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6화
술을 마시는 친구들을 보며 강 진이 물었다.
“그런데 네 분 친구인 것 같은 데 창진 씨만 군대를 늦게 갔나 보네요?”
“이 녀석은 좀 더 놀다 간다고 일 년 있다가 갔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상병이고 이 녀석은 이등 병입니다.”
오두윤은 말을 하며 이창진을
보았다.
“우리 갈 때 같이 가지.”
“놀다 갔다. 됐냐?”
이창진의 말에 오두윤이 피식 웃었다.
“그래. 잘 했어.”
오두윤은 다시 강진을 보며 말 을 이었다.
“원래는 저희하고 같이 가려고 했는데 얘가 봉사 활동하던 요양 병원 할머니가 아프셨거든요.”
“요양 병원요?”
“이 녀석이 생긴 건 싸가지가 없어 보여도 착해요. 요양 병원 할머니가 얘 손주 같다고 많이 예뻐하셨는데, 그 할머니가 아프 시니까 미룬 거예요.”
“아……
강진이 보자 이창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놀았어요.”
놀았다는 말로 화제를 돌리는 이창진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생긴 건 싸가지 없어도 애는 착하네.’
요양 병원에서 돌보던 할머니가 아프다고 군대도 미룬 것을 보면 겉은 차가워도 속은 따뜻한 남자 인 모양이었다.
“자, 휴가 나왔으면 소주 드셔 야지.”
강진이 대화를 나누느라 따르지 않은 병을 다시 들자 이창진과 친구들이 잔에 소주를 받았다.
그리고 단숨에 마시자 강진이 물었다.
“봉사 활동 많이 했나 봐요?”
“저희 초등학교 때 봉사 점수 받는 것이 있었거든요. 그때 애 들하고 노인정으로 봉사를 갔는 데 재밌더라고요.”
“봉사 활동이요?”
“가면 어르신들이 예쁘다고 과 자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그리고 용돈도 주고요.”
“아……
“그래서 애들하고 자주 갔어요. 그리고 어른들하고 놀다 보면 재 밌기도 하고 별거 안 했는데도 예쁘다고도 해 주시다 보니 봉사 도 하고 놀러도 가고.”
“귀찮았을 텐데?”
“조금 그렇기도 한데 사람들이 좋아하니 저희도 좋더라고요.”
“저희는 아니지.”
이창진이 작게 투덜거렸다.
“네가 좋다고 거기 놀러 가자고 해서 다니게 된 거잖아.”
“나중에는 너도 좋아했잖아.”
“좋기는…… 귀찮았어.”
오두윤은 웃으며 그의 잔에 소 주를 따라주었다.
“얘가 이래요. 늘 툴툴거린다니 까요. 그래서 별명이 투덜이에 요.”
“너희만 그러거든.”
투닥거리면서도 웃으며 술을 마 시는 친구들을 보며 강진이 웃었 다.
‘VIP가 될 자격이 있네.’
남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과 자 세. 이것이 JS VIP의 요건이다. 게다가 이창진은 참 특이한 케이 스였다.
겉으로는 툴툴거리며 불량해 보 이는데 하는 행동은 착하고 속은 따듯하니 말이다.
‘확실히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 는 모르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물었 다.
“그런데 네 분도 열혈성주 했어 요?”
“그건 창진이가 하자고 해서 같 이 했습니다.”
“창진 씨가요?”
“이 녀석이 재밌다고 해서요. 그런데 얘 레벨이 제일 낮아요.”
“게임은 즐기면서 하는 거지, 굳이 레벨을 많이 올리고 할 필 요는 없지.”
“그건 맞지. 내 레벨에 맞는 사 냥만 하면 굳이 레벨을 많이 올
릴 필요도 없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창진을 보던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혹시 게임을 하고 싶어서 피시 방에 있는 것 아닐까요?”
강진의 말에 오두윤이 웃었다.
“에이, 설마 게임이 하고 싶어 서 귀신이 됐을까요.”
“우리가 무슨 게임에 환장한 놈 들도 아니고.”
그건 아닐 거라는 듯 말하는 그
들을 보며 강진은 생각에 빠졌 다.
‘그런 것 같은데……
조금씩 퍼즐이 맞추어지는 느낌 이었다. 지박령은 아니면서 피시 방에 죽치고 있는 것, 거기에 열 혈성주를 할 줄 아는 이들이 죽 어서 열혈성주 유저들이 많은 피 시방에 있는 것.
생각을 거듭하던 강진은 소주를 몇 병 더 가져다가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게는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입니다. 두 시간밖 에 안 되니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주문하세 요.”
“두 시간밖에 안 돼요?”
아쉽다는 듯 말하는 오두윤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최대한 달리세요.”
강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취할 걱정 같은 건 하지 말고 요.”
“두 시간이면 열심히 달려야겠 다.”
이창진의 말에 친구들이 잔을 들고 가볍게 부딪히고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에 강 진은 웃으며 직원들이 있는 곳으 로 걸어갔다.
‘젊음은 좋은 것이야.’
특히 봉사 활동을 좋아하는 젊
음이라면…….
‘예전에 이런 피로 회복제 광고 있었던 것도 같고?’
건전한 젊음을 주제로 했던 피 로 회복제 광고를 떠올리던 강진 이 배용수의 옆에 의자를 하나 끌어다가 앉았다.
강진이 옆에 앉자 배용수가 물 었다.
“무슨 이야기 했어?”
배용수는 자신이 마시던 소주를 마저 마시고는 빈 잔을 강진의
앞에 놓으며 소주를 따랐다. 그 것을 받아 마신 강진이 말했다.
“저 친구들 봉사 활동이 취미였 나 봐.”
“봉사 활동?”
“노인정이나 요양원 같은 곳에 서 봉사 활동을 초등학교 때부터 했대.”
“초등학교 때부터요? 착하네.”
이혜미가 기특하다는 듯 네 귀 신을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창진은 군대도 요양 원 할머니 때문에 미뤘다네요. 자기 좋아해 주는 할머니가 아프 셔서.”
“아…… 생긴 것과 다르게 정도 있네요.”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설마 눈이 가는 겁니까?”
“무슨…… 저보다 한창 어려 보 이는데.”
“하긴, 그건……
말을 하던 배용수를 강진이 툭 쳤다.
‘이게 또 혼나려고.’
강진의 신호에 배용수가 급히 말을 바꿨다.
“에이, 저 친구에 비하면 혜미 씨가 한창 어려 보이죠.”
“그건 또 그렇죠.”
이혜미가 기분 좋은 듯 웃자 배 용수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강 진을 보았다.
“그래서 왜 피시방에 있는지는 알았어?”
“물어보니까, 저 친구들도 레벨 은 낮지만 열혈성주를 했다고 하 더라고.”
“열혈성주?”
배용수는 의아한 듯 강진을 보 다가 눈을 찡그렸다.
“에이! 설마……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이혜미가 말했다.
“그러게요. 설마하니 게임 때문 에 승천을 못 했겠어요?”
“왜요? 저는 가능성 있다고 보 는데요?”
“에이, 에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젓는 이혜미를 보며 강진이 웃으며 말 했다.
“꼭 게임이라고 하기는 그렇지 만…… 친구들끼리 휴가 나와서 하고 싶은 것이 있었을 거예요.”
그러고는 강진이 말을 이었다.
“제 친구들 중에 휴가 나온 애 들은 우르르 당구장이나 피시방 가요. 당구장 가서는 자장면 먹 으면서 당구 치고, 피시방에서는 컵라면 시켜 먹으면서 게임하 고.”
“휴가 나와서 당구장을 왜 가 요?”
“그런 건 친구들하고 여럿이 해 야 재밌거든요.”
“아……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노는 건 친구들하고 여 럿이 해야 재밌기는 하죠.”
“제 생각도 그래요.”
“그럼 열혈성주를 하게 해 봐야 겠네요?”
“네. 마음이 편한 곳에서 한 번 게임을 하게 해 봐야겠어요.”
“근데 어떻게요? 거기에서 게임 하려면 장갑이라도 끼고 해야 할 텐데, 피시방은 사람들 많잖아 요.”
비닐장갑만 두둥실 떠서 키보드 와 마우스를 움직이면 그날로 피 시방 문 닫아야 할 것이다. 귀신 들린 피시방으로 소문이 날 것이 니 말이다.
“거기 사람들 눈 닿지 않는 방 이 하나 있어요.”
“그럼 그 방 빌려서 하려고요?”
“네.”
강진은 오두윤과 친구들을 보았 다.
‘VIP인데 잘 해 드려야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문득 배용수와 직원들을 보았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잔고 정리 좀 해 봤어요?”
“잔고 정리요?”
이혜미가 의아한 듯 보자 강진 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도 저희 가게에서 꽤 오래 일했잖아요. 용수 넌 나하 고 거의 똑같은 시기에 일 시작 했으니까 두 달만 있으면 일 년 이잖아.”
“그건 그렇지.”
음식 장사를 해 본 적이 없는, 아니 있기는 하지만 서빙만 해 본 강진이다 보니 초반에는 음식 뽑으면서 서빙까지 하기 힘들었 다.
그때 배용수가 음식 하는 것을 도와주기 시작하다가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통장 정리 한 번 안 해 봤어?”
“내가 JS 금융에 갈 일이 어디 있나.”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귀신들은 JS 금융이라면 치를 떤다. VIP나 JS 금융 가서 우대 받지, 보통 귀신들은 지루한 기 다림을 견뎌야 하니 말이다.
“어쨌든 일한 기간이 있으니 너 도 돈이 좀 생기지 않았을까?”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었 다.
“조금 생기기는 했겠다.”
강진은 웃으며 직원들을 보았 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여러분들 도 VIP가 될 날이 멀지 않겠어 요.”
“우리가요?”
“이렇게 하루 종일 일을 하니 돈이 안 생길 수 있겠어요? 그리 고 저승에선 돈으로 안 되는 일 이 없잖아요.”
“그건…… 그렇죠.”
“잘 됐네요.”
강진은 미소 띤 얼굴로 직원들 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두치 씨한테 직원들 월급 올 려 줄 수 있는지 물어야겠다.’
전에 강두치에게 듣기로 직원들 은 최저 시급으로 일을 하고 있 었다.
그리고 그 최저 시급도 이승의 것과는 다르게 아주 작은 금액이 었다.
이승과 달리 저승이 조금 부조 리한 것이 하나 있는데, 저승의 물가는 이승의 것과 비슷한데 정 작 수당은 꽤 적다는 것이었다.
쓰기는 쉬워도 벌기가 어려운 것이 바로 저승의 돈이었다. 그 래서 나름 벌기 쉬운 이승에서 많이 벌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 날 점심 장사를 마친 강진 은 김영지와 할머니를 차에 태우 고 피시방으로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고맙네.”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힐끗 백 미러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사람들요?”
“그 호영이하고 게임하던 사람 들 밀'이야. 게임에서 본 게 다인 데도 이렇게 조문하고 싶다고 하 니 너무 고맙지.”
할머니는 말을 하며 미소를 지 었다.
“우리 아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거니까.”
“그러네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할머 니가 말했다.
“그리고 그 무당 말이야.”
“소 사장님요?”
“신발이 아주 좋은 모양이야.”
“좋기는 하시죠.”
조선 제일 귀신인 김소희와 대 화를 하는 무당이니 말이다.
“점 본 그날 꿈에서 아들을 봤 어.”
“그러셨어요?”
“점을 보고 와서 그런지, 정말 아들이 왔다 갔는지는 모르겠지 만…… 아들이 어릴 때, 학교 다 닐 때, 군대 다닐 때 그리고 대 강이 안고 있을 때 모습으로 나 를 찾아왔더라고.”
“아…… 좋으셨겠어요.”
“너무 좋았어. 꿈인데도 너무 행복하더라고. 그리고 너무 보고 싶고.”
잠시 창밖을 보며 미소 짓던 할 머니가 말을 이었다.
“아들이 나보고 사랑한대.”
할머니의 말에 김영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좋으셨겠어요.”
“그래. 너한테는 미안하구나.”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영지 씨에게는 안 오셨어요?”
“어머니에게 왔다 갔으니 저는 됐어요.”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깃들어 있
었다.
자신에게도 들렀다 갔으면 좋았 을 텐데…… 물론 그것이 진짜로 온 것이 아닌 그저 환상 같은 꿈 이라고 해도 말이다.
쓰게 웃는 김영지를 백미러로 힐끗 보던 강진은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