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9화
두 커플이 들어간 커튼을 보던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문흠도 마찬가 지였다.
“서로에게 위안이 됐으면 좋겠 군.”
강진이 보자, 이문흠이 입맛을 다셨다.
“낫지 않는 상처는 곪고 심해지
기 마련이니.”
이문흠의 말에 강진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 이아름이 몸을 일으켰다.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어디 가시게요?”
“화장실요.”
“아……
괜히 물었다 생각을 하며 강진 이 말했다.
“오른쪽으로 가시면 화장실 있
어요.”
“알았어요.”
이아름이 추나실을 나가는 것에 강진이 이문흠을 보았다.
“안 따라가세요?”
“손녀 화장실까지 따라가는 노 망난 귀신으로 만드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알아서 딸려 가겠지. 그게 아니면 여기 있고.”
이문흠의 말에 강진이 화장실과
의 거리를 떠올려 보았다.
“거리는 괜찮을 것 같네요.”
길을 따라 돌아가면 거리가 멀 겠지만, 화장실과 여기까지 직선 거리를 생각하면 그리 멀지 않았 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 문흠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보기엔 두 사람이 서로 에게 좋은 위안이 될 거 같나?”
“위안까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으니 이야기를
할 상대는 되겠죠.”
“이야기라……
“마음에 담아 두는 것보다는 밖 으로 분출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 좋아요.”
“그 심리학적인 견해인 건가?”
자신이 심리학과 나온 것을 아 는 이문흠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 를 끄덕였다.
“사람이든 스프링이든 누르기만 하면 언젠가는 터지거든요. 가끔 은 안에 있는 것을 분출해야 정
신 건강에 좋아요. 화를 안 내던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서운 것처 럼…… 담아두기만 하다가 터지 면 위험한 거죠.”
그러고는 강진이 커튼 쪽을 보 며 말했다.
“저는 두 분이 서로에게 분출구 가 되었으면 해요. 분출을 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만들 어지죠.”
강진의 말에 이문홈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이지.”
뭔가 불가에서 하는 듯한 말에 강진이 보자 이문흠이 웃었다.
“불가에서는 늘 비우라고 하거 드 ”
“불교세요?”
“절절하지는 않지만, 가끔 절간 에 국수 먹으러 가고는 했지.”
이문흠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같은 시각, 커튼 안에서 유훈은
유인호의 몸을 만지고 있었다. 가볍게 어깨를 누르자 우두둑 소 리가 들려왔다.
“끄응! 시원합니다.”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는 유인 호를 잠시간 보던 유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예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병으로 잃었습니다.”
유훈의 말에 유인호가 그를 보 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유훈이 말을 이었다.
“인호 씨도 저와 비슷한 사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병으로 사랑하는 사 람을 잃었습니다.”
“ 나는......"
유훈은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 기 시작했다. 강진에게서 사연을 이미 들은 유인호는 티 내지 않 고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커튼을 지그시 보던 강진이 이 문흠을 보았다.
“미령 씨 좀 살짝 불러 주시겠 어요?”
강진의 부탁에 이문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튼 안으로 들어갔 다. 그리고 잠시 후, 임미령과 임 지은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 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
다. 두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두 귀신을 불렀는데, 상태를 보니…….
‘슬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잘 되고 있는 거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두 귀 신을 보다가 말했다.
“미령 씨.”
강진의 부름에 임미령이 그를 보았다.
“저희 식당에서 식사해 보신 적 없죠?”
“인호하고 같이 식사했었잖아 요.”
강진의 배려로 유인호와 이아름 이 밥을 먹을 때 그 옆에서 합석 을 했었다. 그 말에 강진이 고개 를 저었다.
“한끼식당 말고 귀신을 위한 저 승식당에서요.”
“그건 없죠.”
유인호가 저승식당 영업시간에 가게에 올 일이 없으니 말이다.
“오늘 인호 씨 일정 따로 있나
요?”
“인호 오늘은 일정 다 비우고 왔어요.”
“그럼 추나 받고 어디 가나요?”
“아름 씨하고……
임미령이 말을 하다 잠시 멈추 자 이문흠이 대신 말했다.
“이따가 현희 가게 가서 저녁 먹기로 했습니다.”
이문흠의 말에 강진이 임미령을 보았다.
“혹시 다른 식당에서 밥 먹기로 해서 말을 못 하신 거예요?”
“조금 죄송해서.”
“에이! 그러지 마세요. 같은 한 식이면 조금 자존심 상할 수도 있지만, 현희 씨 가게는 중화요 리 집이잖아요. 사람이 매일 밥 만 먹을 수 있나요. 가끔은 짬뽕 도 먹고 칼국수도 먹고 갈비도 먹어야죠.”
웃어 보인 강진이 임미령을 보 다가 말했다.
“그럼 저녁 식사 후에는?”
“아름 씨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서 일을 할 거예요.”
“급한 일인가요?”
“아니에요.”
강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 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은 다시 임미령을 보았다.
“제가 오늘 저희 식당에 유인호
씨와 유훈 씨를 초대할 겁니다. 물론 아름 씨와 식사를 하고 난 후에요.”
강진의 말에 임미령이 놀람과 기쁨이 뒤섞인 얼굴을 한 채 말 했다.
“그럼 저희 저승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건가요?”
“저번처럼 훈이 형 제가 2층으 로 데려가면 지은 씨는 1층에서 저승식당 음식 드세요.”
강진의 말에 저승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는 임지은이 환하게 웃었다.
너무 좋은 것이다. 그 맛도 맛 이지만, 원래 자신의 건강했던 몸으로 현신을 할 수 있으니 말 이다.
그런 임지은을 보며 미소를 지 은 강진이 임미령을 보았다. 그 녀는 임지은보다는 괜찮지만 양 볼이 움푹 패고 마른 것이 병색 이 완연했다.
그런 임미령을 보던 강진이 말 했다.
“미령 씨 행복했던 때 기억하시 죠? 인호 씨 손잡고 같이 영화 보고 놀러 다니던 때요.”
강진의 물음에 임미령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그때가 선명 해요.”
임미령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그럼 한 가지만 명심해 주세요.”
임미령이 다시 눈을 떠 자신을
보자 강진은 말을 이었다.
“그때의 모습을 계속 생각하세 요. 자신이 가장 아름답고 건강 했던 그때의 모습요.”
“그건 왜……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답을 하 려던 찰나 임지은이 웃으며 말했 다.
“그 기억을 계속 떠올리면…… 저승식당에서 그때의 모습으로 현신을 할 수 있어.”
“현신요?”
임미령이 의아한 듯 보자 임지 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진 씨나 훈이, 그리고 인호 씨처럼 사람 몸으로 변하는 거 야.”
“사람 몸? 사람이 된다고요?”
“그 시간만이지만…… 정말 사 람의 몸이 될 수 있어. 그러니까 꼭 행복하고 건강했던 시절을 기 억하고 있어야 해.”
“그건 왜요?”
“현신할 때 내가 기억하는 모습
으로 변하거든. 아프고 약했던 모습을 기억하면 그때의 몸으로 현신을 한대.”
“아! 알겠어요. 꼭 가장 예쁘고 건강했던 전성기 모습을 기억할 게요.”
전성기라는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전성기라…… 후!’
강진이 작게 웃을 때, 임미령이 강진을 보았다.
“그럼 혹시…… 인호 만날 수
있나요?”
강진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현신하면 사람하고 같다면서 요.”
“사람하고 같지만…… 사람은 아닙니다. 귀신이 사람을 만나는 건 안 됩니다.”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은 커튼 쪽 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인호 씨가 미령 씨를 보면 앞 으로 다른 사람 정말 만날 수가 없어요.”
“아……
임미령이 한숨을 쉬자, 임지은 이 말했다.
“그래도 사장님이 우리 사진 찍 어서 훈이하고 인호한테 보여 줄 수 있어.”
“정말요?”
두 귀신이 자신을 보자 강진이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
를 저었다.
전에 그 일로 강두치에게 혼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처리 를 신수호가 해줬고 말이다.
“그게…… 이번에는 안 됩니 다.”
“왜요? 전에는 하셨잖아요.”
“그게 으에서 불법인 일이더군 요. 그래서 안 됩니다.”
“아, 불법…… 혹시 그럼 저 때 문에 무슨 벌이라도……
“이번에는 경고로 끝났습니다.”
‘잔고에서 돈이 빠져나갔을 수 도 있지만……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강진이 사과를 하자 임지은과 임미령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사과하지 마세요. 저희한테 이 렇게 잘 해 주시는데요.”
그리고 임지은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괜히 저 때문에……
“그건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 다. 저야말로…… 훈이 형이 지 은 씨……
말을 하던 강진은 문득 그녀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형수 보고 좋아하는 것을 봤으 니 괜찮습니다.”
강진의 말에 임지은의 놀란 듯 물었다.
“형……수요?”
“형의 여자친구면…… 저에게는 형수죠.”
“아……
강진의 말에 임지은이 미소를 지었다. 형수라는 단어에 무척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강진이 귀신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아름이 음료를 들고 다가 왔다.
‘생각보다 늦었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이아 름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 다.
“자판기가 있어서 음료수 사 왔 어요.”
자신이 늦은 것에 대한 변명을 음료 캔으로 대신하는 이아름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마실게요.”
별다른 말이 없는 강진을 보며 이아름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음
료를 마시며 자리에 앉았다.
“인호 씨는 아직도 받아요?”
“곧 끝나실 거예요.”
강진의 말에 이아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강진 씨는 참 좋은 사람이에 요.”
“저요?”
갑작스러운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자, 이아름이 미소를 지으며 커튼 쪽을 보았다. 커튼 안에서
는 작게 우두둑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셨잖아 요.”
이아름의 말에 강진이 커튼 쪽 을 보았다.
“같은 상처를 가진 분들이니 이 야기하다 보면…… 아픔이 다시 떠오를 수 있지만 서로에게 위안 이 되고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을 합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커튼을 보며 중얼거리는 이아름 을 보던 임미령이 고개를 돌려 이문흠에게 말했다.
“아름 씨하고 인호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임미령의 말에 이문흠이 입맛을 다셨다.
“나도 둘이 잘 되면 너무 좋겠 는데…… 너무 친해진 것 같아서 걱정이야.”
“서로 사이가 나쁜 것보다는 낫 죠. 그리고…… 남녀 사이는 아
무도 모르는 거예요.”
임미령은 미소를 지으며 이아름 을 보았다.
“아름 씨는 좋은 여자니까 우리 인호가 알아볼 거예요.”
“아름이도 인호를 남자로서 알 아보면 좋겠군.”
두 귀신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에 임지은이 한숨을 쉬었다.
“언니 왜 한숨을 쉬세요?”
임미령의 물음에 임지은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훈이는 너무 노총각이 되 어 버렸어. 이래서 여자 언제 만 나고 아이는 또 언제 만들어.”
임지은의 투덜거림에 강진이 작 게 웃었다.
‘확실히 훈이 형이 노총각이기 는 하지.’
생긴 것 멀쩡하고 몸도 좋은 남 성이지만…… 나이 사십이 넘었 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노총각은 노총각이 었다.
하지만 여자만 만나고 인연이 닿으면…….
‘아이 만드는 것이야 뚝딱이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 나가 아이 만드는 일이니 신혼 때는 알아서 열심히 아이를 만들 것이다.
물론 서로의 사랑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