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화
“특식 짬뽕 라면입니다.”
웃으며 강진이 라면들을 자리에 놓기 시작하자 문지나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떠올랐다.
“짬뽕 라면이네요.”
“주문하신 건 매운 라면이지만 조금 고급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밖에서도 매운 고추 냄새가 진 동을 하더라.”
“아주 맛있겠는데요.”
강상식은 젓가락으로 오징어를 하나 집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콤하네.”
“맛있게 드세요.”
강진은 문지나의 옆에 의자를 하나 끌어다 놓고는 그 자리에 라면을 하나 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민성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이 되니 말이 다.
하지만 강상식은 의아한 듯 강 진을 보았다.
“그건 왜?”
“문지혁 씨는 없지만, 문지나 씨 옆에는 그분이 있다 생각을 해요. 그래서 끓이는 김에 문지 혁 씨 것도 끓였습니다.”
“아……
강상식은 비어 있는 자리를 보 다가 문지나를 보았다.
그녀는 비어 있는 자리에 놓인 라면을 보다가 자신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그릇에 올려놓았다.
“오빠, 내일이면 그 사람 벌 받 을 거야.”
잠시 말을 멈춘 문지나가 한숨 을 쉬며 말했다.
“오빠가…… 그 사람 미워하지 말라고, 그 사람도 사정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나 그냥 미워
하며 살래. 착한 오빠라면 사람 미워하면 나만 힘들 거라고 하겠 지만, 그래도 미워하며 살 거야.”
말을 하던 문지나는 입술을 깨 물었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마. 미움 도 관심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했어. 그래서 조금만 미워하다가 내 마음속에서 아예 지워 버릴 거야. 그리고 다시는 그 사람 생 각도 안 하고 행복하게 살 거 야.”
문지나의 말에 문지혁이 그녀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어. 그 사람 조금만 미워 하고 앞으로는 신경 쓰지 말고 너라도 잘 살아. 어서 먹어. 라면 분다. 너 불은 라면 안 좋아하잖 아.”
문지혁의 말에 강진이 작게 한 숨을 쉬었다. 아버지를 그 사람 이라 표현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아빠라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그 사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마
음속 상처가 큰 것일 테니 말이 다.
‘나쁜 사람.’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문지나 를 보았다.
“지나 씨, 라면 불기 전에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문지나가 라면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라면을 크게 집어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면발이 완전 꼬들꼬들해요. 아
주 맛있어요.”
“꼬들꼬들한 면발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잘 익혀서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살짝 퍼 진 걸 잘 먹는 사람도 있는데 지 나 씨 입맛에 맞다니 다행입니 다.”
문지나를 시작으로 강진과 사람 들도 라면을 먹었다.
“아! 국물 시원하다.”
황민성이 작게 탄성을 지르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시원한 것보다는 살짝 기름지 지 않아요?”
식용유가 들어간 것을 봤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위 코팅되는 것 같고 난 좋은 데.”
황민성이 웃으며 라면을 먹는 사이, 강진은 강상식을 보았다. 황민성처럼 맛있게 라면을 먹는 강상식을 보던 강진은 잔에 맥주 를 따라서는 문지혁의 앞에 놓았 다.
그에 문지혁이 고개를 숙여 인 사를 하고는 잔을 들어 맥주를 쭈욱 들이켰다.
“크윽! 아주 좋습니다. 아주 시 원해요.”
그러고는 문지혁도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라면도 아주 맛있습니다.”
문지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면을 먹었다. 그러 다 고명처럼 놓여 있는 오징어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이것도 맛있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문지나 를 보았다. 문지나는 맥주를 마 시고 라면을 먹으며 음식을 즐기 고 있었다.
‘상식 형하고 잘 되면 술 한 잔 같이 하면서 이야기하기 좋겠네.’
술은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 고, 안 좋아하는 사람은 안 좋아 한다. 그러니 부부나 연인끼리 술을 같이 마실 수 있으면 좋은 공통점이 되어 줄 것이다.
물론 과하게 마시는 것은 몸에 안 좋겠지만 말이다.
저녁 10시 반이 되어갈 때까지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오늘 잘 먹었고. 내일 다시 한 번 보자고.”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조금 더 즐겁게 마시 죠. 아! 승환이도 부르고 우리
아는 사람들 다 불러서 마십시 다.”
“그러자.”
그러고는 황민성이 문지나를 보 았다.
“내일 시간 되시면 이 시간에 한 번 더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꼭 올게요.”
문지나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상식을 보았다.
“지나 씨 집에 잘 모셔다드려.”
황민성의 말에 문지나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 혼자 갈 수 있어 요.”
“아닙니다. 이 녀석 차 타고 가 세요.”
“지금 버스하고 지하철 다녀 서……
“저희가 걱정이 돼서 그래요.”
황민성이 웃으며 말하자 문지나 는 잠시 망설이다가 강상식을 보 았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은요. 자, 가시죠.”
강상식이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가려 하자, 문지나가 강 진을 보았다.
“오늘…… 라면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맛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저희 오빠가 잘 해 주던 라면 스타일이라…… 더 맛이 좋았습 니다.”
“그러세요?”
“저희 오빠도 라면을 그렇게 끓 여 줬거든요.”
싱긋 웃다가 슬쩍 눈가를 닦은 문지나는 강진에게 고개를 숙였 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해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문지나가 그를 보 다가 강상식을 보았다.
“가시죠.”
강상식이 걸음을 옮기자, 문지 나가 그 뒤를 따라갔다.
“대리 불러라!”
황민성의 외침에 강상식이 웃었 다.
“당연하죠!”
강상식이 먼저 떠나자, 황민성 이 몸을 비틀었다. 그러고는 웃 으며 강진을 보았다.
“두 사람 느낌 괜찮지 않냐?”
“아직은 모르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은 미소 지 은 채 강상식이 간 곳을 보며 중 얼거렸다.
“지나 씨 성격 화통하던데.”
“그렇게 안 생기셨는데 화통하 시더라고요.”
고개를 끄덕이던 황민성이 주위 를 보았다.
“주위에 귀신들 있어?”
“손님들 나갈 때 되어서 제가 좀 흩어져 있으라고 했어요.”
“잘 했네.”
황민성은 잠시 무언가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말했다.
“나 애 가질 수 있겠지?”
“그럼요. 소희 아가씨가 애 가 질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갑자 기 왜요?”
“내가 좀 알아봤는데, 관계 가 지고 열흘이면 혈액 검사로 임신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이 가능하 더라.”
열홀 만에요?”
“그렇다네.”
얼마나 애를 원하면 그런 것까 지 알아봤나 싶어 강진은 웃었 다.
“평생 살 아이인데 열흘 만에 생기기를 바라는 건 너무 오버 아니에요?”
“그런가?”
“그리고 혹시……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황민성 을 보았다.
“형수님 혈액검사 하자고 산부 인과 데려간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그러고는 황민성이 말을 이었 다.
“나보다 조급한 건 네 형수일 거야.”
“그렇겠죠?”
“나야 내가 죄인이라 그런 것을 알지만…… 네 형수는 자기 탓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을 하던 황민성이 입맛을 다 셨다.
“그것도 웃기지 않냐?”
“뭐가요?”
“우리 집은 아니지만…… 드라 마 같은 것 보면 여자가 애를 못 가지면, 다 여자 문제로 몰아가 잖아. 그게 어떻게 여자 문제야. 부부 문제지.”
“그렇죠.”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황민성 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냥 말 안 하고 기다 리고 있어.”
강진이 보자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어느 날…… 이슬 씨가 나한테 웃으면서 임신 테스트기 내밀어 줄 날을 말이야.”
“아……
이야기를 하던 황민성은 강진을 데리고 자신의 차로 다가갔다.
버튼을 누르자 트렁크가 열리기 시작했다.
“어?”
트렁크 안에는 장미꽃 다발이 실려 있었다.
“형수님 주시게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웃으며 장미꽃 다발을 보다가 말했다.
“나한테 임신했다고 이야기를 하는 날…… 꺼내 주려고 저녁마 다 꽃집에서 사고 있다.”
“매일요? 그럼 시들 텐데?”
“오늘이 아니면 내일 사무실에 꽃다발이 걸리겠지. 그래서 우리 사무실에 꽃이 많아. 여직원들이 좋아하더라.”
“꽃을 사지 않는 날이 빨리 왔 으면 좋겠네요.”
꽃을 더 이상 사지 않게 되는 날은 김이슬이 임신한 것을 아는 날일 테니 말이다.
둘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 봉고차 한 대가 다가와 멈춰 서
더니 남자 한 명이 차에서 내렸 다.
“사장님.”
대리 기사가 고개를 숙이자, 황 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럼 형 간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 수석에 타자, 대리 기사가 강진 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에 강진이 마주 고개를 숙이
자, 대리 기사가 차에 올라탔다.
황민성의 차가 가는 것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많이 초조하신가?”
강진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답 을 했다.
“오래 기다린 아이인데 얼마나 기다려지겠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사람들이 나갈 때 배용수 도 황민성을 배웅하려고 나온 것 이다.
“그렇겠지?”
“당연한 것 아니냐.”
잠시 황민성이 간 곳을 보던 배 용수가 말했다.
“비유하기는 그렇지만, 군대 휴 가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휴가?”
“휴가가 멀리 있으면 그런가 보 다 하지만…… 휴가가 다가오면 하루하루 기다리게 되잖아.”
“그러겠지.”
“민성 형도 그런 것 같아. 안 생길 거라 생각할 때는 별생각 안 했는데, 이제 애가 생긴다고 하니…… 더 기다려지고 언제 생 기나 기대를 하게 되는 거지.”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배용수 가 말했다.
“그 처녀 귀신 보스한테 언제 생기나 한 번 물어볼래?”
“글쎄. 소희 아가씨가 그런 것 을 미리 알 수 있을지 없을지 모 르겠지만, 안다고 해도 미리 알 려 줄 그런 사…… 아니, 귀신은
아닌 것 같은데?”
“하긴 그것도 그러네.”
강진은 황민성의 차가 있던 곳 을 보았다.
“그나저나 민성 형 낭만적이 네.”
“그러게. 민성 형하고 꽃은 참 안 어울리는데.”
“그러게 말이다.”
황민성과 장미꽃이라…… 참 어 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강
진이 손을 들었다.
“형 파이팅이요!”
물론 자신의 목소리를 황민성이 듣지는 못할 테지만, 강진은 힘 껏 응원했다. 그러고는 가게 쪽 으로 몸을 돌렸다.
“영업 준비하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 들어간 강진은 직원 들이 그릇을 정리하는 것을 보다
가 탁자에 아직 남아 있는, 문지 혁의 라면 그릇을 보았다.
퉁퉁 불어 터진 라면을 보던 강 진이 고개를 저었다.
“참 맛있었겠어요.”
보육원을 나와 자취방에서 같이 먹었던 라면…… 문지혁도 문지 나도 정말 맛있게 먹었을 것이었 다.
그리고 강진의 생각에 문지나의 그릇에 오징어와 조개가 많이 올 라가 있었을 것 같았다.
문지혁이 젓가락으로 오징어와 조개를 건져 주는 장면을 떠올려 본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낳았다고 다 부모는 아니지.”
자식이 걱정되고 안쓰러워서 승 천도 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부 모 수호령들도 있고, 힘들고 몸 이 아파도 자식들을 위해 힘을 내는 부모들도 있는데…….
자기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자 식 을.
생각을 하던 강진은 한숨을 쉬
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프고 화만 나는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