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화
호두과자를 먹으며 윤두식이 입 을 열었다.
“가족 나들이 가는 것 같은 데…… 나는 왜 부른 거야?”
“택시 부른 이유가 뭐겠어. 탈 일이 있어서지.”
“나 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윤두식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내 친구 중에 제대로 된 애들을 본 적이 없 어.”
“그쪽 애들이 제대로 살기는 쉽 지 않지.”
윤두식이 쓰게 웃으며 하는 말 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보았다.
“제대로 된 친구는 아마 네가 유일할 거야. 그래서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도 제대로 된 친구 있다고.”
“미친놈.”
황민성의 말에 입맛을 다신 윤 두식이 말했다.
“그래서 나 네 어머니에게 소개 하려고 부른 거냐?”
“안 되냐? 우리 친구 하기로 했 잖아.”
윤두식은 대답 대신 한숨을 내 쉬고는 호두과자를 집어 먹으며 물었다.
“그런데 주소 목적지가 학교던 데?”
“학교 맞아.”
“학교로 나들이를 가?”
보통 가족 나들이면 경치 좋은 곳으로 갈 텐데 학교로 가니 의 아한 것이다.
“가서 보면 옛날 기억도 나고 좋을 거다.”
“학교에 기억이 날 것이 뭐가 있다고 학교를 가?”
황민성 못지않게 거칠게 산 그 로선 학교에 딱히 좋은 기억이 있지 않았다.
인상을 쓰는 윤두식을 보던 황 민성은 호두과자를 하나 더 집어 입에 넣었다. 뒤이어 하나 더 집 어 든 그는 고경수를 보았다.
“경수도 먹어라.”
“감사합니다.”
황민성이 건네는 호두과자를 받 아 입에 넣는 고경수를 보며 강 진이 말했다.
“그런데 오 실장님은요?”
“주말이잖아. 집에 가셨어.”
“아쉽네요.”
귀한 산삼을 넣고 백숙을 만들 건데 그것을 못 먹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 었다.
“아무리 경치가 좋고 몸에 좋은 것이 있어도 가족과 지내는 것만 하겠어?”
황민성은 다시 고경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경수도 이제 혼자 다녀 봐야 쉴 시간이 생기지.”
“그럼 돌아가면서 쉬시는 거예 요?”
“그렇지. 오 실장님이 주말에 쉬고, 경수는 주중에 이틀 쉬고 싶은 날 쉬는 걸로 했어.”
가정이 있는 오 실장은 주말에 쉬고, 고경수는 쉬고 싶을 때 쉬 는 것이니 서로 장단점이 있었 다.
이야기를 들으며 호두과자를 먹 은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휴게소에서는 호두과자
가 맛있어요.”
“휴게소에서 먹는 호두과자는 길거리에서 파는 호두과자하고는 조금 느낌이 다르지.”
황민성의 말에 고경수가 슬며시 말했다.
“맛도 있지만 기분 탓도 있지 않을까요?”
“기분 탓?”
“휴게소에 들르는 건 어딘가 여 행을 간다는 거잖아요. 그런 상 황에서 간식을 먹으니 더 기분이
좋아서 맛있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황민성과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러고 보면 휴게소는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도 있으니 여기서 먹는 음식이 특별할 수도 있겠 네.”
호두과자를 집어 먹으며 중얼거 린 황민성이 휴게소 쪽을 보았 다.
“어머니 나오기 전에 우리도 화 장실 가서 물 좀 빼고 오자고.”
황민성은 화장실로 가며 강진을 보았다.
“너는?”
“저는 이미 버리고 왔어요.”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윤 두식과 고경수를 데리고 화장실 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 던 강상식이 말했다.
“윤두식이라는 분 몸 좋네.”
“그쪽 세상에 한 주먹 하셨다니 까요.”
“민성 형은 그렇게 몸이 안 크 잖아.”
“몸이 크다고 싸움 잘하는 건 아니죠.”
뭔가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것에 강상식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어쨌든 좋은 분 같네.”
“인상 험해 보이지는 않고요?”
“길에서 보면 더럽다 생각하겠 지만…… 네 이야기 듣고 보니 속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그런 상남자 느낌이랄까?”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고가 난 날의 이야기 를 가볍게 나누었다.
“……그 아내분이 오셨는데 정 말 ‘내가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을 살린 거니까.”
“저 때문에 사람이 살았다고 하
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제가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아서 기 분이 좋아요.”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상 식이 물었다.
“병문안 가 봤어?”
“아직 안 가 봤어요.”
“왜? 가보지. 너 보면 그 사고 당하신 분도 기뻐하실 것 같은 데?”
“사고가 워낙 크게 났었잖아요. 얼마 동안은 중환자실에 계셔야
한대요.”
“아……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 상식이 웃으며 그 어깨를 툭 쳤 다.
“좋은 일 했으니 나중에 복받겠 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슬쩍 하늘 을 보았다.
‘복 말고 돈으로 받기는 했을 겁니다.’
좋은 일을 할 때마다 돈을 바라 거나 하지는 않지만, 딱히 마다 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 JS 금융 잔고에 조금은 돈이 쌓였을 것이다. 계좌에 차 곡차곡 쌓이고 있을 돈을 생각한 강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내가 부지런히 벌어야지. 그래 야 나중에 저승 갔을 때 용수 지 옥에 있으면 꺼내주고, 둘이 같 이 음식점 차리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은 문득 턱을 쓰다듬었다.
‘저승은 땅값이 얼마나 하려나? 비싸려나?’
으는 이승을 따라가니 유동 귀 신들이 많은 지역은 확실히 땅값 이 비쌀 것이었다.
게다가 음식 장사하기에 좋은 여건도 아니었다. 으에서 사용하 는 식재들은 기름진 혓바닥에서 자라서 모두 맛이 좋았다.
JS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만 해도 일류 호텔 도시락 정도의 질을 유지하고 맛도 있으니 말이 다.
음식은 재료가 반이라고 하 니…… 그런 좋은 재료를 사용하 는 가게들과 경쟁해서 음식 장사 를 하려면 정말 치열할 것이었 다.
“쉽지 않겠는데?”
강진의 중얼거림에 강상식이 그 를 보았다.
“뭐가 쉽지 않아?”
“아! 그런 것이 있어요.”
작게 웃은 강진이 고개를 저었 다.
‘너무 앞서갔다.’
아직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자신이 죽음을 생각한 것도 모자 라, 죽고 난 후에 배용수와 함께 차릴 가게 영업까지 걱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적당히 얼버무린 강진은 황민성 일행과 조순례 일행이 돌아오자 음료수들을 나누어 주고는 푸드 트럭으로 올라탔다. 그러고는 강 상식과 함께 강원도로 출발을 했 다.
황민성의 학교는 그가 몇 번 말 했던 것처럼 정말 산속 깊은 곳 에 위치해 있었다.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 로 심산유곡이었는데, 가장 가까 운 마을과도 차로 10분에서 20 분은 가야 할 정도로 인가가 없 는 곳이었다.
게다가 산 중턱에 학교가 위치 해 있어서 아이들이 산을 내려가
려면 차를 이용하거나 꾸불꾸불 한 길을 따라 몇 시간을 걸어 내 려가야 할 것 같았다.
“와…… 이런 곳에 학교를 만들 생각을 다 하시고, 대단하네.”
강진의 중얼거림에 강상식도 동 감이라는 듯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창밖으로는 산 밑 정경 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경치는 아주 좋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슬쩍 창 밖을 보자, 강상식이 급히 말했
다.
“야! 운전이나 해.”
“아, 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을 보았다.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기는 했지만 길 은 그리 넓지 않았다. 버스 한 대가 조금 넉넉하게 갈 정도라고 할까?
그래도 중간중간에 차가 마주 오면 피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있어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겨울에 여기 눈 오면…… 아찔 하겠다.”
강상식의 말에 강진은 빙판이 된 길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작 게 침을 삼켰다. 눈까지 내린 이 길을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강상식은 경치를 구경하 고 강진은 운전에 집중하며 드디 어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선 중고등학교〉
“일선 중고등학교?”
강진이 학교 이름을 중얼거리 자, 강상식이 한문으로 된 학교 이름을 보다가 말했다.
“하나의 선?”
하나의 선을 의미하는 이름에 강상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 진도 학교 이름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기회라는 의미가 아닐 까요?”
“마지막 기회?”
“흔히들 선 넘지 말라고 하잖아 요. ‘이 선 넘으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요.”
“아…… 애들에게 마지므I 선이 자 기회를 준다는 의미로 학교 이름을 이렇게 지은 건가?”
강상식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택 시와 승용차가 학교 안으로 들어 왔다. 그러고는 학교 한쪽에 있
는 주차장으로 앞장서서 가자, 강진도 그 뒤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
조순례는 차에서 내리며 의아한 얼굴로 학교를 보고 있었다. 그 런 어머니의 곁에 선 황민성이 휠체어를 밀며 말했다.
“어머니, 학교 어떠세요?”
“나들이 간다고 했는데…… 학 교를 왔어?”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학교를 보다가 말했다.
“제가 지은 학교예요.”
조순례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았다. 그리고 놀란 것 은 조순례만이 아니었다.
윤두식도 황민성의 말에 놀란 듯 크게 뜬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학교를 지었다고?’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웃은 황민성이 조순례를 보았다.
“예전에 엄마가 나 학교 잘 안 다니고 한 것 기억나지?”
“그럼. 기억나지.”
조순례가 미소를 지으며 황민성 을 보았다.
“내가 너 대학만 가면 차 人} 준 다고 했잖니.”
“그걸 기억하네?”
“그럼......"
조순례의 웃음에 황민성이 고개 를 끄덕였다.
“그럼 엄마가 나 조만간 차 사 줘야겠다.”
“ 차?”
“나 대학 들어가기로 했어.”
“ 진짜?”
“그럼 진짜지.”
웃으며 황민성이 조순례를 보았 다.
“나 대학 입학하는 날 엄마도
같이 가자.”
“그럼. 엄마도 같이 가야지.”
조순례가 황민성을 보다가 웃었 다.
“엄마가 아들 차 사줘야겠다.”
“농담이었어. 나 차 있는데 또 무슨 차를 사.”
“아니야. 엄마 돈 있어.”
그러고는 조순례가 장 여사를 보았다.
“장 여사, 내 통장 잘 가지고
있지?”
“그럼요.”
“그걸로 우리 아들 차 사줘야겠 어.”
“사장님 대학 들어가는 게 그리 좋으세요?”
“그럼 좋지!”
아이처럼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들기는 어머니의 손을 가볍게 쓰다듬은 황민성이 말했다.
“학교 구경시켜 드릴게요.”
황민성은 휠체어를 밀며 강진과 강상식을 보았다.
“너희도 같이 학교 구경하자.”
“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강상식과 함께 그 뒤로 섰다. 그에 황민성 이 윤두식을 보았다.
“가자.”
“ 나도?”
황민성의 말에 윤두식이 그를 보았다.
“왜. 너도 할 것 없잖아.’’
“ 나는......"
윤두식이 택시를 보자 조순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두식아, 이리 와.”
“네. 어머니.”
조순례의 부름에 윤두식은 두말 하지 않고 그녀의 옆에 섰다. 그 에 조순례가 기분 좋은 얼굴로 윤두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민성이하고 싸우지 말고
친하게 잘 지내야 해.”
“어머니, 저희 나이가 있는데 싸우기는 왜 싸워요.”
황민성의 말에 조순례가 고개를 저었다.
“주먹으로만 싸워야 싸움인 건 아니지.”
미소를 지으며 황민성과 윤두식 을 번갈아보던 조순례가 말을 이 었다.
“친구끼리라도 싸울 수는 있지 만 싸우더라도 바로 풀어야 해.
그 기간이 길어지면 감정이 상하 고 그러면 마음도 다치게 되거 드 ”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과 윤두식 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보았 다. 사실 둘은 그리 친분이 깊은 것은 아니었다. 정이라고 한다 면…… 싸우면서 느낀 주먹 정이 전부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황민성이나 윤두식 둘 다 서로의 주먹에서 남자다움을 느끼고 호감이 생겨 친구가 된 것이다.
조순례의 말에 미소로 답한 황 민성이 학교를 가리켰다.
“자, 학교 구경시켜 드릴게요.”
말을 하며 황민성이 걸음을 옮 기자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