥이 입을 열 었다.
“아버님께서 밥을 먹고 살아라 하 는 마음에 밥이라 이름을 지어 주셨 지.”
김밥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 다.
“요즘 김밥이라는 음식이 있어서 자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
지만, 그때는 밥을 먹고 사는 것이 꿈인 자들이 참 많은 시대였네.”
“힘든 시기였군요.”
“조선 후기만큼 백성들이 힘들었던 시기도 없었지. 그래서 내가 음식 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 어떻게 든 먹을 것을 만들어서 먹으려고 말 이야.”
김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 다. 학교에서 배우기도 하지만 조선 후기는 참 힘든 시기였다.
왕실 외척들이 나라를 마음대로 하
고 왕도 갈아치우던 시기다.
해서 관리들은 외척들에게 뇌물을 갖다 바쳐 관직을 사고, 위에 바친 뇌물을 뽑아내기 위해 백성들을 수 탈했다.
김밥이라는 이름이 좀 이상하지만, 그 이름에 담긴 의미는 웃기지도 않 고 이상하지도 않다.
자식이 배부르게 살았으면 하는 부 모님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아들 이름을 밥이라고 지을 정도 로 참 힘든 세상이었나 보구나. 역
시…… 조선시대에 안 태어난 것이 정말 다행이야.’
얼마나 먹고살기 힘들면 아들 이름 을 밥으로 지었을까 싶던 강진이 김 밥을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지박령이신 것 같은데?”
강진의 물음에 김밥이 고개를 끄덕 이며 한쪽을 보았다. 주방의 한쪽 벽에는 투박한 무쇠 식칼이 걸려 있 었다.
“내가 쓰던 식칼인데…… 저기에서 지내고 있지.”
“아……
무쇠 식칼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칼이 아직도 관리가 잘 되 어 있네요.”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실제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데 서슬이 퍼 런 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요리사 식칼에 녹이 쓸면 되겠 나?”
“그건 그러네요.”
“후손들이 쓰지는 않더라도 기름
먹이고 갈면서 관리를 잘 해 주고 있지.”
말을 하던 김밥이 한숨을 쉬었다.
“식재를 다듬고 잘라야 할 녀석이 저리 걸려 있으니……
안쓰럽다는 듯 자신의 식칼을 보는 김밥을 보며 강진도 다시 식칼을 보 았다.
‘쓰임이 있는 물건이 쓰임을 못 하 니 안쓰럽기는 하네.’
차는 타라고 있고, 연필은 쓰라고 있다. 물건이 용도에 맞게 쓰이지
않고 걸려만 있으니 안쓰러웠다.
강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배 용수가 준 것까지 맛있게 먹은 김밥 은 잘 먹었다는 듯 배를 두들기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제삿밥을 아무리 많이 먹 어도 배가 부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 았는데…… 귀신에게 밥을 해 주는 식당 사장 손맛이 다르기는 다르 군.”
“감사합니다.”
강진의 인사에 김밥이 미소를 짓고
는 말했다.
“자주 와. 내 음식 좀 알려주지.”
“알겠습니다.”
김밥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국수 그릇을 들었다.
“그건 왜?”
“버릴 수는 없으니 제가 먹으려고 요.”
김밥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 였다.
“음식을 귀하게 여기니…… 복 받
을 걸세.”
“감사합니다.”
강진은 고개를 숙이고는 국수 그릇 을 들고 주방을 나왔다.
그러다 금방 멈춰 섰다. 어디로 가 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에 배용 수가 앞장섰다.
“따라와.”
강진은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김밥 어르신은…… 우리 가게로
못 모시겠지?”
“모셔서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마 련해 드리면 좋겠지만…… 모시려면 식칼을 가져가야 하는데, 운암정 가 보인 식칼을 숙수님이 너한테 맡길 리 없지. 얼마나 애지중지하시는데.”
“하긴…… 가보를 나에게 맡기지는 않으시겠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잠시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어르신의 식칼은 우리 운 암정 숙수들에게 있어 충의의 상징
이기도 해.”
“충의?”
“어르신이 조선 후기 왕실 대령숙 수셨어.”
“그건 아까 이야기했지. 그런데?”
“그때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들이 일본 군인 데려다 왕실 후원에서 식 사를 하려고 했었어. 그때 대령숙수 였던 어르신에게 음식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거야.”
“그래서?”
“우리 운암정에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그때 발생하지.”
“전설?”
고개를 끄덕인 배용수가 주방 쪽을 한 번 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 우리 숙수님께서 세 가지 이 유를 들어 거절을 했대.”
“세 가지?”
“첫째, 나는 조선 왕실의 명에 의 해서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니 왕 실의 명이 아닌 이상 음식을 만들 수 없다. 둘째, 조선 왕실의 손님이
라면 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허나 조선에 든 도둑을 위해서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셋째. 내 손이 다쳐 서 음식을 해 줄 수 없다.”
“손을 다치셨다고?”
“그때 숙수님의 손은 멀쩡했지. 그 래서 음식 만들라고 지시를 하러 온 놈이 손이 멀쩡하지 않느냐고 했더 니…… 웃으면서 식칼로 자신의 오 른손을 찍으셨대.”
“오른손을 찍어?”
“손을 찍어 버리고는 웃으면서 그
러셨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니 당신의 눈은 썩은 동태의 눈보다 못 하기 이를 데가 없소.”
강진은 정말 놀란 듯 그를 보았다. 체했을 때 바늘로 손가락을 따는 것 도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하는 것이 사람인데, 자신의 손을 직접 식칼로 찍어 버리다니…….
강진이 놀란 눈을 하는 것에 배용 수가 작게 말했다.
“어르신 직접 보기 전에는 그냥 운
암정에 내려오는 그런 전설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어르신 보니 진짜 오른손이 없으시더라고.”
“아! 그래서 왼손으로 국수를 드셨 구나.”
“그렇지.”
배용수는 감탄 어린 눈으로 말했 다.
“대단하지 않냐? 왜놈들한테 음식 을 해 줄 수 없다고 스스로 딱! 하 다니 말이야.”
“대단하시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후원의 잔디밭에 도착했다.
잔디밭에는 직원들이 편하게 앉아 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왜 여기에서 먹어?”
“식사는 안에 구내식당에서 먹는데 간단하게 먹는 참은 야외에서 먹기 도 해. 그리고 오늘은 진웅 형 와서 밖에서 먹는 걸 거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일 때, 이진웅이 손을 들었다.
“이쪽으로 와.”
강진은 국수를 들고는 그 옆에 갔 다. 이진웅의 옆에는 이소연과 임수 령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이소연은 사람들이 먹는 국수를 멍 하니 보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웃 으며 그녀의 앞에 국수를 놓았다.
‘먹어.’
강진이 작게 입모양을 하자, 이소 연이 눈을 찡그렸다.
“ 없어요.”
이소연의 말에 강진은 아차 싶었 다. 이미 이 국수는 김밥이 다 먹은
것이다.
그에 배용수가 말했다.
“저기 국수 있어.”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서 일어났다.
“왜?”
“국수 좀 더 가져오려고요.”
“두 그릇이나 가져왔는데 더?”
이진웅의 물음에 강진이 한 그릇을 그에게 내밀었다.
“제가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이건
형님이 좀 드셔 주세요.”
“ 내가?”
“새로 한 그릇을 가져와야 할 사정 이 있어요.”
이진웅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 였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그 정도야 뭐.”
그는 국수를 한 그릇 집어 자신의 그릇에 반 덜고는 임수령을 보았다.
“더?”
“주세요. 맛있네요.”
임수령의 말에 이진웅이 국수를 덜 어주었다. 그 모습에 이소연이 웃었 다.
“엄마 아빠, 많이 먹어.”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이 보기 좋 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