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645화 (643/1,050)

645 화

음식을 먹던 헛개가 입맛을 다 시고는 김밥을 집어 내밀었다.

“이 시대에는 쌀이 흔하다고 합 디다. 하나 드소.”

“그래. 그래.”

감초 어른은 헛개가 내민 김밥 을 받아먹었다.

“너무 맛있구나.”

감초 어른의 말에 헛개는 별다

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그런 헛개를 보 며 감초 어른이 아쉽다는 듯 음 식을 보았다.

강진의 눈에는 아직도 음식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 초 어른의 눈에는 이제 음식이 얼마 안 남은 것이 보이는 것이 다.

“다음에는 음식을 더 많이 가져 와야겠네.”

감초 어른의 말에 헛개가 고개 를 저었다.

“많이 먹었소.”

“다음에 올 때는 제가 술을 좀 가져올게요.”

강진의 말에 헛개가 그를 보았 다.

“슬 2 하

“한국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소 주라는 것이 있는데 그걸 챙겨오 겠습니다.”

“소주? 맛이 좋나?”

“아주 맛이 좋죠.”

헛개의 반응을 살피던 강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술은 드셔 보셨어요?”

“몇 번……

몇 번 마셨다는 말에 강진이 입 맛을 다셨다. 나이가 정확히 몇 인지는 몰라도 사십은 충분히 되 는 것 같은데…… 술을 몇 번 먹 었다니.

‘조선 시대…… 정말 그 시대에 안 태어나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자신은 아니더라 도 전생의 자신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불쌍한 내 전생.’

강진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말 했다.

“소주는 특히……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부자지간에 마시면 그렇게 좋 습니다.”

강진의 말에 헛개가 감초 어른 을 보았다. 감초 어른도 그를 보 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와 내가 같이 술을 마 셔 본 적이 없구나.”

헛개는 말없이 손을 털고는 고 개를 돌려 보육원 쪽을 보았다.

“저기에서 지냅니까?”

“ 나?”

“저기에 자주 보이더만.”

“나를…… 보고 있었어?”

감초 어른이 감동한 듯 보는 것 에 헛개가 눈을 찡그렸다.

“보기는…… 그냥 보여서 본 거 지.”

헛개의 말에 감초 어른이 웃었 다.

“그래. 보이니 본 게지.”

작정하고 외면했다면 안 볼 수 있었을 텐데도…… 가끔은 자신

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는 사실에 감초 어른은 더할 나위 없이 기 뻐했다.

한편, 두 귀신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귀신이 오래되면 여러 능력이 생기잖아요.”

“맞네.”

“그럼 지박령이라도 이곳을 떠 나고 그럴 수는 없나요?”

강진의 물음에 감초 어른이 헛 개를 보았다.

“그래. 나하고 같이 밑에서 지 내자꾸나.”

“귀신이 여기든 저기든 거기서 거기지.”

두 귀신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이동하실 수 있나요?”

“우리 헛개가 지박령이기는 하 지만 백 년 묵은 귀신이라 어느 정도는 이동이 가능하지.”

“그래요? 그럼 어디까지 가능한 가요?”

“멀리는 못 가도 이 마을 정도 는 오고 갈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차에 묶여 있던 선주와 최훈도 차에서 일정 거리 정도는 떨어져 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박령으로 백 년을 지낸 헛개도 어느 정도 거리는 움직일 수 있 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하늘 을 올려다보았다.

‘선주 씨와 최훈 씨는 잘 지내

고 있으려나?’

승천을 한 두 귀신을 떠올리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저승이 힘들기는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니 잘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지옥도 두 분이 같이 가면 그 리 힘들지 않을 거예요.’

선주가 들으면 ‘지옥이라뇨! 우 리가 지옥에나 갈 사람, 아니 귀 신으로 보여요?!’라고 화를 낼 만한 생각을 하며 강진이 웃었 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리 웃 나?”

헛개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지박령이었다가 승천하신 두 분이 생각나서요.”

“지박령?”

같은 지박령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헛개에게 강진은 선주와 최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헛개는 한 숨을 쉬었다.

“잘 되었군.”

“잘 되었죠.”

고개를 끄덕이는 헛개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같이 내려가시죠.”

강진의 말에 헛개가 보육원을 보았다. 그런 헛개를 보며 강진 이 말했다.

“어쩌면 저 보육원은……

“동학이라는 뿌리에서 자란 열 매라고 말을 하려는 건가?”

“어? 마음도 읽으세요?”

강진의 말에 헛개가 피식 웃었 다.

“내 오래된 귀신이라 해도 그런 신통한 능력은 없네. 그냥 자네 라면 그런 말로 꾀어낼 것 같더 군.”

“꾀어낸다니요. 제 말은 사실입 니다. 한 점의 거짓도 없습니다.”

헛개가 보자 강진이 말을 이었 다.

“조선 시대에도 고아들을 기르

는 기관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 다.”

“그런 곳이 있었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데 그런 기관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 다.”

강진의 말에 정작 조선 시대 귀 신 둘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우리 때 고아들은 그냥 거지가 되거나, 먹여 주고 재워 주는 대 신 그 집 노비가 되었는데?”

“정말 코딱지처럼 작게 했나 보

네요. 그래서 그 시대 사람인 두 분이 잘 모르는 거고요.”

강진의 말에 두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의 생각대로 고아를 돌보는 기관의 규모가 워낙 작았던 것도 있지만, 두 귀신 모두 노비라 그 런 사회 지식이 많이 부족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기관이 있었 다는 걸 모르는 것이다.

강진은 헛개를 보며 말을 이었 다.

“동학이 원한 건 백성들이 편안 하게 사는 것 아니겠어요? 신분 철폐나 만민 평등 같은 것은 모 두 백성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에 대한 방책일 뿐이니까요.”

강진의 말에 헛개가 고개를 끄 덕였다.

“맞네.”

“그럼 이 시대에서 가장 힘없는 이들 중 하나인 저 아이들이 모 여서 먹고 자고 보호를 받는 저 보육원도 동학이 꿈꾸던 것 중 하나가 아닐까요?”

강진의 말에 헛개는 멍하니 보 육원이 있는 곳을 보았다. 그 모 습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가방끈이 짧아서 동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동학 에 관련된 책이나 드라마가 많습 니다.”

“책?’’

“내려가셔서 그런 것 보시면 좋 지 않겠어요? 동학 드라마 재밌 던데.”

헛개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말

했다.

“나는 글을 못 읽네.”

헛개의 말에 감초 어른이 웃으 며 말했다.

“내가 알려주마.”

“어르신은 글을 읽을 줄 아세 요?”

“언문은 읽고 쓸 줄 알지.”

그러고는 감초 어른이 헛개를 보았다.

“우리 시대 때 쓰던 글자하고는

좀 다르긴 하지만, 너는 원래도 언문을 몰랐으니 새로 배워도 헷 갈릴 일이 없어 배우기도 쉬울 게야.”

“글 배우기가 어디 쉽소.”

“쉽지. 우리 때야 해 뜨면 일하 고 해 지면 잠을 자니 글을 배우 기가 쉽지 않지만…… 지금은 귀 신인데 해가 뜨고 지고가 무슨 상관이겠니.”

“그건…… 또 그렇소.”

“그럼 내려가실 거죠?”

강진의 말에 헛개는 잠시 자신 이 나왔던 숲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 나도 우리 동학이 꿈 꿨던 세상이 어떻게 됐는지 보고 싶군.”

헛개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 가 입맛을 다셨다.

‘뉴스 쪽은 나중에 보세요.’

괜히 정치 쪽이나 재계 쪽 뉴스 를 보면 우리가 바란 동학의 세 상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며 피를

토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자전거를 탄 강진은 배용수를 뒤에 태우고 페달을 밟고 있었 다. 그리고 그 옆에 감초 어른이 기분 좋은 얼굴로 두둥실 떠서 나아가고 있었다.

한편, 헛개는 셋의 뒤를 따르며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주위를 보 고 있었다.

“이 벼를 보게. 벼가 아주 실한 것이 올해 농사가 아주 잘 되겠

어.”

헛개가 논을 보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그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차를 보고는 안 놀라시 네요.”

“저 철 덩어리를 말하는 것인 가?”

헛개가 길에 세워진 차를 가리 키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에서 한 번도 안 내려오셨으 면 저것도 처음 보시는 것 아니 세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 산에 서만 살았으니 그의 지식과 사고 방식은 조선에서 멈춰 있을 터였 다.

쉽게 말하면 조선 사람이 현대 로 와서 처음 세상을 보는 셈이 다.

강진은 그가 차를 보고 깜짝 놀 랄 거라 생각했는데, 별다른 감 흥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의아해 물은 것이었다.

“내가 산에서만 살았지만, 눈은 산 밖을 볼 수 있으니…… 사람

들이 저 차라는 것을 타고 다니 는 것을 보았네. 마차처럼 사람 을 태우고 다니는 것 아닌가?”

생각보다 더 담담한 반응에 강 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건 그렇죠.”

‘재미없네.’

자동차나 이런저런 문물을 보면 신기해할 거라 생각을 했는데 너 무 담담하니 딱히 재미가 없었 다. 그에 강진은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보육원에 들어섰다.

보육원에서는 강상식이 아이들 과 공을 차고 있었다. 땀을 뻘뻘 홀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강 상식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누가 놀아주는 거야? 애들이 상식 형하고 놀아주는 것 같은 데?’

한껏 신이 나 뛰어다니는 강상 식을 보며 피식 웃은 강진이 자 전거를 한쪽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고는 강진이 푸드 트럭으로 걸음을 옮기는 人}이, 감초 어른

은 보육원을 가리키며 헛개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 다.

“내가 늘 있는 곳은 저기 위란 다.”

자신이 늘 있는 단상 위쪽을 가 리키는 감초 어른을 보며 헛개는 딱히 답을 하지 않고 걸음을 옮 겼다.

감초 어른과 산을 내려오기는 했지만 백 년 동안 내외하던 사 이다 보니 친하게 대화를 나누기 는 민망한 모양이었다.

소월향과 그 아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강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원래 부자 사이에는 대화가 많 을 이유가 없었다. 자신도 생각 을 해 보면 아버지 살아 있을 때 그리 대화를 자주 하던 사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딸 같은 아들이 되어 드릴 것 을.. ’

그런 생각을 하며 푸드 트럭에 다가간 강진은 그 안에 있는 황 민성과 김이슬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요?”

“들어가서 주무세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순례는 나이가 있어 서 밖에 나오면 이렇게 오침 시 간을 따로 가지는 것이다.

“재료는 어때요?”

“애들이 김밥을 좋아해서 김밥 재료는 다 떨어졌고 닭만 몇 마 리 남았어요.”

“애들이 잘 먹었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김이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제가 만든 김밥이 맛있 대요.”

“그래요?”

“네. 제가 김밥에 이렇게 소질 이 있는 줄 몰랐어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은 김밥을 하나 집어서는 입에 물었다. 그 러고는 작게 웃었다.

“왜요? 맛이 없으세요?”

“아뇨. 맛있어요.”

맛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밥 양이 자신이 한 것보다 적고 재 료는 풍성하니 말이다. 김밥은 밥과 재료가 적절하면 맛이 있 고, 밥보다 재료가 더 많으면 더 맛이 있는 법이었다.

다만 이렇게 하면 원가가 올라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팔려고 가져온 것은 아니니 애 들이 맛있게 먹으면 그걸로 된 거지.’

강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 는 헛개와 그를 지그시 보며 웃 고 있는 감초 어른을 보았다.

‘세상에 도와야 할 귀신들이 너 무 많구나.’

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 서도 미소 지었다. 그래도 이제 는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 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한쪽 에서 유인호가 원장 선생님과 이 야기를 나누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심 각해 보이는데? 법률 상담하는 건가?’

강진은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유심히 지켜볼 뿐, 섣불리 다가가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법률 상담을 하고 있다 면 자기가 들으면 안 될 이야기 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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