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화
치익!
갑자기 자신에게 뭔가를 뿌리자 한선동이 의아한 듯 강진을 보았 다. 그런 한선동을 보며 미소를 지은 강진은 배용수를 보았다.
김다복이 있어 직접 말할 수는 없으니…… 이제 강진의 대변인 이 설명을 해 줄 차례였다.
강진의 시선에 배용수는 웃으며 한선동에게 향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듣고 기뻐한 한선동은 김다복을 지그시 보았다. 그러고 는 천천히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선 한선동 이 강진과 배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배용수가 슬며시 말했다.
“꼬옥! 안아 주세요.”
배용수의 말에 한선동이 미소를
지으며 김다복의 어깨를 양손으 로 안았다.
“마누라
작게 중얼거린 한선동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미안하고…… 정말 하오.”
사랑
한선동의 목소리에 강진이 을 다셨다. 목소리에 담긴 이 느껴진 것이었다. 그리고
입맛 진심
‘‘아
김다복은 문득 주위를 두리번거 렸다.
“왜 그러세요?”
“갑자기…… 기분이 편해져서.”
“그러세요?”
“음…… 뭔지 모르겠지만 무척 편안해.”
김다복의 말에 한선동이 놀란 눈으로 강진과 배용수를 보았다.
“나를 느끼는 것 아니야?”
한선동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평생을 같이 하셨으니…… 귀 신과 사람으로 나누어졌어도 뭔 가 연결된 것이 있겠죠.”
“그럼 정말 나를 느낀다고?”
“그러실 거예요.”
배용수의 말에 한선동은 더욱 김다복을 꼬옥 안아주었다. 그러 자 김다복의 미소가 진해졌다.
“혹시 방금 그 뿌린 것 때문인 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강진은 웃으며 향수병을 김다복 에게 내밀었다. 투명한 유리병에 반쯤 남아 있는 액체를 보던 김 다복은 상표를 보았다.
“JS 향수?”
“새로 나온 향수예요.”
김다복은 문득 자신의 몸에 코 를 가져다 댔다.
“혹시 나 냄새가 나나?”
김다복의 말에 강진이 급히 고
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런데 이걸 왜……
굳이 차에 있는 향수를 가져와 뿌린 것에 김다복이 시무룩해하 자 강진이 급히 고개를 저으며 변명을 했다.
“이건 향이 강하지 않고 은은해 서 밥 먹을 때 제가 살짝 뿌리거 든요. 그럼 밥맛이 더 좋더라고 요.”
강진은 향수를 슬쩍 허공에 뿌 리고는 말했다.
“냄새 한 번 맡아 보세요. 별로 안 나죠?”
김다복은 허공에 코를 내밀어 향을 맡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러네? 향이 많이 안 나. 그 냥 물 아니야?”
“향이 거의 안 나긴 하죠.”
“물 같은데?”
“그래서 더 좋더라고요.”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향수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아침에 살짝 뿌리세요.”
“나 주는 거야?”
“방금 이 향 맡고 편안한 기분 이 드셨잖아요. 앞으로도 이 향 으로 좋은 기분 느끼세요.”
“이 귀한 걸……
“안 귀해요. 그리고 다 쓰시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제가 다시
보내드릴…… 아니, 가져다드릴 게요.”
“그럼 고맙게 받을게.”
김다복의 말에 강진은 웃으며 수저를 들다가 등본을 보았다.
‘아, 등본.’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김다복 을 보았다.
“할머니, 좋아하시는 분들 있으 세요?”
“좋아하는 사람?”
“마음이 가는 분들이나 평소 잘 해 주시는 분들요.”
강진의 말에 김다복은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 다.
“있지.”
“그분들 이름이 어떻게 되세 요?”
김다복은 몇 사람의 이름을 말 했다. 그에 강진은 주위를 보다 가 서랍 위에 있는 볼펜을 발견 하고는 그중 하나를 집었다.
그러고는 김다복 이름만 적혀 있는 등본에 그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가기 시작했다.
강진이 뭘 하는지 보고 있던 김 다복은 미소를 지었다.
등본에 펜으로 이름을 적는다고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강진이 이렇게 생각을 해 주는 것이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그에 김다복은 친한 사람들의 이름을 더 불러주었다.
그 이름들을 받아 적은 강진은
마지막 한 줄을 보며 말했다.
“여기는 제가 적을게요.”
“자네 이름 적으려고?”
김다복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젓고는 몇 글자 적 었다.
〈일선 중고등학교 가족〉
글을 적은 강진은 등본을 김다 복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김다복은 수기로 적힌 이름들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학교 사람들이 다 내 가족이 되었네.”
“할아버지가 기부하신 돈으로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갈 모든 학 생들이 할머니의 가족이에요.”
강진의 말에 미소를 지은 김다 복이 손을 내밀었다.
“볼펜 좀 줘.”
강진이 볼펜을 주자 그녀가 등 본 한쪽에 이름을 적었다.
〈한선동〉
〈한윤수〉
〈정유리〉
〈한일선〉
죽은 남편, 죽은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죽은 손주의 이름을 마저 적은 김다복이 미소를 지었다.
“내 등본이 가득 찼네.”
김다복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등본을 들고는 액자를 보았다.
“저기에다 넣을까요?”
그런 강진을 보던 김다복은 다 시 등본을 가져가더니 가장 마지 막 부분에 이름을 하나 더 적었 다.
〈이강진〉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등본을
강진에게 주었다.
“액자에 넣어 주겠어?”
강진은 액자 뒷부분을 열어 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등본 옆에 방금 작성한 등본을 넣은 뒤 액자를 다시 벽에 걸었다. 그 러고는 살짝 뒤로 물러나 액자를 보았다.
세 사람의 이름이 적힌 등본과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등본 이 나란히 있는 것에 강진은 입 맛을 다셨다.
‘쓸쓸하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싶어 적어 봤는데…… 너무 장난스럽 게 보이는 것이다.
그에 강진은 조심스레 김다복을 보았다.
자신과 같은 생각이 들면 어쩌 나 걱정했는데, 우려와 달리 김 다복은 미소를 지으며 등본을 보 고 있었다.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도 말이다.
“고맙네.”
김다복을 보던 강진은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는 한선동을 보았다.
‘괜찮습니다.’
속으로 답을 한 강진이 자리에
앉자, 지그시 액 자를 보고 있던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 다.
“식사해.”
“그래야겠네요. 무척 배가 고파
요.”
강진은 수저로 된장국을 떠서
먹어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구 수한 된장 향이 일품인 시골 된 장찌개가 너무나 맛있었기 때문 이었다.
한편, 강진이 맛있게 먹는 모습 을 웃으며 지켜보던 김다복은 밥 을 한 숟가락 뜨고는 액자를 보 았다.
액자 속 등본에 적힌 이름들을 보니…….
‘이 세상 외롭다 생각을 했는 데……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네.'
세상 외롭게만 생각을 했었는 데, 이렇게 적을 수 있는 사람들 이 주위에 아직 있었으니 말이 다. 김다복은 뿌듯한 마음으로 몇 번이고 등본을 보았다.
“그럼 잘 먹고 갑니다.”
강진이 인사를 하자 김다복이 집 앞에까지 나오며 말했다.
“다음에 또 언제 와.”
할머니가 쓸쓸한 얼굴로 보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다음에 또 놀러 올게요.”
마음 같아서는 날짜를 말해 주 고 싶었지만…… 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 날짜를 정하기 어려웠 다.
그리고…… 날짜를 정하면 할머 니가 그날만 기다릴 것 같으니 더 말을 못 하겠고 말이다.
혹시라도 약속 날짜를 어기면 김다복이 얼마나 실망을 하겠는 가.
손주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장에
가서 고기 사고 고등어 사서 음 식을 해 놨는데…… 손주들이 안 온다는 말을 듣고 실망하는 할머 니처럼 말이다.
강진의 말에 서운한 얼굴로 그 를 보던 김다복은 뭔가 생각이 난 듯 급히 말했다.
“잠깐만……
그녀는 집으로 가서는 뭔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걸 본 강 진이 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들고 오세
요.”
김다복이 들고 나온 것은 늙은 호박이었다. 노랗고 큰 늙은 호 박에 강진이 그것을 급히 받자, 김다복이 웃으며 말했다.
“들고 가서 호박죽 끓여 먹어.”
“그럼 염치없지만 정말 맛있게 끓여 먹겠습니다.”
거절을 하는 것보다 기쁘게 받 는 쪽이 할머니가 좋아할 것을 알기에 강진은 웃으며 늙은 호박 을 받았다.
강진은 차에 늙은 호박을 싣고 는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그래. 어여 가. 운전 조심하 고.”
“네.”
웃으며 강진이 차에 올라타고는 할머니 뒤에 있는 한선동을 보았 다.
“효과는 24시간 정도 유지되니 까, 할머니가 향수 뿌릴 때 붙어 있다가 그거 몸으로 받으세요.”
“그래. 고마워. 정말 고마워.”
배용수가 향수 사용 방법을 설 명해 주자 한선동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했다. 그러다가 강 진이 시동을 켜자, 한선동이 강 진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 정말 고마워!”
한선동의 손짓에 강진이 웃으며 손을 들어주었다. 그에 김다복이 자신에게 하는 건 줄 알고 마주 손을 흔들었다.
“잘 가!”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일 때, 배용수가 서둘러 조수 석으로 올라탔다. 그에 강진이 차를 출발시켰다.
부릉!
차가 출발하자 배용수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멀어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고는 강 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등본에 이름 적을 줄은 생각을 못 했다.”
“그냥…… 등본에 빈자리가 너
무 많더라고. 좀 채워 드리고 싶 었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다가 미소를 지었다.
“네 가 채운 건 종이 빈칸이지 만…… 할머니하고 할아버지는 마음이 채워졌을 거야. 장하다.”
배용수의 칭찬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나 오늘 장하냐?”
“그래. 장하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힐 끗 보고는 말했다.
“그럼 오늘 내 방 문 열어 놓으 면 되는 거야?”
“네 방이야……
말을 하던 배용수는 돌연 한숨 을 쉬었다. 강진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것이다.
“너 그러다가 정말 내가 들어가 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럼…… 우리 마누라가 내일 아침에 고기반찬 주겠지.”
강진이 능청스럽게 말하자 배용 수가 고개를 저었다.
“너 정말 아프다. 많이 아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웃으며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배용 수를 더 놀리고 싶지만, 시골이 라 길이 좁고 비포장이라 집중을 해야 했다.
‘놀리는 맛이 있는 마누라라니 까.’
속으로 웃은 강진이 서울을 향 해 차를 몰았다.
* * *
서울에 도착한 강진은 황민성에 게 잘 도착했다는 것을 알렸다.
[어떻게, 우리 집에 올래? 지금 상식이하고 간단하게 한잔하는 데.]
“거기에서요?”
[나는 복분자 한 잔 마시는 거 고, 상식이하고 두식이가 소주
한 잔씩 하지.]
“거 참…… 그 두 분 눈치 너무 없으시네.”
오늘 거사를 치러야 하는 사람 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있다 니…….
강진이 중얼거리자 황민성이 웃 었다.
[괜찮아. 잠이야…… 저녁에 자 면 되니까.]
뭔가 힘이 넘치는 황민성의 목 소리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
를 저었다.
“그래도 일찍들 보내세요.”
[그래야지.]
“그럼 오늘 수고하셨어요.”
[그래. 너도 오늘 수고했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은 주 방에 놓인 호박을 보았다.
“이건 어쩐다?”
“어쩌기는. 호박죽 하면 되지.”
“호박죽이라……
해 본 적이 없는 음식에 잠시 고민하던 강진은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 점심에 낼까?”
“내일 점심에?”
“손님들한테 조금씩 맛이라도 보라고 한 그릇씩 드리면 좋지 않겠어?”
“그거 괜찮네.”
고개를 끄덕인 배용수가 호박을 보다가 말했다.
“하는 김에 한두 개 더 사서 많
이 하자.”
“그렇게 많이?”
“삶으면 양 줄어. 그리고 남으 면 민성 형 좀 드리지 뭐. 호박 죽이 소화에도 좋고 몸에도 좋으 니 어머니 드시면 좋겠다.”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호박을 한 번 툭 쳤다.
“그렇게 하자.”
그러고는 강진이 몸을 비틀었 다.
“오늘은 좀 피곤해서 일찍 자야 겠다.”
“장거리 뛰었으니 그럴 만도 하 겠다. 올라가서 쉬어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의 말대로 장거리를 뛰어서 그 런지 몸이 피곤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 시간에 자는 건 정말 오랜 만이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2층으로 올
라간 강진은 그대로 드러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