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6화
잡탕 찌개를 맛있게 먹으며 소 주를 마시는 두 노인을 보며 강 진이 말했다.
“전에 형님이 전쟁 때 돌아가셨 다고 했는데 위치는 모르세요?”
강진의 물음에 정복립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나?”
정복립의 말에 강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차 싶었다. 하지 만 곧 웃으며 말했다.
“그때 이야기를 해 주셨는 데……
“내가 기분이 좋아서 많은 이야 기를 했나 보군.”
말을 하며 정복립이 웃었다. 하 지만 사실 강진은 정복립에게 들 었는지, 정복남에게 들었는지 확 신을 할 수가 없었다.
강진은 가끔 이런 실수를 했다. 자신이 아는 것이 귀신에게 들은
것인지, 사람에게 들은 것인지 헷갈려 하는 것이다.
입맛을 다신 강진이 이왕 이렇 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말 했다.
“그 전쟁 중에 돌아가셨다고?”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 형은 북한군이 었지.”
오진섭도 아는 이야기인 듯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피식
웃었다.
“그것 때문에 네가 고생을 했 지.”
“고생은 무슨……
강진이 의아한 듯 오진섭을 보 았다.
“무슨 고생요?”
“지금이야 안 그렇지만, 옛날에 는 집안에 월북을 한 인사가 있 으면 이런저런 피해를 봤거든. 아! 공무원 같은 건 꿈도 못 꿨 지.”
“근데 그걸 나라에서 어떻게 알 아요?”
그 시대에도 주민 등록을 하기 는 했겠지만, 지금처럼 전산처리 가 되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 니 타지 가서 숨어 살면 아무도 모를 텐데 말이다.
게다가 전쟁 통이라 그때 출생 자료들도 대부분 날아갔을 터였 다.
“이 녀석이 당당하게 말을 하더 라고.”
오진섭의 말에 강진이 정복립을 보았다.
“전쟁 끝나고 주민 등록을 다시 해야 했어. 전쟁 통으로 주민 등 록이 다 날아간 경우가 많았거 든. 그래서 나하고 진섭이도 갔 지. 거기에서 가족 관계하고 이 것저것 묻더라고. 그래서 사실대 로 이야기했지. 우리 부모님은 독립운동하다가 돌아가신 누구누 구다. 그 말 하니 관계자가 대단 하다는 듯 칭찬을 하더라고. 그 다음에 형 이야기하다가 순사 죽
이고 북한으로 갔다고 사실대로 이 야기했지.”
“그걸 사실대로요?”
“그때 남한 입장에서는 북한군 이 원수겠지만, 나에게 형은 자 랑스러운 사람이었어. 그리고 형 은 나쁜 짓을 하지 않았어. 군인 으로서 군인을 죽였을 뿐이니까. 내가 아는 훌륭한 분이 하신 말 이 있어. ‘군인이 적국의 군인을 죽이는 건 명예로운 일이지, 수 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수치스러 운 일은 적국의 민간인을 죽였을
때다.’ 우리 형은 민간인을 죽이 지 않았으니 북한군이었던 것이 자랑은 아니어도 숨길 일은 아니 라 생각을 했어.”
정복남 부대 대장이 했다는 말 이었다.
“훌륭하신 분이네요.”
“그 시대 때는 훌륭한 사람이 가장 먼저 죽더라고. 비겁한 놈 들은 참 오래오래 살고.”
고개를 저은 정복립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숨길 것을 그랬어.”
강진이 보자 정복립이 말을 이 었다.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형이지 만, 그 담당자 입장에서는 자기 지인들을 죽인 북한군이니까.”
“그건 그렇죠.”
“그때는 어려서 그런지 내 생각 만 한 것 같아. 우리 형이 죽인 건 아니지만, 그들한테 북한군은 다 같은 북한군이니까.”
“그 대신 네가 그만큼 피해를 입었으니 된 것 아니냐.”
정복립이 고개를 젓자, 오진섭 이 말했다.
“네가 형을 자랑스러워한 만큼 사람들이 너를 괴롭혔으니 됐 다.”
오진섭의 말에 정복립이 입맛을 다시다가 피식 웃었다.
“그 전쟁 때 부산 앞바다에 배 가 한 척 떠 있었거든. 무슨 배 인지 알아?”
“물자 나르는 배거나 군함 아닙 니까?”
“아니야. 나중에 알고 보니까 부산 밀리면 정부 고위급들이 가 족들과 같이 일본으로 건너갈 배 였다는 거야.”
“고위급만요?”
“나중에 듣기로는 부산까지 밀 리면 그 사람들 데려다가 일본에 한국 정부를 설립하려고 했다는 데…… 쳇! 나라를 다 빼앗겼는 데 정부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야. 그것도 외세에 밀린 것도 아
니고 같은 민족끼리 싸워서 밀렸 는데.”
고개를 젓는 오진섭을 보며 정 복립이 웃다가 강진을 보았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잠시 빠 졌는데, 우리 형은 전쟁 통에 죽 어서…… 나도 정확히 어디인지 잘 모르네.”
“그러세요?”
“전쟁 끝나고 찾으려고 해 봤는 데…… 쉽지가 않더라고. 나야 어린 애라 그냥 형 따라서 가던
기억밖에 없고. 형 죽고 정신없 던 상황이라 내가 어디서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고.”
잠시 말을 멈춘 정복립이 웃으 며 말을 이었다.
“기억나는 건 전라도였다는 것 정도야.”
“그럼 전라도에서 부산까지 혼 자 가신 거예요?”
“그때 운 죻게 후퇴하는 군인들 을 만나서 그들 따라서 내려왔 지. 그때는…… 참 어렵고 힘들
었는데.”
“돌아가신 곳 찾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강진은 정복립 뒤에 있는 정복 남을 힐끗 보았다. 정복립은 어 디인지 몰라도 정복남은 기억하 고 있을 수 있었다.
강진의 물음에 정복립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형이 죽은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으면 나야 당연히 좋지. 하 지만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지금은……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을 거야.”
찾으려고 해 봤지만 찾지 못한 것도 있었고 말이다.
정복립의 말에 강진이 정복남을 보았다. 그 시선에 정복남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죽은 건 전라도 순창 일 대의 한 산이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가서 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많이 변해서 저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복남도 잘 모르겠다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 정도면 지도라도 있었 겠지만, 일반 병사가 지도를 가 지고 있진 않았을 테니까.,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정복립 을 보았다.
“제가 용한 무당을 알고 있습니 다.”
“무당?”
“혹시 모르니 한 번 만나보시겠 어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피식 웃 었다.
“젊은 사람이 무당 같은 것을 믿나?”
“어르신은 점 같은 것 안 보세 요?”
강진의 물음에 정복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손으로 이루고, 내 눈 으로 보고 들은 것만 믿네.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있고 운명 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나? 귀신
이 있었으면 지금 내가 아는 사 람 중에 스무 명은 이미 귀신이 잡아가도 진즉에 잡아갔을 것이 네.”
“잡아가요?”
“그것들은 사람 자식이 아니거 드 ”
인상을 찌푸린 정복립이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얼마 전에 그 자기 자식 보육원에 두고는 나 몰라라 하다가 자식 죽고 나서 보험금하
고 유산 가져간 아비라는 작자도 있지. 그런 놈……
말을 하던 정복남은 한숨을 쉬 었다.
“그 자식을 두고 죽은 어미가 알면 얼마나 한이 되겠나. 무덤 에서 벌떡 일어나서 ‘너 이 자 식’하고 달려들 일이지.”
“고 문지혁 씨 뉴스 보셨나 보 네요.”
“요즘 많이 나오니까.”
정복립의 말에 오진섭이 입맛을
다셨다.
“그 힘든 전쟁 통에서도 부모는 자식을 한 팔에 안고, 등에 업 고, 손으로는 잡고…… 감자 하 나를 다섯이 나눠서 먹으면서도 헤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 는데…… 세상이 왜 이리 됐는지 모르겠네.”
“그건 세상 탓이 아닐세.”
“그럼?”
“그냥 그 자식이 나쁜 자식인 게지.”
“그 말이 맞구만.”
“그래도 그 오성화학인가에서 소송을 건 뉴스 보니 마음이 후 련하더군.”
“광고 위약금 말하는 거지?”
“자네도 뉴스는 보는구만.”
“요즘은 뉴스가 제일 재밌어.”
“오성화학에서 그 아비라는 자 에게 받은 위약금을 전액 기부한 다고 하니 그것도 재밌더군.”
“위약금이 세 배라지?”
“후! 욕심부리다가 망한 게지. 자식 목숨 값을 그렇게 받았으면 그냥 숨어서 살 것이지, 뭐 잘났 다고 얼굴을 들이밀어?”
정복립의 말에 오진섭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숨을 쉬었다.
“통쾌하기는 하지만 입이 쓰기 는 해. 부모란 자가 그런 짓을 하니 말이야. 그 하나 남은 딸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
“그건 그러네. 그냥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 이야기였다면 얼마 나 좋겠나.”
고개를 젓는 두 노인을 보며 강 진이 말했다.
“그래서 무당 만나보시겠어요?”
강진의 말에 오진섭이 웃으며 말했다.
“후! 이 친구는 무당이라면 아 주 치를 떠는 인간이라 안 만날 걸세.”
“왜요?”
“나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데, 무당은 말 몇 마디로 사람들 현혹해서 돈 뺏어 먹는 人!•기꾼이
라고 생각을 하거든. 장난으로 친구들이 사주 봐 준다고 해도 안 보는 친구야.”
“사주대로 살 거면 사람이 왜 노력을 하고 공부를 하나? 그냥 사주대로 살다 가면 되는 거지.”
말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젓는 정복립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 시다가 말했다.
“음…… 그래도 한 번 보셨으면 좋겠는데……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그를 보
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복채가 얼마인데?”
“복채는 손님이 듣고 주고 싶은 대로 주시면 된다고 하셨어요.”
“그것도 무당의 상술이야. 그렇 게 말을 하고 조금 주면 염병을 하겠지.”
“그런 분 아니세요.”
강진이 급히 하는 말에 정복립 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자네와 친한 사이인가?”
“많이 친해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에 오진섭이 말 했다.
“사장님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 니 재미 삼아 한 번 보지 그러 나. 복채는 내가 내지.”
“돈이 없어서 그러나? 그럴 돈 있으면…… 나도 그 보육원이라 는 곳에 기부를 하겠네.”
그러고는 정복립이 강진을 보았 다.
“일단 미안합니다.”
존대를 하며 사과를 하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가고 싶지 않으시면 안 가셔도 됩니다.”
“아니, 가기는 할 겁니다. 제가 사과를 한 것은 사장님이 저 생 각을 해서 해 준 말이었고, 사장 님의 지인인데…… 내가 무당이 라는 직업에 대해 너무 나쁘게만 말을 해서 사과를 드리는 겁니 다.”
“아…… 그거라면 사과를 받겠 습니다.”
이 사과는 자신의 것이기도 했 지만, 소월향이 받아야 할 사과 이기도 했다.
소월향은 그런 사기꾼 무당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니 말이다.
“그래서 무당집이 어디입니까? 혹시 멉니까?”
“멀지 않습니다. 저희 가게 바 로 옆에 핸드폰 가게 있는데 거 기 사장님이세요.”
“핸드폰 가게 사장이 무당?”
의아해하는 정복립을 보고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핸드폰 파시고, 단골 분들에게는 점을 봐 주세요. 그 리고…… 정말 대단한 무당이세 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진짜 무당이세요. 그러 니 가시면 정중하게 대해 주세 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생각난 김에 지금 다녀오 겠습니다.”
“음식 더 안 드시…… 아, 다 드셨구나.”
강진이 냄비를 보다가 웃었다. 바닥까지 깨끗하게 다 먹어 치운 것이다.
정복립은 웃으며 지갑을 꺼내 아크릴 통에 섰다.
“저번에 보니 여기에다 손님들 이 알아서 돈을 내시더군요.”
“직접 주시는 분들도 있고 거기 에 넣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손님들이 돈을 적게 넣 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배고픈 사람 밥 한 끼 줬 다고 생각을 하면 되겠죠.”
강진의 답에 정복립이 그를 보 다가 웃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 만큼 좋은 선행도 없지요. 알겠 습니다.”
정복립은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를 여럿 집어서는 아크릴 통에 넣었다.
“어! 그렇게 많이 안 넣으셔도 되는데. 이거 한 이만 원 정도밖 에 안 되는데요.”
소주를 좀 마시기는 했지만 그 래도 이만 원이 안 넘는데 넣은 돈은 대충 봐도 한 여섯 장은 되 는 것 같으니 말이다.
“돈 없는 사람은 돈을 좀 모자 라게 내고, 돈 있는 사람은 돈을 조금 더 내야 균형이 맞지 않겠 습니까. 그리고 제 돈으로 사람
들이 밥을 먹으면 저도 선행을 쌓게 될 테고요.”
정복립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오진섭이 피식 웃고는 자기도 지갑을 꺼내서는 돈을 뭉텅이로 안에 넣었다.
“오늘 돈 넣었으니 다음에 올 때는 몸만 오겠네.”
“그렇게 하세요.”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오진 섭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