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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661화 (659/1,050)

661 화

배용수가 건넨 고무장갑을 낀 임선혜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장 갑을 만지작거릴 때 강진이 말했 다.

“계란찜은 만드는 데 오래 걸리 지 않으니 다른 음식들을 만들어 보시죠.”

“다른 음식요?”

“태수 아버님이 드시고 싶은 건 계란찜이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해 주시던 집밥일 것 같으니까 요. 어머니가 생전에 하시던 음 식을 좀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두 분이 같이 먹으면 좋겠네요.”

그러고는 강진이 냉장고를 열었 다.

“재료는 여기 있어요.”

강진의 말에 임선혜가 고무장갑 을 만지작거리다가 슬며시 재료 들을 만졌다.

“재료들이 만져져요.”

“그러니 음식 만드셔야죠.”

이것저것 재료들을 만지던 임선 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실례 좀 할게요.”

임선혜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냉장고를 가리켰다.

“마음껏 털어 보세요. 아! 만드 시는 김에 조금 많이 만드셔도 됩니다.”

“많이요?”

“이왕 만드는 거 저희 손님들도 같이 먹을 양이면 좋죠. 그리고 음식은 조금보다 많이 만들어야

더 맛도 있지 않겠어요?”

“알겠습니다.”

웃으며 임선혜가 재료들을 꺼내 자, 배용수가 다가와 도우며 말 했다.

“뭘 만들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재료들을 꺼내 드릴게요.”

“국물 좀 있게 제육볶음하고 계 란찜, 계란말이, 그리고……

임선혜가 자신이 만들려는 음식 들을 말해주자 강진과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 맞게 재

료를 꺼내 다듬기 시작했다.

다다닥! 다닥!

도마에서 나는 칼 소리를 들으 며 임선혜가 미소를 지었다. 이 렇게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 살아 있을 때 저녁을 준비하던 것이 떠오르는 것이다.

‘애들도 먹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임선혜는 한 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큰 욕심이었다.

저승식당 영업시간이 다가오자 강진이 임선혜와 황희승을 가게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가게 안에서 현신하는 것보다, 가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면서 현신하는 걸 귀신들이 더 좋아하 니 말이다.

밖으로 나온 두 귀신은 길거리 에 모여 있는 귀신들을 보고는 움찔했다.

이렇게 많은 귀신들이 모여 있 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귀신이 정말 많아요.”

임선혜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가게가 귀신들 식당이라 식사 시간이 되니 다들 모이시는 겁니다. 일종의 직장인들 점심시 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말 신기하네요. 귀신들에게 밥을 주는 식당이라니.”

임선혜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이고는 귀신들을 보았 다.

“오늘 저녁은 여기 있는 태수 어머니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러 니 오늘은 드시고 싶은 메뉴가 따로 있으셔도 친구 집에 놀러 왔다 생각하시고 드셔 주시기 바 랍니다.”

“우리야 아무래도 상관없지.”

“양만 많으면 상관없습니다.”

귀신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임선혜를 보았다.

“한 말씀 하세요.”

“제가요?”

“오늘 음식을 한 요리사시잖아 요.”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임선 혜가 잠시 있다가 귀신들을 보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한 음식이 라…… 맛이 없어도 맛있게 드셔 주세요.”

“하하하! 아닙니다. 저희같이 배 고픈 귀신들은 찬밥 한 덩이 주

셔도 다 맛있게 먹습니다.”

“그래도 찬밥 한 덩이는 아니겠 죠.”

귀신들이 하는 농에 임선혜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준비할 테니 손님들 들어올 때 같이 들어오세요.”

“알겠습니다.”

황희승의 답에 강진이 가게 안 으로 들어갔다. 홀에서는 직원들 이 분주하게 음식들을 세팅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은 냉장고 에서 소주와 음료수들을 꺼내 자 리마다 가져다 놓았다.

“이제 다 됐나?”

“된 것 같은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건?”

“냉장고에 반 조리 상태로 놔뒀 어.”

배용수의 답에 재차 고개를 끄

덕이던 강진의 귀에 띠링! 소리 가 들렸다.

그에 고개를 돌린 강진은 황민 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그에 게 다가갔다.

“형.”

“영업 준비하나 보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기는. 간단하게 맥주 한 모금 하고 들어가려고 왔지.”

“형 요즘 술을 조금씩 드시는

것 같아요. 몸 조절 해야죠.” 임신을 하는데 술은 금물이니

말이다.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아.”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

다.

“아까 와 보니 가게 문 닫혀 있

던데? 무슨 일 있었어?”

“저녁에 오셨어요?”

“오늘 미팅이 있어서 저녁 먹고 가려고 왔는데 문이 닫혀 있더라

고.”

“전화를 하시지.”

“네가 일요일도 아닌데 장사 접 을 정도면 일이 있나 싶어서 전 화를 안 했지.”

황민성이 온 이유는 이것이었 다. 맥주는 핑계고 강진이 저녁 장사를 안 하기에 무슨 일이 있 나 해서 걱정이 되어 와 본 것이 다.

그런 황민성을 보던 강진이 입 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내일 보육원 가실 거 죠?”

“그러려고 하는데, 왜?”

“내일은 충청도에 있는 보육원 으로 가려고요.”

“충청도?”

“그…… 형 보신 적 있나? 태수 하고 미소?”

“태수하고 미소?”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지. 그 여동생 데리고 멀리서 밥 먹으러 왔던 애 아니 야?”

“맞아요.”

“그 애들 아빠하고 지방으로 이 사 갔……

말을 하던 황민성이 눈을 찡그 렸다.

“설마…… 문지혁과 비슷한 경 우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급히 고 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절대 아니 에요.”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왜 두 이야기를 같이 해. 긴장했잖아.”

이때까지 가 본 적 없는 충청도 보육원 이야기를 하다가 황태수 와 황미소 이야기를 하니 혹시나 해서 걱정을 한 것이다.

문지혁과 문지나 일이 바로 얼 마 전에 있었으니 말이다.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하 려 할 때, 가게 문이 열렸다.

띠링! 띠링!

그리고 귀신들이 하나둘씩 안으 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민성 씨 오랜만에 왔네요.”

“안녕들 하세요.”

몇 번 자리를 같이 해서 안면이 있는 귀신들이 인사를 하자 황민 성도 마주 인사했다.

손님들이 제각각 자리에 앉는

사이, 강진은 황민성을 신기한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는 황희승과 임선혜에게 데려 갔다.

“이쪽은 임선혜 씨. 태수 어머 니세요.”

“아…… 처음 뵙겠습니다. 황민 성입니다.”

황민성이 인사를 하자, 임선혜 가 그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몇 번 가게에서 본 적이 있으신 분이네요.”

“제가 태수를 봤으면 어머니도 저를 보셨겠네요.”

“그런데 사람이신데…… 어떻게 여기에?”

가게 밖에서나 안에서나 모습이 그대로인 걸 보면 분명 사람이 맞았다. 그런데 귀신 장사를 하 는 이곳에 어떻게 들어와 있나 싶은 것이다.

“제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인지 저승식당에도 오고 그럴 수 있더군요.”

황민성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그를 보다가 황희승을 가리 켰다.

“그리고 이쪽은 태수 아버님이 세요.”

황희승에게 고개를 숙이려다가 뭔가를 떠올린 황민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황희승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민성의 예에 황희승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린 자식들 두고 먼저 가 버 린 죄인입니다.”

황희승의 말에 황민성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강진을 보았다. 귀신이 된 황희승을 보니 강진이 한 말이 이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충청도 보육원을 이야 기한 거니?”

“네.”

강진의 답에 황민성이 황희승과 임선혜를 보다가 빈자리를 가리

켰다.

“배고프실 텐데 일단 자리에 앉 으시죠.”

황민성이 자리를 안내하자 두 귀신은 자리에 앉다가 자신들이 앉은 의자를 손으로 만졌다.

의자가 손에 만져지는 것이 신 기한지 연신 만지작거렸다.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현신이라고 해서 저희 식당에 서는 귀신들도 이 시간에는 사람 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혹시……

임선혜가 2층을 올려다보았다.

“애들 좀 안아 봐도 될까요?”

“죄송합니다. 그건…… 안 됩니 다.”

“아…… 역시 그렇겠죠.”

임선혜가 한숨을 쉬는 것에 황 희승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죄송합니다. 우리 안사람 이…… 미소 낳다가 이렇게 돼서 애를 안아 본 적이 없습니다.”

“아……

황희승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임선혜를 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한데…… 현신이 되는 범 위는 저희 식당까지라 2층에 올 라가면 다시 귀신이 되십니다. 그래서 올라가셔도 애를 안으실 수 없어요.”

“그렇군요. 제가 욕심이 너무 컸네요.”

“욕심이라니요. 어머니가 자식

안아 보고 싶은 건 당연한 거죠. 그건…… 욕심이 아닙니다.”

임선혜가 한숨을 쉬자, 황민성 이 강진을 보았다.

“애들 2층에 있어?”

“오늘 보육원에서 제가 데리고 왔어요.”

“오늘 안 거야?”

이미 알고 있었더라면, 자신에 게 이야기를 했을 테니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사연을

이야기해 주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며 무릎을 손으로 쥐었다. 많이 놀랐고, 많이 힘들었겠다는 위로의 표시였다.

그러다가 황민성이 두 귀신을 보았다.

“식사들 하세요. 저는 강진이하 고 잠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황희승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 진이 소주를 따서는 잔에 따르려 했다. 그에 황희승이 고개를 저

었다.

“저는 술을 안 먹습니다.”

“술을 안 드세요?”

“예전에는 먹었는데……

황희승이 웃으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우리 태수 엄마 죽고 나서는 술을 먹지 않습니다. 애들 키우 려면 건강해야 하는데 술은 몸에 안 좋으니까요.”

황희승의 말에 임선혜가 그를

보다가 강진이 든 소주병을 잡아 서는 따라주었다.

“당신 열심히 하셨어요. 그러니 이제는 좀 드셔도 돼요. 귀신인 데…… 설마 술 때문에 죽겠어 요?”

임선혜의 농에 황희승이 그녀를 보다가 잔에 따라진 소주를 보았 다.

그러다가 그녀의 잔에도 소주를 따라주었다.

“당신이 이렇게 오래 내 곁에

있는 줄 몰랐어. 외롭게 해서 미 안해.”

“아니에요.”

두 귀신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을 보던 황민성이 강진을 데리고 주방에 들어갔다. 그 모습에 배 용수도 무슨 일인가 싶어 급히 따라 들어왔다.

주방에 선 황민성이 강진을 보 았다.

“애들…… 네가 키우려는 거 니?”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쓰게 웃 었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있지 만…… 그건 저도 애들도 힘들어 서 안 될 것 같아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민성은 혹시라도 강진이 애들 안쓰럽다면서 같이 살겠다고 할 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그 또한 아이를 입양하려고 생 각했을 때,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에 입양을 완전히 포기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친자식과 입양 을 한 아이를 차별할 수도 있으 니 말이다.

자신은 안 그럴 것 같지만, 사 람의 마음이라는 건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법이다.

“잘 생각했어. 애들이 안쓰럽기 는 하지만…… 가족을 만드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 네 상황 을 생각하면 애들한테 안 좋은

영향이 있을 수도 있고.”

저승식당 이야기였다. 혹시라도 애들이 여기에서 살다가 귀신을 보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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