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4화
저녁 장사가 끝나고 7시가 조금 넘을 무렵 한끼식당에는 강진과 황민성, 강상식과 문지나, 그리고 김이슬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자가 문지나 혼자라 황민성이 오늘은 김이슬을 데리 고 온 것이었다.
한편으로 김이슬이 문지나와 친 해지면 강상식과 연결을 해 주기 도 좋을 것 같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김이슬도 같이 자리를 한 것이다.
그들은 함께 TV를 보고 있었 다. TV 시사 채널에서는 문지혁 에 대한 것을 보도하고 있었다.
“시사 채널이 많네.”
“요즘 정치 예능이 많으니까.”
강상식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정치도 예능인 시대네 요.”
“재밌기는 정치가 재밌지.”
“그래서 요즘은 정치 예능이 많 아졌지.”
“그런 것 같아요. 오늘 보니까 여기저기 정치 예능 많이 하더라 고요.”
정치 예능도 종류가 여럿이었 다. 정치인이 나와서 하는 것부 터, 연예인들이 나와서 하는 것 까지…… 말 그대로 정치도 예능 이 되어 가는 시대였다.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은 문지나
를 보았다. 문지나는 김이슬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나 씨는 오늘 좀 어떠셨어 요?”
강진의 물음에 문지나가 웃으며 말했다.
“오빠 아는 사람들에게서 전화 가 많이 왔어요.”
“지나 씨가 동생인 걸 알면 걱 정을 많이 했겠네요.”
“걱정도 많이 해 주시고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하라는 이야기도 많
고요.”
문지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지혁 씨가 열심히 살아서 도 와주겠다는 지인들이 많나 보네 요.”
문지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 상식을 보았다.
“그런데 오늘 아는 변호사분이 전화를 해 주셨는데…… 강 대표 님 걱정을 하시던데.”
“제 걱정을요?”
“혹시라도 그 사람이 강 대표님 을 공격할 수 있다고요.”
“에이, 무슨 그런 걱정을 하세 요.”
강상식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말 그대 로 강상식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 다.
이미 법무 팀을 통해 문제가 되 지 않는 선에서 일을 꾸몄다. 게 다가 자기방어를 할 것들을 다 만들어 놓았으니 문제없었다.
이를테면 문지혁의 사정을 미리 알고 일을 벌였는지에 관한 건 노코멘트로 일관해 두는 식으로 말이다.
잠시 생각하던 강상식은 문지나 를 보았다.
“근데 아는 변호사가 있었어 요?”
“저는 잘 모르는데, 오빠가 생 전에 법정 드라마 조연할 때 알 게 되신 분이에요. 오빠하고는 유기견 보호 센터에 봉사 같이 다니면서 친해지신 것 같아요.”
문지나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 며 사람들은 TV를 마저 보았다.
TV에서는 문지혁의 일과 그 아 빠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 었다. 게다가 화면에는 광고에서 나온 그 사람의 얼굴도 나오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얼굴 노출에 신경 을 쓰겠지만, 이미 광고로 얼굴 을 알린 뒤라 광고 화면을 가져 다 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
다.
다만 오성화학의 광고라 회사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만, 강상식이 거절을 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 사진하고 동영상을 여기저기 퍼뜨리지 못해 안달인 것이 강상식이니 말이다.
“그 사람 어떻게 반응할까요?”
강진의 중얼거림에 황민성이 TV를 보다가 말했다.
“두 가지지.”
“두 가지요?”
“하나는 죄송하다 사과하고 고 문지혁 씨 유산을 사회에 기부하 는 것.”
“그렇게 되면…… 그래도 조금 은 낫겠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하면 가장 좋기는 하지.”
“그럼 두 번째는요?”
“두 번째는…… 그냥 얼굴에 철 판 깔고 사는 거지.”
“철판요?”
“너희가 뭐라고 하든 난 모르겠 다. 너희가 뭐라고 얘기하든 내 가 이 돈 놓나 봐라. 욕 좀 먹으 면 뭐 어때? 돈이 최고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슬쩍 문 지나를 보았다. 아무래도 문지나 의 아버지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 시선에 문지나가 고개를 저 었다.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저 는 더 이상 그 사람 제 아버지라
생각…… 아니…… 보육원에서 나와서 그 사람 집에 오빠 손 잡 고 갔을 때, 우리 모른다고 했던 그날 이후로 저는 아빠가 없어 요.”
문지나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잔에 맥주를 따 라주었다.
“낳았다고 다 부모인 건 아닙니 다. 그러니 이거 마시고 더 이상 미움도 주지 말아요. 그냥 남…… 남인 겁니다.”
“네.”
문지나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강상식이 황민성을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철판을 깔 까요?”
황민성은 웃으며 야관문 차를 마시고는 말했다.
“그렇게까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철판 까는 사람들 많아.”
“그래요?”
“전세 보증금 먹고 튀는 주인들 만 봐도…… 양심이 있으면 자기 때문에 보증금 날린 피해자들에
게 당당할 수 있겠어?”
“ 당당?”
“전에 우리 신입사원 한 명 전 셋집이 문제가 생긴 적이 있거 든. 그래서 침울해하기에 내가 주인을 한 번 만나봤는데……
“그런 건도 직접 해결해 주세 요?”
“직원이 건강해야 회사도 잘 돌 아가는 법이야. 직원이 우울해하 면 일도 안 돌아가는 법이고.”
“그래서 형님이 직접?”
“직접이라기보다는 내 귀에 들 어와서 내가 나선 거지.”
“만나서 어떻게 됐어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피식 웃었다.
“허! 배 째라고 하더라. 돈이 있어야 주지, 없는데 어떻게 주 냐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요?”
“뭐…… 사실 이런 문제에 미안 하다 사과를 해도 답이 없기는 하지. 피해자 입장에서도 ‘미안하
다는 말로 이게 해결이 될 일이 냐!’하고 화를 낼 일이기도 하고. 어쨌든 그래도 사과는 해야 하는 데…… 배 째라고 하더라고. 이 렇게 계속 찾아오고 연락하면 경 매로 넘길 거라고 오히려 배를 들이밀더라.”
“경매?”
“경매 넘어가면 전세금 제대로 못 받고, 그렇게 되면 보증금 다 못 받을 테니 기다리라는 거지.”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배 째라고 배 내미는데 당연히 째 줘야지.”
“진짜로 배를 짼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알아서 보증금 돌려주게 했어.”
강상식이 방법을 정확하게 이야 기해 주지는 않았지만, 딱히 좋 은 방법은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 한 강진이 물었다.
“그럼 그 사람이 철판을 깔면 우리도 이렇게 하는 건가요?”
“얼마 동안은 사람들이 더 볼
수 있게 광고는 안 내릴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좀 많이 알고 화제가 됐을 때 광고 내리면서 위약금 청구해야지.”
강상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물었다.
“형네 회사에는 피해 없겠어 요?”
나쁜 사람을 광고에 썼다고 사 람들이 오성화학 불매 운동이라 도 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에 강 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실시간 검색어 중 하나가 강상 식의 의도야. 정의 실현을 하려 고 일부러 그 사람을 광고에 썼 다는 의견이 넷상에서 퍼지고 있 어.”
“그럼 다행이고요.”
“그리고 오늘 기부한다고도 발 표를 했으니 모든 화살은 그 사 람에게 갈 거야.”
“악성 댓글이 많을 것 같아서 조금 우려가 되기는 하지만…… 인과응보네요.”
“인과응보라. 그 말이 맞네.”
“어쨌든 저희가 할 수 있는 일 은 다 한 것 같네요. 마지므}■에 그 사람이 기부를 하면서 좋게 끝이 났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어서 기부를 하는 것으로 끝을 낸다면 가장 좋은 일이었다. 물 론 마지막까지 철판을 깐다면 그 때는 소송에 들어갈 테지만 말이 다.
소송에서 그 사람이 이길 확률 은 아주 낮았다. 다른 것도 아니
고 대기업 법무 팀을 상대해야 하니 말이다.
토요일 점심 영업시간, 한끼식 당은 다소 한가했다. 늘 그렇듯 이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의 점심 장사는 한가한 것이 다.
강진이 손님들에게 음식을 주고 반찬을 살필 때, 가게 문이 열리
며 손님들이 들어왔다.
“어서…… 어! 안녕하세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노 인의 모습에 강진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그중 한 명을 보았 다. 강진의 시선에 노인이 웃으 며 말했다.
“허허허! 한 번 왔던 사람인데 나를 다 알아봅디다.”
“한 번 온 손님을 더 잘 알아봐 야 단골이 되죠.”
“그 말도 맞습니다.”
강진은 노인 뒤에 있는 잘생긴 군인 귀신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 다. 강진의 인사에 군인 귀신이 미소를 지으며 마주 고개를 숙였 다.
‘확실히 잘생기셨단 말이야.’
잘생긴 군인 귀신과 같인 온 할 아버지는 수출대행 2팀 막내, 정 민의 할아버지였다. 그의 뒤에 있는 군인 귀신 정복남은 할아버 지의 수호령이고 말이다.
동생과 함께 월북을 했다가 남 북 전쟁 때 전사하고, 동생을 남
한으로 보낸 정복남을 보던 강진 이 자리를 가리켰다.
“여기에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는 뒤따라 가게에 들어 온 노인들과 함께 자리를 했다.
“강남에 온다고 해서 대장이 좋 은 것 사 주나 했는데…… 여기 요?”
젊었을 때 덩치가 좋았을 것 같 은 다부진 노인의 말에 할아버 지, 정복립이 웃었다.
“맛만 좋으면 됐지.”
“그건 맞소.”
웃으며 노인이 답을 하자 정복 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진에 게 고개를 돌렸다.
“이 친구가 노망이 들어서 허튼 소리를 한 것이니 사장님이 이해 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가끔 저희 가게에 친구들 모셔 온 손님들은 이런 반응이세요.”
“그래요?”
“강남 논현에 맛있는 것 먹게 해 준대서 와 봤더니 이런 백반 집이라서 실망들 하시더라고요.”
강진은 할아버지를 보았다.
“저희 가게가 생긴 건 이래도 맛은 아주 좋으니 기대하셔도 좋 습니다.”
“하하하! 젊은 사장이 말을 기 분 좋게 하는구먼.”
할아버지의 말에 정복립이 웃으 며 말했다.
“전에 먹었던 김치찌개로 주십 시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강진은 주방에 들 어가 배용수에게 메뉴를 넣고는 자신의 뒤를 따라 들어온 정복남 을 보았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저야 동생이 여기에 와야 올 수 있으니까요.”
정복남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홀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아까 할아버지 한 분이 대장이 라고 하시던데? 혹시 어릴 때 그 동료분인가요?”
강진의 물음에 정복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방금 전에 투덜거리 던 녀석이 그때 대장이었던 녀석 이죠.”
“아, 할아버지와 치고받고 했다 는?”
“맞습니다. 치고받은 정이 있어 서인지 복립이하고는 의형제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말을 하던 정복남이 미소를 지 었다.
“저 녀석 덕에 우리 복립이가 두 번 정도 더 살았죠.”
“그래요?”
“독일에 광부로 갔을 때, 갱 무 너질 상황에 넘어진 복립이를 업 고 지상까지 뛰어갔으니까요. 그 때 저 녀석이 업고 뛰지 않았으
면 복립이는 죽었을 겁니다.”
“무척 친한 사이군요.”
“무척 친한 형제입니다. 둘 다 전쟁 통에 가족을 다 잃고 서로 의지하며 살았으니까요.”
정복남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식사 챙겨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정복남의 답을 들으며 강진은 음식을 준비했다. 사람 손님 음
식이야 배용수가 하면 되지만, 귀신 음식은 강진의 손맛이 들어 가야 맛있으니 말이다.
강진은 음식을 만들다가 손님들 반찬 떨어졌다고 이혜미가 알리 면 그때 나가서 반찬 리필을 해 주었다. 그렇게 음식을 다 만든 강진이 정복남의 앞에 음식을 놓 았다.
“햄 많이 넣고 끓인 부대찌개입 니다.”
“감사합니다.”
정복남이 웃으며 음식을 먹자, 강진이 김치찌개와 반찬들을 정 복립에게 들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