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4화
금요일 아침 일찍 강진은 사료 를 들고 공원에 들어서고 있었 다.
“뭐가 이렇게 밝고 뜨겁냐?”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하 늘을 보았다. 아직 사람들이 활 동하기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무 척 밝았다.
그리고 유난히 햇볕도 따가운 느낌이고 말이다.
“와, 6월인데 무슨 햇살은 여름 같네. 그리고 지금 시간이면 아 직 아침이잖아.”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 를 보았다.
“근데…… 귀신도 뜨거운 걸 느 끼냐?”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건 아니지만 이 정도 햇살이 면 뜨겁지 않겠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에는 뜨거워야지.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나은 거야. 곧 칠 월 될 텐데 칠월 되면…… 휴! 한숨만 나온다.”
끔찍하다는 듯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덥기는 팔월이 제일 덥다고 하 지만…… 많이 더운지 조금 더운 지의 차이일 뿐, 칠월도 무덥기 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푹푹 찌는 여름은 일당
이 좋은 건설 현장 일자리가 많 은 계절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턱대고 건 설 현장을 찾았던 강진이 곧장 일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 다.
일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한 강 진에게 현장 소장은 “그래. 일해 라.”라고 말하며 곧장 일을 시작 할 수 있게 해주었었다.
‘소장님은 잘 지내시려나?’
그때 들었던 그 한마디에 강진
은 용기를 얻었다. 처음 시도한 것이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 이후로도 일이 필요할 때면 직접 가서 부딪혔다. 물론 일자 리를 못 얻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 성공했던 기억 덕분 에 주눅 들지 않고 다른 곳에 도 전할 수 있었다.
예전 일을 떠올리던 강진은 피 식 웃었다.
‘한번 인사드려야 하는데.’
강진을 보면 아들이 생각이 난
다던 현장 소장은 강진이 일거리 가 필요할 때마다 일을 찾아 준, 정말 고마운 존재였다.
그를 떠올리며 미소 짓던 강진 이 중얼거렸다.
“그때는 참 더웠지.”
“응? 언제?”
“예전에 현장에서 처음 일했을 때 생각이 나네. 그때는 참 덥고 힘들고…… 말 그대로 투고였는 데.”
“투고?”
“덥고, 힘들고.”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배용수가 말했다.
“사장님 일찍 오셨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보니 이 강혜가 정자에 앉아 태블릿을 보 고 있었다.
“일찍 오셨네.”
자신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태블릿을 보고 있는 이강혜의 모 습에 강진이 살짝 거리를 두며 인기척을 냈다.
“안녕하세요.”
이강혜가 혹시라도 사업적인 것 을 보고 있는데 자신이 함부로 보면 안 되니 말이다.
강진의 인기척에 이강혜가 고개 를 들었다.
“왔어요?”
“일찍 나오셨네요.”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나서요. 조금 더 누워 있을까 하다가 나 왔어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료를 담아 온 통들 을 정자 밑에 두었다. 그리고 물 을 담자 고양이와 개들이 어디선 가 모습을 드러내서는 정자 밑으 로 들어왔다.
개와 고양이들이 사료를 먹는 것을 보던 이강혜는 강진에게 태 블릿을 내밀었다.
“광고가 완성됐어요.”
“아! 됐어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태블릿을
받았다. 태블릿에는 동영상 파일 이 띄워져 있었다.
그것을 본 강진의 얼굴에 미소 가 어렸다. 멈춰 있는 영상 속에 영수, 가은, 예림이가 웃으며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소 중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밑에 떠 있는 문구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녀석들…… 오랜만이네.’
웃으며 태블릿에 떠 있는 셋을 보던 강진에게 이강혜가 말했다.
“플레이해 보세요.”
이강혜가 귀에 꽂고 있던 블루 투스 이어폰을 건네주자, 강진이 그것을 귀에 꽂고는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영상은 꽤 길었다. 광고라고 하 면 1분 내외가 대부분일 텐데 이 영상은 10분 정도의 플레이 시간 을 가지고 있었다.
제법 긴 영상 속엔 가족들의 사 연과 아이들의 음성, 그리고 부 모님들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만나는 장면이 나왔다.
“흠!”
자신이 직접 눈앞에서 봤던 장 면이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작게 헛기침을 하며 눈 가를 닦은 강진은 영상을 마저 보았다.
부모님들이 울면서 아이들을 보 내는 장면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토했다.
“하아!”
강진이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에 이강혜가 미소를 지으며 손수건 을 꺼내 내밀었다.
“아주 좋네요.”
강진이 눈가를 닦으며 하는 말 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아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자, 이강혜가 자신의 눈을 손 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눈도 촉 촉한 상태였다.
“제가 특별히 눈물이 많은 사람 도 아닌데…… 이렇게 눈물을 홀 린 것을 보면 잘 만들어진 것 같 아요.”
말을 하며 미소 짓던 이강혜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안 드시는 것이 있으신 가 봐요?”
“아뇨. 마음에는 무척 들어요. 다만…… 사람들의 슬픔을 이렇 게 잘 만들었다고 표현하는 제가 싫네요.”
“어쩔 수 없죠. 사업가시니
“하아! 그러게요. 저도 이런 영 상 볼 때는 그냥 부모님 생각하 며 한잔하고 싶은데…… 영상 보 면서 디테일을 따지게 되네요.”
고개를 젓는 이강혜를 보던 강 진이 문득 말했다.
“아! 전에 눈이 불편하신 아주 머니 만났거든요.”
“눈이요?”
“이번에 보육원에 갔는데 눈이 불편하신 아주머니와 어린 딸이 손잡고 같이 식사하러 오셨더라 고요.”
“아……
“딸이 어머니를 인도하며 오는 것을 보니…… 짠하더라고요.”
“애가 착하네요.”
이강혜가 그 모습을 상상하며 탄식을 토하자, 강진이 말을 덧 붙였다.
“그 아주머니가 L 전자 시각 장 애인용 핸드폰을 쓰더라고요.”
강진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밑을 가리켰다.
“여기 밑에서 점자가 나와서 손 으로 문자도 읽고, 뉴스도 보고 하시던데.”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미소를 지었다.
“점자폰을 보셨군요.”
“핸드폰 이름이 ‘점자폰’이에 요?”
“정식 명칭이야 따로 있지만, 점자가 나오니 점자폰이고 부르 죠.”
이강혜는 기분 좋은 듯 웃으며 말했다.
“저희 회사에서 기분 좋게 출시 하는 제품 중 하나예요.”
“기분 좋게요?”
“만드는 순간부터 적자인 제품 이기는 하지만, 눈이 불편하신 분들이 글을 읽고 세상과 소통하 게 해 주는 폰이잖아요.”
말을 한 이강혜가 미소를 지었 다.
“전자라는 건 정말 대단한 거예 요.”
강진이 보자 이강혜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해 주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글을 읽게 해 주죠. 그리고……
이강혜는 태블릿을 보았다.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게 해 주고.”
“전자는 정말 좋은 거군요.”
“그렇죠.”
“그런데 점자 핸드폰은 저도 처 음 봤는데 광고 같은 건 안 하세 요?”
“그게…… 휴!”
작게 한숨을 쉰 이강혜가 말을
이었다.
“눈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제 품을 만들기는 하지만 만들수록 적자예요. 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상당하죠. 그런데 거 기에 광고까지 하면……
답이 안 나온다는 듯 고개를 젓 는 이강혜를 보며 강진이 말했 다.
“그래서 광고를 안 하시는군 요.”
“저희 직원들이 시각 장애인 교
육 시설에 핸드폰을 가져다주고 사시겠다는 분에게 판매하는 정 도로만 홍보하고 있어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이강혜를 보았다.
“그런데 그 제품은 돈을 벌려고 만드시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판매를 하시네요. 아! 판매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닙니 다. 그냥 적자 보시는 거 아예 무료로 배포하고 언론에 알리면
회사 이미지에 더 좋은 것 아닌 가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 씨 말도 틀린 말은 아니 에요. 돈이 안 되는 것도 맞고, 팔 때마다 오히려 저희가 손해를 보면서 파니까요. 그래서 처음에 는 눈이 불편하신 분들에게 무료 로 배포하려고 했어요. 강진 씨 말대로 기업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요?”
“강진 씨 뷔페 가 봤죠?”
“가 봤죠.”
“그럼 뷔페에서 음식 남기시 죠?”
“그야…… 그렇죠.”
많이 떠서 가져 왔다가 배가 부 르면 그대로 남기고는 하니 말이 다.
“근데 김밥집에 가면 김밥을 남 기세요?”
“그건…… 아니죠.”
보통 김밥은 먹을 만큼 먹으니 말이다.
“두 집 다 돈을 내고 먹기는 하 지만 뷔페는 일단 들어가면 음식 들이 다 무료잖아요. 그런데 김 밥집은 뷔페보다는 저렴하지만 음식을 더 시키려면 돈을 내야 해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무슨 말 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 다.
“돈이 중요하게 아니라…… 돈 을 내고 소중하게 사용해 주기를
바라셨군요.”
“맞아요. 무료로 드리면 무료, 공짜 기계라는 인식이 있는데 돈 을 얼마라도 받으면 내가 돈 주 고 산 상품이라는 인식을 하세 요. 그래서 잘 쓰시더라고요.”
“그럴 수 있겠네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길거리 에서 무료로 나눠 주는 물티슈는 대충 쓰지만, 슈퍼에서 천 원 주 고 산 물티슈는 보통 다 쓰고 버 리니 말이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강 혜가 태블릿을 보다가 문득 물었 다.
“카스는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보육원에 갈 때 민성 형이 데리 고 와서 아이들하고 재밌게 잘 놀았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어르신 장례식을 알았으면 저 도 갔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냥…… 좀 아쉬워 서 그렇죠.”
이강혜는 슬쩍 한쪽에 있는 벤 치를 보았다. 가끔 오동민이 그 곳에 앉아서 햇살을 즐기던 모습 이 떠오른 것이다.
“저 그거 한 번 더 볼게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태블릿을 주었다. 그에 강진이 동영상을 다시 한번 보며 아이들과 함께했 던 순간을 떠올렸다.
동영상을 다 보고 태블릿을 다 시 돌려주던 강진이 문득 물었 다.
“그런데 로고가 안 보이던데 요?”
“ 로고요?”
“L 전자 로고요. 그리고 L 전자 가 만든다거나 하는 내용도 없던 데 이러면 광고 효과가 없지 않 아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회사 로고가 없어도, 저 희 회사 핸드폰이 노출되잖아 요.”
“핸드폰도 VR 기기에 들어갈 때 잠깐 보이는 게 전부이던데 요?”
그 부분조차도 클로즈업도 하지 않고 그냥 찍은 영상이라 핸드폰 이 눈에 확 보이지 않았다. 그래 서 광고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컨셉이에요. 상품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거요.”
“그래요?”
“상품 노출이 적고, 회사 로고 가 없더라도…… 누가 봐도 저희 회사 제품 광고잖아요.”
인터뷰하는 기술자들 이름 밑에 L 전자 어디 어디 부서라는 자 막이 들어가니 말이다.
“그건 그렇죠.”
“저희는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보 고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요. 그럼 알아서 찾아보겠죠. 이 광 고가 무슨 광고인지.”
그리고는 이강혜가 미소를 지었 다.
“보여주는 광고가 아니라 찾아 보게 하는 광고 그게 저희 컨셉 이에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광고에 담긴 의미가 가장 중요한 만큼 너무 제품이 많이 노출되어도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저희 생각도 그래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슬픔을 광고로 이용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과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괜히 영상에 담긴 의미가 제품 으로 훼손이 될 수도 있으니 말 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광고는 언제부터 시작되 는 건가요?”
“TV에서는 보기 힘들 거예요.”
“TV 광고를 안 하세요?”
“TV 용 광고 편집본을 봤는데 분량이 너무 짧아서 의미가 다 전달이 안 되더라고요.”
강진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 를 끄덕였다. 짧게 압축을 하고 감동적인 부분만 내보내기에는 영상 분량이 많았다.
“그래서 이건 통으로 유트브로 올리고 TV 광고는 동물하고 세 계 관광지 VR로 해서 할 생각이 에요.”
“계획이 다 있으시네요.”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하니까 요.”
웃으며 이강혜가 강진을 보았 다.
“오늘 저녁 자정에 유트브에 올 라갈 거예요.”
“꼭 보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L 전자 구독 꾸욱! 추천 꾸욱!
아시죠?”
“그럼요. 꾸욱! 꾸욱! 하겠습니 다.”
“고마워요. 그럼 갈까요?”
이강혜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 기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나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