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화
배용수가 커피를 타서 가지고 오자 황민성이 잔을 받으며 말했 다.
“주위 평판도 나쁘지 않아.”
강진이 보자, 황민성이 말을 이 었다.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 잘 하 고, 눈 오는 날은 제일 먼저 나 와서 골목도 쓸고 한다더라. 아! 폐지 줍는 할머니 수레도 자주
밀어 준대.”
“좋은 사람이네요.”
“그런 사람이 어머니를 안 보려 는 것을 보면…… 그 아들도 마 음에 상처가 큰 모양이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예요?”
황민성은 대답 대신 태블릿을 들더니 동영상을 플레이했다.
동영상에는 소월향의 모습이 보
였다. 창밖에서 찍은 둣 화질이 조금 좋지 않았지만 분명 소월향 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은 소월향이 이쪽을 보지 않는 것을 보고는 황민성을 보았다.
“사장님을 몰래 찍으신 거예 요?”
“일단 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은 다시 영 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상 속 소월향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청소를 했다. 그러다 가끔 들어오는 손님들을 응대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를 반복하다 점심때인지 강진 이 도시락을 들고 들어갔다가 잠 시 후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것처 럼, 혼자 도시락을 까서 밥을 먹 는 소월향을 보던 강진이 황민성 을 보았다.
그저 일상적인 모습인데 뭘 보 라는 건지 의아한 것이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황민성이 손가락
으로 태블릿을 가리켰다.
일단 계속 보라는 의미였다.
그에 강진은 다시 태블릿을 보 았다.
소월향은 밥 한 숟가락을 먹고 는 창밖을 보았다. 그러고는 반 찬을 하나 집어 먹고는 다시 창 밖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 모습을 본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황민성이 뭘 보라고 하는 지 이제 안 것이다.
‘쓸쓸해.’
소월향의 밥 먹는 모습에서 진 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녀가 창밖의 사람들을 보면서 밥을 먹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게에 와서 밥을 먹으면 좋을 텐데.’
강진이 한숨을 쉴 때, 영상 속 소월향은 도시락을 치우고는 다 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물끄러미 창밖을 보았다. 그러다가 화면이 바뀌었 다.
저녁인 듯 주위는 어두웠지만, 불이 켜진 핸드폰 가게 안에는 여전히 소월향 혼자 있었다.
주위가 어두워졌다는 것 외엔 아침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정지 화면처 럼 같은 장면이 나오던 영상이 끝났다.
그와 거의 동시에 황민성이 입 을 열었다.
“단축해서 편집한 거기는 한
데…… 그런 영상이 人} 일 정도 더 있다.”
“사 일요?”
“닷새 촬영했는데 닷새 동안 일 과가 똑같아.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창밖 보고.”
강진은 황민성을 보며 일전에 그가 김소희에게 했던 말을 떠올 렸다.
-어머니 혼자 식사하게 하 고…… 혼자 TV 보게 하고……
혼자 앉아 있게 한 것입니다. 저 는 그것이 가장 후회가 됩니다. 저희 어머니가 혼자 계시던 공간 에 제가 없었던 것이요.
‘자신이 가장 후회했던 것을 사 장님 아들에게 보여 주려고 했던 거구나.’
강진은 그제야 황민성의 의도가 이해되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자신이 가장 후회했던 것을 보여 줌으로써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 고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강진의 시선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보고 있으니 한숨 만 나온다.”
강진이 보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있고, 혼 자……
황민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 다.
“세상에 이렇게 나 혼자 산다는 것 같은 분은 없을 거야.”
태블릿 화면을 잠시간 보던 황 민성은 다시 강진을 보았다.
“ 나는......"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이 천천 히 입을 열었다.
“소 사장님이 퇴근을 했으면 좋 겠다.”
“퇴근은 하실 텐데?”
출장 저승식당 영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토요일 새벽마다 핸드 폰 가게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 았던 것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출근과 퇴근을 안 하신다.”
“그게 무슨? 아! 저처럼 건물에 집이 있으신가요?”
건물이 소월향 것이라면 그 안
에서 살아도 이상할 다. 것은 없었
강남 논현이 집값이 집주인이라면 문제될 니 말이다. 비싸지만, 것은 없으
“건물 설계도 보니까 핸드폰 가
게 뒤에 작은 공간이 있더라. 아 마도 거기에서 숙식을 하시는 모 양이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을 다 물었다. 핸드폰 가게 뒤에 있는 작은 공간에서 잠을 청하는 소월 향을 떠올려 보니 짠한 것이다.
그런 강진을 보며 황민성이 말 을 이었다.
“가게에서 숙식하는 건…… 집 이 아니잖아. 그냥 잠시 있는 거 지.”
“사람은…… 몸을 눕히는 곳이 아니라 쉬어야 할 집이 있어야 죠.”
휴대폰 가게 뒤에 있는 작은 공 간은 그저 몸을 눕히는 곳이지, 마음 편히 쉬는 집은 아닐 터였 다.
“맞아. 사람은 쉴 수 있는 공간 이 필요하지.”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리고 사장님한테는 나중에
내가 사과할 테니까, 너는 이거 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하고 있 어.”
“사과요?”
“허락 안 받고 사장님 일상을 찍었으니…… 당연히 사과드려야 지.”
“그건 그렇죠.”
남의 일상을 허락받지 않고 찍 는 것은 범죄 행위고 누구나 싫 어할 일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촬영을
했다는 것…… 소름 끼치는 일을 넘어 명백한 범죄다.
“그래서 나중에 사과드리고 양 해 구해 봐야지. 사장님을 생각 해서 찍기는 했지만…… 꼭 도찰 범 된 것 같아서 죄송하고 미안 해.”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형이 죄책감까지 느끼면서 도 우려 하는 일이니 꼭 아드님이 사장님하고 우리 가게에서 밥을 먹었으면 좋겠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황민성을 보던 강진이 말했다.
“아 맞다! L 전자 광고 오늘 저 녁에 유트브로 올라간대요.”
“광고 잘 나왔더라.”
“어? 보셨어요?”
“사장님이 보내 주셨더라고.”
그러고는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 다.
“광고가…… 광고답지 않고 휴
먼 다큐처럼 잘 나왔더라.”
“광고처럼 안 보이는 것이 컨셉 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럼 컨셉 잘 살렸네.”
“혹시 그 영상 있으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태블릿을 조작해서는 그 영상을 띄웠다.
그와 동시에 강진이 직원들을 보며 손짓했다.
“여러분 이거 보세요.”
“뭔데요?”
이혜미가 다가오자 강진이 말했 다.
“가은이, 예림이, 영수 갈 때 찍 었던 영상이에요.”
“아……
강진의 말에 다른 여자 귀신들 도 다가왔다. 그에 배용수가 슬 쩍 태블릿을 집어서는 내밀었다.
배용수는 아침에 강진이 볼 때 같이 봤으니 말이다.
태블릿을 받은 여자 직원들이 옆 테이블에 가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애들 보고 싶네.”
“그러게. 잘 갔으니까 잘 지내 겠지?”
“애들 어리다고 누가 괴롭히면 어쩌지?”
“에이! 예림이가 얼마나 깡이 좋은데. 예림이한테 안 쥐어뜯기 면 다행이지.”
영상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직원들을 보던 강진이 황민성 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그 아들은 언제 만나실 거예요?”
“글쎄……
황민성은 입맛을 다셨다.
“너무 인위적으로 만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들 다니는 회사는 잘 모르세 요?”
“회사라고 해도 그냥 작은 프로 그램 회사야.”
“프로그램 회사요?”
“응. 알아보니 친구 중에 한 명 이 돈 내서 같이 회사 차린 거더 라고.”
“친구네 집이 좀 사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주 아들이라, 그 건물에 입주해서 회사 차렸어. 그래서 다행히 월세는 안 나가지.”
말을 하던 황민성은 재차 입맛 을 다셨다.
“회사가 너무 작아서 내가 투자
하기도 그래.”
황민성이라고 아무 회사나 투자 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기준 에 맞지 않으면 투자를 하지 않 는다.
남을 도우려면 차라리 돈을 주 고 말지, 투자는 하지 않는 것이 다.
“많이 작은가 보네요?”
“친구들 다섯이서 시작한 신생 회사니까.”
“흠…… 그런데 뭐 만드는 거예
요?”
“게임.”
“게임?”
“모바일 게임을 만들더라고. 근 데 여건상 게임 론칭하기가 힘든 가 봐. 지금은 이것저것 사람들 이 필요한 프로그램 만들어 주고 전단지 같은 것도 만들고 있더라 고. 그 돈으로 생활하다가 게임 준비도 하고.”
“프로그램 회사에서 전단지요?”
“손님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전
단지를 만들어 주는 거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그를 보았다.
“전단지.”
“왜?”
“저희 가게 전단지 만든다고 다 가가면 되지 않을까요?”
“너희 가게에 전단지가 무슨 필 요가 있어?”
그렇지 않아도 점심에는 손님들 이 가득 차는 곳이다. 점심에 비
해 적기는 하지만 저녁에도 손님 들은 꽤 오는 곳이니 굳이 전단 지를 만들어서 홍보를 할 필요가 없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전단지 뿌리는 것까지는 아니 더라도, 가게에 뒀다가 손님들 오가실 때 한 장씩 가지고 가게 하면 좋죠.”
그러고는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그리고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 이 좋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그 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그렇죠. 그리고…… 저희 가게 에서 분위기 보게 한 번 오시라 고 해서 식사하게 할 수도 있고 요. 그럼 오다가 핸드폰 가게 지 나면서 소 사장님 볼수도 있 죠.”
황민성과 강진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배용수가 입을 열었 다.
“근데.”
그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해야 하 나?”
“왜?”
“그냥 만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 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아. 오랜 시간 끊고 살았던 인연이니 조심히 접 근하는 거. 근데…… 그 친구도 이제 애가 아니잖아.”
“애?”
“어렸을 때야 친구들 시선이 신 경 쓰여서 사장님 일이 싫고 미 웠을 수도 있어. 그런 노래도 있 잖아. 누구 아빠는 똥 퍼요. 그렇 게 잘 풀 수가 없어요.”
배용수가 익숙한 멜로디를 홍얼 거리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잠깐 부른 건, 어린아이들 이 친구 놀릴 때 장난처럼 부르 는 노래였다. 물론…… 지금 생 각하면 그런 노래로 놀림당하는 아이에게는 장난이 아닐 테지만 말이다.
“내가 똥 푸는 집 자식은 아니 지만,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가 그런 직업을 했으면 나도 싫었을 거야. 애들이 놀리는 것이 싫고 창피하니까. 근데……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 아빠가 똥 푸는 일 을 한다면…… 나는 자랑스러울 것 같다. 그렇게 힘들고 사람들 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나를 키웠으니 말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미소를 지었다. 맞는 말이 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힘들고 더러 운 일을 하면서도 참고 사는 것 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는 일을 하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직업 만이 최고 직업인 것은 아니었 다.
와이셔츠 대신 기름때 묻은 작 업복을 입고, 넥타이 대신 수건 을 목에 두르고…… 손에 볼펜이 아닌 빗자루를 들고 있다 해도 부모가 하는 일은 모두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강진이 웃는 것에 황민성이 물 었다.
“용수가 무슨 이야기를 했어?”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배용수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황민성이 보기에는 허공에 팔을 애매하게 뻗은 모양새였지만, 어 쨌든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용수가 참으로 기특한 말을 했 습니다.”
“기 특?”
강진은 방금 배용수와 나눈 이 야기를 황민성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황민성은 배 용수가 낀 고무장갑을 보았다.
“한쪽 벗어라.”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고무장갑 한 쪽을 벗어주었다.
배용수가 벗어 준 고무장갑을 자신의 손에 낀 황민성이 웃으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배용수의 등짝이 있을 만한 곳으로 손을 크게 휘둘렀 다.
퍽!
“악!”
배용수가 놀라 뒤를 볼 때, 황 민성은 허공을 더듬거리다가 그 의 어깨를 짚었다.
“우리 용수가 철이 들었구나.”
“네?”
“그래! 어릴 때야 부모님 직업 이 부끄러울 수 있지. 근데 지금 은 애가 아니잖아. 아이처럼 ‘엄 마 직업이 무당이라 싫어요.’ 하 면 멱살을 잡아서는 땅에 메다 꽂아버려야지.”
기분 좋은 듯 웃은 황민성이 배
용수의 어깨를 두들겼다.
“네가 형보다 낫다.”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 다. 맞은 것이 조금 억울하기는 했지만…… 칭찬을 받은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귀신이라 아프지도 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