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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574화 (572/1,050)

574화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소월향은 다소 굳은 얼굴로 식당에 자리하고 있었다.

귀검의 보호를 받는다고 하지만 아 무래도 귀신들이 가득한 이곳은 귀 기에 민감한 무당인 그녀로서는 앉 아 있는 것조차 버거운 장소였다.

불편한 기색인 소월향을 보며 강진 이 음식을 내려놓았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진이 식탁에 음식들을 놓자, 소 월향이 고개를 숙이고는 김소희를 보았다.

그 시선에 김소희가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이렇게 현신해서 보는 건 처음이 로군.”

김소희의 말에 소월향이 그녀를 보 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 말대로 현 신한 김소희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 던 것이다.

“고우십니다.”

소월향은 진심이었다. 귀신을 보는 무당이라 김소희의 모습은 늘 보았 다.

하지만 피에 절은 한복을 입은 게 아닌, 단아하고 고운 한복을 입은 김소희는 처음 보는 것이다.

‘정말 고운 분이셨구나.’

소월향은 평소 무섭게만 보이던 김 소희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마치 핸 드폰을 사러 들어온 여고생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소월향은 슬며시

주위에 있는 귀신들을 보았다.

가장 무서워하던 존재가 친근하게 느껴지자 다른 귀신들도 그리 어렵 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귀검이 소월향에게 밀려오는 귀신들의 기운을 막아주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소월향이 식당을 둘러보는 것을 보 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살짝 미소를 짓 는 것이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

다. 그런 김소희를 보며 소월향이 소주를 들었다.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에 김소희가 잔을 들어 소주를 받고는 병을 건네받아 그녀의 잔에 도 따라주었다.

“좋군.”

소월향이 보자, 김소희가 소주잔을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자네와 오래 보았는데 이렇게 술 을 받는 건 처음이니 말이네.”

“아가씨께서 술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으면 술을 올릴 것을 그랬습니 다.”

김소희에게 올리는 공양은 늘 좋은 과일과 좋은 음식들이었지, 술은 아 니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준비하게나.”

“알겠습니다.”

김소희는 천천히 잔을 비우고는 다 시 내밀었다. 그에 소월향이 다시 소주를 따라주었다.

새로 채워진 잔을 보던 김소희가

옆에 앉아 있는 황민성을 보았다.

“자네들도 한 잔들 하세.”

김소희의 말에 소월향이 두 사람에 게도 소주를 따라주었다. 그것을 보 던 김소희가 소주를 입으로 가져갔 다.

꿀꺽!

다시 잔을 비운 김소희가 소월향을 보았다.

“내 이들에게 자네와 자네 아들을 불러 여기에서 식사를 하게 했네.”

“제 아들을요?”

소월향이 놀라 하는 말에 강진이 말했다.

“아직 아드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 다. 사장님에게 이야기를 좀 들은 후에 저와 여기 있는 민성 형이 아 드님을 만나서 설득을 하려고 합니 다.”

“아......"

소월향은 잠시 있다가 고개를 저었 다.

“그냥 두세요. 괜히 아이 힘들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입을 열려 할 때, 황민성이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에 강진은 말하는 대신 황민성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소월향도 마 찬가지 였다.

갑자기 한숨을 쉰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해서……

잠시 말을 멈췄던 황민성은 재차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 자식이 자신에게 하는 잘못은 잘못이라 생각을 하지 않으시죠. 연 락이 없어도 바쁜가 보다, 찾아오지 않아도 바쁜가 보다. 그렇게 생각합 니다.”

소월향은 말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에게 마음 아픈 소리를 하고 상처를 줘도…… 이해하고 감싸주려 합니다.”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소주잔을 잡자, 강진이 슬며시 소주를 따라주

었다.

지금 황민성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그가 어머니에게 했던 잘못이었고, 그에 대한 회고였다.

자신이 독설을 하고 화를 내도 어 머니는 그저 자식 걱정만을 하고, 속상함은 눈물로 씻으셨으니 말이 다.

말을 하다 죄책감이 들었는지 황민 성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대학은 갈 것을……

그의 어머니, 조순례의 소원은 자 식이 대학 가는 것이었다.

보통 부모들이라면 당연하다 생각 을 하고 학비를 걱정할 때, 그녀는 황민성이 고등학교 잘리지 않고 무 사히 졸업한 뒤 지방 삼류 대학이라 도 다니기를 바랐다.

그런 어머니를 떠올리던 황민성이 소월향을 보았다.

“저도 어머니의 속을 많이 썩게 한 놈입니다.”

소월향은 황민성을 지그시 보다가

작게 한숨을 토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가 흘리 는 눈물에 가슴이 아픈 불효자 아들 입니다.”

“아..

“그때 조금만 더 어머니 말을 들을 걸……. 어머니 건강할 때 여행도 다니고 어머니 드시고 싶어 하던 것 을 같이 먹을걸……

말을 하던 황민성은 한숨을 쉬고는 눈가를 손으로 눌렀다가 입을 열었

다.

“지금이야 그 아드님이 어머님과 소원하고 연락을 하지 않지만…… 그 아드님도 나중에 자기 자식이 크 면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후회 할 겁니다.”

“제 아들이 후회……

“하지만…… 아드님이 후회할 때에 는 이미 어머님이 안 계실 수도 있 습니다. 그 슬픔과 후회, 아드님이 가지고 살기를 바라십니까?”

“ 그건......"

“힘들겠지만…… 어머님이 손을 내 밀어 주세요.”

“하지만 안 잡으려 할 텐데……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들이 후회하지 않게 저희가 돕게 해 주십 시오.”

후회라는 말에 소월향이 눈가를 손 으로 눌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 했다.

그런 소월향을 보며 황민성이 입맛 을 다시고는 티슈를 꺼내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소희 아가씨가 사장님 도와주라고 했지만…… 저는 그 아드님을 돕는 거라 생각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고맙다 하는 소월향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래서 아드님에 대해 알려 주셨 으면 좋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소월향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아들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 기 시작했다.

* *  *

저승식당 영업시간이 끝나자 소월 향은 김소희와 강진, 그리고 황민성 에게 인사를 하고는 가게를 나섰다.

그런 소월향과 나가는 귀신들을 배 웅한 강진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김소희는 자리에 앉아 있었고 직원 들은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쉬었다 가시겠어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 었다.

“가 봐야지.”

그러고는 김소희가 황민성을 보았 다.

“어찌 생각을 해 보았는가?”

김소희가 뭘 묻는지 안 황민성이 정중하게 말했다.

“몇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알게 해 주는 것 같습 니다.”

“어떻게 말인가?”

김소희의 물음에 황민성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가장 후회했던 걸 보여주면 될 것 같습니다.”

“자네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라면?”

김소희의 의아해하는 목소리에 황 민성이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 혼자 식사를 하게 하 고…… 혼자 TV> 보게 하고…… 혼자 앉아 있게 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후회가 됩니다. 어머니

가 혼자 계시던 공간에 제가 없었던 것이요.”

황민성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 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하게.”

김소희는 황민성의 말이 마음에 들 었다. 그래서 더는 방법에 대해 묻 지 않았다.

황민성이나 소월향의 아들이나…… 다 어미의 아들이니 말이다.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세요.”

김소희를 배웅한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어떻게 보여 드 리려고요?”

황민성은 자리에 앉으며 옆을 보았 다. 옆에는 고무장갑이 둥둥 떠 있 었다.

“용수야, 형 라면 하나 끓여 줘라.”

황민성의 말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 던 배용수가 손을 들었다.

“네!”

원래 고무장갑을 끼고 있지 않던 배용수지만, 저승식당 시간이 끝나 자 황민성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 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고 있던 것이 다.

배용수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황민 성이 말했다.

“계란 풀지 말고.”

“알고 있어요!”

배용수의 외침을 강진이 전해 주 자, 황민성이 말했다.

“형이 생각이 있어.”

“말 안 해 주시려고요?”

“말을 해 줘도 상관없는데…… 나 도 생각 정리를 좀 해야 해서.”

그러고는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엄마가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 는 것을 보면…… 그 아들도 생각이 있으면 미안하고 죄송하겠지.”

황민성은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 사장님 아들은 운이 좋

네.”

“운요?”

“더 늦기 전에 바로잡을 기회가 있 으니까.”

“그런데 안 그러면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 셨다.

“나하고 손잡고 불효 지옥 가야 지.”

불효 지옥이라는 말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형은 좋은 곳 가실 거예요.”

“후! 농이야. 농.”

웃으며 말을 할 때 배용수가 라면 을 가지고 나왔다.

“라면 나왔습니다.”

목소리는 안 들리지만, 배용수가 라면 그릇을 탁자에 놓자 황민성이 젓가락을 집었다.

“용수가 두 개 끓였나 보다. 같이 먹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앞에 자리했다. 앵그리 오동 통 면에 김치와 고추가 들어가 화끈 한 냄새가 퍼졌다.

그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면 발을 덜어서는 후루룩 먹자 강진도 침을 삼키고는 라면을 덜어 먹기 시 작했다.

후루룩! 후루룩!

강진이 라면을 먹는 것을 보던 황 민성이 웃었다.

“용수가 라면 기가 막히게 끓였 네.”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많이 드세요.”

배용수 쪽을 보던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진을 보았다.

“네가 서신대 나왔다고 했지?”

“그렇죠.”

“좋은 대학 나왔네. 우리 회사에도 서신대 애들 몇 있는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없는 곳이 있나요.”

“흠…… 대학 다닐 만한가?”

“ 왜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 시며 말했다.

“우리 엄마 꿈이 내가 대학을 다니 는 거였거든.”

“ 대학요?”

“아까 이야기하다가 생각이 났어. 엄마가 대학 가면 차 사주겠다고 했 던 이야기가.”

황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후후후! 나 대학을 얼마나 보내고 싶으면 우리 집 형편에 차를 사주겠 다고 했을까?”

말을 한 황민성이 라면을 크게 한 젓가락 먹었다.

후루룩! 후룩!

거기에 김치도 한 조각 집어 먹은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려고. 괜찮을 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괜찮을까, 라는 말이 어디에 있어 요. 아주 좋죠.”

“나이 먹고 학교 가려니…… 좀 걱 정되는데?”

“형은 잘 하실 겁니다.”

“그런가?”

“TV 보면 칠십, 팔십 드신 어르신 들도 중고등학교 가시고 하시잖아 요.”

잠시 생각을 하던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내가 공부를 놓은 지 너무 오래됐는데 인 서울 가능할 까‘?”

“인 서울요?”

“그래도 집이 서울이고 어머니도 여기 계신데 지방에서 학교 다닐 수 는 없잖아.”

인 서울이라는 말에 강진이 잠시 그를 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 인 서울은 좀 무리지 않을 까요?”

“그런가?”

지방이든 서울이든 어느 정도 공부 를 하는 애들이 인 서울을 한다.

그러니 수십 년간 공부와 담을 쌓 은 황민성에게 인 서울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잔디 깔아 주고 들어갈 수도 없고.’

황민성 능력이면 기부나 다른 편법 을 통해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순례가 원하는 것은 그런 방식이 아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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