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4화
강진은 아침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모였기에 유훈과 유인호 둘 다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콩 나물국에 김치를 넣어 얼큰하게 끓이고 있었다.
거기에 계란찜도 했으니 해장으 로는 좋을 것이다. 계란의 단백 질이 숙취에 좋으니 말이다.
음식을 만들던 강진의 눈에 뭔 가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툭!
강진은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그리고 손에 잡 힌 것을 확인한 강진이 천장을 보았다.
‘지은 씨…… 아니, 형수님 가셨 구나.’
천장을 잠시 보던 강진은 쥐고 있던 종이를 펴 보았다.
〈고마운 강진 씨에게.
저 승천했어요. 감사 인사라도 하고 가야 했는데…… 갑자기 승 천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미안 하고…… 고맙고 감사해요.
그리고 훈이가 강진 씨가 무당 이라고 생각해요.〉
‘무당?’
뜬금없는 이야기에 의아해하던 강진은 글을 마저 읽었다.
〈강진 씨가 혼자 허공을 보고 작게 중얼거리는 것을 본 모양이 에요. 그래서 강진 씨가 저를 본 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혹시 훈 이가 물어보면…… 저도 잘 모르 겠네요. 사실대로 말하기도 그렇 고, 아니라고 하면 강진 씨 이상 한 사람 되는 거니까.〉
임지은의 걱정 어린 글에 강진 이 웃었다.
“뭘 이런 걱정을 다 하시고…… 그냥 편하게 올라가시면 될 것 O 바
작게 중얼거린 강진은 글을 마 저 읽었다. 내용 대부분은 유훈 잘 살게 앞으로도 좀 살펴 달라 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훈이가 결혼을 하 면…… 이 돈으로 아기 신발을 사 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강진 씨도 좋은 여자 어
서 만나서 행복한 가정 꾸리기를 기도할게요.
감사했고…… 고마웠습니다.
PS. 미령이에게 인사도 못 하고 왔어요. 내가 먼저 가서 미안하 다고, 그리고 내가 위에서 좋은 곳 잡아 놓고 기다린다고 어서 오라고 해 주세요.〉
마지막 글귀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미령 씨는…… 안 가셨구나.”
강진은 조금 입맛이 썼다. 자신 과 같은 신세인 언니를 만나서 조금은 위안이 됐을 텐데…… 혼 자 남은 그녀가 걱정되는 것이 다.
임미령을 생각하던 강진은 종이 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 분이라도 가셨으니 다행이지.”
그러고는 임지은이 보낸 편지와 수표를 주머니에 넣었다.
강진은 수표의 금액을 보지도 않았다. 그저 잘 뒀다가 나중에 유훈이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하 면 그때 아기 신발을 사려고 넣 어둔 것이다.
강진은 주머니에 종이와 수표를 잘 넣고는 마저 요리하기 시작했 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준비한 강 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나 올라가서 깨우고 올게.”
같이 아침을 준비하던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강진이 홀로 나오자, 이혜미가 말했다.
“2층 치우지 마시고 사람들만 데리고 내려오세요.”
“죄송해서.”
“에이! 공짜로 하나요. 우리도 다 월급 받고 하는 건데.”
웃으며 괜찮다고 하는 이혜미를 보며 웃어준 강진은 2충으로 올 라갔다.
마음 같아서야 자신이 치우겠다 고 하고 싶지만 아침에 사람들
깨워서 밥 먹이고, 공원 가서 애 들 밥 주고 오는 동안 이혜미와 직원들이 청소를 다 해 놓을 것 이었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라는 걸 아니 그냥 고마움을 표시했다.
2층으로 올라온 강진은 진한 남 자 냄새와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누워 있는 두 사람과 유 인호의 팔을 베고 누워 있는 임 미령을 볼 수 있었다.
강진이 올라오는 것에 임미령이 몸을 일으키지 않고 말했다.
“다 깨어 있어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방금…… 지은 언니 승천했어 요.”
강진은 슬쩍 유훈을 보았다. 유 훈은 눈을 뜬 채 멍하니 자신의 옆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포즈가 이상했다. 한쪽 팔은 쭈욱 편 채였고 반대 팔은
마치 무언가를 안고 있는 둣한 포즈였다.
그는 그 자세 그대로 멍하니 눈 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유인호 를 보았다.
유인호도 눈을 뜬 채 멍하니 옆 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이들을 불러 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때, 유훈이 입을 열었다.
“강진아.”
유훈의 부름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형…… 점심때까지 누워 있다 가도 되냐?”
“되기는 하는데, 회사는요?”
“아파서 병가…… 낼 거야.”
“어디 아프세요?”
유훈은 말없이 작게 고개를 저 었다.
그런 유훈의 모습에 강진은 나 지막하게 말했다.
“알겠어요.”
“나도 병가.”
둘 다 병가라는 말에 강진이 둘 을 번갈아보다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럼 쉬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슬며시 1층으 로 내려왔다.
강진이 내려오자 배용수가 말했 다.
“씻고 내려온대?”
“병가 내신대.”
“병가? 어디 아프대?”
“……마음이 아프시겠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의아한 듯 2층을 볼 때, 이혜미가 씁쓸 하게 말했다.
“지은 씨가 승천할 정도면 뭔가 이야기가 있었겠죠.”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일단 우리끼리라도 먹
자.”
배용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 란물이 담긴 뚝배기를 가스레인 지 위에 올렸다.
“계란찜만 하면 돼.”
“알았어.”
그러고는 강진이 이혜미를 보았 다.
“위에 분들 점심때쯤 내려올 것 같으니……
“주방에서 놀게요.”
이혜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방에 들어갔다.
강진이 내려가는 소리를 듣던 유훈이 입을 열었다.
“인호야.”
유훈의 부름에 유인호가 그 자 세 그대로 답했다.
“네.”
“형 중얼거리는 소리 다 들었 니?”
답이 돌아오지 않자, 유인호를 보며 유훈이 입을 열었다.
“형은 결혼할 거다.”
유훈의 말에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수도 그걸 원하실 거예요.”
“그래. 그걸 원할 거야. 우리 지 은이는 착하고…… 좋은 여자니 까.”
그러고는 유훈이 말을 이었다.
“미령 씨도 너 혼자 이러고 있
는 것 보면 힘들어할 거야.”
유훈의 말에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미령이도 착하고…… 좋 은 여자니까요.”
그러고 잠시 있던 유인호는 천 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형.”
유인호는 슬쩍 눈가를 손으로 닦았다.
“미령이한테 정말, 정말 미안한
데…… 저는 미령이 조금만 더 품고 있겠습니다. 지금은 놓을 수가 없네요.”
그 또한 자신이 이렇게 있는 게 혹시라도 곁에 있을 그녀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그녀를 보낼 수가 없었다.
유인호의 말에 유훈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10년하고도 수년이 걸렸다. 하지 만 유인호는 몇 년 되지 않았으
니 보내기 어려울 것이다.
“강진이가 정말 신기가 있으 면…… 너와 내가 만난 거 우연 이 아닐 거야.”
유훈의 말에 유인호가 가만히 옆에 놓여 있는 자신의 팔을 보 았다.
정말 임미령이 곁에 있다면 지 금쯤 자신의 팔을 벤 채 누워 있 을 것이었다. 잠시 자신의 팔 위 에 시선을 주던 유인호가 말했 다.
“강진이한테 신기가 있다고 믿 으세요?”
잠시 말이 없던 유훈이 웃으며 답했다.
“지금은 믿을래.”
“왜요?”
“그래야…… 내 말을 지은이가 들었을 테니까.”
유훈의 말에 유인호가 잠시 자 신의 팔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믿을래요.”
그래야 임미령을 조금은 더 느 낄 수 있으니 말이다.
유인호의 말에 유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멍하니 허공을 보았 다.
* * *
조금은 북적거림이 줄어든 점심 시간 끝 무렵에 황민성이 오 실
장, 고경수와 함께 자리하고 있 었다.
“오늘은 김치찌개네.”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등심 수육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단백질 등심 수육입 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등심 수육은 사실 좀 힘들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다른 분들은 맛있게 드시던데 요?”
“그분들이야 가끔 먹는 거고, 나는 거의 매끼 먹는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 다.
“혹시 이슬 씨한테 내 식단 이 야기했어?”
“밥상이 좀 변했어요?”
“밥 양은 줄고 고단백에 야채들 이 많이 나와.”
“몸에 독소 빼는 데는 야채가 좋아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침에 디 톡스에 좋다는 무슨 즙 먹고 있 다.”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젓는 황민 성을 보며 강진이 수육을 가리켰 다.
“김치에 싸서 드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오 실장과 고 경수를 보았다.
“두 분도 많이 드세요.”
강진의 말에 고경수가 웃었다.
“요즘 우리 사장님 덕에 이렇게 특별식을 잘 먹어서 몸이 좋아지 는 느낌입니다.”
고경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민성이 점심을 여기 에 먹고 가다 보니 두 사람도 본 의 아니게 정력왕 식단으로 음식 을 먹고 있었다.
음식으로 차별하는 것만큼 서운 한 것도 없으니, 황민성 먹을 음 식 만들면서 다른 사람 것도 같 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점심 식단에 고 단백질 메뉴가 하나씩 포함이 되 어 있었다. 물론 장어처럼 조금 가격대가 나가는 음식은 아니지 만 말이다.
“그럼 식사 건강하게 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한숨을 쉬고는 수저를 들었다. 그런 황 민성을 보던 오 실장이 슬쩍 젓 가락으로 수육의 반을 밀어 선을 만들었다.
“이만큼은 드셔야 합니다.”
“아니, 무슨……
“건강 생각해서 이 사장님이 만 드신 건데 이만큼은 드셔야죠.”
오 실장의 말에 황민성이 작게 고개를 젓고는 등심을 집어 입에 넣었다.
나름 퍽퍽하지 않도록 만들었지 만 지방이 거의 없이 살코기만 있는 등심은 퍽퍽했다.
처음 먹어 본 사람은 담백하고 맛있다고 하겠지만, 요 며칠 이 런 음식을 계속 먹은 그로서는
질릴 수밖에 없었다.
느릿느릿 고기를 먹는 황민성을 보며 작게 웃은 오 실장이 등심 을 집어 김치에 싸서는 먹었다.
“맛 좋네요.”
오 실장의 말에 고경수도 고기 를 집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 덕였다.
“맛이 아주 좋네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황민성 이 입맛을 다셨다.
“그럼 좀 더 드시죠.”
황민성이 슬쩍 고기 몇 점을 선 너머로 옮기려 하자 오 실장이 웃으며 고기를 집어 먹었다.
“저희는 이거면 됩니다.”
오 실장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 을 다시고는 젓가락으로 집은 고 기 몇 점을 그대로 입에 넣고 씹 었다.
작은 실랑이가 끝나고 식사가 이어지는 사이, 2층에서 유훈과 유인호가 내려왔다.
“일어나셨어요?”
고개를 끄덕이던 유훈은 황민성 을 보고는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 다.
“민성아.”
유훈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황 민성은 그를 보고는 웃으며 일어 났다.
“형님.”
형님이라는 말에 유훈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한 번 술자리를 같 이 하면서 형님 동생 하기로 했
던 터라 황민성이 “누구?”하면 민망했을 터였다.
“밥 먹으러 왔어?”
“네. 그런데 여기서 주무셨어 요?”
“어제 강진이하고 술 마시다가 자 버렸네.”
“어! 그럼 식사하셔야죠. 여기 앉으세요.”
황민성이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 키고는 강진을 보았다.
“여기 밥만 한 그릇 가져다줘 라.”
황민성의 말에 유훈이 고개를 저었다.
“나 일행 있어.”
그러고는 유훈이 유인호를 가리 켰다.
“여기는 유인호.”
“동생이세요?”
같은 유 씨라 친동생이라 생각 한 모양이었다. 그에 유훈이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생.”
유훈의 말에 유인호가 그를 보 고 한 번 웃고는 황민성에게 손 을 내밀었다.
“훈이 형 동생 유인호입니다.”
“나는 황민성이에요. 만나서 반 가워요.”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강진이 옆자리를 가리켰다.
일단 앉으세요. 식사 낼게요.”
강진의 말에 유훈과 유인호가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음식을 준비해서 는 가지고 나왔다.
음식을 하나씩 내려놓던 강진은 문득 두 사람 옆자리를 보았다. 분명 빈자리인데, 숟가락과 젓가 락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