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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582화 (580/1,050)

582화

스륵! 스륵!

강진의 손에서 오징어가 아주 얇게 썰려 나갔다. 유인호가 좋 아하는 스타일대로 오징어를 얇 게 썰어 면처럼 만들어 내는 것 이다.

스륵! 스륵!

얇게 썬 오징어를 접시에 담은 강진이 오징어 머리 두 개는 통 으로 올려놓았다.

그런 뒤 다른 오징어를 더 꺼내 서는 또 썰기 시작했다. 이건 두 귀신이 먹을 것이었다.

“강진아! 손님 일어나신다.”

배용수의 외침에 강진이 손을 닦고는 홀로 나왔다. 손님이 음 식을 다 먹고 마침 일어서려 하 고 있었다.

‘용수 나이스.’

장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손 님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되는 것 이다.

음식을 맛있게 먹어서 기분이 좋은 손님이지만, 계산을 오래 기다리면 다시 기분이 나빠질 수 도 있었다.

손님은 자신이 우대받기를 원하 지, 괄시를 받으러 오는 것이 아 니니 말이다.

게다가 홀이 바쁘지 않은 상황 에서는 더 손님을 기다리게 해서 는 안 된다. 장사의 기본이었다.

서둘러 나온 강진은 일어난 손 님들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오늘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기분 좋게 입을 닦은 손님이 지 갑에서 돈을 꺼내 아크릴 통에 넣었다.

“잘 먹고 가요.”

꽤 자주 오는 손님이라 가게 스 타일을 알고 있기에 돈도 알아서 넣고 가는 것이다.

단골손님을 배웅한 강진은 홀을 정리하는 대신 주방으로 다시 들 어갔다. 일단 이아름과 유인호가

먹을 음식을 해 주려고 말이다.

강진은 음식을 만들다가 이문흠 을 보았다.

“그런데 남자분 칭찬을 오늘은 안 하시네요?”

전에 왔을 때는 남자가 괜찮다, 우리 손녀하고 어울리지 않냐 하 는 등의 말을 했는데 오늘은 그 냥 홀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두 명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저 둘은 안 될 것 같아요.”

이문흠의 말에 강진이 임미령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왜요?”

“둘이 너무 친해져서요.”

“친해지면 좋은 것 아닌가요?”

강진의 말에 이문흠이 입맛을 다셨다.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말 을 믿는데…… 저 둘을 보면 그 냥 친한 친구 같아요.”

“아……

“시작을 잘못했어요.”

“시작요?”

“그냥 덤덤한 남녀 사이라도 시 작했으면 연인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처음에 만나고 친구 하 자고 하더니 정말 친구가 되어 버렸네요.”

“그래도 친구에서 연인이 되기 도 하니까요.”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문흠은 한숨을 쉬었다.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강진은 그런 그를 한 번 보고는 다시 음식 만드는 데 집중했다.

강진은 준비한 음식을 홀로 가 지고 나왔다. 홀 안에는 이제 다 른 손님은 없이 이아름과 유인호 만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말을 하며 강진이 콩나물국밥을 유인호의 앞에 두고 손두부 된장 찌개는 가운데에 놓았다.

그리고 잡채와 오징어 숙회를

놓자, 유인호가 웃으며 말했다.

“아, 좋네요.”

오징어 머리 두 개를 보며 유인 호가 말했다.

“요즘 오징어 비싸죠?”

전에도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강진은 처음 듣는 것처럼 말 상 대를 해 주었다.

“요즘 한 마리에 삼, 사천 원씩 하더라고요.”

“와…… 예전에는 천 원에 한

마리 였는데.”

“오징어가 잘 안 잡힌다고 하더 라고요.”

지금 대화도 전에 했던 것과 비 슷한 것을 보니…….

‘확실히 오징어에 관심이 많기 는 한 모양이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유 인호가 반찬들을 보며 말했다.

“이 밥상에서 오징어가 가장 비 싼 메뉴네요.”

“그럼 셈이네요.”

강진은 웃으며 오징어를 보았 다. 생각해 보니 진짜 비싸기는 했다.

이 오징어는 신수용이 마리당 이천 원에 가져다주기는 했지 만…… 확실히 두 마리면 사천 원이니 말이다.

“이거 본의 아니게 강매를 한 것 같네요.”

강진이 오징어를 보며 미안해하 자, 유인호가 웃으며 고개를 저

었다.

“오징어 두 마리 먹을 정도의 여유는 있습니다. 그리고……

유인호가 썰어 놓은 오징어 머 리를 들었다.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데요.”

기분 좋게 웃은 유인호가 오징 어 머리를 초장에 찍어서는 입에 넣었다.

그렇게 맛을 보더니 고개를 끄 덕였다. 오징어 머리 특유의 씹 히는 식감에 만족한 것이다.

유인호가 미소를 지으며 강진을 보다가 이아름을 보았다.

“드셔 보세요.”

“네.”

이아름은 유인호가 먹었던 것처 럼 오징어 머리를 통으로 먹었 다.

“이렇게 먹으니 식감이 더 좋네 요.”

“그래서 제가 오징어 머리는 통 으로 먹습니다.”

웃는 두 사람을 보던 강진이 고 개를 숙였다.

“맛있게 드세요.”

그러고는 몸을 돌린 강진은 주 방에 있는 이문흠과 임미령을 보 았다.

“그럼 두 분도 식사하시죠.”

“고맙습니다.”

임미령이 고개를 숙이자, 강진 이 그릇에 음식을 담아 쟁반에 올렸다.

그리고 쟁반을 들자 이문흠이 의아한 듯 말했다.

“그거 우리 먹을 음식 아닙니 까?”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왜?”

왜 들고 가려 하냐는 이문흠의 물음에 강진이 임미령을 보며 말 했다.

“JS 음식이면 허공에 두둥실 떠 다니니 사람 눈 피해서 드셔야 하지만, 이 음식은 그럴 일이 없

으니 좁은 주방보다는 홀에서 드 시는 것이 좋죠.”

그러고는 강진이 두 귀신을 보 며 말했다.

“그리고 손님이신데 굳이 주방 에서 먹을 이유는 없죠.”

“아…… 고맙습니다.”

임미령의 말에 미소로 답한 강 진이 음식들을 홀로 가지고 나왔 다.

그러고는 슬며시 이아름과 유인 호 옆자리에 음식을 놓기 시작했

다.

그 모습에 이아름이 물었다.

“손님 안 계신데요?”

“저 먹으려고요.”

“아!”

이아름은 민망한 듯 고개를 저 었다가 말했다.

“그럼 저희와 같이 드시지.”

“그럼…… 식탁만 살짝 붙여서 먹을까요?”

“그냥 여기서 드시면 되는

“이왕 만든 음식이니까요. 그쪽 드시다가 모자라면 이쪽 음식도 드세요. 여기 음식 드시는 건 돈 안 받겠습니다.”

강진의 농에 유인호가 웃으며 일어났다.

“그렇다면 어서 테이블을 붙여 야겠네요.”

유인호가 의자를 빼고는 테이블 을 잡자, 강진도 같이 테이블을 들어서는 옆 테이블에 붙였다.

그런 뒤 슬쩍 의자를 빼고는 유 인호 옆자리 의자도 빼냈다. 두 귀신이 앉을 자리를 마련한 것이 다.

“일단 식사부터 하고 계세요.”

“사장님은요?”

“저는 여기 좀 치우고 먹을게 요.”

“그냥 같이 드시고 나중에 치우 시지.”

“손님들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요. 편하게 드시고 계세요.”

웃으며 강진이 냉장고에서 사이 다와 소주 한 병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강진의 말에 유인호가 웃었다.

“소주를 서비스로 주세요?”

“사장의 특권이죠.”

강진은 잔을 가져다주고는 빈자 리에도 슬며시 소주잔 두 개를 놓았다.

“제가 한 잔 따라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유인호가 잔을 들 었다.

쪼르륵!

소주를 채워 준 강진이 이아름 을 보았다. 그에 이아름도 잔을 들자 강진이 소주를 따라 주고는 따로 놓아둔 두 잔에도 소주를 따랐다.

“잔이 ?”

빈자리에도 소주를 따르는 것에 유인호가 의아한 듯 보자, 강진 이 말했다.

“이따가 저도 마시려고요.”

“그런데 이 잔은?”

유인호가 자신 옆에 있는 빈자 리에 놓인 잔을 가리키자, 강진 이 웃었다.

“인호 씨에게는 특별히 두 잔 따라 드린 겁니다. 드시고 이것 도 드세요.”

강진의 말에 유인호가 웃었다.

‘특이하신 분이네.’

강진은 소주병을 내려놓고는 옆

에 있는 임미령과 이문흠을 보았 다.

‘식사하세요.’

강진이 입 모양으로 작게 속삭 이자, 두 귀신이 서로를 한 번 보고는 강진을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배려해 주셔서…… 고 맙습니다.”

그저 홀에 앉아 먹을 거라 생각

했는데, 강진이 탁자를 붙이면서 마치 한 상에 앉아서 먹는 것처 럼 만들어 준 것이다.

두 귀신의 인사에 강진이 웃으 며 쟁반을 들고는 손님들이 먹은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이문흠이 이아름의 옆에 앉으려 하자, 임미령이 말 했다.

“저…… 어르신.”

임미령의 말에 이문흠이 그녀를 보았다.

“저하고 자리를 바꿔 주시겠어 요?”

“응?”

이문흠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 았다. 자신이 손녀 옆에 앉고, 임 미령은 연인인 유인호 옆에 앉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싶어서였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임미령이 유 인호를 보며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야 잘 보이죠.”

“아……

임미령의 말에 이문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앉으면 거의 옆 모습만 보게 되지만, 앞에 앉으 며 똑바로 다 볼 수 있으니 말이 다.

“그렇게 합시다. 나도 우리 손 녀 밥 먹는 것 앞에서 보면 좋겠 어요.”

이문흠이 웃으며 자리를 옮기 자, 임미령도 그가 있던 곳에 가 서는 앉았다.

그러고는 연인인 유인호를 보았 다. 그는 국물을 한번 떠먹고는

오징어를 크게 집어 한입에 넣고 있었다.

그런 유인호를 따뜻한 눈빛으로 보던 임미령이 말했다.

“정말 잘 먹는다.”

임미령의 목소리에 그릇을 정리 하던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임 미령은 가만히 유인호를 보며 미 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문흠이 웃으며 말 했다.

“우리도 한잔합시다.”

이문흠이 잔을 들었다.

“다 늙은 노인네가 아가씨하고 한잔하는 것이 싫지 않으면요.”

이문흠의 말에 임미령이 웃으며 잔을 들었다.

스르륵!

불투명한 잔을 든 임미령이 가 볍게 잔을 맞대고는 술을 마셨 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달달하네요.”

임미령의 말에 이문흠도 소주를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술이 입에 쩍 하고 달라 붙네요.”

그러고는 이문흠이 이아름을 보 았다. 이아름이 잡채를 먹는 것 을 지그시 보던 이문흠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마주하고 밥을 먹으 니…… 예전 생각이 나는구나.”

이문흠은 옛 기억 하나를 떠올 리며 미소 지었다. 교복을 입은 이아름과 같은 밥상을 앞에 두고

밥을 먹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 다.

“아름이 많이 먹거라.”

웃으며 이문흠이 잡채를 크게 집어서는 입에 넣고는 맛있게 먹 기 시작했다.

한편, 홀을 정리하던 강진은 슬 쩍 이문흠과 임미령을 보았다.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사람의 옆에 앉지 않고 맞은편에 앉아 있었지만…… 두 귀신 모두 맞은편의 자기 사람을 보며 맛있 게 밥을 먹고 있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속으로 웃은 강진이 그릇들을 쟁반에 담아서는 주방으로 옮겼 다.

얼추 홀 정리를 끝낸 강진은 이 아름 테이블을 힐끗 보고는 소주 와 맥주를 챙겨서는 유인호의 옆 자리에 가서 앉았다.

“저 여기 앉아도 되지요?”

“그럼요.”

유인호가 자신의 옆자리에 놓인 밥과 콩나물국을 주려 하자, 강 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 자리에 사람은 없어도 귀신 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귀신 이든 사람이든 먹던 밥을 뺏는 것은 아니었다.

“저는 시원하게 맥주나 한 잔 하겠습니다.”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죠. 빈속 에 술 마시는 건 아닌데.”

이아름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음식 하면서 간 보고 먹다 보 면 늘 배가 불러요.”

강진은 소주와 맥주를 딴 뒤 유 리잔에 소주를 조금 넣고는 맥주 를 따랐다.

그렇게 황금빛 맥주가 완성되자 강진이 이아름과 유인호를 보았 다.

“두 분도 한잔하시겠어요?”

“좋죠.”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맥주를 따르자, 그는 옆에 놓인 소주잔 을 들고는 그 안에 부었다.

술을 따라준 강진이 이아름을 보았다. 그 시선에 이아름이 고 개를 저었다.

“저는 소주가 좋아요.”

그 말에 강진이 더는 권하지 않 고는 잔을 들었다.

“건배하시죠.”

강진의 말에 두 사람이 잔을 들 었고, 두 귀신은 입맛을 다시며

자신들의 소주잔을 보았다.

그 모습에 미안해진 강진이 그 둘을 보았다. 마음 같아서야 더 따라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빈자리에 놓인 빈 소주잔에 소주 를 채워 놓는 것은 너무 이상하 니 말이다.

강진이 해 줄 수 있는 건 두 사 람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뿐이었다.

‘죄송해요.’

작게 입 모양으로 말을 한 강진

이 두 사람과 잔을 가볍게 대고 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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