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 화
강진은 행복 보육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오늘은 황 민성 가족과 강상식, 그리고 유 인호와 유훈과 함께 단체로 봉사 겸 놀러 온 것이다.
황민성은 아기를 가지기로 한 이후 보육원에 봉사 활동을 자주 하고 있었다. 강진이 시간이 없 으면 강상식을 데리고 다닐 정도 로 말이다.
아무래도 김소희의 용서로 아이 를 가지게 됐지만, 자신이 그동 안 아이를 가지지 못한 것이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이 라도 좋은 일에 힘을 쓰려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밤에는 김이슬에게 힘 을 쓰고, 아침에는 봉사로 힘을 쓴다고 할까?
어쨌든 주차장에 차를 세운 강 진은 차에서 내리는 유훈과 유인 호를 보았다.
다음에 봉사 활동 하러 갈 때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을 떠올려 강진이 그 둘도 부른 것이다.
“어때요?”
강진의 말에 유훈과 유인호가 보육원을 보았다.
“생각보다 엄청 크네.”
유훈이 살짝 크게 뜬 눈으로 보 육원을 둘러보는 사이, 유인호가 물었다.
“아이들은 몇이나 있는 거야?”
“한 칠십 명 되는 것 같아.”
“칠십 명?”
놀라 되묻는 유인호를 보며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오늘 해야 할 일이 많 겠지?”
“열심히 해야겠다.”
유인호는 고개를 돌려 보육원을 보다가 말했다.
“법률 상담할 건 없나?”
사람이 손발로 일을 도울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변호사인 만
큼 법률 상담을 해 줄 것이 있다 면 그쪽을 해 주는 것이 여기에 더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이따가 원장님 보면 물어볼게. 지금은 물이나 길어 와라. 저쪽 에 가면 수돗가 있어.”
강진이 푸드 트럭에서 물통을 꺼내주자 유인호와 유훈이 함께 물통을 들고는 수돗가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물통을 채우면 무겁다 보니 혼자보다는 둘이 같이 옮기 는 것이 나을 것이다.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보던 강 진은 임미령을 보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저야 괜찮죠.”
싱긋 웃는 임미령을 보며 강진 이 마주 웃었다.
“그럼 다행이고요.”
“제 걱정 많이 하셨나 봐요.”
말을 하던 임미령은 유인호의 뒤를 따라 미끄러지듯이 멀어졌 다. 수호 대상인 유인호가 멀어
지니 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유인호의 뒤를 따라 끌려가며
임미령이 소리쳤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임미령의 외침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은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는 밝아서 그나마 다행이 었다.
같은 처지였던 임지은이 승천하 고 그녀 혼자 남았으니 걱정을 했던 것이다.
강진이 물을 뜨러 가는 두 사람
과 미끄러지듯이 그 뒤를 따라가 는 임미령을 보고 있을 때, 황민 성이 다가왔다.
“뭘 그리 봐?”
“저야 귀신 보죠.”
강진이 웃으며 말하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유훈과 유인호 쪽을 보았다.
“둘이 형제가 아니라며?”
“형제는 아닌데 사연이 비슷하 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훈의 사정은 알고 있고, 유인호는 잘 모르지만 비 슷한 사정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훈이 형 여자 친구라도 승천해서 다행이야.”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보았다.
“김영지 씨 일은 어떻게 됐어 요?”
“장학금?”
“네.”
강진은 장학 재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황민성에게 물어봤었 다.
황민성이 학교도 운영하니 장학 재단에 대해 아는 곳이 있을 거 라 생각해서 말이다.
“잘 안되고 자시고 할 것이 있 나. 큰돈 기부하시는 건데.”
“조건이 있잖아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그 돈은 우리 장학 재단 에서 관리하기로 했어.”
“우리 장학 재단? 형 장학 재단 도 있어요?”
“학교가 있는데 장학 재단이라 고 없겠어?”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황민성은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 학교 골통 놈들도 있지 만, 가끔 공부하려는 대견한 애 들도 있어. 그런 애들이 대학 가
서 학점 3.5 이상 나오면 재단에 서 학비를 지원해 주지.”
“3.5라…… 애매하네요.”
“애 매해?”
“학점 높다고 하기도 그렇고 낮 다고 하기도 그렇고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 었다.
“학교에서 골통 소리 듣고 여기 저기 잘리다가 대학을 간 놈들이 3.5면 높은 거지.”
“그렇긴 하죠.”
“그래서 그 중학생 두 아이는 학비 지원해 줄 거고, 대학을 가 게 되면 그 녀석들도 학점 3.5 이상일 경우 학비를 지원하는 거 로 이야기됐어.”
“그냥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요?”
“돈이야 그 여성분이 기부로 우 리 재단에 넘기셨지만, 그걸 관 리하고 사용하는 건 우리 몫이 지. 규정에 안 맞는 애들을 지원 할 수는 없어. 그리고 그 정도
공부도 안 할 거면 대학을 뭐 하 러 가?”
“그건…… 또 그러네요.”
옳은 말이라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자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액 장학금 받는 것에 비하면 3.5가 높은 것도 아니지. 다른 애들은 4.0 받고 해도 전액 은커녕 학비 일부 정도만 장학금 으로 받는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재차 고 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맞는 말
이다. 그리고 애들 생각하면 이 조건부 장학금이 더 맞을 수도 있다.
그럴 애들은 아니지만, 장학금 을 받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할 테니 말이다.
“영지 씨가 그렇게 하겠대요?”
“설명하니 알아들으시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다행이 네요.”
이야기를 마친 황민성은 보육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와 거
의 동시에, 박성영 원장이 사람 들과 보육원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황민성을 발견한 그는 서 둘러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늘 이렇게 말도 없이 오십니 다.”
“연락하고 오면 기다리실까 봐 서요.”
웃으며 말을 한 황민성이 박성 영을 보며 봉투를 꺼냈다.
“많지 않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박성영이 그를
보다가 웃었다.
“오실 때마다 주셔서 난감한 데…… 감사히 받겠습니다.”
인사를 끝내자마자 봉투를 주는 황민성을 보며 웃은 강진이 푸드 트럭 캡을 열었다.
그러고는 곧 음식을 만들 준비 를 시작했다.
강진의 옆에서 두둥실 뜬 감초 어른이 잡채를 먹고 있었다.
“오늘은 잡채네?”
“튀김은 전에 해서요. 그리고 애들이 잡채도 좋아하잖아요.”
“애들은 잡채보다는 잡채 안에 든 고기를 좋아하지.”
감초 어른의 말에 강진은 문득 황민성을 보았다. 황민성은 조순 례와 함께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잡채에 든 고기를 좋아하는 사 람이 있죠.”
황민성은 어릴 때 잡채에서 고
기만 먹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 다. 그 사실을 떠올린 강진은 잡 채를 보았다.
한 솥 가득 만들어 진 잡채에는 고기가 많이 들어 있었다.
어른들이야 야채와 고기가 골고 루 들어간 것을 좋아하겠지만, 감초 어른의 말대로 아이들은 잡 채에 든 고기를 좋아한다. 그래 서 오늘은 고기를 아주 많이 넣 고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야채가 적은 건 아니 었다. 잡채는 여러 재료가 섞여
야 맛이 있으니 말이다.
강진은 잡채를 크게 한 번 뒤섞 었다. 이렇게 해야 겉만 마르지 않으니 말이다.
잡채를 뒤섞던 강진은 송은실이 차지혜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것 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 아이 귀신 차지 연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지연 엄마 오는구먼.”
감초 어른의 말에 강진이 접시 에 잡채와 닭다리, 그리고 김밥
을 담았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차지연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소리치는 것에 강진은 아직 거리 가 있는 송은실을 보고는 살며시 말했다.
“어머니 공부는 잘 되고 있어?”
“그럼요. 우리 엄마 공부 정말 열심히 해요.”
“다행이네.”
“우리 엄마 이번에 꼭 시험 합
격해서 일할 거라고 진짜 열심히 해요.”
“시험?”
“그 매뉴얼인가 뭔가 그거 시험 을 봐야 한대요.”
“아……
차지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상식이 지시를 한 일이라고 해도 아무래도 고객 상 담을 직접 해야 하니 매뉴얼에 대한 시험을 따로 치는 모양이었 다.
매뉴얼 숙지가 잘 되어 있어야 고객 응대가 원활할 테니 말이 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송은 실이 차지혜와 함께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송은실의 인사에 강진이 고개 숙여 인사하려다 멈칫하고는 웃 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공부하시기 힘드 시죠?”
“아닙니다. 좋은 분이 좋은 일
자리를 제안해 주셨는데 열심히 해야죠.”
“오늘 음식은 잡채하고 닭튀김, 그리고 김밥하고 고춧가루 들어 간 콩나물국입니다.”
“아주 맛있겠어요.”
“많이 드세요.”
웃으며 강진이 차지혜를 보았 다.
“이건 아저씨가 좀 챙겨 놨는데 더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더 올려 서 가져가.”
강진이 음식 접시를 내밀자 차 지혜가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 날개 더 먹어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강진이 닭 날개를 접시에 더 담 아서는 내줄 때, 주차장에 봉고 차 한 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진사 아저씨다.”
차지혜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사진사 아저씨?”
“저희 마을에 사진 찍으러 오는 아저씨예요. 되게 잘생겼어요.”
차지혜의 말에 강진이 사진人} 아저씨라는 사람이 타고 온 차를 보았다. 멈춰 선 차에서 차지혜 의 말대로 훤칠하게 생긴 남자가 내리고 있었다.
‘젊네? 그리고 잘생겼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보육 원 여자아이들이 사진사 아저씨 에게 달려갔다.
“아저씨!”
“와아! 아저씨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나한테는…… 저렇게 안 해 주 더니.”
아이들의 열렬한 환영에 조금 서운한 것이다.
서운해하는 강진의 모습에 배용 수가 웃었다.
“야, 거울을 보고 저 사람하고
비교를 해 봐라. 아이라고 해도 여자인데 얼굴 안 보겠냐? 그럼 네가 반갑겠냐? 저 잘생긴 남자 가 반갑겠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힐 끗 보고는 주위를 뒤적거렸다.
“뭐해? 찾는 것 있어?”
“여기 거울을 봐야 할 놈이 하 나 있어서. 자기 주제를 모르고 남의 얼굴을 지적질이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눈을 찡 그리고는 사진사 아저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웃으며 아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사진기 를 들고는 이쪽으로 오고 있었 다.
“이쪽으로 온다.”
그에 강진이 그쪽을 볼 때, 차 지혜가 말했다.
“그럼 잘 먹을게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녀 가 들고 있는 걸 보고 웃었다. 차지혜는 양손에 접시를 하나씩 들고 그 위에 국그릇도 탁 하니
올려놓고 있었다.
“한꺼번에 들고 가기 힘들면 하 나만 들고 갔다가 다시 와서 하 나 더 가져가.”
“네.”
그렇지 않아도 양손에 들고 가 기 힘들었던지 접시 하나를 놓은 차지혜는 송은실을 데리고 한쪽 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지혜와 함께 걸음을 옮기던 송은실이 말했다.
“그런데 방금 그 사장님 옆에
다른 분 계시니?”
“아니, 없는데. 왜?”
“누구하고 대화를 하시는 것 같 았는데?”
“몰라. 혼잣말하시던데?”
“그래? 친구하고 대화하는 것 같았는데?”
송은실은 눈이 안 보이는 대신 다른 감각이 예민했다. 그래서 강진이 작게 속삭이는 것을 들은 것이다.
“이따가 사장님한테 잘생겼다고 말씀 좀 드려.”
“잘생겼다고?”
“ O ”
흐.
“왜?’’
“서운한 모양이야.”
“서운해?”
“사진사 아저씨가 잘생겨서 아 이들이 그 아저씨만 좋아하니 까.”
“아…… 근데 음식 하는 아저씨
도 잘생겼어.”
“그러니?”
“아주 잘생긴 건 아닌데……
잠시 생각을 하던 차지혜가 강 진 쪽을 한 번 보고는 웃으며 말 했다.
“착하게 생겼어.”
차지혜의 말에 송은실이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