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8화
강진은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군데군데 치워야 할 것을 정리했 다.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김다복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런 거 해 드리려 고 온 걸요.”
강진의 말에 미소를 짓던 김다
복은 눈가를 손으로 살짝 닦았 다.
갑자기 우는 것에 강진이 당황 해할 때, 김다복이 한숨을 쉬었 다.
“우리 영감이…… 학교 지을 때 기부한다고 해서 나하고 몇 번 다퉜거든.”
“큰 금액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영감 이 잘한 거야. 죽어서 돈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기부를 하니
이렇게 사람들도 찾아와 주고 말 이야.’’
김다복은 미소를 지으며 강진을 보았다.
“거기 황민성 알아?”
“잘 알죠. 저하고 형 동생 하는 사이입니다.”
“그래?”
강진의 말에 김다복이 반색하며 말을 이었다.
“민성이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와서 집 살펴주고 가거든.”
“그랬어요?”
“다 늙은 노인네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니 늘 고마울 뿐이 야.”
그 외에도 강진과 이런저런 이 야기를 하던 김다복이 웃으며 말 했다.
“밥 다 됐겠어. 밥 먹고 갈 거 지?”
“주시면 먹고 가야죠.”
“그래. 내가 어서 밥 차릴 테니 까 손 씻고 와.”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뽑아 놓은 잡초들을 모아 한쪽에 정리 를 해 놓았다. 그리고 마당 한쪽 에 있는 수돗가에서 손을 씻을 때,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 다.
“거기 누구입니까?”
낯선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집 대문 앞에 모자를 눌 러 쓴 남자가 의아한 듯 강진을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마을 사람은 아닌 것 같은 데…… 누구십니까?”
남자가 다시 묻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왔습니 다.”
“아! 선생님이시구나.”
남자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는 마을 이장 오문영입니 다.”
“이강진입니다.”
이강진의 인사에 오문영이 다.
“일선 학교 선생님들이 참 세요.”
“네?”
“가끔씩 이렇게 찾아와서 신께 인사드리고 집안일도 주고 가시고요.”
“아…… 그러셨구나.”
웃었
좋으
어르
도와
“제갈경 선생님은 잘 지내시
죠?”
“잘 지내십니다.”
강진의 말에 오문영이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제 자식 놈이 사고를 좀 치는 데…… 몇 번 제갈 선생님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신세요?”
“술 먹고 사고 칠 때마다 경찰 들한테 잘 이야기를 해 주시거든 요.”
오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런데 저 선생님은 아닙니 다.”
“선생님이 아니세요?”
“민성…… 황민성 형 아시죠?”
“그럼 알지요.”
“민성 형하고 친한 동생인데 오 늘 학교에 놀러 갔다가 여기 할 아버지 이야기 듣고 고맙기도 하 고 감사하기도 해서 음식 좀 드 리려고 왔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음 식요?”
오문영의 물음에 강진이 푸드 트럭을 가리켰다.
“제가 음식 장사를 하거든요.”
“아……
푸드 트럭을 잠시간 보던 오문 영은 강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 다.”
“아닙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 김다복이 문 을 열고 나왔다.
“이장 왔네.”
“어르신 찬거리 좀 챙겨 왔습니 다.”
오문영이 웃으며 음식이 담긴 봉지를 들어 보이자, 김다복이 웃었다.
“늘 고마워.”
“고맙기는요. 저희 집 여기 정 착할 때 어르신께서 저희 먹여 주신 것 생각하면……
오문영이 쓰게 웃으며 봉지를 내밀자, 김다복이 그것을 받다가 말했다.
“밥은 먹었고?”
“아직입니다.”
“그럼 같이 들어가서 먹고 가. 오늘 선생님이 이것저것 반찬들 을 많이 해서 주셨어.”
김다복의 말에 오문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요. 마누라가 집에서 밥 해 놓고 기다리고 있어서요.”
오문영은 몸을 돌려 강진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서둘러 언 덕을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볼 때, 한선동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베풀고 살면 다 이렇게 나중에 돌아오는 것이여.”
강진은 그를 한 번 보고는 고개 를 끄덕였다.
“어여 들어와. 곤드레 밥이 아 주 맛있게 잘 됐어.”
김다복의 말에 강진은 옷을 한 번 툭툭 쳐서 먼지를 털어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한 집 안에서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가 나고 있었다.
“냄새 좋네요.”
“된장찌개 좋아해?”
“아주 좋아하죠.”
김다복은 웃으며 거실 한가운데 에 놓인 밥상으로 강진을 이끌었 다.
학교 선생님들이나 황민성이 가 끔 찾아 인사를 한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그리웠던 그녀는 음 식을 가지고 온 강진이 무척 반 가운 것이다.
밥상 앞에 앉는 강진을 보던 배 용수는 문득 된장찌개를 보았다.
“된장으로 나물을 버무리는 건 싫어하시는데, 된장찌개는 좋아 하시나 보네요?”
“물에 풀어서 먹는 된장은 좋아 하는데 된장 넣고 하는 나물 같 은 건 안 좋아해. 식성 참 별나 지?”
한선동이 웃으며 하는 말에 배 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식성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니 까요. 고기 좋아하는 사람도 물 에 빠진 고기 안 먹기도 하잖아 요.”
“물에 빠진 고기?”
“국이나 찌개에 들어간 고기 요.”
“아니, 그걸 왜 안 먹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찡 그리는 한선동을 보며 배용수가
웃었다.
“그러게요. 왜 안 먹을까요?”
배용수의 말에 한선동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김다복을 보고는 천 천히 끄덕였다.
“하긴. 사람마다 식성은 다 각 각이니까.”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강 진은 거실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 을 보았다.
거실 한쪽이 통짜 유리라 밖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경치가 정말 좋네요.”
언덕 위에 지어진 집이라 창밖 으로 산과 마을이 작게 내려다보 이고 있었다.
“여기에서 밥 먹으면 경치가 반 찬이 지.”
한선동이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지그시 보는 것에 배용수가 거실 한쪽을 보다가 강진을 툭 쳤다.
그에 강진이 보자, 배용수는 한 쪽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가리 켰다.
그 액자를 본 강진은 입맛을 다 셨다. 액자 안에는 한선동이 말 을 한 취학 통지서와 등본, 그리 고 가족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환하게 웃는 어린아이와 그 아 이를 안고 있는 김다복, 그리고 한선동이 담겨 있었는데 사진 속 김다복이 검은 머리인 것을 보면 꽤 옛날에 찍은 사진인 것 같았 다.
강진에게 물을 떠다 주던 김다 복은 그가 액자를 보고 있는 것 에 미소를 지었다.
“우리 영감인데…… 본 적 있 나?”
김다복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 주 훌륭하신 분이라고요.”
“훌륭하기는…… 그냥 죽기 전 에 좋은 일 하나 했는데 그게 꽃 이 펴서 향이 나는 거지.”
김다복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말씀 예쁘고 멋지게 하시네
요.”
강진이 칭찬하자 김다복이 흐뭇 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생전에 한 일은 죽어서 꽃으로 피어나는 거야. 착하고 잘 살았으면 꽃이 예쁘게 피고 좋은 향이 퍼지는데…… 사람이 나쁘게 살다 가면 못생긴 꽃이 피고 구린 냄새가 퍼지는 거지.”
강진은 감탄을 하며 그녀를 보 았다.
“되게 시적이면서 의미가 있네
요.”
강진의 말에 한선동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내가 시를 좋아해서 글 도 쓰고 그래.”
“그러세요? 할머니 대단하시네 요.”
“대단하지. 우리 아내는 대학도 나왔어.”
두 귀신이 이야기를 나눌 때, 김다복이 액자를 보다가 작게 한 숨을 쉬었다.
“왜 그러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다복이 액자를 지그시 보며 입맛을 다셨다.
“등본을 보면…… 좀 그래.”
김다복이 등본을 보는 것에 강 진도 그것을 보았다. 한선동 밑 에 김다복의 이름이 있고 그 밑 에 손주의 이름이 있었다.
“지금은…… 등본을 떼면 나밖 에 없어.”
“아……
죽은 손주의 이름이 등본에서 빠지고, 남편마저 죽어 이름이 없어졌다. 그러니…… 이제는 등 본에 그녀의 이름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등본을 보면 마음이 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김다 복을 보던 강진이 문득 무슨 생 각이 났는지 말했다.
“할머니 혹시 떼어 놓으신 등본 있으세요?”
“등본? 있지.”
“한 번 줘 보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김다복이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거실 서랍장에서 봉투를 꺼내왔다. 조금 두툼한 봉투에 강진이 의아해할 때, 할 머니가 그것을 내밀었다.
봉투를 받아 안에 든 것을 꺼낸 강진은 여러 등본을 볼 수 있었 다. 등본 중엔 오래된 듯 색이 바라기 시작한 것도 있었다.
각각의 등본을 살펴보던 강진은 입맛을 다셨다. 세 식구의 이름 이 적힌 것과 할머니와 할아버지
의 이름이 적힌 것…… 그리고 할머니의 이름만 적혀 있는 둥본 까지 총 세 종류였기 때문이었 다.
강진이 착잡한 눈으로 등본을 보자 김다복이 미소를 지었다.
“남편이 우리 손주 이름 들어간 등본을 떼어 올 때 눈이 아주 퉁 퉁 붓고 붉어져서 왔었지.”
김다복은 등본을 보며 말을 이 었다.
“우리 남편 죽고 내가 사망 신
고 하러 가서 등본을 떼고 보니 까…… 내 눈도 그때 우리 남편 처럼 생겼더라고.”
자신만의 이름이 남은, 비교적 깨끗한 등본을 보던 김다복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힘든 일 하러 갈 때 나도 같이 데려가지. 그럼 우리 남편 울 때…… 내가 안아 주기라도 했을 텐데.”
김다복의 말에 한선동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뭐 좋은 일이라고 당신까지 데 려가. 그냥…… 나 혼자 하고 오 는 거지.”
손주가 죽어 넋을 잃고 힘들어 하는 아내를 데리고 사망 신고를 같이 하러 갈 수는 없었던 것이 다.
입맛을 다시며 김다복을 보던 한선동은 한 걸음 다가갔다가 다 시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귀신 의 기운은 사람에게 안 좋으니 말이다.
“죽어서 귀신이 될 거면…… 당
신 수호령이라도 됐어야 하는 건 데. 이런 쓸모없는 귀신이 돼 버 려서 당신을 안아주지도 못하는 구먼.”
잠시 말을 멈춘 한선동이 한숨 을 쉬었다.
“정말…… 미안해……. 당신이 먼저 죽었어야 했는데…… 내가 먼저 죽어 버렸어. 당신 죽고 내 가 죽었어야 했는데.”
그런 한선동을 보던 강진은 김 다복을 보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잠시만요.”
강진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자, 김다복이 의아한 듯 그를 보 았다.
“왜? 가려고?”
“아니요. 차에 뭐 놓고 온 것이 있어서요.”
강진은 집을 나와서는 차로 뛰 어갔다.
“뭐 하게?”
자신을 따라오는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죽었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 안아보지도 못하는 건 너무 한 것 아니냐?”
“그건 그렇지.”
강진은 조수석 문을 열고는 글 러브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향수병이 들어 있었다.
“아! 그거 뿌려드리면 되겠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은 향수는 귀기 를 지우는 향수였다.
출장 영업을 하다 보면 가끔 처 녀 귀신들이 오기도 했다. 한끼 식당에 오는 처녀 귀신들이 올 때도 있고, 그 근처에 사는 처녀 귀신들이 올 때도 있었는데 그때 를 대비해 귀기를 지우는 향수를 한 통 챙겨둔 것이었다.
처녀 귀신들의 강한 귀기를 지 워, 다른 손님들을 편하게 해주 기 위해서 말이다.
향수를 손에 쥔 강진은 웃으며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놓고 온 건 찾았어?”
“네.”
웃으며 답을 한 강진이 한선동 을 향해 향수를 가볍게 뿌려 주 었다.
치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