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657화 (655/1,050)

657화

가게를 나서며 오진섭이 정복립 의 어깨를 툭 쳤다.

“역시 대장을 따라다니면 늘 재 밌어.”

“그래서 내가 따라오라고 했잖 나. 그럼 어디 점이나 보러 갈 까?”

얼큰하게 취한 두 노인이 핸드 폰 가게로 걸음을 옮기자, 강진 이 그 뒤를 배웅하고는 정복남을

보았다.

“핸드폰 가게 사장님은 정말 귀 신을 보는 무당이세요. 그분에게 사연 이야기해 주고 유골이 있을 곳을 알려 주세요.”

“정말 귀신을 보는 겁니까?”

“귀신 보는 제대로 된 무당 보 신 적 없으세요?”

“복립이가 무당을 안 좋아해서 볼 일이 없었습니다.”

“사장님은 정말 보시니 가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노인이 핸드폰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보 던 정복남에게 강진이 문득 물었 다.

“그런데 동생분이 존댓말을 입 에 달고 사시네요?”

분명 아까는 편하게 지내자고 했는데, 마지므수에 가서는 정색을 하며 다시 존대를 하니 말이다.

정복남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 다.

“예전에 제가 동생한테 말에 요 자만 붙여도 사람들이 욕을 안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강한 사람은 화를 내는 사 람이 아닌, 낮은 목소리로 존대 를 하는 사람이라고도 이야길 해 주었고요. 그래서 복립이는 친한 사람이 아니면 욕이나 반말을 하 지 않습니다.”

“ 아.”

“힘든 시기를 살아온 복립이의 삶의 철칙입니다.”

정복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말했다.

“가 보세요. 상담 잘 받으시고 요.”

강진의 말에 정복남이 고개를 숙이고는 핸드폰 가게로 가더니 유리벽 안을 보다가 가게로 들어 갔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식당 안으 로 들어왔다. 어느새 여자 직원 들이 나와서 홀을 정리하고 있었 다.

“소 사장님 가게에 가셨어?”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응."

"O'.

“유골은 이미 진토 돼 사라졌을 테고…… 형 죽은 곳이라도 알면 제사라도 지낼 수 있겠네.”

“그럼 좋겠는데…… 정복남 씨 도 자신이 정확히 어디에서 죽었 는지는 모르시더라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리 걱정할 필요 없을

걸.”

“왜?”

“귀신은 자신이 죽은 곳을 멀리 못 떠나는 것 알지?”

“그건 알지. 하지만 그분은 수 호령이 잖아.”

“수호령이라고 해도 자신이 죽 은 땅과는 연결이 되어 있을 거 야. 자신이 죽은 장소와 귀신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

“하긴, 그럴 수 있겠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배용 수가 말했다.

“지금이야 거리가 멀어서 못 느 끼겠지만, 가까이 가면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가장 좋지.”

“근데 죽은 곳을 찾아도 승천할 것 같지는 않던데?”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말을 이 었다.

“동생 죽으면 그 앞에서 웃으며 맞이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아……

“같이 승천하는 것이 소원이라 더라. 이승에서 못 다한 시간 저 승에서 같이 있고 싶다고.”

“같이 승천하시면 가장 좋기는 하겠다. 힘든 저승 생활 서로 의 지하며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뭐 그래도 형 기다린다고 일찍 죽으라고 할 수는 없지.”

“후! 설마 내가 그런 걸 빌겠 어. 그리고 형님 분도 동생이 살 만큼 사시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

이하는 것을 원하시겠지.”

강진은 웃으며 TV 를 틀었다. 그러고는 채널을 돌리던 강진은 문지혁 사건에 대한 뉴스가 나오 자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방송에서는 오성화학이 민사를 넣었다는 소식을 다루며 변호사 들이 판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성화학에서 충분히 승소할 수 있고, 위약금도 받아낼 수 있다 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그 사람이 인터넷에 악 성 댓글을 단 사람들을 명예훼손 으로 고소를 했다는 내용도 언급 이 되었다.

“고소를 했네?”

“악성 댓글 다는 애들 고소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어쨌든 저 사람도 대단하다. 욕먹을 짓 을 했으면서 사람들이 욕한다고 고소를 하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조금은…… 조금 그러네.”

“왜?’’

“욕먹을 짓을 한 사람이기는 한 데…… 악성 댓글 다는 놈들한테 면죄부를 준 것 같아서. 저 사람 은 욕을 해도 되니 그동안 너희 가 달고 싶었던 악성 댓글을 막 써라, 하고 말이야.”

“신경 쓰지 마. 저 일이 아니더 라도 악성 댓글 쓰는 놈들은 그 냥 쓴다. 그놈들이 뭐 생각하고 쓰냐? 오늘 기분 안 좋으면 쓰 고, 누가 나 쳐다봤다고 쓰고. 그

놈들은 자기가 악성 댓글을 쓰는 놈인지도 몰라. 그냥 데헷! 데헷! 하면서 댓글을 달지.”

“데헷? 어디서 그런 단어를 배 웠어?”

“인터넷에서.”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너도 인터넷 좀 끊어야겠다. 어디 이상한 것만 배워 오냐?”

“안 돼! 요즘 이거 없으면 살 수가 없어.”

핸드폰을 급히 품에 안는 배용 수를 보고 강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악플은 달지 말아라. 잔고 빠 진다.”

“악플은 무슨. 난 선량하고 건 전한 댓글들만 달아. 파이팅! 이 런 것들 말이야.”

“그래. 그런 것만 달아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뒤졌다.

“황태수.”

황태수의 번호를 찾은 강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전화를 걸었 다.

“오랜만에 전화를 하네.”

[이 번호는…….]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 진이 의아한 듯 핸드폰을 보다가 번호와 저장된 이름을 다시 확인 했다.

“응?”

“왜?”

“태수 핸드폰 정지됐는데?”

“왜?’’

“글쎄.”

핸드폰을 보던 강진은 황태수의 아버지인 황희승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이 번호는…….]

황희승의 번호도 없는 번호로 뜨는 것에 강진의 얼굴이 굳어졌 다.

“이게 무슨?”

보통 사람들은 번호를 잘 바꾸 지 않는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있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거기에 황태수는 아이라서 더더 욱 번호를 바꿀 이유가 없었다.

그에 조금은 심각해진 강진의 얼굴에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왜 그래?”

“태수 아버님 전화도 없는 번호 라는데.”

“태수 아버님도?”

w o ”

흐.

강진의 말에 배용수도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거 무슨 일 있는 것 아니야? 한번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잠시 기 억을 더듬었다.

“그 황희승 씨가 올 때 끌고 온 트럭……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 는데……

“청진공업!”

배용수가 소리를 지르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청진공업. 확실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인터넷 창을 열어서는 청진공업을 검색 했다.

같은 회사 이름이 몇 개나 있을 지 모르지만, 전화하다 보면 황 희승이 있는 회사가 나올 테니 말이다.

검색이 완료되자 스크롤을 주르 륵 내리던 강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충청도 공장 화재… 5명 사상

충청도에 위치한 청진공업 공장 에서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사망 하고 4명이 다쳤습니다.

소방서에서는 누전으로 인한 화 재로...

화재 발생 당시 직원 황 모 씨 가 다른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아 르바이트생을 구하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청진공업 측은…….>

뉴스를 본 강진이 작게 침음을 토했다.

“아……

그에 배용수가 급히 다가왔다.

“왜 그래?”

강진은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눈 을 감았다.

그러다 가게 앞에 쭈그려 앉아 식당 안을 들여다보던 황태수와

황미소의 모습을 떠올렸다.

동생 생일이라고 맛있는 것을 사 주겠다면서 꿈나무 카드와 컵 라면 다섯 개를 들고 가게 앞에 서 있던 황태수와 그런 오빠의 옆에서 웃고 있던 황미소를 떠올 린 강진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운명이라는 게 없고 사람 죽고 사는 것도 인과의 결과라고 하지 만…… 이건 너무하잖습니까. 그 냥 애들인데…… 작은 방에 살더 라도 아빠하고 살면 행복해하는

애들인데.’

“왜 그 마지막 남은 행복까지 가져가야 합니까……

강진은 저승식당을 하면서 죽음 에 대해 많이 무감각해진 편이었 다.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간 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죽 은 황희승도 안쓰럽지만 남은 아 이들이 너무나도 안쓰러운 것이 다.

강진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의

아한 듯 그를 보다가 핸드폰을 보았다.

그러고는 그의 얼굴도 굳어졌 다.

“제기랄……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토한 배 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던 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 고는 가게 문을 잠시 보다가 아 크릴 판에 글을 적었다.

〈금일 저녁은 휴업입니다. 죄송 합니다.〉

아크릴 판을 가게 앞에 세워두 고 온 강진이 이혜미를 보았다.

“혜미 씨, 저희 오픈 톡에 오늘 저녁 장사 휴업한다고 적어 주세 요.”

“알겠어요.”

강진과 배용수의 분위기가 심상 치 않은 것에 이혜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숨을 잠시 고

르고는 말했다.

“태수하고 미소, 기억들 하시 죠?”

“강진 씨, 불안하게 왜 그래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이혜미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태수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 다.”

“아……

“어떡해.”

여자 귀신들이 놀란 얼굴로 강 진을 보았다. 그녀들도 아이들이 기억에 생생했다. 분명 아이들에 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아버지뿐 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다

니.

게다가 황태수는 아직 초등학교 2학년 정도밖에 안 되고, 황미소 는 아직 학교도 안 가는 어린아 이인 것이다.

“저 애들에게 다녀올게요.”

“주소 아세요?’’

“다행히 애들이 주소를 보내 준 것이 있습니다.”

말을 하던 강진이 한숨을 쉬었 다. 애들이 가고 초반에는 몇 번 연락을 했었다. 다행히 학교생활 을 잘 하는 것 같아서 연락이 줄 기는 했는데…….

‘내가 자주 연락을 했어야 했는 데.’

속으로 한숨을 쉰 강진이 불을 끄고는 여자 귀신들을 보았다.

“같이 가실래요?”

“그래요. 저희도 같이 가요.”

여자 귀신들의 말에 강진이 배 용수를 보았다.

“ 가자.”

배용수가 앞장서서 뒷문으로 향 하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뒤를 따라 지신의 차에 올라 탔다.

*  * *

부응!

내비게이션이 가리키고 있는 빌 라 단지 근처에서 강진은 세부 주소를 확인했다.

“여기인 것 같다.”

강진이 좀 낡은 빌라를 보며 말 을 하자 배용수가 건물을 보다가 차에서 내렸다.

“나 차 주차하고 올게. 네가 근 처 귀신들한테 수소문 좀 하고 있어.”

“그럴 거면 호철 형 좀 불러.

그런 건 형이 잘하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최호철을 불렀다.

화아악!

모습을 드러낸 최호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어디야?”

“용수한테 사정 좀 들으시고요. 저 차 좀 주차하고 올게요.”

강진은 주차할 만한 곳을 찾아 차를 세우고 빌라로 돌아왔다.

빌라 앞에 이혜미가 그를 기다리 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주위 귀신들한테 알아보러 갔 어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강진이 귀신들에게 아이들 행방 을 수소문하게 한 것은…… 애들 이 집에 없을 확률이 커서였다.

어린이집 다니는 여자아이와 초 등학교 저학년인 남자아이가 어

른이 없는 집에서 둘이서만 생활 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만약 집에 두 아이가 그대로 있 다면 대한민국 복지가 정말 문제 있는 것이다.

1층에 있는 집 번호를 확인한 강진은 잠시 있다가 벨을 눌렀 다.

띵동! 띵동!

그러고는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 런 답이 없었다. 그에 강진이 입 맛을 다시며 이혜미를 보았다.

그 시선에 이혜미가 고개를 저 었다.

“남의 집은 못 들어가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은 빌라 밖 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황태수 집 우편함을 보았다.

우편함에는 여러 고지서들이 들 어 있었다.

‘아직 이사는 안 간 건가? 아니 면 주소지 변경을 안 한 건가?’

고지서에 있는 이름이 황희승인 것에 조금 안도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고지서는 여전히 날아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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