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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600화 (598/1,050)

600화

추나를 받고 나오는 유인호의 눈가는 살짝 붉게 달아올라 있었 다. 그리고 그것은 유훈도 마찬 가지였다.

두 사람의 눈가가 촉촉한 것을 본 강진이 모르는 척 말했다.

“혹시 두 분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오늘 저녁?”

“괜찮으시면 저희 가게에서 한 잔하시죠.”

강진의 말에 유훈과 유인호가 서로를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추나를 하면서, 그리고 받으면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깊게 이야 기를 나누지는 못해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강진이 자리를 만들어주 니 솔깃한 것이었다.

“나는 괜찮은데 인호 씨는 어때 요?”

“저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덟 시 이후에나 될 것 같은 데……

두 사람의 대화에 이아름이 웃 으며 말했다.

“저와 약속 때문이면 다음에 해 도 돼요.”

“아닙니다. 아름 씨와 약속이기 도 하지만 현희 씨와의 약속이기 도 한데 깰 수 없죠.”

그러고는 유인호가 유훈을 보았 다.

“여덟 시 이후 괜찮으시겠습니 까?”

“괜찮습니다. 소주 한잔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네요. 그럼 여덟 시 넘어서 강진이 가게에서 뵙기 로 하죠.”

말을 하던 유훈은 힐끗 시간을 확인하고는 강진을 보았다.

“나 다음 예약 때문에 가야겠 다.”

“수고하셨어요.”

“그래. 이따가 보자.”

유훈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 겼다. 그것을 보던 강진은 일행 들과 함께 탈의실로 향했다.

저녁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은 시간을 보고는 음식 준비를 시작 했다.

“인호 씨는 콩나물국밥에 오징 어 채 썬 걸로 하고, 훈이 형은

참치김치찌개에 유부초밥, 그리 고 오징어채에 마요네즈 섞어 서.”

두 사람의 식성을 생각하며 음 식을 준비하던 강진에게 배용수 가 말했다.

“그런데 두 사람만 불러도 되겠 어?”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말을 이 었다.

“저승식당 시간에 여자 두 분 여기 밑에서 밥 먹게 하려면, 유

인호 씨하고 유훈 씨는 2층에서 술을 마셔야 할 텐데…… 너는 밑에 있고 두 사람만 위에 있으 면 이상하지 않겠어?”

주인 없이 손님들만 2층에서 시 간을 보내면 조금 그렇지 않으냐 는 것이었다.

“술 먹으면 형 동생 하는 사이 가 되니까 둘만 둬도 상관없을 거야. 그리고 두 사람이 이야기 할 때 내가 없는 것이 오히려 편 할 수도 있고.”

“그러다가 밑으로 내려오면?”

2층에 있다가 내려오면 저승식 당에 들어오게 되니 말이다.

배용수의 우려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승식당 시간에 가게 안에 들 어올 사람은 민성 형밖에 없잖 아.”

“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저승식 당 영업시간에 가게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황민성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가게를 보지도 못하고 인식도 못 하니 말이다.

“너는 계획이 있구나.”

“당연하지. 사람은 계획성이 있 어야 하거든.”

강진이 다시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배용수가 옆에서 그것 을 도왔다.

8시가 넘자, 유인호가 먼저 가 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강진의 인사에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쇼핑백을 하나 놓았 다.

“현희 씨가 강진 씨 가져다드리 라고 주었습니다.”

“그래요?”

강진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쇼 핑백을 열었다. 쇼핑백 안에는 음식들이 들어 있었다.

“이건 중국식 튀김인데 맛이 좋 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탕수육인

데 기름에 한 번 살짝 튀겨서 먹 으면 매장에서 먹는 것과 맛이 같아진답니다.”

장현희 가게에서 만든 중화요리 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잘 먹겠다고 연락드려야겠네 요.”

강진의 말에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유훈 선생님은 아직 안 오셨나 보네요?”

“곧 오시겠죠. 일단 앉아 계세

요.”

유인호가 자리에 앉자 강진이 임미령에게 눈짓하고는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에 임미령이 뒤따라 들어오자 강진이 물었다.

“현희 씨는 잘 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임미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JS 커피를 주며 말했다.

“아까 제가 한 말 명심하고 계

시죠?”

자신이 가장 예쁘던 때를 기억 하라는 강진의 말을 떠올리며 임 미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호하고 놀러 갔던 때를 계속 떠올리고 있어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세요. 그리고 웃으세요. 그럼 현신했을 때 그 모습이실 거예요.”

“고마워요.”

다시 한 번 당부한 강진은 시원

한 오미자차를 들고 홀로 나왔 다.

“날씨 덥죠?”

“정말 덥더군요.”

“이것 좀 드세요. 기름진 것 드 셨으니 상큼한 것이 좋을 거예 요.”

“감사합니다.”

웃으며 시원한 오미자차를 마시 던 유인호가 살짝 눈을 찡그렸 다.

생각했던 맛보다 조금 더 새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유인호를 보며 웃은 강진이 물었다.

“훈이 형하고 이야기는 좀 하셨 어요?”

“이야기는 좀 했는데 아무래도 마사지를 받으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많은 이야기는 못 나눴습니 다.”

그러고는 유인호가 강진을 보았 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오늘 오래 있다 가세 요.”

“오래요?”

“새벽 한 시 반까지요.”

강진이 시간까지 정하는 것에 유인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지만 곧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술 거하게 먹겠네 요.”

남자들끼리 술 마시다 보면 새

벽 한두 시 넘는 것이야 큰일이 아니니 말이다.

유인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 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시계를 볼 때 문이 열렸다.

띠링!

뒤이어 유훈이 임지은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가볍게 손을 든 유훈이 유인호를 보고는 다가왔 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저도 지금 왔습니다.”

웃으며 유인호가 앞자리를 가리 키자, 유훈이 자리에 앉았다.

“그럼 이제 식사, 아니 술 하시 죠.”

“뭐가 그리 급해. 숨 좀 돌리고 하자.”

유훈은 앞에 놓인 오미자차를 잔에 따라 마셨다.

“오미자차네.”

“시원하고 좋죠?”

“여름에는 이런 것이 좋지.”

그리고는 유훈이 강진을 보았 다.

“그런데…… 내가 너한테 내 이 야기를 한 적이 있던가?”

‘ 아차.’

강진은 뜨끔했다. 유훈의 사정 은 허연욱과 임지은을 통해 들었 지, 정작 유훈에게는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훈과 조금 친해졌다고 하지만 그런 아픔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친해진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 에 강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 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서 들었어요.”

틀린 말은 아니다. 병원에 갔을 때 임지은에게 자세히 들었으니 말이다.

“병원에서? 어떻게?”

“제가 병원에 아는 분이 있어서 요.”

“누군데?”

“그게 제가 말을 하기가 좀 그 러네요.”

죽은 허연욱과 임지은에게 들었 다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한편, 유훈은 잠시 생각에 빠졌 다.

병원에서 자신의 사연을 아는 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과 동기인 의사 중 몇은 알 고 있고, 친한 간호사 중에서도 사연을 아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 외에도 아는 사람들은 더 있을 수도 있었다. 사람 입이 라는 것이 열리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이런 사연은…… 당사자 에게는 아픔이고 상처지만, 남이 보기에는 아름답고 애잔한 러브 스토리였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이야기처럼 말 이다.

유훈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뭐 그냥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 해서 물은 거야. 너에게 화나거 나 한 것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라.”

“제가 형 이야기 허락도 받지 않고 말을 한 것 같아서 죄송하 네요.”

강진의 말에 유훈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 내 이야기 남에게 할 거 면 허락은 받아야지. 그게 아무 리 형 위로해 주고 싶고, 형이 안쓰럽고, 형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기특한 생각이었다 해도.”

처음에는 혼내는가 싶더니 뒤로 갈수록 고마움이 느껴지는 것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유훈이 미소를 지었다.

“결론은 고마워.”

“그래요?”

강진의 말에 유훈이 유인호를 보았다.

“아까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인호 씨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마 음이 많이 가벼워졌어.”

유훈의 말에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 다 보니 마음이 좋아졌습니다.”

그러고는 유인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치 울고 싶은데 누가 따귀를 때려줘서 실컷 울은 느낌입니 다.”

“실제로 울기도 하셨죠.”

“선생님도 우셨던 것 같은데 요?”

“하하하! 저희 둘 다……

말을 하던 유훈은 잠시 멈췄다 가 미소를 지었다.

“울었네요.”

유훈은 핸드폰을 슬며시 꺼냈 다.

“제가 우리 지은이 사진을 좀 찍어왔습니다.”

“사진올요?”

“저희 때는 핸드폰으로 사진 찍 는 것보다 사진기로 찍은 게 더

많아서요.”

화면을 터치해 사진들을 보던 유훈이 말했다.

“사진을 가져올까 했는데…… 구겨질 것 같기도 하고 잃어버리 면 큰일이라 폰으로 찍어 왔습니 다.”

임지은의 사진을 다시 찍을 수 없으니 지금 가진 사진이 원본이 자 유일한 것이었다. 그래서 원 본은 집에 두고, 핸드폰으로 찍 어 온 것이다.

유훈이 슬며시 핸드폰을 밀자, 유인호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사진 파일을 열고 는 내밀었다.

“이건 우리 미령입니다.”

서로 핸드폰을 바꿔 든 두 사람 은 웃으며 핸드폰을 보았다.

그에 임미령과 임지은이 둘 옆 에서 서서는 서로의 사진을 보았 다.

“어머…… 지은 언니 몸매 정말 좋네요.”

“내가 운동을 좋아하거든. 그런 데 미령이는 완전 여리여리하네. 와! 이 치마 봐. 완전 나풀나풀 하다.”

임지은의 말에 강진이 슬쩍 임 미령의 사진을 보았다. 임미령은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밑에 치마 쪽이 바람에 살짝 날 린 듯 부드럽게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 밀짚모자 같은 것을 썼 는데 무척 시원해 보이고 예쁜 모습이었다.

“제가 이런 옷을 좋아해서요.”

“나는 절대 이런 옷 못 입어.”

“왜요? 입으시면 예쁠 것 같은 데요?”

“으! 생각만 해도 닭살 올라온 다.”

두 여자 귀신의 모습을 지켜보 던 강진은 자신의 자리를 임지은 에게 양보하고는 슬쩍 유인호 옆 으로 가서 그 옆 의자를 빼냈다.

그러고는 강진이 눈짓을 하자 두 귀신이 각자의 애인 옆에 앉 아서는 핸드폰 사진을 보기 시작

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힐끗 사진 속 두 여인을 보았다.

방금 말한 대로 두 여자는 서로 가 많이 달랐다.

임지은은 건강미가 많이 느껴지 는 미인이었고, 임미령은 하얀 피부에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미 인이었다.

‘두 분의 스타일이 극과 극이 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슬며 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만들자마자 바로 먹어야 가장 맛 있다 보니 재료 준비만 해 놓고 음식은 아직 안 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 조리를 해야 할 시 간이었다.

음식을 다 만든 강진은 그것을 쟁반에 담아서는 홀로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진의 말에 두 사람이 웃으며 쟁반에 놓인 음식들을 탁자에 올 려놓기 시작했다.

“음식이 많네.”

“두 분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다 르니 좀 많이 준비하긴 했는데 양은 많지 않아요.”

웃으며 강진이 음식을 가리켰 다.

“이건 인호 씨의 콩나물국밥에 오징어 얇게 채 썬 것.”

오징어 채 썬 것을 가리키며 강 진이 말을 덧붙였다.

“인호 씨 취향이 오징어 머리를 통으로 먹는 건데 이렇게 먹으니

식감이 좋더라고요.”

“그래? 하긴, 오징어 머리가 식 감이 좋기는 하지.”

유훈이 웃으며 오징어채를 보 자, 강진이 다른 음식을 가리켰 다.

“이건 훈이 형이 좋아하는, 참 치 캔 통으로 넣고 끓인 김치찌 개에 유부초밥, 그리고 오징어채 에 마요네즈 섞어서 만든 겁니 다.”

그러고는 강진이 유인호를 보았

다.

“보통 밥반찬으로 만드는 오징 어채볶음에 마요네즈만 섞은 건 데 이게 또 고소하고 좋더라고 요.”

“이야, 오징어채에 마요네즈 라…… 처음 먹어 보지만 맛있겠 네요.”

어떤 맛인지 설명만으로도 이해 가 된다는 듯 웃는 유인호를 보 던 강진이 두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이 음식들은 모두 전

여자친구분들이 해 주던 것이에 요.”

강진의 말에 멈칫한 유인호와 유훈이 서로를 보았다.

“이 음식이 여자친구가 해 주던 거였습니까?”

“선생님도?”

잠시 서로를 보던 두 사람은 피 식 웃으며 음식을 보았다.

“생각보다…… 저희 두 사람 닮 은 것이 더 많네요.”

죽은 여자친구를 잊지 못한 데 다 해 주던 음식조차…… 잊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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