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620화 (618/1,050)

620화

점심시간에 온 황민성은 강진이 준 호박죽을 먹고 있었다.

“호박죽이 맛있네.”

“용수가 맛있게 만들었더라고 요.”

미소를 지으며 주방 쪽을 보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옆에 놓인 반찬통을 가리켰다.

“가져가서 식구들하고 드세요.”

“늘 신세만 지네.”

“아니에요.”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황민 성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말 했다.

“핸드폰 가게 가 봤어?”

“네. 지금 아드님 와 있죠?”

“응. 거기서 밥 먹고 있던데.”

“요즘 점심시간마다 가게에 와 서 식사를 하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다행이라

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 그러고 보니 그 아내 는 봤어?”

“아직 보지는 못했어요.”

“싫어하나?”

“소 사장님한테 이야기 들었는 데 좋아하더래요.”

“그럼 가게는 왜 안 와?”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 으니 데리고 나오기가 그런 모양 이에요. 그래서 소 사장님이 가

서 보고 오신다 하더라고요.”

“그것도 다행이네.”

소월향이 아들 집에 편히 오고 가는 것이니 말이다.

“두식 형 아들 병문안 한 번 다 녀와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렇지 않아도 나도 한 번 가 려고 생각 중이야.”

“그럼 형 갈 때 저도 같이 가면 되겠네요.”

“그렇게 하자.”

호박죽을 슥슥 긁어서 다 먹은 황민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또 보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슬며시 물었다.

“그래서 어제는 괜찮으셨어요?”

“어제? 아!”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형 얼굴색 좋은 것 보면 모르 겠어? 아침에 거하게 고기 먹었 다.”

“잘 됐네요.”

황민성은 강진의 어깨를 툭 잡 았다.

“형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무엇을 열심히 한다는 건지 말 을 하지 않아도 아는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파이팅 입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싱긋 웃 고는 가게를 나섰다. 그런 황민 성을 보던 강진에게 배용수가 다 가오며 물었다.

“그런데 요즘 일이 좀 많이 바 쁘신가 봐?”

“그러게? 요즘은 식사만 하시면 바로 가시네.”

전에는 좀 앉아서 놀다 가고도 했는데, 요즘은 식사를 하면 바 로 일어나서 가는 것이다.

“일이 없는 것보다는 바쁜 것이 좋지.”

“그건 또 그렇지.”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배 용수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강진은 아직 식사 중인 손님들 의 반찬을 체크하고는 모자란 반 찬들을 채워주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잠시 쉬던 강진은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7월 5일 저승식당 회식이 있 습니다.

시간 : 새벽 1시 10분

장소 : JS 돼지돼지해

- 부산 바다식당 윤복환〉

“아…… 드디어 회식이구나.”

회식 공지 문자에 강진이 발신 인 번호를 저장하던 찰나, 전화 가 왔다.

문자를 보낸 윤복환의 전화에 강진이 급히 전화를 받았다.

“아 네! 이강진입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전화를 받는 강진의 모습에 배용수가 의 아한 듯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강진이 핸드 폰을 귀에 대고 있을 때, 목소리 가 들렸다.

[내가 누구인지 아시는 모양입 니다.]

“강두치 씨한테 이야기 들었습 니다. 부산 저승식당 사장님이시 죠?”

[맞습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해

야 하나 싶었는데 이미 아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혹시 오늘 시간 좀 괜찮으십니까?]

“몇 시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바쁜 것 아니면 드에서 지금 잠시 볼까 하는데.]

“지금요?”

[저희야 문 하나 넘으면 JS 아 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갑자기 보자고 해서 미안하기

는 한데 가볍게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거니까요. 아! 전주 이수 정 씨는 지금 오기로 했습니다.]

“저하고 이수정 씨 둘을 보는 거군요.”

[두 사람은 저희 저승식당 주인 들과는 처음일 테니…… 미리 저 라도 안면 익혀 두는 것이 회식 때 편하지 않겠습니까.]

윤복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색하기는 하겠다.’

제주도와 강원도 그리고 충청도 저승식당 사장님은 뵌 적이 있지 만, 그래도 아는 분들이 더 있으 면 덜 민망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가겠습 니다.”

[입구에서 기다리지요.]

통화를 끝낸 강진은 화장실에 들어가 손과 얼굴을 간단히 씻었 다.

더러운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

다 보면 살짝 땀이 나기 마련이 니 말이다.

간단히 씻고 나오는 강진의 모 습에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어쩐 일로 씻어?”

“내가 언제 안 씻었냐?”

“일어나서 씻고, 자기 전에 씻 고…… 그 외에는 안 씻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하루에 두 번 씻으면 되지, 얼

마나 더 씻어. 그리고 음식 하기 전에는 늘 씻잖아.”

“손만?”

틀린 말은 아니기에 강진이 고 개를 저었다.

“나 JS 다녀올게.”

“방금 부산 저승식당 사장님하 고 통화하는 것 같던데 그분 뵈 러 가는 거야?”

“ O ”

“왜?”

“나하고 수정 씨만 따로 부른 것 보면 아무래도 다음 달에 저 승식당 회식할 때 서먹하지 말라 고 부르시는 것 같아.”

“아! 다음 달에 회식이야?”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간이 문 을 조립해 바닥에 놓았다.

“다녀올게.”

“올 때 아이스크림 좀 사 와 라.”

“아이스크림?”

“생각해 보니까…… 죽고 나서 아이스크림을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당기네.”

배용수의 말에 홀에 있던 이혜 미와 여자 귀신들이 주방 쪽에 고개를 내밀었다.

“맞아요.”

“저희도 아이스크림요.”

여자 귀신들도 아이스크림을 먹 겠다고 하는 말에 강진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제가 과자하고 음료수 같은 것만 사 왔네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주고, 싫어하는 것은 남 에게 권하지 않는다.

강진은 좀 달달한 아이스크림 같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사 먹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직 원들에게도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지 않았던 것이다.

“알았어요. 올 때 아이스크림 종류별로 사 올게요.”

“고마워요.”

이혜미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립해 놓은 문으로 기어들어갔다.

스르륵!

강진이 들어가자 배용수가 가게 를 보다가 말했다.

“문 잠그고 어제 보던 드라마나 보죠.”

“어제 보던 드라마가 재밌었나 봐요?”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던 배용 수가 먼저 보자고 하자 이혜미가 웃으며 문을 잠갔다.

“제가 좋아하던 배우가 나오더 라고요.”

“누구요?”

한 여자 귀신이 묻자, 이혜미가 웃었다.

“누구기는 누구겠어? 여자 배우 겠지. 맞죠?”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부터 연기 잘하고 예뻐서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안 뜨

네요.”

“배우들이 그렇게 많은데 뜨는 것이 쉽나요. 그리고 배우들은 대부분 예쁘잖아요.”

“그건 그렇죠.”

배용수는 리모컨을 눌러 어제 보던 드라마를 찾아 틀었다.

‘요즘 세상 참 좋아. 못 본 드라 마도 이렇게 찾아서 볼 수 있 고.’

물론 드라마를 다시 보려면 그 에 맞는 서비스를 결제해야겠지 만, 강진이 직원들 드라마와 영 화 보라고 여러 가지 월정액 서 비스를 신청해 놓아 최신 영화만 아니면 대부분 무료로 볼 수 있 었다.

일종의 한끼식당 직원 복지 서 비스인 셈이었다.

*  *  *

오로 넘어온 강진은 문이 달린 벽을 보며 서 있었다. 벽에 주르 륵 달려 있는 문들은 쉴 새 없이 열렸다가 닫히며 귀신들과 JS 직 원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북적거리는 문들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여기를 보면 꼭 지하철 입구 같아.’

지하철 입구에는 사람들이 분주 히 오고 가니 말이다.

문들을 보며 윤복환을 기다리고

있을 때, 한쪽에 있는 문이 열리 며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분인가?’

강진이 어르신을 볼 때, 그가 웃으며 다가왔다.

“이강진 군?”

“이강진입니다. 윤복환 어르신 되십니까?”

“맞네.”

“처음 인사드립니다. 한끼식당

이강진입니다.”

강진이 고개를 숙이자 윤복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에 강진이 급히 손을 잡자 윤 복환이 그를 지그시 보다가 말했 다.

“앞으로 힘든 일이 많을 테지 만…… 어렵고 불쌍한 귀신들 생 각해서 힘내시게나.”

“일 힘들다 생각하지 않습니 다.”

“그럼 다행이고.”

웃으며 강진을 보던 윤복환이 슬쩍 문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이십 대 초반 정 도로 보이는 여자가 모습을 드러 냈다.

그녀는 염색을 했는지 자연 갈 색보다 살짝 더 밝은 갈색 머리 였다.

‘예쁘다.’

강진이 여자를 볼 때, 그녀가 이쪽을 보고는 다가왔다.

“전주 이가식당에서 온 이수정

입니다. 윤복환 어른 되세요?”

“맞네. 이렇게 갑자기 불렀는데 와 줘서 고맙네.”

“제가 좀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수정이 사과를 하자 윤복환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남자와 여자가 준비하는 시간 이 같을 수 있나. 괜찮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수정은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는 강진을 보았다.

“서울 한끼식당 이강진 씨?”

“이수정 씨 이름 많이 들었습니 다.”

“많이요?”

이수정이 의아한 듯 보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영수가 이수정 씨 식당에서 밥 먹어 본 적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영수? 아......"”

이수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

했다.

“저도 가은이하고 예림이한테 사장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좋은 이야기였으면 좋겠네요.”

강진의 말에 이수정이 웃었다.

“대체적으로 좋은 이야기였어 요.”

“대체적으로요?”

“모솔이라고 하던데?”

이수정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모솔까지는 아니고…… 그냥 여자 만날 시간이 없었을 뿐입니 다.”

그에 이수정이 웃다가 살짝 표 정을 바꾸며 말했다.

“그…… 애들 유트브 봤어요.”

“아…… 보셨습니까?”

“애들이 마지막으로 왔을 때…… VR로 영상 찍는다고 했 었거든요. 그런데 L전자 유트브 에 그게 나오더라고요.”

“아…… 영상이 좀 잘 나와서

다행입니다.”

“마지막에 애들 정장이랑 드레 스 입은 것 보고…… 눈물이 나 오더라고요.”

입맛을 다신 이수정이 한숨을 쉬었다.

“살았으면 그런 옷 입고 사람들 축하받으면서 살았을 텐데.”

두 사람이 영수, 가은, 예림이라 는 공통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 는 것을 보던 윤복환이 웃으며 말했다.

“서로 아는 귀신이 있는 모양인 데…… 이야기는 어디 앉아서 할 까?”

윤복환은 자신의 무릎을 작게 두들겼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아파.”

“아! 죄송합니다. 어디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시죠.”

“그렇게 하세.”

그러고는 윤복환이 앞장을 서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자네들보다는 여기 맛집을 더 알 테니 나를 따 라오게나.”

윤복환이 먼저 걸음을 옮기자 이수정과 강진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길을 걸으며 이수정은 강진에게 말을 걸었다.

“강진 씨도 저처럼 저승식당 맡 은 지 얼마 되지 않았죠?”

“그렇습니다. 팔월 되면 일 년 정도 되네요.”

“그럼 저보다 선배시네요.”

“선배라고 하기는 그렇죠. 저도 얼마 안 됐는걸요.”

“혹시 이태문 어르신 아세요?”

이태문이라는 이름에 강진이 미 소를 지었다. 참 그리운 이름이 었다.

‘황구는…… 잘 지내려나?’

이태문을 떠올리니, 그와 함께 한끼식당을 찾아왔던 착하디착한 황구가 같이 생각나는 것이다.

죽을 것을 알기에 황구를 맡겼 던 이태문과, 이태문 따라가겠다 고 문을 긁던 황구를 떠올리자 강진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진해 졌다.

‘태문 어르신하고 오동민 어르 신이 만났으면 카스하고 황구 이 야기하고 좋을 텐데.’

두 사람 다 참 애견인이니 말이 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