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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644화 (642/1,050)

644화

꿀꺽!

목울대를 크게 움직이는 헛개를 보던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음식이 아니에요.”

“음식이 아니라고?”

의아한 듯 되묻는 헛개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이건 자유와 평등입니다. 그리 고 동학의 씨가 자라서 맺힌 열

매입니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와 헛개가 그를 의아한 듯 보았다. 헛개는 이게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이었 고, 배용수도 비슷했다.

‘통닭이 언제부터 자유와 평등 이 됐어? 그리고 동학의 열매? 동학이 무슨 열매를 맺어?’

두 귀신이 의아한 듯 보자 강진 이 말했다.

“아저씨 시대에도 기름이 귀했 죠? 특히 음식을 튀길 때 쓰는

기름요.”

“우리 시대 때는 사람 입에 들 어가는 건 다 귀했지.”

헛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런데 이건 그 귀한 닭다리를 그 귀한 기름에 튀겨서 만든 음 식이에요. 아! 그 귀한 밀가루를 입혀서요. 그럼 이게 얼마나 귀 한 음식인지 아시겠죠?”

“그야……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귀한 음

식이다. 기름과 밀가루를 뺀, 그 저 삶은 닭다리만 해도 귀하디귀 한 음식이니 말이다.

헛개가 닭다리를 뚫어지게 보는 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이 닭다 리 튀김을 쉽게 먹을 수 있죠.”

“쉽게?”

“그럼요. 길거리에서 사는 거지 들도 닭다리가 먹고 싶으면 어떻 게든 먹을 수 있어요.”

“거지도?”

“그럼요.”

틀린 말은 아니다. 거지도 구걸 을 하면 돈을 모아 통닭을 시켜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저씨 시대에는 아무나 먹을 수 없던 이 닭다리 튀김을 지금 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으니…… 말 그대로 동학이 원했던 평등한 세상의 결과가 아 닐까요?”

조금 사자 느낌이 드는 말이었 지만, 그렇다고 틀린 것은 아니 었다. 닭다리에 밀가루를 입혀서

기름에 튀겨 먹는다? 조선 시대 노비에게는 꿈에서도 꿀 수 없는 호사일 테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헛개가 멍하니 통 닭 다리를 보았다.

“누구나…… 남녀노소 평등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그 시대 때 아저씨처럼 동학을 믿었던 분들은 자식들이 이런 음 식을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먹 는 시대를 꿈꾸지 않았을까요?”

혁명이네 뭐네 하지만 결국은

나, 그리고 내 자식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었다.

나와 내 자식들이 잘 먹고 잘 살면 굳이 혁명과 변화를 원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말을 하며 강진이 슬며시 닭다 리를 들어 내밀자, 헛개가 잠시 멍하니 그것을 보다가 손으로 쥐 었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반투명한 닭다리를 잠시 보던 헛개는 천천 히 입을 열었다.

“그런 것…… 같아.”

그는 강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쌀이 생기고 먹 을 것이 생기는 세상…… 그걸 원한 것 같아. 그리고 자식들이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하얀 쌀밥 먹을 수 있는 세상…… 그 저 그걸 원했던 것 같아. 그 냥…… 나와 내 새끼들 입에 먹 을 것이 들어가는 그런 세상을 원했던 거야.”

말을 하며 헛개가 눈을 손으로 닦았다. 그러고는 잠시 있다가

닭다리를 입에 넣었다.

덥석!

닭다리를 크게 베어 문 헛개는 우걱우걱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숨에 닭다리 하나를 다 먹은 헛개가 뼈를 보았다.

“그래…… 이게 동학의 열매구 나.”

닭다리 하나에 동학의 열매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헛개를 보며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세상 잘 모르시죠?”

강진의 질문에 헛개가 잠시 머 뭇거리다가 말했다.

“아버님이 가끔 오셔서 밖의 세 상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듣 기 싫어서.”

“그럼 이 한국.. 아니, 조선

의 왕을 백성들이 뽑는 것 모르 세요?”

아무래도 헛개의 시간은 동학 운동을 하던 조선 시대에 멈춰 있는 것 같아 강진이 그에 맞게 말을 했다.

“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하기 는 했는데…… 그게 정말이야? 정말 백성이 왕을 뽑는다고?”

“그럼요. 일단 드시면서 이야기 들으세요.”

강진이 이번에는 김밥을 내밀 자, 헛개가 그것을 보다가 물었 다.

“그런데 이 겉을 감싼 건 뭐 야?”

“김인데…… 모르시겠구나.”

조선 시대에 김이 얼마나 귀한

음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비 에겐 어떤 음식인들 다 귀했을 터였다.

잠시 생각하던 강진은 웃으며 다시 김밥을 내밀었다.

“맛있어요.”

강진의 말에 헛개가 그것을 받 았다.

스윽!

헛개가 반투명한 김밥을 잡자 강진은 손에 그대로 있는 김밥을 자신의 입에 넣었다. 그런 강진

을 보던 헛개가 김밥을 보다가 물었다.

“이것도…… 지금은 아무나 먹 을 수 있는 음식인가?”

“김밥은 먹으려고 하면 통닭보 다 더 싸고 쉽게 먹을 수 있죠.”

“이게…… 더 싸고 쉽게 먹을 수 있다고?”

“그럼요.”

강진의 말에 헛개가 김밥을 보 다가 미소를 지었다.

“쌀을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세상.”

헛개는 김밥을 입에 넣고는 씹 었다. 그렇게 처음 김밥을 맛본 헛개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맛있으세요?”

“너무 맛있군. 역시…… 쌀이 야.”

헛개는 크게 웃으며 하늘을 보 았다.

“형님들, 보이십니까! 이 세상에 는 쌀을 아무나 먹을 수 있답니

다! 그것도 아주 싸게 말입니 다!”

헛개가 본격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강진은 그가 궁금해할 현대 시대의 것들에 대해 이야기 를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헛개는 가끔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틀린 것이 아니었습니 다! 우리가 틀린 것이 아니었어 요!”

음식을 맛있게 먹는 헛개를 보

던 강진은 힐끗 숲 한쪽을 보았 다. 그곳엔 나무 뒤에 서서 미 소 지은 채 이쪽을 보고 있는 감 초 어른이 있었다.

그는 자식이 맛있는 음식을 먹 고 있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 다. 헛개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웃는 감초 어른을 보며 강진이 피식 웃었다.

‘귀신이나 사람이나…… 애나 어른이나…… 자식 입에 음식 들 어가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오는 건가?’

헛개가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며 그저 기분 좋은 웃음만 보이는 감초 어른의 모습에서는,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아들에 대한 원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헛개가 음식을 잘 먹는 것 을 흐뭇하게 볼 뿐이었다.

그런 감초 어른을 강진이 볼 때, 헛개가 힐끗 그 시선을 따라 감초 어른을 보았다.

그에 감초 어른은 급히 몸을 나 무 뒤에 숨겼다. 혹시라도 자신 이 본다고 더 이상 헛개가 음식

을 안 먹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 감초 어른의 모습을 헛개 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말이 없는 헛개를 보던 강진은 고개를 돌려, 나무들 사이로 자 그맣게 보이는 보육원을 보며 말 했다.

“저기 보육원 보이세요?”

“보육원?”

“부모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키우는 곳이에요.”

강진의 말에 헛개가 나무 사이 로 보이는 보육원을 보았다.

“아이들이 많군.”

“아이들이 보이세요?”

헛개의 말에 강진은 다시 보육 원을 보았다. 운동장에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움직이는 게 보였지 만 아이인지 어른인지 구분할 수 는 없었다.

“나도 오래 묵은 귀신이니까. 멀리 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 지.”

헛개의 말에 강진의 고개가 돌 아가려 하자, 배용수가 그 목을 잡았다.

“보지 마라. 나 할 줄 모른다.”

“알았다. 이거 놔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손을 놓 았다. 그에 강진이 보육원을 보 다가 말했다.

“감초 어르신께서 비록 헛개 아 저씨를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게 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르 신도 어찌하실 수 없는 일 아니

겠어요? 그리고 감초 어르신도 노비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태어난 거잖아 요.”

“그렇다고 노비 자식을 안 만들 겠다고 자식을 안 낳을 수도 없 는 거고요.”

“그건......"

말을 하지 못하는 헛개를 보던 강진이 보육원을 보며 말을 이었 다.

“그래도 감초 어르신께선 아저 씨를 버리지 않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저씨 를 키웠을 거예요.”

“아마…… 가장 좋은 음식을 먹 였을 테고, 자신이 가진 것 중에 서 가장 좋은 옷을 입혔을 겁니 다.”

강진의 말에 헛개는 입맛을 다 시다가 음식이 담겨 있는 통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 먹다 남은 닭가슴살이 보였다.

-헛개야, 오늘은 고기 큰 것이 있구나. 이거 먹거라.

그 시대에는 음식을 보관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만들자마자 바로 먹고, 남은 음식은 하인들이 먹 었다.

주인마님이 상을 물리면 바가지 에 남은 음식들을 다 모아 섞어 먹는 식이었다.

잔반에 고기가 섞여 있으면 아

버지는 그 고기를 자신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것을 떠올리던 헛 개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아버지가 싫어.”

강진이 보자 헛개가 입맛을 다 셨다.

“노비로 산 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노비로서 갖는 생각이나 마음까지 나에게 강요하신 것이 싫어. 나는 사람 처럼 살고 싶었지, 노비로 살다 죽기는 싫었어.”

“헛개 아저씨는 이 시대에 태어 났으면 민주화 운동을 하셨겠네 요.”

“민주화 운동?”

헛개가 관심을 보이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조선 시대에 비해 이곳이 천국 같겠지만…… 어디에나 권력은 있고 그 권력을 이용해 사람을 탄압하고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이들은 있습니다.”

“이 좋은 시대에도 말인가?”

“이 시대뿐이겠어요? 수백 년, 수천 년 과거에도 있었고 백 년, 천 년 후에도 그런 권력자들은 있을 겁니다. 힘을 가진 자들은 내가 가진 여러 가지보다 남이 가진 하나를 더 원하니까요.”

“한탄을 할 노릇이군.”

“하지만 힘이 있으면서도 자신 이 가진 것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남에게 베푸는 이들도 있습니 다.”

“좋은 사람이군.”

“좋은 사람이죠. 그게 누군지 아세요?”

“누군가?”

헛개가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보자 강진이 답했다.

“아버지, 아니 부모님요.”

헛개가 말없이 보자, 강진이 입 을 열었다.

“어린 자식에 비해 아버지는 힘 이 있죠. 그리고 가진 것도 많고

요. 하지만 힘이 있는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그 힘을 쓰죠. 업어 주고 놀아 주고…… 그리고 가진 것도 아끼지 않고 자식을 위해 내어 주죠. 먹여 주고, 재워 주 고, 입혀 주면서요. 그런데 아무 런 대가도 바라지 않아요. 그냥 자식이 웃으며 음식을 맛있게 먹 어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요. 그 러다가 딸이 ‘아빠 사랑해.’ 한마 디 해 주면 그날 하루는 먹지 않 아도 배부르고 그냥 웃음만 나오 죠.”

헛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

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아 버지가 자신의 입에 넣어주던 고 기 한 점이 계속 떠올랐다.

“헛개 씨는 자식이 있으셨나 요?”

강진의 물음에 헛개가 잠시 있 다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둘 있었는데…… 죽었어.”

“아…… 그렇군요.”

“후우! 이 좋은 세상에 태어났 으면…… 통닭 사 달라고 했었을 텐데.”

한숨을 쉬던 헛개가 하늘을 보 았다.

말없이 하늘을 보는 헛개에게 강진이 조심스레 말했다.

“식사하시죠.”

강진은 좀 더 말하고 싶었지 만…… 이 정도만 해도 그가 자 신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라 여기며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강진의 권유에 헛개는 통닭을

보다가 그것을 집어 입에 넣었 다.

우물우물!

헛개는 김밥도 입에 넣었다. 그 렇게 음식을 먹던 헛개가 닭다리 하나를 들더니 허공에 내밀고는 작게 말했다.

“와서…… 이거 하나 하소.”

헛개의 말에 나무 뒤에서 이쪽 을 보던 감초 어른이 놀란 눈으 로 그를 보았다.

“ 나?”

“싫으면 말구요.”

헛개가 닭다리를 물리려 하자 감초 어른이 서둘러 날아왔다. 말 그대로 붕 떠서는 날아온 감 초 어른은 웃으며 손을 내밀어 닭다리를 받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입에 넣었다. 그대로 순식간에 발골한 감초 어 른은 환하게 웃었다.

“아들이 주는 닭다리라 너무 맛 있구먼.”

감초 어른의 말에 헛개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음식 을 입에 넣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감초 어른이 웃었다.

‘그래. 많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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