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 화
이강혜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어 기분 좋은 상태로 가게에 돌아온 강진은 경쾌한 손놀림으로 점심 준비를 시작했다.
부드럽게 썰리는 계란말이를 찬 합에 넣은 강진이 뚜껑을 덮었 다. 그러고는 카레가 담긴 통을 들었다.
‘이 정도면 네 끼는 드시겠지.’
카레가 담긴 통까지 챙긴 강진 이 배용수를 보았다.
“갔다 올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다 떨지 말고 빨리 와. 데리 러 가게 하지 말고.”
소월향 사정을 알게 된 후 강진 은 점심 도시락을 싸서 가져다주 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틀 전, 강진은 자기 도 모르게 자신이 고생을 한 이
야기를 하게 되었다.
다사다난했던 과거를 이야기하 다 보니 가게에 돌아가는 시간이 늦어졌고, 결국 배용수가 이혜미 를 시켜 급히 데려오라고 한 것 이었다.
“그게 소 사장님이 이야기를 참 잘 들어 주시더라고.”
“무당은 원래 사람 이야기 듣는 것이 반이니까. 어쨌든 일찍 와.”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반찬이
담긴 통들을 들고 가게를 나왔 다.
웃으며 가게를 나온 강진은 휴 대폰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유 리벽을 통해 가게 안을 본 강진 은 소월향이 앉아 있는 것을 보 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강진이 들어오자 소월향이 미소 를 지었다.
“오셨습니까.”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찬합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도시락요.”
“이렇게 안 가져다주셔도 되는 데……
“반찬만 가져다드리는 걸요. 그 리고 공짜도 아니잖아요.”
강진의 말에 소월향이 웃으며 그를 보다가 오천 원을 내밀었 다.
“이렇게 조금 드려도 되나 모르 겠습니다.”
“대량으로 만들어서 파는 거니 딱 이 정도면 됩니다.”
오천 원을 받은 강진이 말을 덧 붙였다.
“저희 가게 와서 식사하시면 참 좋을 텐데……
“다음에 아가씨 오시면 그때 한 번 더 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겠 습니다.”
귀검이 옆에서 붙어 귀기를 막 아주지 않으면 소월향은 저승식 당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저희 식당 분위기 괜찮죠?”
“아주 좋았습니다.”
미소 지은 채 답하던 소월향은 강진을 슬며시 보더니 물었다.
“그런데 황 사장님에게는 연락 이 없었습니까?”
“아직 없었습니다.”
강진은 한차례 입맛을 다시더니 말을 이었다.
“형이 알아서 한다고 저에게도 딱히 해 준 말이 없어서……
“그렇군요.”
소월향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강 진을 보았다.
“황민성 씨 고생을 많이 한 사 람이더군요.”
“아세요?’’
“제가 미래는 보지 못해도 과거 는 보는 무당 아니겠습니까.”
“아……
하긴 실력 있는 무당이니……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소월향
을 보았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고맙습니다. 일일이 번거로울 텐데.”
“이웃사촌 특별 서비스입니다.”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은 가게를 나서려다가 다시 소월향을 보았 다.
“그리고 잘 되실 것이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알겠습니다.”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가게를 나섰다. 밖으로 나와 한끼식당이 있는 곳으로 걸 음을 옮기던 강진은 슬쩍 고개를 돌려 핸드폰 가게를 보았다.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소월향 은 강진이 가져온 반찬통들을 탁 자에 꺼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음식이야 강진이 직접 한 것이 니 맛이 있을 테지만……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좀 짠했다.
그리고 강진이 이때까지 도시락
을 가져다주면서 보았을 때, 소 월향은 늘 혼자서 밥을 먹었다.
“다음에는…… 나라도 같이 와 서 먹을까?”
하지만 그러기는 어려웠다. 소 월향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만, 강진은 점심시간 이후에 밥을 먹 으니 말이다.
혼자 밥상을 차리고는 밥을 먹 기 시작하는 소월향을 잠시 지켜 보던 강진은 몸을 돌려 자신의 가게로 돌아왔다.
“자! 영업 시작하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힐끗 그 를 보았다.
“영업 준비는 다 끝났어.”
배용수의 말에 싱긋 웃은 강진 이 오천 원을 아크릴 통에 넣었 다.
툭!
“오늘도 맛있는 음식 대접하
자.”
강진은 가게 문을 열고는 입구
에 아크릴판을 꺼내 놓았다.
〈영업 시작합니다. 금일 점심 메뉴
1. 동태탕
2. 카레라이스
3. 백반〉
메뉴를 적은 강진이 가게 안으 로 들어왔다. 그대로 홀을 통과 해 주방에 들어온 강진은 약한
불로 끓고 있는 카레를 보았다.
“근데 왜 갑자기 카레를 한 거 야?”
“카레 싫어해?”
“아니. 좋아해.”
물론 고시원에서 살던 시절이라 직접 만들어 먹지는 못했지만, 삼분 카레는 자주 먹은 강진이었 다.
밥이야 고시원에서 주니, 카레 만 사서 비벼 먹으면 한 끼 해결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 가게에서 카레는 한 적이 없더라고.”
“그건 그렇지.”
“집에서 다니는 사람들이야 아 내나 어머니가 해서 먹을 수 있 지만, 자취하는 사람들은 카레 정말 맛있게 못 먹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카레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카레는 한 번에 많이 해 서 먹는 것이 맛있기는 하지.”
사실 카레는 정말 만들기 쉬운 음식이다.
양파를 잔뜩 일단 볶는다. ‘이렇 게 많이 들어간다고?’ 싶을 정도 로 많이 넣고 볶는다.
보통 카레를 한 사람이 두 끼 정도 먹는다고 하면 인당 양파는 두 개 정도를 넣어서 볶으면 괜 찮다.
양파가 너무 많아 보일지라도, 볶으면 숨이 죽으면서 양이 줄어 든다.
그렇게 양파를 캐러멜 색이 날 정도로 볶다가 물을 붓고 카레 가루와 고기 당근, 마늘을 넣고 끓이면 완성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카레 가루 뭉치 지 않게끔 잘 젓는 게 중요다고 하지만, 그냥 넣고 젓다 보면 알 아서 다 풀어진다.
그러다 보니 카레는 야채 다듬 을 수 있는 손만 있다면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이었다.
다만 양을 많이 잡아야 해서 혼 자 자취하는 사람들이 만들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음식이었다.
“그래서 해 봤어. 가끔은 색다 른 음식을 해 드려야 손님들도 재미가 있지.”
“하긴 우리 음식 턴이 있으니 까.”
매일 새로운 음식을 하는 건 쉽 지 않다. 최대한 음식이 겹치지 않도록 메뉴를 만들려고 하지만 점심 가격대를 생각해서 짜다 보 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도 않 았다.
직장인 점심값은 오천 원에서 최대로 잡아도 칠천 원 이내여야 하니 고급 식재가 들어가는 음식 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끼식당은 열흘을 주기 로 비슷한 메뉴를 내고 있었다.
“손님들도 카레 맛있어 보인다 고 좋아하더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만든 음식들을 올린 한끼식당 단체 톡방에선 카 레와 동태탕에 좋다는 반응이 여 럿 올라왔다.
술을 마신 사람들은 동태탕 시 원하겠다고 좋아했고, 카레는 오 랜만에 제대로 먹어보겠다고 좋 아했다.
띠링!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진이 홀 로 나왔다.
“어서 오세요.”
손님들이 들어오는 것에 강진이 인사를 하며 자리를 가리켰다.
편한 곳에 앉으세요.”
강진의 말에 손님들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밖은 무척 더운데 가게는 선선 하고 좋네요.”
“저희 가게 에어컨도 안 틀었습 니다.”
“그래요?”
손님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가게 를 두리번거렸다. 밖과 온도 차 가 꽤 나서 에어컨을 틀어 놓은 줄 알았던 것이다.
“진짜 에어컨이 없네요. 근데
왜 이리 시원해요?”
“저희 가게가 이상하게 시원하 더라고요.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저희는 카레로 통일해 주세요. 아! 그리고 카레에 국 나오나 요?”
“고춧가루 넣고 끓인 칼칼한 콩 나물국이 같이 나옵니다.”
강진의 말에 손님이 미소를 지 었다.
“역시 여기는 음식 궁합이 좋아
요.”
“감사합니다. 그럼 음식 준비하 겠습니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이 배용수에 게 주문을 전달할 때, 다른 손님 들이 가게에 우르르 들어오기 시 작했다.
손님들이 식사를 맛있게 하는
것을 보며 강진은 뿌듯했다.
‘오늘 카레 인기 좋네.’
하나둘씩 일어나는 손님들의 자 리를 강진이 정리할 때, 황민성 이 들어왔다.
“오셨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 안에 있는 손님 들을 보았다.
몇 테이블 남지 않은 것을 확인 한 황민성이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나는 카레.”
“그런데 혼자 오셨어요?”
“오 실장하고 경수는 밖에 있 어.”
“같이 들어오시지?”
“여기 정리는 직원들이 해야 하 잖아.”
“아…… 그럼 두 분 식사는?”
“근처에 밥집이 어디 한둘인가? 그리고 할 말도 있고.”
“아……
할 말이라는 말에 강진이 그를 보자, 황민성이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고 하자. 형 배 고프다. 나는 카레.”
이미 메뉴를 보고 왔는지 바로 메뉴를 말하는 황민성을 보며 강 진이 웃었다.
“형 들어오는 것 봤으니 용수가 이미 준비하고 있을 거예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을 따라 마셨다. 그 모습에 강진이 일단 다른 손
님들을 살폈다.
황민성은 카레를 먹고 있었다.
덜컥!
그런 황민성의 앞에 카레가 담 긴 그릇 두 개가 놓였다.
“후우!”
한숨을 길게 토하며 강진이 자 리에 앉자 황민성이 물을 따라 내밀었다.
“카레 맛있으세요?’’
“당연히 맛있지. 내 동생들이 해 준 건데.”
황민성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카레 통에 담아 드릴 테니 고 경수 씨 주세요.”
고경수는 오 실장과 함께 황민 성 집 인근에서 자취를 하고 있 으니 이런 것이 반찬이 될 것이 다.
“경수 좋아하겠네.”
“경수 씨도 이제 일 좀 된 것
같은데, 일 적응 잘 해요?”
“가르치느라 오 실장님이 고생 하시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카레를 밥에 비비며 말했다.
“고경수 씨 빠릿빠릿해 보이던 데요?”
“빠릿빠릿하기는 해. 근데 일이 라는 건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그건 그렇죠.”
황민성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일이라는 것은 익숙해져야 잘 하 는 법이다.
어느새 그릇을 깨끗이 비운 황 민성이 입가를 닦았다.
“아! 잘 먹었다.”
그와 동시에 황민성은 주위를 보았다. 홀 내에 고무장갑들이 떠다니며 그릇들을 치우고 있었 다.
좀 많이 괴이한 모습이지만, 이
러한 광경을 자주 본 황민성은 편히 말했다.
“여러분들은 식사하셨어요?”
“이거 정리하고 먹을게요.”
이혜미의 말을 강진이 대신 전 해주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형도 이제 이쪽이 많이 익숙해 지셨네요.”
귀신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황민
성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하 자, 황민성이 웃었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내가 왜 무서워해.”
“고맙습니다.”
이혜미가 싱긋 웃으며 인사를 했다. 물론 황민성은 듣지 못하 지만 말이다.
“그리고 전에도 이야기했지 만…… 사람이 사람 죽인다는 이 야기는 엄청 많지만, 귀신이 사 람 죽인다는 이야기는 전설의 고
향에서밖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건 맞죠. 저도 귀신들 많이 알지만 사람들 해칠 수 있는 이, 아니 능력이 되는 귀신은 거의 없더라고요.”
“거의? 있기는 한 거야?”
“소희 아가씨 정도면 할 수 있 지 않을까 생각은 하는데…… 아 가씨가 그럴 리는 없죠.”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 민성이 말했다.
“밥 먹어라.”
그에 강진이 다시 밥을 먹기 시 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그릇을 뚝 딱한 강진이 물을 마시자, 황민 성이 티슈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강진이 입을 닦 는 사이 황민성이 태블릿을 내밀 었다.
“ 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태블릿을 보았다. 태블릿에는 강진과 비슷
한 또래의 남자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와 함께 서 있는 사진 이 떠 있었다.
“혹시?”
“소 사장님 아들.”
“젊네요?”
“너하고 동갑이더라.”
“29살? 결혼 일찍 하셨네.”
“대학교에서 만나서 졸업하고 돈 모아서 바로 결혼을 했더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문득 그
를 보았다.
“조사하신 거예요?”
“조사를 해야 일을 해결하지. 넘겨 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사진을 옆으로 넘겼다. 그러자 소월향 아들에 관한 조사 내용이 담긴 이미지 파일이 보였다.
‘17평 빌라에서 월세라…… 사 정이 좋지는 않네.’
하긴 생각을 해 보면 당연한 일 이다. 부모에게 도움 안 받고 결
혼한 젊은 부부가 돈을 언제 모 아서 집을 사겠는가.
“다행히 돈을 좋아하는 속물은 아니더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그 시선에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알아보는 김에 소 사장님도 좀 알아봤는데 건물주더라고.”
“그래요? 그거 삼 층짜리 건물 인데?”
강진이 놀란 눈으로 보자 황민
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행이야. 그렇게까지 나쁜 놈은 아니니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싫다고 보지도 않는 녀석이 어머니 돈까지 뜯어 내면…… 소월향이 참 불쌍하니 말이다.
물론 소월향은 뭐든 다 주고 싶 을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