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669화 (667/1,050)

669화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강진은 반가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 다. 오자명과 이유비가 가게 안 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국회가 막 시작될 때라 여의도 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하 하하!”

“이번에 국회 열린다는 이야기 는 들었습니다. 잘 됐네요.”

“일하라고 뽑아 놨는데 파업들 하는 격이죠. 뭐가 됐든 간에 국 회에서 싸워야 하는데……

오자명의 말에 이유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유월을 넘기 지는 않았잖습니까.”

“더 빨리 열어야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젓 는 오자명을 보며 강진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두 분이서만 오

셨네요?”

“사무실에 일이 좀 밀려서 다른 친구들은 바쁘게 일하는 중이고, 나와 이 친구만 맛있는 것 좀 먹 고 싶어서 도망 나왔습니다.”

“잘하셨어요. 가끔 쉬기도 하셔 야죠.”

강진이 자리로 안내하자, 오자 명이 그곳에 앉으며 실내를 둘러 보았다.

손님들은 거의 다 빠지고 한 테 이블만 음식을 먹고 있었다.

“확실히 이 사장 가게는 일찍 오거나 늦게 오거나 둘 중 하나 로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손님들이 좀 많 은 편이기는 하죠.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저야 늘 먹던 대로 김치찌개에 두부 좀 따뜻하게 해서 주십시 오.”

“그럼 김치도 같이 볶아 드릴까 요?”

“아닙니다. 두부에 익은 김치

싸서 먹고 싶습니다. 아! 두부는 되는대로 바로 주십시오. 점심이 늦어서 그런지 배에서 요동을 칩 니다.”

“빨리 해 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유비가 말했다.

“그리고 김밥 좀 주문해도 되겠 습니까?”

“김밥요?”

“저희만 맛있는 것 먹으러 와서 미안하니 김밥을 좀 싸가려고 합 니다.”

“몇 인분이나 하시려고요?”

“이십 인분 정도면 될 것 같습 니다.”

“그럼 사십 인분요?”

“하하하! 아닙니다. 저희 두 방 합쳐서 이십 인분입니다. 십 인 분씩 싸서 주시면 될 것 같습니 다.”

“알겠습니다.”

강진은 주방에 들어가서 두부를 따뜻한 물에 담그고는 김치찌개 를 끓이기 시작했다.

홀에서 두 국회의원은 김치찌개 에 낮술을 한잔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김밥 한 줄을 가지고 홀로 나왔다.

“김밥 좀 드셔 보세요.”

“맛있겠네요.”

이유비가 김밥을 하나 집어 입 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으며 강진이 오자명을 보았 다. 오자명은 살짝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낮술 하시면 문 제 안 생기나요?”

“문제요?”

오자명이 보자, 강진이 말했다.

“그 술 마시고 국회 들어간 의 원이라는 제목으로 의원님을 뉴 스에서 보는 건 싫은데.”

강진의 말에 오자명이 웃었다.

“국회가 매일 열리는 것도 아니 고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은 일 때문에 마시는 거 아 니면 술을 먹을 시간도 없어요.”

오자명의 말에 이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형님은 저녁에도 일하시 고 주말에도 일을 하시니…… 일 하시는 시간에 술을 못 드시게 하면 364일은 술을 못 드시겠군 요.”

“364일요?”

왜 365일이 아니고 364일인가 싶어 보자, 이유비가 웃으며 말 했다.

“형님이 낭만파라 일 년 중에 형수님 생일 때는 무슨 일이 있 어도 쉬면서 같이 식사를 하시거 든요. 형수님도 한잔하는 것 좋 아하셔서 두 분이서 오붓하게 지 내십니다.”

이유비의 말에 오자명이 웃었 다.

“정치한다고 고생만 시키는데 일 년에 하루라도 아내 하고 싶 은 것 하게 해 주고 같이 있어야 지. 자네도 아내 생일날은 꼭 챙 겨줘. 할망구들은 나이 먹으면 자식, 손주 생일은 챙겨도 자기 생일은 못 챙기는 법이니까.”

“저도 꽤 잘 챙겨 주는 편입니 다.”

두 사람의 말이 듣기 좋다는 생 각을 하던 강진이 웃으며 물었 다.

“그럼 할머님 생신 때 뭐 해 주

세요?”

“할망구가 하고 싶다는 것 하는 데…… 작년에는 놀이터에서 같 이 놀고 싶다고 해서 놀이터에서 놀았습니다.”

“놀이터에서 요?”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고, 시소 도 타고…… 그 빙글빙글 도는 것도 타고 싶다고 해서 내가 천 천히 돌려줬습니다.”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할머니 즐거우셨겠네요.”

“다 늙은 노인네 둘이 그러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 보는데…… 꽤 부끄럽더군요.”

“부끄럽기는요. 부럽고 좋아 보 여서 쳐다봤을 겁니다.”

“후! 노망이 들었나 보지 않으 면 다행이지요.”

말을 하던 오자명이 민망한지 말을 돌렸다.

“국회 출입하는 기자들이 저를 대부분 좋게 생각해서 술 먹고 들어가도 기사 쓰는 분이 없습니

다.”

“그래요?”

“그리고 무소속 의원 한 명 까 는 것이 무슨 이슈가 되나요. 여 기 이유비처럼 거대 야당 정치인 을 까야 이슈가 되지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말이 많아 서 조심하라고들 하더군요.”

이유비의 말에 오자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작년에 국회에 올라온 법들 잘 좀 하지 그랬나.”

“그게 어디 제 마음대로 되겠습 니까. 그리고 여당도 저희 당에 서 나온 법 많이 발목 잡았습니 다.”

“그래서 내가 당에 안 들어가는 거야. 자기 당이나, 친한 쪽에서 나온 법이 아니면 아무리 법안이 좋아도 통과를 안 시키고 현미경 으로 들여다보니…… 결함이 안 보일 수가 있나.”

오자명의 말에 이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법이든 완벽하지 않았다.

현미경을 들이대듯 꼼꼼히 보면 어떤 법이든 결점이 보이기 마련 이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젓 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강진이 생 각이 났다는 듯 물었다.

“혹시 구하민 법이라고 아세 요?”

“사장님도 뉴스를 본 모양이군 요.”

말을 하며 이유비가 소주를 한 잔 마시자 강진이 급히 병을 들

어 한 잔 따라주었다.

이유비는 따라주는 술을 받고는 말했다.

“작년에 그 법 올라왔을 때 이 리저리 미뤄지다가 이번에 다시 이런 일이 터지니…… 말이 많습 니다.”

“왜 미루어진 건가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도 에서 떨어진다고 봤겠지요.”

입맛을 다시는 이유비를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

다.

“이번에 그 법 다시 올린다는 뉴스가 있던데요.”

“화제가 되니, 그 화제에 타려 는 의원들이 있지요.”

이유비의 중얼거림에 오자명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할 것은 아니지.”

이유비가 보자 오자명이 말을 이었다.

“화제가 되어야 국회의원 놈들

이 움직이는 것이 문제라고 봐야 지.”

“그 말이 맞습니다. 터지기 전 에 움직여야 할 텐데요.”

두 사람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터지고 나서라도 잘 만 들면 다행이죠. 작년에는 터지고 도 법안이 통과가 안 됐잖아요. 그리고 뉴스 보니 그동안 이런 일이 없지 않았고요.”

“그 말 들으니…… 고개를 못

들겠습니다.”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어.”

자신의 말에 두 국회의원이 한 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 것에 강 진이 말했다.

“사실 문지나 씨가 저희가 봉사 다니는 보육원 출신이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유비의 말에 오자명이 강진을 보았다.

“저희라고 하면?”

“오성화학 상식 형하고 전에 보 셨죠? 민성 형.”

두 사람의 이름에 이유비가 고 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강상식 대표는 요즘 사람이 많 이 변한 것 같더군요.”

강진이 보자, 이유비가 말을 이 었다.

“작년에 한 번 봤을 때는 사람 이 약간 기회주의자 같았는 데…… 요즘 들리는 이야기로는 사람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이유비의 말에 오자명이 강진을 보았다.

“들으니 보육원에 봉사 활동을 자주 간다고 하던데?”

“소문 안 내고 다니는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소문 안 내도 다 퍼지는 것들 이 있지요. 세상에 완전한 비밀 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보다 더 자주 다니세요.”

“언론에 소식 안 전해지는 것을 보면 사진 찍으러 가는 것도 아 닌 듯한데……

“저희도 사진은 찍습니다.”

“그래요?”

오자명이 보자 강진이 웃으며 손가락을 겹쳐 네모나게 만들어 서는 말했다

“이렇게 아이들을 찍어서 저희 마음속에 담아두죠.”

“좋은 사진기네요.”

오자명이 강진을 따라 손가락으 로 네모를 만들어 보이고는 말했 다.

“그럼 이번 고 문지혁 씨 일은 이 사장님과 강 사장이 알고 일 을 만든 겁니까?”

“저야 딱히 한 일은 없고, 상식 형이 알아서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고 문지혁 씨 유산 을 보육원에 기부하려고도 했고 요.”

“그럼 그 인터넷에 ‘강상식의 의도’라는 내용이 사실인 셈이군

요?”

“그런 셈입니다.”

“흠…… 그렇군요.”

“이번에 구하민 법 다시 올린다 고 하던데 두 분이서 도와주세 요. 여러 사람이 혜택을 보는 법 은 아니지만, 그래도 피해를 보 는 한두 사람도 국민 아니겠어 요?”

강진의 말에 오자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하민 법은 많은 국민에게 적

용되는 법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방치 되다시피 자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어야 적용되는 법이었다.

또 거기에 그 부모라는 자가 얼 굴에 철면피를 깔아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생각했을 때, 구 하민 법은 극히 일부에게만 적용 되는 법이었다. 그래서 작년에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될 수도 있 다. 워낙 일부에게만 적용이 되 는 법안이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오자명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법안은 두 명이 됐든 한 명이 됐든 적용 인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강진이 보자, 오자명이 말을 이 었다.

“이런 법은 국민의 사기와도 관 련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국민들이 분노하니까요. 국민들 열 안 받게 만드는 것도 저희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이 지요.”

“그 말이 맞습니다.”

이유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 자명을 보았다.

“소방관들 혜택을 위한 법안도 그와 비슷하지요. 혜택을 보는 것은 소방관들이지만, 그를 지지 하는 국민들의 사기가 오르니까 요.”

“맞아. 이 뉴스를 본 국민들이 얼마나 분노하는지 보게.”

이유비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한 번 당론을 모아 보겠습니 다.”

“모을 수 있겠어? 이번에 법안 대표 발의한 것이 여당이던데?”

“그래도 해 봐야죠.”

“그래. 잘 알아봐. 여당이 발의 한 법안에 야당이 도우면 그것만 큼 쉽게 통과하는 것도 없지.”

이야기가 잘 되는 것 같자 안도 의 한숨을 쉬던 강진이 문득 오 자명을 보았다.

“제가 어르신께 소개해 주고 싶

은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사람?”

“인권 변호사 하는 친구인데 사 람이 참 좋습니다.”

“인권 변호사라……

“지금은 친구들하고 모여서 작 은 변호사 사무실 만들어서 도움 필요한 사람들 변호해 주고 있습 니다.”

“좋은 일 하는군요.”

“전에 그 친구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의원님이 생각이 났습니 다.”

“하!”

오자명이 웃으며 말했다.

“저 같은 꼴통인가 봅니다?”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꼴통은요. 그냥 사람들 돕고 싶은데 법의 사각에 대해 좀 아 는 친구입니다.”

“혹시 취업 청탁하는 것은 아니

겠죠?”

“취업 청탁요?”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친구가 인권 변호사기는 해 도 그래도 변호사인데…… 의원 님 보좌관보다는 돈을 더 벌지 않을까요? 그리고 의원님한테 인 사 청탁이라…… 제가 그 친구한 테 욕먹습니다.”

“욕이요? 그래도 국회의원 보좌 진이면 나름 괜찮습니다.”

오자명의 말에 강진이 재차 고

개를 저었다.

“의원님 보좌진들 쉬는 날이 있 나요?”

“그야 일요일에……

말을 하던 오자명이 입맛을 다 셨다. 생각을 해 보니 주말에도 같이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시는 의원이 주말에 일을 하는데 자기들만 쉬기 애매 할 것이었다. 그러니 제대로 쉬 지 못하고 같이 나와서 일을 하

거나 야근은 밥 먹듯이 하는 것 이다.

“그런 직장에 취업 청탁이 라…… 연봉이 억대라고 해도 그 친구가 저에게 욕을 할 것 같습 니다.”

강진의 말에 오자명이 피식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그것도 그렇군요.”

맞는 말이었다. 내 자식이 만약 자신과 같은 상사 밑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당장 그만두라고 소

리칠 것 같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자신만큼 악덕 상 사가 없었던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