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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611화 (609/1,050)

611 화

일선 중고등학교의 학생 수는 일반 학교에 비해 많지는 않았 다. 중학교 두 반, 고등학교 네 반 정도가 있었는데 남학생과 여 학생 수가 거의 비슷했다.

전국에서 더 이상 갈 데 없는 학생들만 모은 것임을 감안할 때, 이 정도만 해도 정말 한국 교육계가 걱정이 될 수이기는 했 다.

그리고 학교 안에는 기숙사가 있어서 봄부터 겨울까지 학생들 이 이곳에서 숙식을 했다. 거기 에 학교 한쪽에는 작지만 빌라도 지어져 있었다.

그곳은 선생님들이 기숙하는 곳 이었다. 학교가 워낙 외지다 보 니 이곳 선생님들도 대부분 여기 에서 숙식을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밑으로 한 단 정도 내 려간 곳에는 중장비들이 세워져 있었다.

공부에 담쌓은 학생들이 기술을

배우고 쓰게 될 중장비들과 차량 들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황민성이 학교를 구경시켜 주고 있을 때, 건장한 체격을 가진 스 포츠머리의 남자와 백발에 인상 좋아 보이고 배가 볼록 나온 할 아버지가 다가왔다.

“이사장님 오셨습니까.’’

할아버지가 웃으며 작게 고개를 숙이자 황민성이 급히 마주 고개 를 숙였다.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불쑥이라니요. 며칠 전에 미리 연락도 주셨고 아이들 여름 대비 해서 삼계탕도 준비도 해 주셨잖 습니까.”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

“곧 있으면 닭 삶는 냄새로 들 짐승들 몰려들지 않을까 걱정입 니다.”

“요즘도 산에서 멧돼지하고 고 라니들 내려옵니까?”

“음식 짬통 내놓으면 애들이 밥

먹으러 자주 내려오지요.”

말을 하던 할아버지는 웃으며 산을 보았다.

“요즘 이 산 고라니들이 인근 산맥을 다 주름 잡는 것 같습니 다.”

“네?”

“고라니들이 어찌나 잘 먹었는 지 근육질 고라니가 됐습니다. 나중에 한 번 보시면 깜짝 놀라 실 겁니다. 어깨가 딱 벌어진 게 헬스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할아버지의 농에 황민성이 웃고 는 조순례를 보았다.

“저희 학교 인무혁 교장 선생님 과 제갈경 규율 선생님이세요.”

“아이고…… 교장 선생님이셔?”

조순례는 깜짝 놀라 일어나려 했다. 자식이 말썽을 부려 학교 에 늘 불려 다니던 조순례에게 있어 선생님이란 정말 하늘처럼 높고 어려운 존재였다.

거기다 교장 선생님이라면 아주 높으신 분이 아닌가.

“아이고. 어머니, 그러지 마십시 오.”

인무혁은 조순례를 진정시키고 는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아드님을 두셔서 좋으 시겠습니다.”

“훌륭한 아들요?”

“학교 다니기 힘든 아이들 모아 서 이렇게 공부시키고 기술 가르 쳐 주는 분이니 훌륭하고 좋은 분이시지요. 무척 좋으시겠습니 다.”

인무혁의 말에 조순례가 환하게 웃으며 황민성을 보았다. 그 시 선에 황민성의 어깨에 슬쩍 힘이 들어갔다.

“저보다야 교장 선생님이 더 훌 륭하시죠. 이런 학교 교장을 한 다는 게 정말 힘드실 텐데 제 제 안을 받아주셨잖습니까.”

황민성의 말에 인무혁이 웃었 다.

사실 그도 이 학교를 맡기 전에 는 고민이 많았었다. 워낙 사고 를 많이 쳐 소년원까지 다녀온

아이들을 책임지고 가르쳐야 하 니 말이다.

그래서 몇 번 제안을 거절했는 데, 황민성이 더 이상 맡아 줄 사람이 없다고 하며 고개를 숙이 자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켜서야 되겠냐.’ 하는 심정으로 교장직을 맡은 것이다.

그 덕분에 학교 선생님들도 금 세 채울 수 있었다.

인무혁이 교직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선생님 중 학생들을 진심 으로 위하는 이들을 스카우트한

것이다.

황민성이 학교에 돈을 댔다면, 인무혁은 학교를 운영하며 지금 까지 이끌어 온 것이었다.

조순례와 황민성이 미소 띤 얼 굴로 서로를 볼 때, 윤두식은 놀 란 눈으로 제갈경을 보고 있었 다.

“ 진돗개‘?”

윤두식의 중얼거림에 그를 보고 있던 제갈경이 입맛을 다셨다.

“혹시나, 혹시나 했는데...... 북

두가 맞네.”

“허!”

윤두식은 황당하다는 둣 제갈경 을 보다가 말했다.

“짭……

말을 하던 윤두식은 힐끗 조순 례를 보고는 말을 고쳤다.

“경찰 그만뒀다는 소문은 들었 는데, 여기에 있었소?”

“너도 조……

제갈경도 조순례를 한 번 보고

는 말을 고쳤다.

“그쪽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여기는 어떻게 온 거 야?”

그러고는 제갈경이 황민성을 보 았다.

“둘이 친했나?”

의아해하는 제갈경을 보던 황민 성이 인무혁을 보았다.

“죄송한데 저희 어머니 학교 소 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사람 죻은 웃음과 함께 답한 인 무혁이 조순례의 뒤로 가며 휠체 어를 잡으려 하자, 장 여사가 슬 며시 휠체어를 잡았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인무혁이 의아한 듯 보자, 장 여사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휠체어 미는 것에도 요령이 필 요하거든요. 너무 빠르거나 하면 언니가 힘들어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가시죠.”

인무혁이 조순례를 안내하며 학 교 쪽으로 가자, 황민성이 웃으 며 제갈경을 보았다.

“오랜만에 이렇게 셋이 있으니 옛날 생각나고 좋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제갈경이 강진과 강상식을 보았다. 그 시선에 황 민성이 말했다.

“이쪽은 제가 동생 삼은 강상 식, 이강진입니다.”

“오성화학 강상식 대표?”

제갈경이 자신을 알아보자 강상 식이 입을 열었다.

“저를 아세요?”

“얼마 전에 신문에 사진 있더군 요. 오성 화학 대표로 취임하셨 다고.”

제갈경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신문을 보십니까?”

“애들 가르치려면 신문 정도는

봐야지.”

“신문 비용 처리해 드려야겠네 요.”

“이미 하고 있어.”

“아.. 이미 알아서 하고 계시

는구나.”

“그러라고 학교 지원비 보내주 는 것 아냐?”

“잘 하셨습니다. 신문이야 읽어 도 되고 창문 닦아도 되고…… 쓸 데가 많죠.”

제갈경과 황민성이 대화를 나눌 때, 윤두식은 강상식을 보고 있 었다.

‘오성화학 대표?’

강진과 함께 푸드 트럭을 타고 왔기에 그냥 아는 동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재계의 거물이었다 는 것에 놀란 것이다.

강상식을 보고 있던 윤두식에게 황민성이 말했다.

“학교 어때?”

황민성의 말에 윤두식이 그를

보았다.

“어떻기는 뭐가 어때. 그냥 학 교지.”

“특이한 것 없어?”

“무슨 학교를 이렇게 산속에 지 었나 정도? 그리고 네가 학교를 지을 줄은 몰랐다.”

윤두식은 피식 웃으며 황민성을 보았다.

“그리고 좋은 일 하네.”

윤두식의 말에 뒤에 있던 강진

은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

사실 조금 걱정을 했었다. 혹시 라도 윤두식이 자격지심을 느끼 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옛날에는 같이 주먹질하던 녀석 이 이제는 성공해서 학교까지 짓 고, 심지어 그 학교에 데려가 직 접 보여주는 것을 자기가 성공했 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생 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윤두식은 웃으며 좋은 일 한다고 답을 해 준 것이다.

윤두식의 말에 황민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강원도 산이 생각보다 싸더라 고.”

“학교 지으려고 산을 산 거야?”

“서울이나 사람들 다니는 곳 땅 은 비싸더라고. 그래서 산을 사 서 여기에다 지어 버렸지.”

“경치가 좋으니 애들 공부하기 는 좋겠네.”

“공부는 무슨……

황민성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이 학교는……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이 윤두 식을 보았다.

“너와 나 같은 애들이 우리처럼 살지 말라고 지은 학교야.”

“너와 나 같은 애들?”

윤두식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운동장 쪽을 보았다. 운동장에서 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 들이 공을 차거나 놀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우리 같은 애들 자 도 뭐라고 하지 않고 공부를 하 지 않아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

황민성의 말에 윤두식이 웃었 다. 그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것이다.

“선생님들 입장에서야 우리가 잠을 자는 것이 오히려 좋은 일 이었지. 수업 방해를 안 하니까.”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 는 말이었다. 애들 수업 방해할 바에는 자는 것이 선생님 입장에 서는 좋았을 테니 말이다.

“나 그 말 생각난다.”

황민성은 입맛을 다시며 학교 밑에 있는 중장비들을 보았다.

“내가 수업 중에 자고 있는데 선생님이 지나가셨나 봐. 그때 옆에 있던 애가 나를 깨웠는 데…… 선생님은 내가 아니라 나 를 깨운 애를 혼내더라고.”

“왜?”

“그냥 두라고. 이렇게 수업 중 에 자는 애들도 있어야 너희들이 나중에 사회 나가서 정장 입고

펜대 굴리면서 일한다고.”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눈을 찡그렸다.

“와! 그 선생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강상식이 화를 내는 것에 황민 성이 웃었다.

“그때 나를 보면 그 선생님도 이해가 돼. 얼마나 말썽을 부리 고 싸움질만 하면 그랬겠어.”

“그래도 말이 심하잖아요.”

강상식의 말에 윤두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선생 님이 말을 과하게 하기는 했네.”

“많이 과했죠.”

강상식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황민성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때 좀 열이 받았는데…… 지 금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또 아 니었지. 내가 인상 쓰고 있으면 반 애들 다 벌벌 떠는데 수업이

제대로 됐겠어?”

입맛을 다신 황민성이 말을 이 었다.

“그냥 내가 나쁜 놈이었던 거 야.”

“그것도 맞다. 너나 나나 그때 는 나쁜 놈이었으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다른 학생들을 우리 에게서 보호했어야 했지.’’

윤두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더 비

뚤어진 것 같아.”

“핑계 아니냐?”

“핑계 맞지. 자존심 있는 놈이 라면…… 그 말 듣고 열심히 공 부해서 그 선생님 앞에 나아진 성적표를 던졌을 텐데…… 나는 오히려 더 사고치고 다녔으니 까.”

고개를 저은 황민성이 말을 이 었다.

“그러다가 더 싸움질하고, 결국 엔 학교 잘리고 조폭 쪽에 몸담

았지.”

황민성의 말에 윤두식이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황민 성이 말했다.

“그래서 이 학교를 만들었다. 수업 중에 자지 말고, 사회 나가 서 쓸 기술을 배워서 나중에 월 급 받으면서 살 수 있으라고.”

황민성의 말에 윤두식이 학교를 보았다.

“그럼 여기에 있는 애들은?”

윤두식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한두 번 잘리고 더 이상 갈 데 없는 애들 모아 놓은 학교야.”

윤두식은 그를 보다가 새삼스러 운 눈으로 학교를 보았다. 그런 윤두식을 보던 황민성이 제갈경 을 보았다.

“그런 학교다 보니 여기 제갈경 형님 같은 분이 필요하다.”

황민성의 말에 윤두식이 제갈경 을 보았다.

“하긴, 그쪽 같은 사람이 여기 에서 규율 잡고 있으면 애들도 함부로 못 날뛰겠네.”

“그쪽이 아니고…… 형님이라고 불러라.”

“예전에 내가 형님이라고 불렀 다고 한 대 맞았던 것 같은데?”

윤두식이 자신의 뒤통수를 손으 로 쓰다듬는 것에 제갈경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조폭 놈한테 형님 소리 들으면 기분이 드러웠거든.”

그러고는 제갈경이 윤두식을 보 았다.

“지금은 조폭 아니잖아?”

제갈경의 말에 윤두식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 윤두식을 보며 황 민성이 말했다.

“그래서 이 학교에 네가 필요하 다.”

“ 나?”

“여기 있는 애들 중 반은 원래 사회 나가면 어두운 쪽으로 갔을 애들이야. 그리고 그중 몇은 너

나 내 후배가 됐을 수도 있지.”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은 진지 한 눈으로 윤두식을 보았다.

“네가 애들한테 우리가 있던 곳 이 얼마나 위험하고 안 좋은 곳 인지 가르쳐줘라.”

“설마, 나보고 여기 취직하라는 거냐?”

“우리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게 잡아줘야 하지 않겠냐?”

황민성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 고는 말했다.

“우리 같은 애들이 커서 우리 같은 어른이 되지 않게 인생 선 배로 애들을 가르쳐줘라.”

황민성의 말에 윤두식의 당혹스 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설마…… 나보고 선생님을 하 라는 거냐?”

윤두식의 놀람에 찬 눈을 보며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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