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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646화 (644/1,050)

646화

강진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 람을 볼 때, 유인호 옆에서 이야 기를 듣고 있던 임미령이 화가 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강진 씨!”

자신을 크게 부르는 소리에 강 진이 그녀를 보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이야기

를 들었어요.”

“나쁜 이야기요?”

임미령은 박성영 쪽을 보았다.

“세상에 저런 일에 나올 일이에 요!”

잔뜩 흥분을 해서 소리를 지르 는 임미령의 모습에 강진이 걱정 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혹시 보육원에 무슨 법적 문제 가 생겼나요?”

유인호가 변호사이니 말이다.

강진의 물음에 임미령이 고개를 저었다.

“보육원…… 하긴, 보육원 법적 문제가 맞기는 하네요.”

그러고는 임미령이 강진을 보았 다.

“혹시 얼마 전에 유명하지는 않 은 조연 배우 죽었다는 거 아세 요?”

“누가 죽었어요?”

“뉴스 좀 보고 사세요.”

눈을 찡그리는 임미령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제가…… TV를 잘 안 봐서.”

“강진이가 정말 TV를 안 봐요. 핸드폰도 잘 안 하고.”

배용수가 거들어 주자 임미령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어쨌든 조연 배우가 무슨 병으 로 갑자기 죽었어요.”

“갑자기요?”

되묻는 강진을 보며 임미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 배우가 죽었는데 이 보육원 출신이래요.”

“아…… 그래요?”

“근데 그 배우한테 여동생이 한 명 있대요.”

화가 많이 나서인지 두서없이 말하는 임미령을 보던 강진이 그 녀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일단 진정하시고 천천히, 천천 히…… 처음부터요.”

강진의 말에 임미령이 크게 숨 을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후우! 후우!”

귀신이 실제로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강진 의 말대로 심호흡을 몇 번 한 임 미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 다.

“배우인 오빠하고 그 여동생이 이 보육원 출신이에요. 먼저 보 육원 나간 오빠가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집 구하고는 동생도 데리 고 나간 모양이에요. 둘이 의지

하면서 열심히 살다가 동생은 취 직을 했고, 오빠는 알바하면서 연기자의 꿈을 꾸며 살았대요. 그러다 작은 역할이나마 몇 번 하면서 조금씩 인지도 올렸대요. 유명한 작품도 몇 개 있는데

말을 하던 임미령이 고개를 저 었다.

“강진 씨는 드라마 안 보니 말 해도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강진의 사과에 임미령이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요. 얼마 전에 그 오빠가 갑자기 죽은 거예요.”

“아…… 저런……

“원장님 말이, 얼마 후에 큰 작 품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들어간 다고 좋아했다고 하던데...

강진이 입맛을 다시자 임미령도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는 말했다.

“어쨌든 오빠가 재산이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세금이랑 이 것저것 있던 걸 여동생이 여기에 기부를 하려고 했었나 봐요.”

“기부요? 그 동생분도 살기 힘 들 텐데 큰 결심을 하셨네요.”

여동생의 나이가 몇인지 몰라도 보육원 출신이면 기댈 언덕 없이 살았을 테고, 그럼 가진 것이 많 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을 보육원에 기부 를 하겠다니…….

“그렇죠. 아주 착하신 분 같아

요.”

말을 하던 임미령이 급히 고개 를 저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다른 거예요.”

“뭔데요?”

“세상에. 알고 보니까 그 배우 가 들어 놓은 보험금을 친부라는 자가 이미 가져간 거 있죠!”

“친부? 친부가 있어요?”

“ 있었대요.”

“그런데 왜 보……

말을 하던 강진은 재차 입맛을 다셨다. 부모가 없어야만 보육원 에 오는 것은 아니다. 부모에게 버려진 자식들도 보육원에 오는 것이다.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몰라요. 말 들어 보니 애들 엄마가 애들 키우다가 죽어서 이곳으로 왔다 고 하더라고요.”

“음…… 그럼 애 아빠는 진즉에

갈라섰겠군요.”

“네. 그래서 딸이 화가 난 거예 요. 게다가 더 어처구니없는 건 법원에서 무슨 종이가 와서 기부 하려던 돈을 묶어버렸대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녀를 보았다.

“오빠 유산을요?”

“보험금 챙겨 간 것도 모자라 서……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가 있대요? 말 들어 보니까 두 사람 보육원 나가서 독립했을 때

그래도 아빠라고 한 번 찾아갔다 가 문전박대 당한 모양이에요. 그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양인데……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아들이 열심히 살아온 인생 을 가져가겠다고 나섰잖아요.”

“그런데 그 아빠는 어떻게 찾았 대요?”

“그건 모르겠어요. 그래도 찾는 방법이 있었으니 찾지 않았겠어 요?”

“그럼 그 아빠는 아들 보험금은 어떻게 알고?”

“그래도 아빠라고 뉴스에 나온 아들 얼굴 알아봤나 보죠.”

임미령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이럴 때는 귀신인 것이 한스러 워요.”

“왜요?”

“저런 놈 귀신이 안 잡아가고 뭐하나 하는데...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인호 쪽을 보았다. 그러고는 입맛을 다시다가 휴대 폰을 꺼냈다.

“어디다 전화하시게요?”

눈빛을 반짝이는 임미령의 모습 에 강진이 버튼을 누르며 말했 다.

“저도 아는 변호사님이 계셔서 요. 좀 물어보려고요.”

그러고는 강진이 전화를 걸었 다.

[여보세요.]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신수호의 목소리에 강진이 말했다.

“저 법률 상담 좀 부탁해도 될 까요?”

[귀신 이야기입니까?]

한끼식당에서 나눈 이야기라면 신수호가 알겠지만, 다른 곳이라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아니고요. 제가 봉사하러 온 보육원에 법적인 일이 좀 있 어서요.”

[말씀해 보세요.]

강진은 임미령에게 들은 이야기 를 전해 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신수호가 잠시 있다가 말했 다.

[고인이 유언장은 남기지 않았 습니까?]

“젊은 나이에 죽어서 따로 유언 장은 남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이 유언장을 쓰고 살 이유가 없다. 젊음은 죽음보다는 살날을 더 생각하니 말이다.

그리고 유언장이라는 건 보통

사람은 잘 쓰지 않기도 했다.

[하긴, 유언장이 없으니 이런 일이 생겼겠지요. 일단 답부터 드리자면 친부가 유산을 상속받 는 건 법적으로 막을 수 없습니 다.]

“법적으로는…… 그렇군요.”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답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양육에 기여한 것이 없는데도 그런 건가요?”

[맞습니다. 유언장이 없는 이상 은 법대로 집행이 될 수밖에 없 습니다.]

“유언장이 있으면요?”

[유언장이 있고 법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절차에 맞게 썼다면 아 버지는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 만…… 이미 고인인 상태에선 유 언장을 쓸 수 없지요.]

고인이 귀신이 됐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귀신인 그를 만나게 되면 유언장 작성을 하게 하지 말라는 주의가 담겨 있었

다.

“그럼 도울 방법은 없는 건가 요?”

[법으로는…… 없습니다.]

신수호의 답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괜히 또 사고 치지 마십시오.]

“사고를 치기 전에 상담부터 드 리겠습니다.”

[안 치실 생각은…… 없습니

까?]

“사고가 아니라 좋은 일 한다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뭐…… 돈 벌어서 뭐하겠어요. 이럴 때 쓰는 거지.”

벌금을 내라고 하면 내겠다는 강진의 마인드에 신수호가 한숨 을 쉬었다.

[그런 말은 친구나 가족하고 밥 먹을 때나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는 끝 이 났다.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

에 넣은 강진은 임미령에게 물었 다.

“유인호 씨는 뭐라고 했어요?”

“법적으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요. 그쪽도 그렇게 이야기 하죠?”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는 몰라도 법적인 것에 대해 묻고 들었으니 그런 물음을 한 것이다.

“제가 아는 변호사 분도 그렇게 이야기하네요. 유언장이 있으면 모를까…… 유언장이 없으면 법

대로 될 수밖에 없다고요.”

“하아! 정말 법이 나쁘네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세상에 완벽한 법은 없으니까 요.”

강진이 유인호와 박성영을 보고 있을 때, 그 둘이 일어나서는 강 진에게 다가왔다. 그에 강진이 말을 걸었다.

“보육원에 무슨 법적 문제 있으 세요?”

임미령에게 들어서 상황은 알지 만, 귀신에게 들어서 안 것이라 아는 척을 할 수 없어 강진은 최 대한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아닙니다.”

“저도 이쪽저쪽으로 아는 분들 많아서 말씀해 주시면 도울 방법 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유인호가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나는 의뢰인이 말하기 전에는 아무 말도 못 해.”

유인호의 말에 박성영이 잠시 있다가 한숨을 쉬며 사정을 이야 기했다.

이미 들어서 아는 내용이고 또 들어도 화가 나는 내용이라 강진 이 입맛을 다시며 유인호를 보았 다.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이건…… 그 아빠라는 사람이 유산 상속 포기하기 전에는 아무 런 방법이 없어.”

“포기할 사람이면 죽은 아들 보

험금 청구해서 받아 가지도 않았 겠지.”

“그러게.”

유인호는 한 차례 고개를 젓고 는 말했다.

“예전에 서해에서 군인 죽었던 사건 알아?”

“그래?”

강진이 모르는 둣 말하자 유인 호가 말을 이었다.

“우리 어렸을 때 일이라 잘 모

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때도 이런 일이 있었어.”

“그때도?”

“그 군인이 아버지가 혼자 키웠 는데…… 보험금하고 국민 성금 의 반을 집 나간 어머니가 받아 간 일이 있었어.”

“집 나간 어머니가?”

지금과 참 상황이 비슷하다는 걸 눈치챈 강진이 되묻자 유인호 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국민들이 참 많이 화를

냈었지.”

“그럼 법이 왜 안 바뀌어?”

“법이 바뀌는 것이 쉽나.”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은 유인 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 한두 번이 아 니야.”

“더 있어?”

“꽤 많아. 집 나간 아버지가 타 가기도 하고, 엄마가 타가기도 하고……:

“꽤…… 많다고?”

“끔찍하지만…… 참 많아. 자식 이 죽고 나서야 돈 때문에 찾아 오는 부모들.”

“너무 나쁘다.”

“나쁘고…… 나쁘지. 살아 있을 때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죽어서 돈만 찾아가는 거니까.”

“그 사람들 지옥 가겠다.”

“이런 사람들 보면 지옥이라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방법이 없는 거야?”

“그나마 방법이라면 언론화하는 것 정도인데…… 언론화가 되어 도 싹 다 무시한 채 그냥 돈 받 아 간 경우도 제법 많아.”

“사람들이 그렇게 욕을 하는데 도 그걸 받아가?”

“실명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눈 닫고 귀 닫으면 그 돈이 들어 오니까.”

말을 하던 유인호는 재차 고개 를 저었다.

“돈이라는 것이 이래서 무서운 거야.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하거든.”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하기는…… 일단 이쪽 에서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그러고는 유인호가 말을 이었 다.

“동생분하고 통화해서 언론화해 도 된다는 허락은 받았는데……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 죄송하네.”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문득 물었다.

“너 법에 대해 잘 알아?”

“변호사인데 당연히 잘 알지.”

“너 인권 변호사라고 했나?”

“그냥 돈 안 되는 변론들 맡다 보니 인권 변호사라고 부르는 거 지, 꼭 인권 변호사는 아니야.”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 가면 내가 좋은 어른 한 분 소개해 줄게.”

“좋은 어른?”

“좋은 법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은 분이셔.”

강진이 유인호와 이야기를 나눌 때, 강상식이 공을 툭툭 차며 다 가왔다.

“강진아!”

툭!

강상식이 공을 차자 강진은 한 쪽 발로 그것을 가볍게 받아내고 는 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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