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3 화
감초 어른과 함께 산을 오르던 강진은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곳 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면서 귀 기가 많다는 배용수의 말을 들어 서인지 분위기가 음침하고 습한 느낌이었다.
‘귀신 나올 분위기네.’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이 피식 웃었다. 귀신 둘, 그중 하나는 조 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오래된 귀
신과 함께 하면서 할 생각은 아 니었다.
지금의 삶 자체가 말 그대로 귀 신과 함께 하는 삶이니 말이다.
‘뭐…… 악령은 아니겠지.’
사람을 해치는 귀신 중에는 악 령이 있다고 들었다. 강진은 아 직 만난 적은 없지만, 선한 일반 귀신과 달리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귀신이 존재했다.
하지만 악령이 많은 건 아니었 다. 악령이 나타나면 바로 소에
서 잡아들이거나 귀신들에게 현 상 수배를 내려서 잡아들인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주위 를 두리번거릴 때, 감초 어른이 입을 열었다
“아들, 좀 나오지 그래.”
감초 어른의 말에 아무런 기척 도 없던 숲에서 귀신 한 명이 모 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중년 귀신을 본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가 온몸에서
피를 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몸 한쪽에는 화살도 몇 대가 꽂혀 있었다.
‘화살?’
강진은 의아한 눈으로 중년인을 보았다. 중년인의 몸에 박힌 화 살을 보니 지리산 총각 귀신의 우두머리인 장태풍이 떠올랐다. 장태풍도 화살을 몇 대 맞고 죽 은 모습이니 말’이다.
강진의 시선에 중년인이 그를 보았다.
“저승식당 사장이오?”
“아......" 네.”
금세 알아보는 것에 강진이 답 을 하자 중년인은 그를 보다가 감초 노인을 보았다.
“왜 또 왔소.”
“여기 이 사장이 너 밥 주자고 해서.”
“안 먹는다니까.”
중년인은 눈을 찡그리고는 강진 을 보았다.
“나는 됐으니 이만 내려가슈.”
그러고는 중년인이 몸을 돌리려 하자 강진이 급히 말했다.
“이왕 가져왔으니 맛이라도 보 시죠.”
“됐소.”
중년인이 말을 하며 사라지자, 강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 다가 한쪽에 쓰러져 있는 나무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라 도 좀 먹죠.”
“우리끼리?”
“여기까지 들고 왔는데 누구라 도 먹어야죠.”
강진은 음식이 담긴 통을 나무 에 조심히 놓고는 뚜껑을 열었 다.
쓰러진 나무가 둥그런 스타일이 라 자빠질 것도 같지만, 중심을 잘 잡고 놓으니 그래도 안정감이 있었다.
식사 준비를 마친 강진이 감초 어른을 보았다.
“어르신도 좀 드십시오.”
강진의 말에 감초 어른은 아들 이 사라진 숲을 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가볍게 닭다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닭다리를 물끄러미 보 다가 숲을 보며 말했다.
“아들…… 닭다리 먹어 본 적 없지?”
감초 어른이 닭다리를 허공에 내밀자 잠시 후 숲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거지인 줄 아시오?”
“먹어 본 적이 있어?”
답은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
“나도 닭고기 정도는 먹어 봤 소.”
“닭다리는 아니잖아.”
감초 어른의 말에 더 이상 목소 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물었 다.
“그 시대 때는 닭고기가 귀했나 보네요.”
“닭고기만 귀했겠어? 남의 살은 다 귀했지.”
감초 어른이 들고 있던 닭다리 를 내려놓자, 그 뿌연 닭다리가 반찬통에 있는 닭다리 속으로 스 며들었다.
“그래도 돼지고기나 그런 건 가 끔은 우리 입에도 들어왔어.”
“돼지고기는 덜 귀했나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모 시던 주인마님이 돼지 먹을 때는 좀 넉넉하게 해서 남기셨거든.
그럼 우리들 입에도 한 조각씩은 들어왔던 거지.”
감초 어른이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상전들이 먹고 남은 상 음식을 우리가 물려 먹었거든.”
“상에서 남은 음식요?”
“요즘 말로는 잔반이라고 하 지?”
“그걸…… 드셨군요.”
최대한 놀라지 않은 얼굴로 말 을 하는 강진을 보며 감초 어른
이 웃었다.
“그래도 주인마님 먹는 밥상을 물려받아 먹는 건 나 같은 사람 들이나 먹는 거지, 보통 하인들 은 그런 호강도 못 하지.”
감초 어른이 웃으며 하는 말에 숲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남이 먹다 버린 음식이나 받아 먹는 것이 그리 좋았소?”
아들의 말에 감초 어른은 시무 룩한 얼굴로 숲을 보았다.
“그래도 주인어른 도움으로 우 리가 배 굶지 않고……
“도움은 무슨! 소처럼 일하고 개처럼 짖으며 사는 것이 어찌 도움이오.”
“그래도 녀석아, 남의 집 하인 들처럼 매타작 안 당하고 겨울에 는 솜이 들어간 옷을 입었던 건 우리 댁뿐이었어.”
“그래서 퍽이나 좋았겠소.”
쌓인 울분이 많은 듯 좋지 않은 중년 귀신의 목소리에 강진이 입
맛을 다셨다.
‘이거 참…… 뭐라고 하기 어려 운 일이네.’
감초 어른은 노비의 삶에 만족 했고, 중년 귀신은 노비의 삶이 아닌 자유를 원했다. 어떻게 보 면 아들이 바란 삶은 현대인의 것과 같았다.
억압에 반대하고 자유를 원한다 는 것에서 말이다.
다만…….
‘아들이 아빠에게 싸가지 없이.’
이것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 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도 그래도 아버지한테 이러면 안 되 는 거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감 초 어른이 다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와서 좀 먹어. 우 리 같은 노비 제사 지내주는 사 람도 없어서…… 그동안 음식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
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다시 숲
은 조용해졌다. 강진은 안쓰러운 얼굴로 숲을 보았다.
‘하긴, 노비의 제사를 누가 지내 주겠어.’
감초 어른의 말대로 숲에 있는 중년 귀신은 그동안 제삿밥을 한 그릇도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강진은 고개를 돌려 감초 어른 을 보았다.
“그런데 아드님은 지박령이세 요?”
강진의 말에 감초 어른이 고개
를 끄덕였다.
“ 맞아.”
“그럼 어디에 묶여 계신 건가 요?”
강진이 주위를 볼 때, 감초 어 른이 한숨을 쉬며 숲 쪽을 가리 켰다.
“저기에 있는 땅에 묶여 있지.”
“땅에 묶인 지박령이시군요.”
강진이 숲을 보자 감초 어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살아서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내 땅 하나 없으니…… 내 죽어 몸 눕힌 이곳만은 내 땅이리.”
감초 어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감초 어른이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이 죽을 때 한 말이 야.”
강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 다.
‘뭔가…… 멋지네.’
영화 속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하는 대사 같은 말이었다. 한편 으론 자신의 것을 가질 수 없는 노비의 한도 느껴졌다.
강진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 득 감초 어른을 보았다.
“그럼 어르신께서 아저씨 죽는 것 직접 보신 건가요?”
“봤지. 그날은…… 참 눈이 많 이 왔어. 그리고 하얀 눈에 아들 이 누웠지. 하아!”
한숨을 쉬며 하늘을 보던 감초 어른이 입을 열었다.
“그 동학이라는 것 알지?”
“동학 운동요?”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것도 배 우고…… 얼마 전에는 동학 관련 된 드라마도 하던데.”
감초 어른의 말에 배용수가 말 했다.
“녹두 장군요.”
“그래. 그거. 자네는 봤나 보 네?”
저희 가게 직원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 같이 봤습니다.”
배용수의 말에 감초 어른이 고 개를 끄덕였다.
“그때 전라도 쪽이 가장 심하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이쪽 경기도 에도 꽤 많이 퍼지고 심했지.”
“혹시 아드님이 동학을?”
“그때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는 하늘의 소리처럼 들리는 이야기 였으니……
“그럼 아드님은 동학 운동 때문 에 죽은 건가요?”
강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숲에서 중년 귀신의 고함이 들려 왔다.
“동학 운동 때문에 죽다니!”
갑작스러운 소리에 강진이 숲을 보았다. 그러자 숲에서 중년 귀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죽은 것은 동학 운동 때 문이 아니다.”
“아니……세요?”
중년 귀신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는 말했다.
“내가 죽은 것은 무능한 조정의 권신과 부패하고 더러운 양반들 의 욕심... 때문이다. 내가 죽
은 것은 오직 그뿐이지, 동학을 믿었기에 죽은 것이 아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러고는 강진이 슬며시 말했 다.
“저도 동학에 관심이 많았는 데.”
강진의 말에 중년 귀신이 그를 보았다.
“동학에 관심이 있다고?”
“네.”
줄곧 멀찍이 서 있던 중년 귀신 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슬며시 감초 어른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감초 어른이 웃으며 말했 다.
“나는 산책이나 해야겠다. 편히 이야기하거라.”
자신을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감초 어른은 자리를 피해 주려는 듯 일어났다. 그에 강진은 말릴
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감초 어른은 아들이 자신을 싫 어하는 것보다, 자신 때문에 밥 을 먹지 못하는 것을 더 신경 쓰 고 있었으니 말이다.
‘귀신이라고 해도 자식 생각하 는 건 살아 있는 사람하고 다를 것이 없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웃으 며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강진의 말에 중년 귀신은 감초
어른이 앉아 있던 자리에 엉덩이 를 붙였다.
“동학에 정말 관심이 있나?”
“제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맞나 궁금해서요.”
“ 학교?”
학교가 뭔가 싶어 되묻는 중년 귀신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다.
“요즘 애들은 8살부터 19살까지 나라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 거든요. 혹시 모르세요?”
강진의 말에 중년 귀신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나는…… 산을 내려간 적이 없 어서…… 요즘 세상에 대해 잘 모르네.”
“아…… 한 번도 산을 안 내려 가셨겠네요.”
이 땅…… 그 범위가 얼마인지 는 몰라도 여기에 묶여 있는 지 박령이라면 산을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귀신인 배용수도
놀랄 정도로 귀기가 짙은 곳이라 면 사람들이 오지도 않을 테 고…… 그러니 세상과 완전히 단 절된 상태로 있었을 것이었다.
중년 귀신은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 요즘 세상에는 노비가 없다고 하던데.”
“노비 없죠.”
“정말…… 노비가 없어?”
“네.”
‘노비가 없다는 것도 모르는 것 을 보니 정말 세상과 단절된 생 활을 하셨구나.’
강진의 말에 중년 귀신이 미소 를 지었다.
“정말 노비가 없구나. 정말…… 잘 되었어.”
“처음 들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중년 귀신이 고 개를 저었다.
“아버지에게 몇 번 듣기는 했는 데…… 사람에게 듣기는 처음이
군.”
중년 귀신은 환하게 웃으며 하 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세상에 태어나면서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 가! 사람이란 다 그 자체로 평등 한 것인데! 보이느냐! 빌어먹을 양반 놈들아! 이 세상에는 노비 가 없다!”
중년 귀신이 울분을 토해내듯 소리치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노비는 없지만…… 지금 세상 도 그렇게 평등하지는 않아요. 지금도 금수저와 흙수저 같은, 보이지 않는 신분은 있으니까요.’
신분제가 없다는 것에 저렇게 좋아하는 중년 귀신이 이러한 현 실을 알면 얼마나 속상해할지를 생각하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한참 하늘을 향해 양반들 욕을 하던 중년 귀신이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나는 헛개라 하네.”
“헛개요?”
강진의 물음에 헛개가 웃으며 말했다.
“큰 주인마님께서는 노……
헛개는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일을 하는 이들의 이름을 약재 이름으로 짓는 것을 좋아하셨네. 그래서 우리 아버지 이름이 감 초, 나는 헛개네.”
“사람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라 고 약재로 이름을 지으셨나 보군
요.”
“흥!”
강진의 말에 헛개가 코웃음을 쳤다.
“그냥 짓기 귀찮고 자기 유식해 보이려고 그런 이름을 지은 게 지. 우리 노…… 일하는 사람들 이 사람에게 이로워 봤자 지들 가문 재산 늘리는 것밖에 더 있 겠나.”
불만이 많은 듯한 헛개의 모습 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저기 괜찮으시면 이것 좀 드셔 보시죠.”
강진의 말에 헛개가 눈을 찡그 리며 음식을 보았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안 먹겠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했는데 이제 와서 먹는다 고 하기가 껄끄러우니 말이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게 사실이기 도 했다. 살았을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음식들이고…… 백 년 이 넘도록 음식 비슷한 것조차 먹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꿀꺽!
헛개의 목울대가 자기도 모르게 크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