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화
황희승의 앞으로 된 고지서를 보던 강진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빌라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배용수를 세 번 불렀다.
배용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강진 은 곧장 물었다.
“좀 알아봤어‘?”
“너 주차하고 금방 왔는데 뭘 어떻게 알아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보다가 이혜 미에게 말했다.
“호철 형하고 직원들 오면 어디 가지 말고 여기에 계세요. 용수 하고 삼십 분만 주위 돌아보고 올게요.”
“알겠어요.”
이혜미가 불안한 눈으로 빌라를 보며 답하자 강진은 배용수를 데 리고 걸음을 옮기며 핸드폰을 꺼 냈다.
“어디부터 갈 거야?”
“가까운 슈퍼.”
“슈퍼‘?”
“동네 사정은 동네 슈퍼가 가장 잘 아는 법이야.”
“요즘은 동네 슈퍼보다 마트를 많이 가잖아.”
“과자 한 봉지나 간장 사러 마 트를 가지는 않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배용수는 주
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오늘따라 귀신도 잘 안 보이 네.”
작게 투덜거리는 배용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서둘러 걸 음을 옮겼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던 둘은 핸드폰으로 위치를 찾았던 슈퍼 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드르륵!
“실례합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TV를 보 고 있던 중년의 아줌마가 고개를 돌리더니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강진이 일단 음료수를 하나 사서 돈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총각이네요. 이사 왔어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돈을 거슬러 주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서울에서 사람을 찾으러 왔습 니다.”
“사람? 경찰이에요?”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조폭 같이는 안 생겼는데.”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다시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얼마 전에 아이 둘이 여기로 이사를 왔었는데요. 황태수와 황 미소라고.”
“황태수…… 황미소……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
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강진이 말 했다.
“얼마 전에 공장에서 불이 나서 사람이 죽었는데, 모르세요?”
“아! 청진공업!”
“네.”
“그 집 아이들을 말하는 거구 나.”
“아세요?”
“알지. 그 집 아빠가 아이들 데 리고 과자 사러 자주 왔으니까.
어휴……. 애 둘 키우면서 열심 히 사는 것 같던데……
한숨을 쉬며 이야기하던 아주머 니가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왜 요?”
호기심과 경계가 어린 아주머니 의 눈빛에 강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이들이 저희 식당 단골이었 습니다.”
“식당 단골?”
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눈동자가 좌우로 살짝 흔들리는 것에 강진 이 입맛을 다셨다.
‘경계와 의심……
아주머니의 몸에서 보이는 시그 널을 읽은 강진이 차분히 말을 꺼냈다.
“처음 애들을 본 건 일요일이었 습니다.”
일단 아주머니의 경계심을 풀어 야 말이 술술 나올 것 같았다. 하긴, 서울에서 사람을 찾으러
왔다는데 경찰이 아니라고 하니 자기가 말을 해도 되나 싶을 것 이다.
그에 강진은 아이들과 얽힌 이 야기를 해 주었다. 동생 생일에 맛있는 거 사주려고 꿈나무 카드 와 컵라면을 들고 온 이야기부 터, 컵라면을 팔아서 밥값을 내 려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이야기를 들은 아주머니는 눈가 를 붉혔다.
“에휴! 태수 그 아이가 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기는 하지.”
“태수는 그런 아이니까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쓰러운 것들…… 아빠하고 손잡고 웃으며 과자 사러 오던 것이 이제는 아빠도 죽고……
재차 한숨을 쉬던 아주머니는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아이들을 찾으러 서울 에서 왔다고요?”
“네.”
“찾아서 어떻게 하려고요?”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했습니 다. 일단 걱정이 되어서 기사 보 자마자 바로 내려왔습니다.”
“그래도 애들이 다행이네. 자기 들 걱정돼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분도 있고.”
말을 하던 아주머니는 자양강장 음료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라도 먹어요.”
“고맙습니다.”
강진은 사양하지 않고 음료를 받았다.
무언가를 준다는 행위는 호감의 표시다. 또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고 다가가겠다는 표시이니 거 절을 할 이유가 없었다.
강진이 음료를 받자 아주머니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런데 어쩌지.”
“네?”
“집에 아이들 없어요?”
“ 없던데요.”
“이런…… 그럼 나도 잘 모르는 데……
“모르세요?”
“그냥 어느 날부터 안 온 것 같 아요.”
“아…… 그럼 혹시 아실 만한 분이 없을까요?”
“청진공업에 전화를 해 보지 그 랬어요?”
“아! 제가 그 생각을 못 했네
요.”
“연락처는 알아요?”
“인터넷에 확인해 보면 알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서랍을 뒤졌 다. 그러다가 명함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이게 거기 회사 번호예요.”
아주머니가 준 명함에는 청진공 업 황희승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이들이 외상을 하게 되면 외 상값 자기가 주겠다면서 명함을 주고 갔었어요. 근데 그 애들이 어디 외상을 할 애들인가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애들 보면 내가 걱정한다고 전 해줘요.”
“알겠습니다.”
가게를 나온 강진은 명함을 보 았다. 명함에는 개인 전화번호와
회사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에 강진이 회사 전화번호로 전 화를 걸었다.
[청진공업입니다.]
“안녕하세요.”
강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전화 를 걸긴 했지만, 막상 뭐라고 말 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네, 말씀하세요.]
“저는 황희승 씨와 아는 사이입 니다.”
[황희승 주임님요?]
“네. 제가 오늘 기사를 봐서요. 아이들이 걱정돼서 서울에서 여 기로 왔는데 아이들이 집에 없어 서요. 혹시 아이들에 대해 아시 는 것이 있으십니까?”
강진의 물음에 직원이 잠시 있 다가 말했다.
[저는 잘…… 연락처 남겨 주시 면 제가 알아보고 전화드리겠습 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걸로 통화를 끊은 강진은 입 맛을 다셨다. 회사 쪽에서도 태 수와 미소 행방을 잘 모르는 듯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이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식이 몇인지 같은 것은 잘 모르는 것이다.
설령 아이가 있다는 것은 알았 다 해도, 그 아이들 행방까지는 알기 어려울 것이었다.
아이들 행방을 말해 줄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강진이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잠시 만지작거릴 때, 배용수가 물었다.
“모른대?”
“모른다네.”
“에이! 같은 회사 사람이 죽었 으면 그 자식들 어떻게 사는지 좀 확인도 하고 하지.”
투덜거리는 배용수를 보며 강진 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이제 어디 가?”
“부동산.”
“ 부동산?”
“최소한 집주인은 애들이 집을 뺐는지 안 뺐는지 알 것 아냐.”
“아!“
배용수가 급히 뒤를 따라오자 강진은 서둘러 동네 입구 쪽에서 본 부동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할 필요도 없었다. 부동산 주인이 그 집은
진즉에 방을 뺐다는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다.
“그럼 거기 살던 아이들은요?”
강진의 물음에 부동산 주인이 한숨을 쉬었다.
“이사 가는 날 그래도 걱정이 돼서 가 봤는데……
주인은 입맛을 다셨다.
“여자애가 어찌나 우는지.”
울었다는 말에 강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많이…… 울었나요?”
“많이 울었지. 하아!“
재차 긴 한숨을 내쉰 주인은 고 개를 저었다.
“그 옆에서 남자애는 가족사진 들고…… 동생 손 꼬옥 잡고 그 냥 입술만 깨물고 있는데…… 그 게 또 얼마나 안쓰러운지. 그냥 울지 말이야.”
주인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애가 철이 너무 많이 들었어.”
“그럼 두 아이는 어떻게 됐습니 까?”
“그 청진공업 사장인가 하는 사 람이 데려가는 건 봤지.”
“청진공업 사장님이 데려갔어 요?”
“애들이 친척도 없으니...... 청 진공업 사장이 데려간 거지. 듣 자 하니 불이 크게 날 뻔한 걸 그 애 아빠가 발견해서 신고하고 인화물질 치우고 사람들 대피시 켰다던데. 안 그랬으면 공장 다 불타고 인명 피해도 컸을 거라
하더라고. 그러니 양심이 있으면 애들을 챙겨 줘야지.”
“그나마 애들끼리 있는 것이 아 니라서 다행이네요.”
강진의 말에 주인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건 그렇지.”
“말씀 감사했습니다.”
“아니야. 혹시 아이들 이야기 들으면 나한테도 전해줘. 그 애 들 생각하면 가슴이 막힌 것처럼 답답해.”
말을 하며 주인이 명함을 주자, 강진이 그것을 받아들고는 부동 산을 나왔다. 그러고는 빌라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금세 도착한 빌라 앞에는 귀신 들이 모여 있었다.
“호철 형.”
“알아보고 왔어?”
“아이들은 공장 사장님이 데리 고 갔다네요.”
“그나마 다행이네.”
“형은요?”
“나야 귀신들 만나 봤는데, 여 기에 있을 때 정도밖에는 모르더 라고.”
“잘…… 지내기는 했대요?”
“잘 지냈대. 남자애가 여자애 손 꼬옥 잡고 다니는 것을 귀신 들이 기억하더라고.”
“여기서도 늘 같이 다녔나 보네 요.”
작게 미소를 짓던 강진이 문득 물었다.
“아주머니 귀신은요?”
“수호령도 뭐 잘 지내고 있었다 네. 여기 있는 아주머니 귀신 한 분하고 친해져서 자주 이야기를 했다는데, 애 아빠가 열심히 하 는데 몸이 안 좋아서 걱정을 하 더래.”
“몸이 안 좋아 보이기는 하셨 죠.”
말을 하던 강진은 핸드폰을 지 그시 보았다.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마 침 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그 황희승 주임 아는 분이라고 요?]
“맞습니다.”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는 아이들이 자주 오던 식당 사장입니다.”
강진이 식당에 오곤 했던 아0]
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자, 상대 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서울에서 먼 길 와 주셔서 감 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소식을 늦게 알아서 너무 늦게 왔습니다. 그 런데 혹시 사장님이세요?”
[맞습니다.]
“아.. 사람들에게 물으니 사
장님이 아이들을 데려갔다고 하 시던데요.”
잠시 말이 없던 상대가 입을 열
었다.
[아이들…… 지금 보육원에 있 습니다.]
“보육원요?”
[그…… 음……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강진은 고개를 급히 저었다. 상 대가 보지는 않겠지만, 강진은 충분히 이해를 했다.
“남의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 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고 있습니다.”
진심이었다. 남의 아이를 데려 다 키우는 건 인정으로 되는 일 이 아니었다.
아이들 눈치 보게 할 거라면 차 라리 보육원에서 더 잘 자라게 해 주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일 이었다.
[후우! 마음 같아서는 제가 데 려다 키우고 싶었는데…… 말씀 대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두 아이
는요?”
[태운 보육원에 있습니다. 아! 제가 최대한 알아봐서 좋은 원장 님 계신 좋은 시설에 맡겼습니 다.
“태운 보육원. 알겠습니다. 그리 고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이것밖에는 못 해줘서 죄송합니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은 서 둘러 차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애들 보육원에 보냈대?”
“ O ”
차에 올라탄 강진은 핸드폰으로 태운 보육원을 검색하고는 그곳 으로 차를 몰았다.
강진이 태운 보육원에 도착한 시간은 네 시가 넘어서였다.
태운 보육원도 작은 동네의 외 곽에 위치해 있었다. 동네는 크 지는 않았는데, 옆에 작은 강이 흐르고 있어서 시원한 느낌을 주
는 그런 곳이었다.
보육원을 보던 강진이 숨을 크 게 쉴 때, 배용수가 외쳤다.
“야! 저기 있다!”
배용수의 외침에 강진이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보육원 한쪽 구석진 곳 나무 밑에 황태 수가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었 고, 황미소는 손으로 땅에 그림 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두 아이의 뒤 에…….
아주머니 귀신과 황희승이 있었 다.
황희승 또한 수호령의 상태로 남은 듯했다. 그런 황희승의 모 습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 다.
‘어떻게…… 발길이 떼어졌겠어 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 식이 둘이나…… 이렇게 어린데.’
강진은 아이들과 두 수호령을 지그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