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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631화 (629/1,050)

631 화

점심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사장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 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강진이 아니야.]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내지. 왜, 다시 아르 바이트하려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전에 강진 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피시방의 사장이었다.

자신의 사정을 대충 아는 사장 이 곧장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하 자 강진이 웃었다.

“저 따로 하는 일 있습니다.”

[그래? 잘 됐네. 하긴, 강진이 너라면 무슨 일이든 다 잘하겠 지.]

기분 좋아 보이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작게 웃었다. 자

신을 좋게 보는 사람과의 통화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저기 혹시 아직도 열혈성주 하 시는 분들 많으세요?”

[예전에 비하면 많이 없기는 하 지만 그래도 하시는 분들 있지. 그런데 열혈성주는 왜? 너 열혈 성주 해?]

“저 같은 무자본이 그런 게임을 어떻게 하겠어요.”

[왜, 너 한다고 하면 기본 장비 정도는 내가 맞춰 줄 수도 있지.

대신 우리 길드 들어와야 한다.]

사장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사실 예전에 아르바이트할 때 그를 기특하게 본 아저씨들이 열 혈성주를 하라고 자주 꼬시고는 했었다. 자신들이 어느 정도 장 비는 맞춰 줄 테니 한번 해 보라 면서 말이다.

하지만 강진은 사정상 게임을 할 시간이 없었기에 거절했었다.

“그건 아니고요. 제가 아는 분 이 열혈성주 장비를 좀 팔려고

하셔서요.”

[장비?]

“네.”

[요즘은 아이템 사이트 잘 되어 있어서 굳이 현실에서 만날 필요 없는데 왜 거기에다 안 맡기고?]

“그런 걸 잘 모르시는 분이라서 요. 직접 보고 살 사람 있으면 팔려고요.”

[아이템 이름 불러 봐. 혹시 살 사람 있는지 한번 알아볼게.]

피시방 사장이 웃으며 승낙을 해 주자 강진은 평소 배용수가 쓰는 태블릿을 켜서는 열혈성주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캐릭터 창에 있는 장비 목록을 불러 주었다.

[잠…… 잠깐.]

아이템 이름을 하나씩 듣던 피 시방 사장은 당황한 듯 강진의 말을 끊었다.

[진마황의 검이 있어?]

“네.”

[강화는?]

“강화는 잘 모르겠는데요.”

[혹시 지금 아이템 확인 가능 해?]

“가능해요.”

[아이템 누르면 위에 숫자 있을 거야. 확인해 봐.]

강진은 아까 불러 주었던 검을 다시 확인했다.

“3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3 강?]

“네.”

강진의 말에 잠시 답이 없던 피 시방 사장이 말했다.

[그 아이템 파시는 분, 뭐하시 는 분이야?]

“그건 왜요?”

[진마황의 검은…… 너 우리 가 게에서 알바할 때, 사람들이 막 열 내면서 소리 지르고 너 통닭 시켜 주던 것 기억나지?]

“기억나죠.”

[그때 이게 우리 가게에서 성공 했으면 너 통닭 열 마리는 먹었 을 거다.]

“열 마리요?”

[진마황의 검은 그때도 최고지 만, 지금도 최고 무기야. 물론 그 때는 전 서버에 몇 자루 없었다 가 지금은 꽤 풀리기는 했지 만…… 어쨌든 지금도 최고 무기 지.]

“그렇군요.”

[근데 문제는 강화 1단계부터

터질 수 있는 거란 말이지.]

“아……

[강화를 안 해도 중형차 값인데 이걸 질러서 3강을 띄우다니…… 간이 머리만 한 분인가 보다. 그 런데 왜 이 장비를 본주가 안 팔 고 네가 가지고 있어?]

“사실은 돌아가신 분이세요.”

[돌아가셔? 죽었다는 말이야?]

“네. 그분 아내분께서 아이템 판 돈으로 아이들 학비 하겠다고 하셨고요.”

강진의 말에 잠시 답이 없던 사 장이 물었다.

[너하고 친해?]

“많이 친하죠.”

[하긴, 친하니 이걸 팔아주려고 하겠지.]

사장은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어쨌든 전화 잘 했다. 이런 건 사기당하기 딱 좋은 물건이니까. 일단 아이템 사이트에서 시세 확 인해. 판다는 건 비싸고, 산다는

건 싸니까 그 중간 정도로 판매 하면 될 거야.]

“아이템 시세는 저도 확인을 했 어요.”

[하긴, 시세를 확인했으니 그걸 로 아이들 학비 내겠다는 생각을 했겠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조용 하던 사장이 말했다.

[그래서 급한 거야?]

“급한 것은 아니에요.”

[그럼…… 서버가 어디야?]

“서버요?”

[서버에 따라 가격 차가 많이 나지.]

“서버는 어디에서 봐요?”

[캐릭터 정보창 위쪽 보면 아이 디 옆에 서버 이름 있을 거야.]

강진은 캐릭터 정보창을 보고는 서버를 불러 주었다.

[서버 운도 있네. 이 서버가 열 혈성주 도시 서버거든.]

“그럼 좋은 거죠?”

[시골 서버에 비해 사람이 많으 니 좋은 아이템 원하는 사람들도 많지. 일단 덩치가 커서 산다는 사람 생겨도 한 번에 다 팔 수는 없고, 나눠서 팔아야 할 거야.]

“내년까지 다 팔기만 하면 돼 요.”

[기간 길어서 급매로 안 해도 되니 좋네. 제값 받을 수 있겠 어.]

그러고는 잠시 생각을 하던 사

장이 말했다.

[아이템 목록들 위에서부터 아 래까지 몽땅 적어서 보내 줘. 그 리고 그 정도 아이템 착용했으면 골드도 꽤 있을 거야. 얼마나 있 나 보고…… 아, 너 창고는 갈 줄 알아?]

“창고요?”

[마을이 야?]

“지금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아 이템 창 보고 있어요.”

[아! 인 게임이 아니라 홈페이

지구나. 그럼 창고에 뭐가 있는 지는 모르겠네. 홈페이지에서는 캐릭터가 착용한 것만 확인 가능 하니까.]

“제가 따로 확인해 볼게요.”

[괜히 피시방 가서 보지 말고 집에서 해.]

“그건 저도 알죠.”

가끔 피시방 컴퓨터에 해킹 프 로그램이 깔려 있어서 손님들이 해킹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OTP는 있어?]

“OTP 요?”

[그 정도 캐릭터 키운 사람이 그냥 비번만 걸어 놨겠어? OTP 있을 거야. 그거 없으면 게임에 접속도 못 해.]

“아…… 그럼 그거 없으면 아이 템 못 팔아요?”

[게임에 접속을 못 하는데 당연 히 못 팔지. 그 돌아가신 분 핸 드폰에 OTP 앱 깔려 있을 거 야.]

“핸드폰 없으면요?”

[없으면 게임 회사에 가서 문의 해야지. 근데 당사자가 죽어서 조금 복잡하겠다. 가족들이 핸드 폰 보관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잘 찾아보고 일단 문자 보내라.]

“네. 그리고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우리 가게에서 알바 좀 하든가. 사실…… 우리 가게 가 요즘 잘 안되거든.]

“왜요?”

[후! 그냥 해 본 말이다. 어쨌든 내가 알아볼게.]

“고맙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마친 강진이 웃 으며 핸드폰을 보았다.

“다행이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았다.

“뭐가?”

“욕심을 안 보이셔서.”

“욕심?”

“어머니들은 아이템이 돈이 된 다는 것을 모르셨잖아.”

“그렇지.”

“그 게임 좋아하는 분들에게야 검이 중형차 한 대지만 우리 같 은 사람에게는 그냥 그래픽이고 그림일 뿐이야. 그러다 보니 사 장님이 나쁜 마음 먹었다면 아이 템 가격을 후려치실 수도 있었 어.”

“아.. ”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기당하지 말라면서

아이템 사이트에서 비싼 것과 싼 것 중간으로 시세 잡으라고 하셨 잖아.”

“너를 호구 잡을 생각이 아니라 는 거구나.”

“그래서 기분이 좋아. 내 기억 속에 좋은 분이 여전히 좋은 분 이니 말이야.”

강진은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김영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강진 씨.]

“저 사장님 핸드폰 아직 보관하 고 계시나요?”

[네. 있어요.]

“다행이네요. 그 게임 아이템 거래하려면 사장님 핸드폰이 있 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네.”

[그럼 오늘 가져다드려요?]

“오늘 아니어도 되니 편할 때 가져다주세요.”

* *  *

다음 날 점심 장사를 마친 강진 은 예전 자신이 살던 고시원 앞 에 서 있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여기가 너 살던 고시원이야?”

배용수가 건물을 보며 하는 말 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내 청춘이 녹아있지.”

강진의 중얼거림에 이혜미가 웃 었다.

“그렇게 말하니 노인 같잖아 요.”

“노인은 아니더라도…… 진짜니 까요.”

강진은 웃으며 고시원을 보았 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시원은 잠 시 머물다가 가는 그런 곳이었지 만…… 나에게 이곳은 집이었 어.”

강진에게 이 고시원은 말 그대 로 집이었다.

비록 발 뻗고 손 뻗으면 끝인 아주 작은 공간이었지만, 이 작 은 공간이 있어서 쉴 수 있었다.

그러니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곳이었다. 세상 천지에 딱 한 곳, 자신에게 허락된 작지만 편 안한 집이었으니 말이다.

“들어가 볼래?”

감회에 젖어 있는 사이 배용수 가 슬며시 말을 하자, 강진은 고

개를 저었다.

“내 청춘이 녹아 있는 곳이지 만, 다시 보고 싶은 곳은 아니 야.”

“왜?”

“고맙고 감사한 곳이지만…… 저 안의 나는 너무 외로웠거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너는 가끔 너무 심각해. 대화 의 흐름이 너무 힘들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니까 괜찮 아.”

고시원에 있었을 땐 늘 혼자 작 은 방에서 눈을 감았지만, 지금 은 세상에서 가장 좋고 편한 친 구 배용수와 여자 귀신들이 함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굳이 들어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자신의 방 을 다른 사람이 차지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말을 하며 강진이 몸을 돌리자 귀신들이 그 뒤를 따라왔다.

“저기 고시원에서 오래 살았 어?”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한 육 년 살았지.”

“육 년이나?”

“처음에는 학교 인근 고시원에 있었는데 비싸더라고. 그래서 싼 곳 알아보다가 이곳으로 왔어.”

“그래도 학교 인근이면 학교 가 기는 좋지 않아? 차비 생각하면 그게 그거 아닌가?”

“그렇기는 한데…… 내가 학교 만 다닐 수 있는 몸도 아니고. 알바도 해야 하는데 학교 인근은 아르바이트 경쟁이 심하더라고. 그래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아 르바이트 찾다가 이쪽으로 왔어. 어차피 학교 먼 가야 지하철 탈 때 자면서 가면 되니까.”

말을 하던 강진이 웃었다.

“몇 번은 내릴 역 놓쳐서 다시

돌아가기도 했지만.”

“너도 참 고생 많았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래도 여기 고시원이 낡기는 했어도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 살 기는 괜찮았어.”

“그래?”

“여기는 라면하고 김치, 밥에다 가 계란도 제공해 줬거든.”

“고시원에서 밥을 줘?”

“너 고시원 안 살아 봤구나?”

“그렇지.”

“보통 고시원에서 밥하고 김치, 라면은 주방에 비치해 주거든. 그런데 여기는 계란도 주니 더 좋았지.”

“계란 하나에 감동했던 거야?”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웃었 다.

“우리에겐 계란 하나지만 사장 님한테는 계란 한 판, 두 판이 지. 내가 여기 총무 할 때 보니

3일이면 한 판 다 먹더라고. 그 러면 한 달이면 열 판이잖아. 그 것만 해도 오만 원은 될 텐데 안 써도 되는 돈 오만 원을 고시원 사람들을 위해 쓰시니 얼마나 감 사하냐.”

“하긴, 일 년이면 육십은 되 니…… 고마우신 분이네.”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도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거라도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세상인데…… 그 작은 것을 베푸시는 분이셨지. 분명 돈이

많을 거야.”

“돈?”

“JS 말이야.”

“아……

배용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힐끗 고시원이 있는 곳을 보았다.

“작은 것을 베풀어서 큰 복을 받겠구나.”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계란이 작기는 해도 그 가격까

지 작지는 않지.”

그러고는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 다.

“일 년에 육십만 원…… 넌 남 을 위해 베푼 적이 있어?”

“그건…… 왜 갑자기 아픈 데를 찌르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으를 겪게 되니 알게 된 건데, 금액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 아. 금액이 중요하면 상식이 형

아버지가 VIP가 아닐 수가 없 지.”

“하긴, 그분도 기부 많이 하기 는 했으니까.”

기부한 금액만 따지면 오성그룹 회장은 오에서 VIP가 되고도 남 았을 것이다.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금액보다 마음이라…… 하긴, 그 회장님 생각하면 그게 맞는

말이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금액보다는 마음이 중요한 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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