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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634화 (632/1,050)

634화

잠시 넷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럼 네 분은 친구세요?”

오두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입니다. 고등학교는 떨어져서 다 니기는 했는데 초, 중학교는 같 이 나와서 친한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 같 이 놀기로 했다가 사고가 나 서…… 같이 이러고 있습니다.”

“사고?”

“저희도 사고가 어떻게 난 건지 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장례 식장에서 들으니 교통사고라고 하는데……

“같은 차를 타고 계셨나 보네 요?”

“그건 아닐 겁니다. 군인은 휴 가 중에 운전하면 안 되거든요.”

“그래도 하시는 분들 있지 않나 요?”

“걸리지만 않으면야…… 근데

저희는 아닐 겁니다.”

“왜요?”

“제가 그런 것 싫어하거든요.”

오두윤은 이창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 운전을 했다면 창진이가 했을 텐데…… 이 녀석도 제가 말렸으면 할 놈이 아니거든요.”

오두윤의 말에 이창진이 눈을 찡그렸다.

“왜 나쁜 건 나냐?”

“우리 중에 담배도 네가 제일 피웠잖아.”

“담배야 기호 식품이지.”

“어쨌든…… 우리 중에 하지 말 라는 거 할 놈이 너밖에 더 있 냐?”

순둥한 외모와 달리 오두윤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친구 중에도 리더는 있는 법이다.

뭔가 할 때 앞장서서 하고 그룹 이 노는 것이나 방향을 정하 는..•

아마도 생긴 것과 달리 오두윤 이 여기 친구들의 리더인 모양이 었다.

오두윤의 말에 이창진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을 때, 강진이 그들을 보았다.

친구 넷 모두 피를 많이 홀린 모습이었다. 그리고 덩치가 큰 장근소라는 귀신은 팔과 다리가 기이하게 꺾여 있고 말이다.

“차에 치이셨나 보네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세히 잘 모르는 듯한 오두윤 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 다.

“병으로 천천히 돌아가신 분들 과 다르게 사고나 갑자기 돌아가 신 분들은 자기 죽음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더군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귀신들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 오래 계시는 건 안 좋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라고……

이창진의 말에 오두윤이 그를 툭 쳤다. 일단 들어 보자는 의미 였다. 그에 이창진이 입맛을 다 시며 고개를 돌려 버리자, 강진 이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으에서는 귀신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면 그 영향 에 따라 잔고에서 돈이 빠져나갑 니다. 돌아가셨을 때 JS 금융 직 원 만나 보셨죠?”

강진의 말에 오두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두헌 부장님 만난 적이 있습 니다.”

“ 만나......"

말을 하던 강진은 문득 오두윤 을 보았다.

“부장요?”

“네.”

오두윤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부장님을 만나셨어요?”

“무슨 문제 있는 건가요?”

자신을 의아한 듯 보는 오두윤 을 강진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진이 알기로 조는 철저한 계 급 사회다.

죽은 사람이 JS 금융에 돈이 없 으면 인턴이 가서 처리를 한다. 조금 잔고가 있는 사람들은 정직 원이 가고, VIP급이 되면 대리가 간다.

즉 JS 금융에 돈이 많은 사람일 수록 직급이 높은 관리가 맞이한 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JS 금융 부장이 직접 오두윤을 맞이

했다?

그 말은…….

“VIP?”

강진의 중얼거림에 오두윤이 고 개를 끄덕였다.

“저 보고 VIP라는 말은 하더군 요. 근데 이거 어디다 쓸 데도 없던데요?”

오두윤이 주머니에서 블랙 카드 를 꺼내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카드 였다. JS 금융에서 VIP에게 지급 하는 카드였다.

“와! 부장이 나와서 맞이하는 VIP?”

배용수도 놀란 눈으로 카드와 오두윤을 볼 때, 이창진이 의아 한 듯 말했다.

“이게 뭐 대단한 건가 보네?”

이창진이 주머니에서 같은 블랙 카드를 꺼내는 것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이창진 씨도…… 있네요?”

“얘네도 있어요. 너희도 꺼내 봐라.”

이창진의 말에 남은 두 친구도 블랙 카드를 꺼냈다. 그에 강진 과 배용수, 그리고 여자 귀신들 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한 명 보기도 쉽지 않은 JS 금 융 VIP가 넷이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넷은 모두 이십 대 초반인 것을 생각하면…….

‘성인 (聖人)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편, 여자 귀신들이 이창진을 보는 시선에는 당황과 놀람이 섞 여 있었다.

이창진이 여기에 있을 바에 차 라리 여탕이나 클럽에서 여자 구 경이나 하겠다고 해서 경멸의 시 선으로 보았는데…… 그런 사람 이 VIP라니 말이다.

“뭐가 잘못된 것 아니에요?”

“설마요. 스가 이승 은행도 아 니고…… 그쪽이 얼마나 철저한

데요. 말 그대로 VIP인 거죠.”

자신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답 을 하자, 이혜미는 고개를 끄덕 였다.

맞는 말이다. 저승의 JS 금융은 절대 일을 허투루 하는 곳이 아 니다.

JS 금융에서 VIP 카드를 받았다 면 그에 맞는 착한 일을 한 이들 일 것이다.

그에 여자 귀신들이 대단하다는 듯 이창진과 그 친구들을 보았

다.

여자 귀신들의 시선에 이창진은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뭔가 좀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럼 네 분 다 부장님이 직접 맞이하셨습니까?”

“저는 부장님과 만났고, 근소하 고 소태는 과장님과 만났습니다. 창진이는 대리님과 만났고요.”

오두윤의 말에 이창진이 입맛을 다셨다.

“왜 나는 대리가 온 거야. 창피

하게 대리가 뭐야, 대리가.”

이창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혹시 강두치라는 이름이던가 요?”

“그런 이름은 아니고…… 그 뭐 라더라……

기억이 안 나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린 이창진은 끝내 고개를 저 었다.

“딱 하루 봐서 기억이 안 납니 다.”

당당한 이창진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창진을 만난 대리가 강두치인지 아닌지는 중 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리라는 게 높은 직급 이 아닌 만큼 인원이 꽤 많을 것 이다.

서울 인구를 생각하면 강두치가 모든 이들을 상대할 수 있을 리 가 만무했다. 그러니 이창진이 만난 사람이 강두치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이들이 VIP라는 거지.’

JS 금융의 VIP라면 자신이 도와 줄 이유는 충분했다. 이들이 승 천하면서 줄 보상이 문제가 아니 라…… 이들은 충분히 남의 도움 을 받아도 될 정도로 착하게 살 았으니 말이다.

JS 금융의 VIP라는 건 착한 사 람임을 증명하는 증명서와도 같 으니 말이다.

네 귀신을 보며 잠시 생각을 하 던 강진이 말했다.

“혹시 멀리 가 보셨어요?”

“멀리?”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귀신 은 자신이 죽은 곳에서 멀리 가 지를 못 합니다. 하지만 오래된 귀신은 그 거리가 늘어나죠.”

강진의 말에 오두윤이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글쎄요. 저희는 딱히 멀리 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아서.”

“우리는 이 동네에서 그리 멀리 안 갑니다.”

이창진의 말에 오두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진이 말대로 저희는 대부분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가끔 가족들 보러 가는 것 외에는 딱 히 멀리 안 갑니다.”

“그럼 죽은 지는 얼마나 되셨습 니까?”

강진의 물음에 오두윤이 친구들 을 보았다. 그 시선에 이창진이 말했다.

“네가 모르는데 우리라고 알겠

냐?”

이창진의 말에 오두윤이 한숨을 쉬고는 강진을 보았다.

“귀신이라 시간 가는 걸 헤아리 지 않았는데…… 한 삼 년은 지 난 것 같습니다.’’

오두윤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삼 년이면 저희 가게 오실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습니까?”

“보통 이 년 정도 묵은 귀신들 이 서울 정도는 다 가더군요.”

강진이 출장 영업을 가서 받는 손님들은 보통 오랫동안 이승을 떠돈 귀신들이니 말이다.

“그럼 저와 함께 저희 가게로 가시죠.”

“그쪽 가게로요?”

“여기 계시는 것이 마음은 편하 겠지만……

강진은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아까 말을 하다가 말았는데 사 람들한테 안 좋은 영향을 주면 여러분들의 잔고에서 돈이 빠져 나갑니다.”

“돈이 많아서 VIP 아닙니까?”

이창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그건 맞지.’

나쁜 마음으로 여기에 머무는 것이 아닌 만큼 돈이 빠지기는 해도 많이 빠지지는 않을 것이 다. 하지만…….

“사람이 그쪽을 봤습니다.”

“그거야 그 사람 며칠 동안 여 기에서 게임만 하고 음식도 대충 먹으니 기가 약해져서 그런 거 아닙니까? 꼭 우리 책임이라고 하기는 그렇죠.”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 지만 여러분이 있었으니 본 거 죠.”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 도 말로는 여기를 떠나게 하기 힘들 것 같았다.

‘하긴, 여기에 있으면 마음이 편 하다고 하니... 쉽게 가려 하지

않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피시방 을 둘러보았다. 그간 여러 피시 방에서 일해본 경험에 비추어 보 아, 이곳은 딱히 좋은 시설이 아 니었다.

열혈성주를 하는 유저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컴퓨터 사양도 그리 좋지 않았다. 열혈성주 게임 자 체가 그리 높은 사양을 요구하지 않으니 말이다.

사장이 열혈성주 고레벨 유저인 데다, 열혈성주 홈페이지에 피시 방 광고를 많이 하고 길드에서 오면 서비스를 해 주니 그나마 영업이 되는 것이다.

‘여기 뭐 볼 것이 있다고 여기 에 붙어 있는 거야? 혹시 이 사 람들도 열혈성주 하나?’

이 피시방의 유일하게 장점은 열혈성주 유저들이 많다는 것 정 도였으니 말이다.

“일단 저희 가게로 가기는 하시 죠.”

“우리 쫓아내려고 하는 겁니 까?”

이창진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식사라도 하라는 겁니다.”

“식사?”

“제대로 된 식사 하고 싶지 않 아요? 그리고 군대에서 휴가 나 왔다가 죽었다면……

강진은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 며 말했다.

“한잔도 당기실 것 같은데?”

“그야..

이창진과 친구들이 동시에 침을 삼켰다. 한창 술 좋아할 나이들 이니 술이야 당연히 마시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저희 식당에 가서 한잔하시면 서 음식도 드세요. 뭐 좋아하세 요?”

“저희는 아무거나 좋아합니다.”

오두윤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말

했다.

“우리 식당에서 음식 드세요. 아주 맛있습니다.”

“그래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이혜미도 한마디 거들자 귀신들 이 슬며시 그녀와 여자 귀신들을 보았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자 급히 고개를 돌렸다.

‘휴가 나온 귀신이라 이건가?’

술도 좋아할 나이고, 여자에게 눈이 돌아가는 신분이기도 하니 말이다.

다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았다.

‘혹시 모솔들인가?’

이십 대 초반이면…… 여자 친 구 안 사귀어 본 남자들도 꽤 많 을 것이니 말이다.

“그럼 가시죠.”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귀신 들은 서로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 였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열혈성주를 로그아웃했다.

이어 컴퓨터도 끈 강진이 카운

터에 다가갔다.

“사장님, 저 갈게요.”

“벌써? 게임 좀 하지?”

“저 게임 안 좋아하는 거 아시 잖아요.”

강진의 말에 사장이 피식 웃으 며 말했다.

“피시방 알바의 가장 큰 장점이 게임인데…… 그래, 알았다. 그럼 내일 올 거지?”

“그래야죠.”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사장의 말에 강진이 인사를 하 다 문득 물었다.

“사장님, 좋아하는 음식 있으세 요?”

“음식?”

“오늘은 반찬 해 왔는데 내일은 사장님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져 다드릴게요.”

“나야…… 제육 좋아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육 해서

가져다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사장이 고개를 끄 덕이다가 말했다.

“하는 김에 내가 돈 줄 테니까, 한 십 인분 정도 넉넉하게 만들 어 와라.”

“십 인분이나요?”

“손님들 단속도 좀 하게…… 내 일은 저기 한쪽에서 그거에 소주 라도 해야겠어.”

사장은 한쪽에 있는 룸을 가리 켰다. 그 룸은 VIP라고 적혀 있

지만, 손님들하고 맥주나 소주 간단하게 한잔할 때 사용하는 곳 이었다.

음주 게임을 하는 곳이랄까? 물 론 법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장소 이기는 했다.

“그럼 제육하고 간단히 안주할 음식들 좀 만들어 올게요.”

“그래. 부탁한다.”

사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가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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