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화
일행은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꿀차를 마셨다. 그렇게 잠시 휴 식을 취하던 강진은 문득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황민성과 강상식이 서로에게 시 선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둘 다 싸울 사람은 아니기에 고 개를 갸웃거리던 강진이 왜 그런 지 알고는 피식 웃었다.
‘또 물놀이하자고 할까 봐 저러
는구나.’
두 사람 다 서로가 공놀이를 좋 아한다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의식 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것이다.
황민성이나 강상식이나 누가 먼 저 공놀이하자고 하면…… 남은 한 명은 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시늉을 하며 물에 들어가야 하니 말이다.
황민성은 어릴 때 공 한 번 못 받아 본 강상식이 안쓰럽고, 강 상식은 황민성이 좋아하는 것 같 아 거절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결국 미친 둣이 공을 던 지고 받았던 것이다.
두 사람을 보다 고개를 저은 강 진이 슬며시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가시죠.”
“그럼 그럴까?”
강진의 말에 화색을 드러낸 황 민성이 슬며시 강상식을 보았다.
“상식이 서운하지 않겠어?”
“저는 괜찮습니다. 오늘만 날인 가요.”
“하하하! 그래. 그것도 그러네. 다음에는 바다로 한 번 가자고.”
“좋죠.”
웃으며 말을 한 강상식은 다음 에는 공 챙기지 말아야겠다는 생 각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산을 내려가기로 한 강 진과 일행은 각자의 차에 타서는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에 돌아온 사람들은 교장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는 각자
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때 강진은 따로 가야 할 곳이 있다는 말을 하면서 강상식을 황 민성이 타고 온 택시에 타게 했 다.
사람들이 모두 차에 타자 강진 은 푸드 트럭에 한선동과 배용수 를 태우고는 마을이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한선동이 학교에 머물고 있는 했지만, 그는 지박령이 아니라서 마을까지 갈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산을 내려가며 강진 이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왜 학교에 계세요?”
강진의 물음에 한선동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저승식당 주인이면 귀신에 대 해서는 잘 알지?”
“많이는 몰라도 조금은 알고 있 습니다.”
“그럼 귀신이 사람하고 가까이 있으면 몸에 안 좋다는 것을 알 겠네.”
한선동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할머니 곁에 안 계시는 군요.”
“내가 집에 좀 있어 보니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을 조금 이상하 게 보더라고. 집이 좀 음침해 보 인다고 하나? 그 이야기 들은 후 부터는 집에 잘 안 있어.”
한선동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 다.
“내가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잘
오지를 않아. 나도 없는데 마을 노인네들이라도 오고 가야 아플 때 도움이라도 받고 말벗이라도 될 것 아니겠어?”
한선동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제가 알던 할아버지도 할 머니 몸 걱정되어서 멀리서 지켜 보시더라고요.”
“살았을 때 지지고 볶아도…… 그냥 마누라가 최고야.”
“지지고 볶는 것도 마음이 있으
니 하는 거죠. 마음이 없으 면…… 그냥 싸우는 것도 지겨워 서 안 하니까요.”
“인생 오래 살아 본 사람처럼 말을 하네.”
“그런가요.”
한선동의 말에 웃으며 차를 몰 은 강진은 금세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강진의 푸드 트럭이 산 입구에 다다를 때쯤 미리 도착해 있던 택시와 승용차 창문이 열리며 손
들이 나왔다.
흔들리는 손에 강진이 웃으며 그 옆에 차를 세우고는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언제 올라오는 거야?”
택시 조수석에 타고 있던 황민 성이 고개를 길게 내밀며 하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볼일만 보고 올라갈 거예요.”
“그럼 저녁 같이 할까?”
“시간이 그렇게는 안 될 것 같
은데…… 올라가서 전화드릴게 요.”
“그래. 그럼 수고해.”
황민성의 말과 함께 뒷좌석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던 강상식이 말 했다.
“오늘 재밌었다.”
“저도요. 그럼 갈게요.”
손을 가볍게 흔든 강진이 조수 석 창문을 닫고는 먼저 출발했 다. 그러자 승용차들도 뒤를 따 라왔다. 어차피 이 지역을 벗어
나는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다.
마을 입구에서 지나가는 일행 차에 손을 한 번 흔들어 준 강진 이 마을을 보았다. 마을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다.
“마을이 작네요.”
“요즘 시골이 다 그렇지.”
그러고는 한선동이 웃으며 말했 다.
“그래도 여기에 학교가 생겨서 마을에 생기가 돌아.”
“그래요?”
“학교에서 가장 가깝다 보니 나 물이나 식재 같은 건 우리 마을 에서 구매해서 보내 주거든.”
“직접 구매해도 될 텐데요?”
“노인네들 용돈벌이라도 하라고 그렇게 해 주는 거지.”
“아......"
“어쨌든 학교 덕에 우리 마을도
좀 생기가 돌아.”
웃으며 말을 한 한선동이 마을 을 지그시 보다가 한쪽에 있는 길을 가리켰다.
“저기 길로 올라가면 우리 집이 야.”
한선동의 말에 강진이 그쪽으로 차를 몰았다. 차를 몰고 올라가 니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2층 집이 예쁘게 지어져 있었다.
“집 좋네요.”
하얀색으로 된 집 지붕에는 태
양열 패널이 설치되어 있고, 한 쪽에는 작은 정자도 있어 시골집 이라기보다는 펜션 같은 느낌이 었다.
“집만 좋지……
작게 입맛을 다신 한선동이 고 개를 저었다.
“좋은 집은 가족들이 북적거리 는 집이야. 이렇게 겉만 멀쩡하 고 사람이라고는 마누라 한 명 사는 집은…… 좋은 집이 아니 지.”
한선동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요. 집은…… 가족 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웃고 해야 좋은 집이죠.”
가족들이 화목하면 단칸방이라 고 해도 좋은 집이다. 집이란 사 람이 휴식을 하는 곳이어야 하는 데, 휴식이 아닌 쓸쓸함을 느낀 다면 좋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니 여행을 가서 좋은 숙소 에서 먹고 자고 해도, 집에 들어 갈 때 ‘역시 내 집이 최고야.’라
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한선 동이 조수석을 뚫고 스르륵 내렸 다.
“우리 마누라 어디 갔나?”
한선동이 집을 기웃거리는 것에 강진도 뒤를 따라 내려서는 열려 있는 대문을 보았다.
“대문도 안 잠그시고 다니시네 요.”
“이런 시골에서 대문 잠글 일이 있나. 소리쳐 봐.”
한선동의 말에 강진이 대문 앞 에 서서는 크게 외쳤다.
“계세요!”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에 강진이 보자, 잠시 머 뭇거리던 한선동은 대문을 통과 해 스르륵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잠시 집안에 있던 한선 동이 잠시 후 나오며 고개를 저 었다.
“양로원에 놀러 간 모양이야.”
“그래도 아직 정정하신 보네
요.”
“정정하기는…… 그냥 심심하니 어떻게든 가는 거지.”
한선동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보았다. 집주인 이 없는데 한선동이 시킨 일을 하기 뭐한 것이다. 강진이 주위 를 볼 때, 한선동이 말했다.
“기왕 이렇게 온 거 잡초나 좀 뽑으세.”
“주인 안 계신데……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괜찮
아.”
한선동의 말에 강진이 주위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서 잡초 뽑고 있으면 할머니 놀라실 것 같아요. 기다렸다가 오시면 뽑을 게요.”
“늦게 올지도 모르는데?”
“그럼 다음 주에 와서 다시 뽑 을게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놀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럼 들어가서 뽑을까?”
“일은 만들어서도 하는 거니 까.”
그러고는 배용수가 언덕 뒤에 있는 산을 보았다.
“이렇게 식재 창고가 눈앞에 있 는데…… 나물이라도 뜯어서 할 머니 반찬 만들어 드리자.”
배용수의 말에 한선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지. 우리 마을 산나물 이 좋아.”
“들었지?”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캡을 열어서는 비닐봉지와 작은 과도 를 하나 챙겼다.
과도에 종이를 둘둘 말은 강진 이 배용수를 보았다.
“근데 나 나물 잘 모르는데.”
“이때까지 가게에서 한 나물이 몇인데 나물을 몰라?”
“그거야 따로 나물이다, 하고 나오는 거니 그런가 하는데…… 산에서 나는 것을 보면 잘 모르 겠더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건 또 그러네. 가게에 들어오는 나물들은 다 손질이 되 어 있고 많이 들어오니까.”
나물이 모여 있으니 나물인 줄 알지, 풀들 사이에 나물이 있으 면 일반인은 그게 풀인지 뭔지 구분을 못 하는 것이다.
“그렇지?”
“쯥! 앞으로 많이 배워야겠다. 가자.”
배용수가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 자, 강진이 그를 보다가 그 뒤를 따라갔다.
‘용수가 잘 고르겠지.’
배용수를 따라 산에 들어간 강 진은 그가 알려주는 나물들을 채 취하기 시작했다.
김다복은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휴!”
그녀는 언덕을 오르다 말고 잠 시 멈춰 서서는 숨을 골랐다. 그 리 높은 언덕이 아닌데도 숨이 차는 것이다.
‘언덕 아래에서 살까?’
나이를 먹을수록 언덕을 오르고
내려가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 던 김다복이 한숨을 쉬었다.
“왜 집을 언덕에 지어서는
경치 좋다고 여기 언덕에 집을 지었던 남편을 원망하며 김다복 은 다시 언덕을 올랐다.
잠시 쉬었다 언덕을 오르길 반 복하던 김다복은 의아한 듯 자신 의 집 앞을 보았다. 처음 보는 작은 트럭이 세워져 있었던 것이 다.
그리고 뭔가 좋은 냄새가 트럭 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가 우리 집 앞에 차를?”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옮긴 김다복은 어떤 청년이 트럭에서 음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 었다.
“거기 누구요?”
“거기 누구요?”
할머니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들고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강진이 인사를 하는 것에 김다 복이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말 했다.
“여기 우리 집인데? 나한테 온 거요?”
김다복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다복 할머니시죠?”
“그게 나이기는 한데…… 이게
뭔지?”
의아한 듯 푸드 트럭을 보는 김 다복에게 강진이 말했다.
“저는 저기 일선 중고등학교에 서 왔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일선 중고등 학교에서 이리로 왔으니 말이다.
“아이구…… 선생님이셨구먼.”
학교에서 왔다는 것에 선생님이 라 생각한 김다복이 고개를 숙이 자 강진이 급히 마주 고개를 숙 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다른 건 아니고…… 할머니 집 에 일이 좀 있으면 도와드리고 음식 좀 해 드리려고요.”
“음식?”
김다복이 의아한 듯 그를 보다 가 트럭에서 나는 냄새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음식을 하는 트럭인 가?”
“TV에서 보셨어요?”
“장날에 나갔다가 이런 트럭에 서 음식을 팔더라고.”
“보신 적이 있구나. 맞습니다. 이건 음식 하는 트럭이에요.”
말을 하던 강진은 “아!”하고는 믹스 볼에 버무리고 있던 나물을 집었다.
“나물을 좀 캐서 버무려 봤는데 맛 좀 보시겠어요?”
“ 나물?”
“할머니 오시는 것 기다리다가 산에서 나물 좀 캤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다복이 나물을 보다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어 서는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미 소를 지었다.
“맛이 아주 좋네. 쌉싸름하면서 고소하고.”
“된장 안 넣고 액젓하고 참기 름, 소금으로만 간을 했습니다.”
“나도 나물 그렇게 하는데
“그러세요?”
“나는 된장 넣고 나물을 무치면
맛이 안 좋더라고.”
“재료 본래의 맛을 살려서 먹을 거면 양념을 조금만 하는 것이 좋죠.”
“그런데 액젓 양을 아주 잘 잡 았네. 액젓이 과하면 맛이 안 좋 은데. 그리고 소금도…… 아주 간이 좋아.”
김다복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선동이 알려 주는 대로 음식을 만들었으니 그 녀의 입에 딱 맞을 것이다.
“저녁 식사 하셨어요?”
“이제 집에서 먹어야지.”
“산에 곤드레가 있어서 밥을 좀 지어 보려고 해요.”
“곤드레 밥?”
김다복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산에서 뜯어 온 곤드레를 들었 다.
“그런데 제가 마른 곤드레로만 밥을 해 봐서 이게 잘 될지 모르 겠네요.”
강진의 말에 김다복이 환하게 웃었다.
“생 곤드레로 밥을 하면 더 맛 있지. 내가 해 줄까?”
“그럼 저야 감사하죠.”
말을 하던 강진은 김다복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한선동을 힐끗 보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김다복을 보고 있었다.
-우리 마누라는 남한테 밥해 주는 것 좋아해.
강진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 고 김다복에게 곤드레 밥을 부탁 한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김 다복은 무척 밝은 표정으로 곤드 레 밥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