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화
수요일 점심 장사를 끝낸 강진 은 유훈의 병원에 들어서고 있었 다.
병원에 들어선 강진은 주위를 보다가 대기실에 앉아 있는 유인 호와 이아름을 볼 수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강진이 다가가자, 이아름이 웃 으며 말했다.
“저희도 금방 왔어요. 이거 드 세요.”
이아름이 건네는 캔 커피를 받 아 든 강진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일단 올라가시죠.”
처음 강진이 왔던 것처럼 엑스 레이도 찍고 의사에게 진료도 받 아야 하니 말이다.
강진이 유훈을 통해 예약을 다 해 놓았기에 두 사람은 빠르게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검진을 마치고 추나를 받는 곳 에 들어선 강진은 유훈이 기다리 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형.”
강진의 부름에 유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아름과 유인호를 보았다.
“유훈입니다.”
“이아름이에요.”
“유인호입니다.”
유훈과 인사를 나눈 유인호가 그를 유심히 보았다.
‘이분이 그분이구나.’
강진에게 유훈의 사연을 들은 유인호라 그를 보는 시선이 특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같은 사연이니 말이다. 유인호의 시선에 유훈이 그를 보 다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시 죠.”
유훈은 예약 손님들이 많아서
바로 추나를 시작하려 했다. 이 야기를 하면 할수록 강진과 일행 들에게 정성을 쏟을 시간이 부족 하니 말이다.
유훈의 말에 강진이 추나실 안 으로 들어가며 슬쩍 임미령을 보 았다.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유훈의 옆에 있는 임지은을 보고 있었 다.
임지은은 저승식당에서 밥을 먹 었던 기억으로 인해 몸이 예전보 다는 덜 부자연스러웠다.
조금은 멀쩡한 귀신 같아졌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귀신도 무서워서 벌벌 떨 정도의 기괴함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움직이는 것도 조금은 자연스러워졌고 말이다.
임미령의 미소에 임지은도 미소 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임지은이 먼저 인사를 하자 임 미령도 고개를 숙였다.
“언니 반가워요.”
언니라는 말에 임지은이 그녀를 보다가 웃었다. 언니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자신이 훨씬 예전에 죽었으니 말이다.
두 귀신이 인사를 하는 것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선생님에게 이야기 좀 전해 주라고 하기를 잘 했네.’
병원에 자주 가는 허연욱에게 유인호와 임미령 이야기를 임지 은에게 먼저 좀 해 주라고 부탁 을 해 놨던 것이다.
그래서 임지은은 임미령을 알았 고, 임미령은 자신에게 들어 임 지은을 아는 것이다.
서로를 알아보며 인사를 하는 두 귀신을 볼 때 유훈이 그를 불 렀다.
“어서 와.”
“네.”
유훈의 부름에 답을 한 강진이 추나실 안으로 들어갔다. 추나실 안에서는 먼저 온 환자들이 선생 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스트레칭
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거리를 둔 유훈 이 말했다.
“세 분은 같이 오셨으니 스트레 칭은 같이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 까?”
“같이요?”
강진이 묻자, 유훈이 웃으며 말 했다.
“스트레칭 시간을 절약하면 내 가 추나를 더 정성껏 오래 해 드 릴 수 있으니까요.”
“아……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훈 이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유훈은 세 사람을 서게 하고는 스트레칭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지도를 따라 스트 레칭을 한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훈이 말했다.
“그럼 누가 먼저 받아 보시겠습 니까?”
유훈의 말에 세 사람이 서로를 보았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말 했다.
“제가 먼저 받을게요.”
“그럼 그렇게 해.”
유훈은 강진을 데리고 침대가 있는 곳으로 가서는 그를 눕히고 는 커튼을 쳤다. 그러고는 몸 곳 곳을 손으로 가볍게 풀어주며 말 했다.
“친한 분들이야?”
유훈이 커튼 밖을 보며 하는 말
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하기도 하고 착한 분들이에 요.”
“그 이아름 씨는 너하고 보육원 봉사 가신다는 분이지?”
“저분하고 중화요리를 하는 분 한 분 더 해서 두 분이 저와 같 이 다니시죠.”
“좋은 일 하시네.”
“형도 언제 한 번 같이 가세 요.”
“ 나?”
“거기 보육원에 일하시는 분들 몸도 많이 안 좋거든요.”
“아…… 가서 추나 봉사해도 되 겠네.”
“그것이 아니더라도 가면 할 일 많아요.”
고개를 끄덕인 유훈은 강진의 발을 잡고는 가볍게 힘을 주었 다.
우두둑! 우두둑!
발 쪽에서 시원한 소리와 함께 시원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을 느끼며 강진이 미소를 짓다가 슬 며시 말했다.
“유인호 씨요.”
강진의 말에 유훈이 그를 보았 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병으로 돌아 가셨대요.”
멈칫!
일순 유훈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훈의 손 이 그의 몸을 만졌다.
말없이 자신의 몸을 주무르는 유훈의 모습에 강진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자세 하게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 다.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 둘이 만 났으니 둘이 이야기를 할 것이었 다. 특히 유인호는 유훈에 대해 알고 있으니 알아서 말을 꺼낼
것이고 말이다.
강진 다음으로 들어간 이아름은 추나를 받고 있었다.
우두둑! 우두둑!
커튼 안에서 들리는 이아름의 뼈마디 소리에 유인호가 작게 웃 었다.
“소리가 장난이 아닌데요.”
유인호의 말에 옆에서 앉은 강 진이 커튼 쪽을 보았다. 확실히
이아름의 뼈 소리는 조금 더 큰 듯했다.
“끄응! 아, 좋다.”
우두둑 소리 외에도 이아름이 내뱉는 감탄사들도 간간이 들리 고 있었다.
“아름 씨도 마음에 드나 보네 요.”
“그런데 소리가 유난히 더 큰 것 같아요.”
“그래요?”
“제 귀가 절대 음감은 아니지 만, 확실히 아까 강진 씨가 받았 던 것보다는 소리가 더 크네요.”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커튼 쪽 을 보았다. 말을 듣고 보니 이아 름에게서 나는 우두둑 소리가 유 난히 더 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가 크다고 더 시원 하다거나 몸이 나쁜 건 아니었 다.
그저 뼈마디에 있는 가스가 조 금 더 잘 나오는 것일 뿐이었다.
“뭐, 소리가 크면 받는 사람은 더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 죠.”
“하긴, 저런 소리가 몸 여기저 기에서 나면 개운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네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 진은 슬쩍 옆을 보았다. 옆엔 임 미령과 임지은이 마주 앉아 이야 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얼굴에는 서로 를 향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담겨 있었다.
한 명은 병원 대리석에 비친 연 인을 보며 슬퍼했고, 한 명은 자 신을 위해 머리를 깎고 온 연인 을 보며 슬퍼했으니 말이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서로 진 심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강진의 시선에 임지은과 이야기 를 하던 임미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은 언니 만나게 해 줘서 너 무 고마워요.”
임미령의 말에 임지은도 강진을
돌아보았다.
“나도 우리 예쁜 동생 만나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요.”
두 귀신의 목소리에 강진이 쓰 게 웃었다.
‘고맙기는요. 저는…… 안타까운 데.’
이런 슬픈 사연을 가진 귀신이 둘이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쓰게 웃는 강진을 보던 임지은 은 유인호를 한번 보고는 커튼 쪽을 보았다.
“우리 훈이하고 인호 씨 서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서로 한잔하면서 우리 이야기 도 하고…… 그렇게 조금이라도 속상했던 걸 풀었으면 좋겠어 요.”
두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속에 맺힌 것이 풀리기도 한다.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을 서로는 알고 있기에 깊은 이야기 를 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나아갈 길이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우 두둑 소리가 멈추더니 잠시 후 이아름이 나왔다.
커튼을 젖히고 나오던 이아름이 조금 힘든 듯 잠시 휘청했다가 의자에 앉았다.
“아! 시원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이아름 이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현희 한 번 데리고 와야겠어 요. 그렇지 않아도 현희도 무거 운 웍 흔드느라 어깨 많이 안 좋 다고 했었는데.”
“그럼 좋죠.”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유훈 이 나왔다. 그는 유인호를 잠시 보다가 말했다.
“잠시 오 분만 쉬었다가 유인호 씨 시작하겠습니다. 한 번에 두
사람을 했더니 조금 힘드네요.”
유훈의 말에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그럼 잠시 물 좀 마시고 오겠 습니다.”
그러고는 유훈이 몸을 돌려 추 나실을 나서자, 임지은이 임미령 에게 웃어 주고는 그 뒤를 따라 갔다.
조금은 부자연스럽지만 전에 비 하면 아주 많이 좋아진 임지은의
걸음에 강진은 조용히 미소를 지 었다.
‘저승식당에 한두 번 정도 더 오시면 완전히 멀쩡해질 것 같은 데?’
저승식당에서 현신을 몇 번 더
하면 멀쩡하게 걸어 다닐 것 같
다는 생각을 할 때, 이아름이 말
했다.
“와…… 추나가 이런 거였구 나.”
“좋으셨어요?”
“우리 원장님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었어요. 완전 신세 계예요.”
“그래도 원장님이 침은 잘 놓으 신다면서요.”
“그건 그렇죠.”
미소를 지으며 몸을 비틀어 보 던 이아름이 유인호를 보았다.
“저희 원장님에게 받은 추나와 는 비교가 안 되니 기대하세요.”
“알겠습니다.”
유인호가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이아름의 수호령인 이문흠 이 웃었다.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너무 시 원해 보이더군.”
이문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그 시선에 이문흠이 자신 의 다리를 옆으로 꼬는 시늉을 하고는 몸을 비틀었다.
“여기서 이렇게 힘을 주니 허리 마디 마디에서 소리가 다 나.”
정말 신기하다는 듯 이문흠이
말을 하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 다. 이 자세는 강진도 좋아하는 자세였다.
이 자세에서 유훈이 힘을 주면 상체 전체와 골반이 시원하면서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것이다.
물을 마시겠다는 말과 다르게 유훈은 추나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지갑을 보고 있었다. 지갑 안에는 색이 많이 바랜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그것은 임지은이 건강했을 때 함께 찍었던 사진이었다. 해맑게 웃으며 얼굴을 마주 대고 웃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지그시 보 던 유훈이 미소를 지었다.
“나처럼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분이 오셨어.”
유훈의 목소리에 임지은이 한숨 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가볍게 쓰다듬 으며 미소를 지었다.
“같은 아픔이 있으니…… 서로 좋은 약이 되어 줘. 상처에 딱지
가 생기게 하고, 딱지가 생기면 벗겨지게 도와주고…… 그래서 새 사랑을 해.”
미소를 지으며 유훈을 보던 임 지은이 그의 머리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내 남자 이렇게 멋진데…… 혼 자 살 수는 없잖아. 훈이 닮은 애도 봐야지.”
유훈을 끌어안은 채 쓰다듬던 임지은이 살며시 웃었다.
한편, 사진 속 임지은의 미소를
보니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 낀 유훈이 눈가를 손으로 닦고 는 몸을 일으켜 추나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온 유훈은 유인호를 보았다.
“시작하겠습니다.”
유훈의 말에 유인호가 그를 보 다가 몸을 일으켰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간 유훈이 커튼을 열자, 유인호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에 두 귀신이 그 뒤를 따라 안 으로 들어갔다.
다시 쳐진 커튼 안에는 죽음으 로 이별을 했지만 마음으로는 아 직도 사랑을 하고 있는 두 커플 이 함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