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8화
강진이 채팅 창에서 이뤄지는 조문을 보고 있을 때, 사장이 툭 그를 치고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켜진 컴퓨터로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장이 화면을 가리켰 다.
“강철신검이 준비를 많이 했 네.”
사장의 말에 강진이 화면을 보 았다. 임호영이 하는 게임 서버
게시판에 글이 올라가 있었다.
〈대강아빠 형님을 기억하시는 유저들께서는 내일 2시까지 오린 마을 중앙 분수대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2시 중앙 분수대에서 대강 아빠 형 님의 추모식을 할 예정입 니다.
그리고 일반 게임을 즐기시는 유저 분들에게 죄송한 말씀 하나 드리겠습니다.
내일 오린 마을은 저희 엘로우 길드 연합과 저희 적대 길드인 블루 길드 연합에서 통제할 예정 입니다.
혹시라도 오린 마을에 머무시는 유저분들은 다른 마을로 가시거 나 꼭 오셔야 할 경우 중앙 분수 대를 중심으로 화면에 잡히지 않 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분별하고 욕설과 같은 채팅을 치실 경우 저희 연합 길 드에서 추살할 것입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열혈성주를
같이 하며 여러 추억을 가진 형 님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이니 양 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 리며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 니다.〉
서버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강 진이 사장을 보았다.
“마을을 통제해요?”
“마을에 왜 유저들이 안 보이나 했더니 길드에서 통제를 해서 그
런 거였어.”
“다른 유저들이 반발하지 않아 요? 이건 강제로 하는 것 같은 데?”
“반발해도 어쩔 수 없지. 이 서 버 최고 길드 두 개가 연관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엘로우와 블루 길드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유명 한데…… 이걸 어떻게 이렇게 엮 었네.”
“적대적이라고요?”
열혈성주는 성을 먹는 것이 목
적인 게임이니 성 두고 서로 많 이 싸워. 그러니 당연히 사이가 안 좋지. 상대 길드에 첩자를 파 견해서 정보를 훔쳐 오기까지 하 니까.”
사장은 말을 하며 김영지 쪽을 보았다.
“싸우다 정이 들었나? 저기 조 문 온 캐릭터 중에 블루 길드 마 스터도 있던데.”
김영지 쪽을 보던 사장은 문득 강진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런데 저 아가씨, 아니 미망 인 몇 살이야?”
“왜요?”
“애가 중학생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안 보이잖아.”
“나이 많아요. 아마 사장님하고 비슷할걸요.”
“ 진짜?”
대단하다는 듯 김영지를 보는 사장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소월향 사장님 보면 경악을 하
시겠네.’
그러는 사이 사장이 화면을 보 다가 말했다.
“어쨌든 게시판에 이 추모가 꽤 화제네.”
“그래요?”
“이 글 말고도 이런저런 글들 많아.”
사장은 강진에게 다른 게시글들 을 보여주었다. 글 중엔 거대 길 드의 횡포라고 화를 내는 글도 있고, 낭만적이라는 글도 있었다.
게임 속에서 만난 사람을 추모 하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 인다는 것이 말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안 싫어 하네요.”
“저 마을이 그렇게 인기 많은 곳은 아니니까. 그저 퀘스트 몇 개 하고 지나가는 곳이거든. 주 변에 아이템 잘 주는 사냥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사람 들이 그리 불편해할 것도 없지.”
사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 진은 고개를 돌려 VIP 룸을 보
았다.
“혹시 저 오늘 새벽에 저기 좀 써도 돼요?”
“VIP 룸?”
“비용은 낼 테니 예약 없으면 저 좀 쓸게요.”
“예약은 없는데……
“왜요?”
“이따가 저녁에 단골들 모아 놓 고 저기서 한잔하려고.”
“그러다가 단속 뜨면 문제 생겨
요.”
“파는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마 시는 거니 괜찮아. 그리고 걸리 면…… 어떻게 되겠지.”
세상 태평한 사장의 말에 강진 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강진을 보며 웃은 사장이 말했다.
“몇 시쯤 이용하려고?”
“새벽 두 시쯤요?”
“내일 장사는 안 해?”
“한두 시간 이용하고 가서 자아
죠.”
“여자친구하고 오려고?”
음흉한 얼굴을 하는 사장을 보 며 강진이 웃었다.
“아니에요.”
“그럼 혼자?’’
“네.”
“혼자서 저기서…… 아……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알겠다는 그의 시선에 강진이 눈 을 찡그렸다.
“그런 것 아니에요.”
“어쨌든 뒷정리만 잘 해.”
무슨 뒷정리인지 말은 안 해도 느낌이 왔기에 강진은 한숨을 쉬 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어 쨌든 그럼 이용해도 되는 거예 요?”
“먹고 죽자고 마시는 것 아니니 그 시간쯤이면 술자리 끝났을 거 야.”
사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김영지 쪽을 보았다.
김영지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 누며 채팅을 치고 있었다.
아마도 조문을 온 사람들의 말 을 할머니에게 전해주는 모양이 었다.
조문은 대략 한 시간 정도 이어 졌다. 일반 장례식이었다면 절한 뒤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끝날 조 문이지만, 채팅으로 이뤄지다 보 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사람들이 빛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보던 김영지가 한숨을 쉬었 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들 오셔 서…… 대강 아빠가 기분이 좋겠 어요.”
김영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도 기분 좋으실 겁니다. 아직도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 시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김영지와 할머니는 작게 한숨을 쉬며 화면을 보았다. 그런 두 사 람을 보던 강진은 화면에 아직 남아 있는 강철신검을 보았다.
강철신검은 여전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 다.
‘그런데 아이템 산다고 했는 데…… 말이 없네.’
강진이 강철신검에게 귓속말을 보내야 하나 고민할 때, 한 남자 가 다가왔다.
“저기……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 자가 고개를 숙였다.
“저는 강철신검이라고 합니다.”
남자의 말에 사장이 흠칫 놀란 얼굴로 남자를 보았다.
“강철신검?”
사장이 놀라 중얼거리는 사이 남자는 할머니와 김영지에게 고 개를 숙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철신검의 말에 김영지와 할머 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 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인사에 강철신검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제 채팅을 하신 분이 여기 위치를 말해 주셔서…… 오게 됐 습니다. 말도 없이 이렇게 직접 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직접 와 주
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애 아빠 도 좋아할 겁니다.”
그러고는 김영지가 할머니를 가 리켰다.
“이쪽은 남편 어머니 되십니 다.”
김영지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숙이자, 강철신검이 마주 고개를 숙였다.
“저는 대강 아빠 아내입니다.”
“형수님을 이렇게 뵙게 돼서 반 갑습니다.”
재차 고개를 숙인 강철신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제 소개를 따로 드리고 싶은 데, 게임 속에서 만난 사이 라…… 그냥 철이라고 불러 주십 시오.”
강철신검은 한 차례 입맛을 다 시고는 말을 이었다.
“처음 보는 사이에 오래 시간 끌어도 서먹서먹할 테니 바로 이 야기하겠습니다. 제가 형님 아이 템들을 구매하려고 하는데 이야 기 들으셨습니까?’’
“네.”
“시세는 여기 사장님도 열혈성 주 하실 테니 적당한 가격에 제 가 일괄 매입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강철신검이 사장을 향 해 고개를 돌렸다.
“저 로그아웃하고 오면 여기로 자리 좀 옮겨 주세요.”
“알겠습니다.”
강철신검은 자기 자리로 가서는 로그아웃을 하고는 컴퓨터를 끄 고 왔다.
그에 사장이 자리를 옮겨주자, 강철신검이 김영지 옆자리에서 접속을 했다.
“그럼 잠시 형님 아이템 확인 좀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김영지가 자리를 비켜주자 강철 신검이 아이템을 확인했다. 그러 고는 핸드폰에 아이템과 가격들 을 적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이템들의 시세를 모
두 정한 강철신검과 사장이 가격 을 상의했다. 그러고는 사장이 강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강철신검이 핸드폰에 떠 있는 계산기를 김영지에게 내밀 었다.
“이 정도면 제가 형님에게 성의 표시는 했다 생각합니다.”
핸드폰에 떠 있는 금액을 본 김 영지의 얼굴이 굳어졌다.
“왜 그러세요?”
강진의 말에 김영지가 한숨을
쉬고는 핸드폰을 그에게 보여주 었다. 그에 핸드폰 화면을 본 강 진의 얼굴도 굳어졌다.
‘무슨……
핸드폰에 찍힌 금액은 애 셋이 대학을 가고 대학원까지 가도 충 분한 학비와 생활비가 찍혀 있었 다.
강진이 놀란 눈으로 사장을 보 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잘 받은 거야.”
사장의 말에 강진이 황당한 눈
으로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저게 아파트 값이라고?’
화면에 떠 있는 캐릭터 아이템 창을 강진이 놀란 눈으로 보고 있을 때, 김영지가 한숨을 쉬었 다.
“감사합니다.”
김영지의 말에 강철신검이 핸드 폰을 받아서는 말했다.
“지금 계좌이체 해 드리겠습니 다. 계좌 번호 알려 주시겠습니 까?”
강철신검의 말에 김영지가 잠시 생각하다가 강진을 보았다.
“혹시 장학 재단 아는 곳 있으 세요?”
“장학 재단요?”
“이 돈이면 저희 애들 대학 학 비는 충분히 나올 것 같아요. 남 은 건 장학 재단에 기부하고 싶 어요.”
“그래도 애들이 대학원까지 공 부를 더 할 수도 있는데요?”
강진의 말에 김영지가 웃으며
말했다.
“대학까지는 이 돈으로 가르치 겠지만, 대학원을 가고 싶다고 하면 그 아이들도 성인일 테 고.. ”
김영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 다.
“보통 남자는 군대 제대하고 대 학교 졸업한 뒤 대학원을 가면 스물일곱 정도죠?”
“막히지 않고 진행되면 그 정도 죠.”
강진의 말에 김영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이 되면 학비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죠.”
김영지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애들 들으면 서운할 수 있겠지 만, 자기가 알아서 할 나이기는 하네요.”
강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 했다.
“그럼 일단 돈은 영지 씨가 가
지고 있으세요. 제가 장학 재단 알아보고 그쪽에 연락을 해 보겠 습니다.”
“기부를 하지만 조건은 이래요. 애들 셋이 대학, 아니…… 지금 부터 애들이 다니는 대학교까지 의 비용은 장학 재단에서 책임진 다. 그리고 혹시 애들이 학업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경우 남은 금 액은 모두 장학 재단에서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 사용한다. 이것만 되면 기부를 하고 싶어요.”
대학 학비만 생각을 했는데, 최
종수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비 도 지원받았으면 해서 말을 바꾼 것이다.
임대강이야 자신이 뒷바라지를 할 수 있지만, 최종수는 형편이 어려운 데다 형이 학비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김영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굳이 장학 재단에 맡기 시는 이유가 있나요? 가지고 계 시다가 애들 대학 졸업하면 그때 따로 기부를 하셔도 될 텐데요?”
강진의 물음에 김영지가 고개를 저었다.
“돈은 가지고 있으면 욕심이 생 기니까요. 그리고 나중 일은 모 르는 거잖아요. 지금이야 대강이 와 종수가 친하지만, 친한 친구 라도 싸울 때가 있는 거고…… 그럼 제 마음이 변할 수도 있으 니까요.”
그러고는 김영지가 강진을 보았 다.
“저는 지금 종수와 종훈이가 좋 아요. 그러니 지금의 종수와 종
훈이를 위해 주고 싶어요.”
“아……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영지 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돈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을 거예요.”
김영지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학생들이 있으니 김영지는 이 돈을 바로 기부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