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 화
담금주 통 안에는 산삼이 들어 있었고, 투명한 소주는 살짝 노 란색을 띠고 있었다.
유리병 속에 보이는 산삼과 살 짝 노란색의 술을 보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이거 정력에 좋겠지?”
“산삼인데 당연히 좋지 않겠 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홀을 보 았다.
“허 선생님.”
강진의 부름에 최호철과 소주를 마시고 있던 허연욱이 그를 보았 다.
“저기, 잠시만 이것 좀 봐 주시 겠어요?”
허연욱이 주방에 들어오자 강진 이 산삼주를 보여주었다.
“산삼주군요.”
바로 알아보는 허연욱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산삼주가 정력에 좋나요?”
“정력이라……
허연욱은 강진을 보며 웃었다.
“아! 제가 먹으려는 건 아닙니 다.”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연신 웃 으며 말했다.
“정력이야 남자들이라면 다 원 하는 것이니 괜찮습니다. 저도
살았을 때는 정력에 좋다는 것 이것저것 잘 챙겨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허연욱이 산삼주를 보 며 말했다.
“산삼이야 몸에 안 받는 사람 빼고는 다 좋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정력이라는 것도 기와 관 련이 있으니 기를 보하고 승하게 하는 산삼을 먹으면 좋습니다.”
웃으며 허연욱이 산삼주를 보다 가 말했다.
“근데 이건…… 담근 지 얼마
안 된 것 같습니다.”
“아직 몇 달 되지는 않았습니 다.”
“그럼 이건 좀 나중에 드세요. 보통 2년 정도는 숙성해서 먹는 데 이런 귀한 산삼주를 2년 담그 고 먹기에는 아깝죠. 이 정도면 십 년이나 이십 년 후에 먹어야 좋습니다.”
“그럼 이건 못 먹는 겁니까?”
“못 먹을 건 없죠. 하지만 이건 아직 약성이 술에 다 녹지 않아
서 그냥 산삼 목욕주 정도겠네 요.”
허연욱이 입맛을 다시며 하는 말에 강진이 산삼주를 볼 때, 배 용수가 말했다.
“그럼 산삼을 직접 먹는 건요?”
“그것도 괜찮지요. 다만…… 뭐, 상관없겠습니다.”
뭔가 이야기하려다가 마는 허연 욱의 모습에 강진이 그를 보았 다.
“뭔데요?”
“산삼 먹고 얼마 동안은 잠자리 를 금하는데 강진 씨야…… 그럴 일이 없지 않습니까?”
허연욱의 말에 강진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는 데?’
그럴 일이 없는 게 사실이긴 하 지만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다. 그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저도 그럴 일이 생길지도
“누구? 누구 마음에 드는 여자 있어?”
배용수가 끼어들자 강진이 한숨 을 쉬었다.
“너 인마. 너.”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급히 뒤 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야! 어디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러게 끼어들기는 왜 끼어들 어.”
작게 투덜거린 강진이 허연욱을 보았다.
“사실 이거 민성 형 드리려고 하거든요.”
“아……
허연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황민성의 죄가 사해져서 이 제 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알 고 있었다.
그래서 배용수와 정력에 좋은 식재에 대해 여러 차례 상의하기 도 했었다.
정력에 좋다고 막 먹는 것보다 는 음식 궁합을 생각해서 식단을 짜는 것이 더 좋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장어와 은행과 복숭 아는 상극이다. 장어와 은행을 같이 먹으면 풍이 올 수도 있어 같이 먹으면 절대 안 되는 음식 이다.
물론…… 은행은 평소 잘 먹지 않는 음식이고, 술집에서 가끔 안주로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복숭아는 기름진 음식과 먹으면 배탈이나 설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
이렇듯 상극인 식재가 있기 때 문에 궁합을 생각하며 음식을 만 드는 것이다. 강진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허연욱이 말했다.
“그럼 차라리 산삼을 드시게 하 십 시오.”
“산삼? 산삼 먹으면 당분간 잠 자리는 안 된다면서요?”
“황민성 씨도 지금은 몸을 보하 고 기력을 승하게 하는 단계입니 다. 그러니 몸을 깨끗하게 한 후
에 정을 통하는 것이 건강한 아 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요?”
“며칠 몸에 좋은 것 먹고 금주 했다고 바로 몸이 건강해지는 것 은 아닙니다.”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허연욱은 산삼주를 보다가 미소
를 지었다.
“민성 씨는 좋겠습니다.”
강진이 보자 허연욱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생들이 있 으니까요. 어떤 동생들이 형 아 기 낳으라고 산삼을 챙기겠습니 까?”
허연욱이 웃으며 주방을 나가자 강진이 산삼주를 보았다.
“담근 지 얼마 안 돼서 이건 안 되겠다.”
“그럼 산삼 캐러 가야지. 오늘 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산삼주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저었다.
“술 먹고 산은 위험하지.”
“돼랑이한테 캐 오라고 하면 되 잖아.”
“아니야. 오늘은 위에 사람들도 있고…… 그리고 오늘 캐 온다고 형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 야.”
“왜?”
“회충약도 먹어야 하고, 산삼 먹을 준비를 해야 하니까. 내일 형한테 회충약 먹으라고 하고 산 삼 먹을 유의 사항 이야기해 준 다음에 가서 캐 오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몸에 좋은 걸 하루라도 빨리 주 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산삼 받 고 좋아할 황민성도 보고 싶고 말이다.
그런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그 어깨를 툭 치고는 홀로 나왔다.
잠깐 자리에 앉은 강진이 배용수 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고는 손님 들을 살폈다.
반찬이 부족하진 않은지 일일이 살펴보던 강진의 눈에 분주히 일 하고 있는 여자 직원들이 보였 다. 잠시 그녀들을 보던 강진은 생각에 잠겼다.
‘저분들도 가족이 보고 싶을 텐 데……
그녀들도 가족들이 있었다. 표 현은 하지 않지만 그녀들 또한 가족이 보고 싶을 것이다.
‘어떻게 우리 가게에 모셨으면 좋겠는데……
알지는 못하겠지만 딸이 일하는 가게에서 식사 한 끼 대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자 직원들도 기뻐할 테고…….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소주 를 한 잔 입에 가져갔다.
“안 마신다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고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냥 생각할 것이 있어서.”
“무슨 고민 있어?”
“있기는 한데……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배용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저승식당 영업을 마무리한 강진 은 계단 쪽을 보았다.
‘정말 안 내려오셨네.’
임미령에게 있어 이번 저승식당 방문은 정말 어렵게 얻은 기회였
는데…… 임미령과 임지은 둘 다 내려오지 않은 것이다. 그에 잠 시 2충 쪽을 보던 강진이 배용수 를 보았다.
“잠시 올라가 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배용 수가 내려왔다.
“두 분 잔다.”
“자? 그럼 두 분은?”
배용수가 말을 한두 분은 유인 호와 유훈이고, 강진이 물은 두
분은 임미령과 임지은이었다.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두 분 옆에서 같이 팔 베고 누 워 있어.”
“누워 있다고?”
“올라가지 마라. 분위기…… 아 주 요상하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잠시 2층 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여기에서 자야
겠네.”
피식 웃으며 강진이 의자를 끌 어모아 길게 배치하자,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여기서 이렇게 자면 허리 아플 텐데?”
“옛날에는 이렇게 자주 잤어.”
강진은 줄을 세운 의자에 누우 며 이혜미와 여자 귀신들을 보았 다.
“보기 흉하겠지만 좀 이해해 주 세요.”
“ 괜찮아요.”
웃으며 답한 여자 귀신들은 식 당 한쪽에 앉아서는 태블릿과 핸 드폰을 꺼내 인터넷과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배용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불 끈다.”
“그래. 오늘 하루 수고했어. 여 러분들도 수고하셨어요.”
“사장님도 수고하셨어요.”
직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한 강 진은 눈을 감음과 동시에 스르륵 잠들었다.
강진의 장점 중 하나가 어디에 서건 눈을 감을 수 있으면 바로 잠이 든다는 것이었다.
따스한 햇살에 눈을 뜬 유훈은 멍하니 옆을 보고 있었다. 자신 의 팔은 옆으로 길게 뻗어 있었
다.
그리고 그 팔에는 아무것도 없 었다. 그런데 뭔가 따스했다.
그가 눈을 뜨기 한참 전부터, 임지은은 유훈의 팔을 벤 채 누 워 있었다.
귀신은 잠을 자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유훈의 팔을 베고 누워 있을 뿐이었다.
“훈이도 나이 많이 먹었네.”
임지은은 유훈의 턱에 나기 시 작하는 수염을 손으로 만지작거 렸다.
“아침만 되면 수염이 막 자라 고……
물론 만진다고 만져지는 것은 아니지만 손끝으로 슬슬 쓸어내 리니 만져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유훈의 수염을 만지던 임지은이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유훈이 눈을 떠서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유훈의 시선 에 임지은이 미소를 지었다.
“여보, 잘 잤어?”
어쩐지 따스한 기분에 멍하니 자신의 팔을 보던 유훈이 미소를 지었다.
“강진이가 신기가 있는 거 면…… 여기에 이렇게 너 있겠 다.”
작게 중얼거린 유훈이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임지은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심히 손을 움 직였다.
“이게 네 예쁜 이마, 이게 네 예쁜 눈, 그리고 이게 네 귀여운 코, 그리고 이게 네 입술.”
“이게 네 예쁜 이마, 이게 네 예쁜 눈, 그리고 이게 네 귀여운 코, 그리고 이게 네 입술.”
자신의 얼굴선을 훑어 내리는 유훈의 손길에 임지은이 웃었다.
“바보야, 방금 내 눈 찔렀잖아.”
임지은은 웃으며 손으로 유훈의 머리에 딱밤을 때리는 시늉을 했
다. 그러다가 손가락을 펴 유훈 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강진 씨가 우리 보게 해 줬으 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대. 그래도 이렇게 너하고 같이 누워 있으니까 나 너무 좋다.”
유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임지 은이 웃었다.
자신의 팔을 베고 누워 있을 임 지은을 생각하며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은 유훈은 잠시 비
어 있는 자신의 팔을 멍하니 보 았다.
그렇게 잠시 임지은을 떠올리던 유훈이 입을 열었다.
“있지.”
잠시 숨을 고른 유훈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정말 내 옆에 있다 면…… 난 정말 행복할 것 같 아.”
그러고는 잠시 자신의 팔을 보 던 유훈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잠시 말을 멈춘 유훈이 임지은 을 떠올렸다.
“너는…… 행복해?”
유훈의 물음에 임지은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유훈의 얼굴 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임지은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도 않지만 유훈은 왠지 지금 그 녀가 자신의 팔을 벤 채 누워 있 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시 멍하니 자신의 옆을 지그
시 보던 유훈이 몸을 완전히 옆 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잠시 허공을 보던 유 훈이 말했다.
“내가 아는 척도 안 해 주 고…… 외로웠겠다.”
“외로웠겠다.”
유훈의 잔잔한 목소리에 임지은 이 미소를 지었다.
“너 있으니까 안 외로워.”
자신의 팔을 지그시 보던 유훈 이 말했다.
“네가 나를 위해서 강진이를 소 개해 준 것 알아. 아마……
잠시 말을 멈춘 유훈은 손을 내 밀어 임지은의 머리를 쓰다듬었 다.
손에 아무런 감촉도 없었지만 유훈은 지금 자신의 품에 임지은 이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임지은의 머리를 쓰다듬
던 유훈이 미소를 지었다.
“착해 빠져서는…… 나 외롭지 않은데, 내가 외로워 보였어?”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보던 유 훈이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있으면 나 는…… 너무 행복한데…… 네가 너무 힘들 거 생각하니까 나 너 무 슬프고 괴로워. 아직도…… 아프고 힘들면 어떡해.”
“어떡해.”
유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자 임지은이 작게 숨을 토했다.
“나는…… 정말 괜찮은데. 나는 너하고 있으면…… 정말 괜찮은 데.”
임지은이 작게 입을 열을 때, 그녀의 얼굴에 유훈의 얼굴이 다 가왔다.
그리고 자신의 이마에 유훈의 입술이 닿았다.
“나…… 연애도 하고…… 결혼 도 하고…… 애도 낳을게. 내가
걱정돼서 못 가는 거면……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유훈은 손을 내밀어 임지은의 몸을 안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임지은의 입술에 자신의 입 술을 가져갔다.
“잘 가…… 내 사랑아.”
유훈의 입술이 보이지도 않는 자신의 입술에 닿자 임지은은 천 천히 눈을 감았다.
“다음에는…… 나 건강하게 태 어날게. 잘 있어…… 내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