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4화
‘김치찌개하고 잡채, 그리고 제 육하고 계란말이 정도면 되겠 지?’
평소 이강혜가 좋아하는 음식들 이었다. 음식을 준비하며 강진이 오혁을 보았다.
“그런데 얼마나 이렇게 계신 건 가요?”
“글쎄요. 한 십 년 넘었나?”
“십 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 상태 로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잘 몰라서요.”
“그런데 말씀을 참 잘하세요.”
“왜인지는 몰라도 저와 비슷한 상태인 분들과 달리 저는 말을 좀 잘하더군요.”
비슷한 상태의 영혼들이 말을 잘 못하는 것을 그도 아는 모양 이었다.
“다른 분들 자주 보셨어요?”
“병원에 가면 저와 비슷한 분들 이 아주 많지요.”
그러고는 오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분들 보면, 그래도 나는 말이라도 잘하는구나 싶어서 안 도가 됩니다.”
오혁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 가 말했다.
“아주 성격이 밝으시네요.”
“하하하! 그런 이야기 많이 듣 습니다.”
기분 좋게 웃는 오혁을 보며 강 진이 미소를 짓고는 음식을 만들 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음식이 만들어지면 오혁에게 내 밀었다.
“저희 식당 오셨으니 음식 좀 드셔 보세요.”
강진이 주는 잡채를 받은 오혁 이 웃으며 그것을 집어 입에 넣 었다.
“이야! 정말 이게 얼마 만에 먹 어 보는 음식인지 모르겠습니다. 음! 이 잡채의 맛.”
웃으며 말을 한 오혁이 소주를 마시고는 말했다.
“예전에 우리 애기 꼬시려고 일 본 갔을 때가 생각이 나는군요.”
“ 일본요?”
“일본에 출장 있다고 속이고 애 기 데리고 가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왔었죠. 그때 우동 면발이 후루룩! 하면 이렇게 잡채처럼 매끄럽게 입안에 빨려 왔었는데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멈칫!
“우동…… 한 그릇 먹으려고 일 본을 가셨다고요?”
“아주 맛이 좋은 우동이었습니 다.”
단호하게 말하는 오혁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출장에 왜 이 사장님이 따라가나요?”
“아! 제 비서였거든요. 그런 드 라마 있지 않습니까. 재벌집 아 들이자 기획실 본부장 나오는 드 라마요.”
“아……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딱 드라마였 죠. 잘나가는 재벌집 아들이자 기획실 본부장인 나와 갓 입사한 비서실 여직원.”
“혹시 커피를 시켰는데 믹스 커 피를 내와서 마음에 안 들지만 그냥 마시는 그런 내용은 없었나 요.”
“하하하! 있었습니다.”
“아…… 있었군요.”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있었다 니…….
‘드라마가 현실 고증을 잘 했 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오 혁이 말을 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탕비실에서 만난 선배가 장난을 친 거였더군 요. 본부장님은 믹스 커피를 좋 아한다고요.”
“아
“그래서 몇 달 동안 믹스 커피 만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부러 드셨나 보네요?”
“싫어한다고 하면 미안해할까 봐요. 하하하!”
“그런데 그렇게 잘나가는 기획 실 본부장이 왜 신입 비서를 고 용한 거죠? 보통은 경력 되는 분 이 케어하지 않나요?”
강진의 물음에 오혁이 미소를 지으며 홀을 보았다.
“첫눈에 반했으니까요.”
“첫눈에요?”
“구두에 굽이 없더라고요.”
무슨 말인가 싶어 보자,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면접날에 보니 구두 굽이 없더 라고요. 그래서 구두 굽이 왜 없 습니까, 했는데 한쪽이 떨어져서 다른 쪽도 부러뜨리고 왔다고 하 더군요. 그 대답이 어쩐지 마음 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워 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예쁘기 도 하고.”
옛 기억을 떠올리는 듯 잠시 허 공을 보며 미소를 지은 오혁이 말했다.
“그래서 제 비서로 뽑았습니 다.”
“사심 가득하시네요?”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사심이 었고 선택이었습니다.”
오혁은 잡채를 후루룩!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잡채가 정말 맛이 좋습니다.”
“많이 드세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웃으며 잡 채를 먹고는 가게를 보았다.
“가게가 참 정이 가는 스타일이 네요. 우리 애기가 좋아할 만합 니다.”
“그러세요?”
“우리 애기가 이런 스타일의 가 게를 좋아합니다.”
이강혜를 애기라고 표현하는 것 이 조금은 불편했지만 강진은 별 다른 말없이 오혁을 보았다.
“예전에 데이트할 때 아내가 이 런 가게들에 저를 데려간 적이 있습니다. 아내 다니던 학교 앞 분식점이나, 오천 원에 무한으로 주는 백반집…… 후! 오천 원에 뷔페처럼 먹을 수 있는 식당이라 니 상상이 가십니까?”
문화 충격이었던 듯 고개를 젓 는 오혁을 보며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재벌가 사람들은 그런 곳 을 안 가는 모양이군요.”
“안 가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가는 곳에는 그런 곳들이 안 보 이는 것뿐입니다. 골목 속에 숨 어 있는데 저희가 일부러 찾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러네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답답한 일상에서 강혜 에게 좋은 힐링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 사장님 만나고 난 후 좋은 일이 많았습니다. 감사 인
사는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우리 아내 의 일상이…… 많이 외롭거든 요.”
홀을 보던 오혁이 웃으며 말했 다.
“저기 도원규 저 친구, 원래는 제 수행비서였습니다.”
“수행비서요? 그럼 비서가 둘이 셨어요?”
“그런 셈이죠. 아내는 비서 일 하고, 도원규 저 친구는 운전도
하고 제 보디가드도 하고 그랬지 요.”
“본부장이라는 자리가 비서를 둘이나 두는지는 몰랐네요.”
“하하하! 저는 보통 본부장이 아니라 재벌가 그룹의 본부장이 니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 은 음식이 다 되자, 쟁반에 담아 서는 홀로 가지고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테이블에 음식들을 놓은 강진이
오혁의 앞에도 밥과 국을 놓았 다.
“남편 앞에는 안 놔도 되는 데……
“그래도 두 분이 오셨는데 그릇 두 개는 놔야죠.”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러지 말고 같이 앉아서 드시
죠.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두 분 데이트하시는 데 제가 눈치 없이 낄 수 있나 요. 편히 식사하세요.”
강진의 말에 영혼 상태의 오혁 이 웃었다.
“하하하! 사장님이 눈치가 있습 니다.”
그러고는 오혁이 자신의 몸 위 로 앉았다.
스으윽!
‘몸에도 들어갈 수가 있구나. 하 긴, 자신의 몸이니 상관없는 건 가?’
강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오혁 을 보았다. 그런데 자신의 몸에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오혁의 영 과 몸은 완전하게 겹쳐지지 않았 다.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오혁 의 영혼이 자주 몸 밖으로 나오 는 것이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도원규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원규는 뒤에 서 있었다.
“비서님도 식사하시죠.”
“저는 괜찮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도원규의 모습에 강진은 더는 권하지 않고 조용히 주방에 들어왔다. 둘이 편하게 식사를 하도록 말이다.
강진이 배용수와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이혜미가 말했다.
“기사님 들어오십니다.”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고는 입구를 보았다. 도원규가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뭐 필요하세요?”
“혹시 닭발과 돼지 껍데기 지금 되겠습니까?”
“둘 다 됩니다.”
“그렇군요.”
“해 드릴까요?”
“오늘 사장님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아서요.”
도원규가 홀을 보며 말했다.
“사장님이 가끔 기분 좋으시면 두 음식을 드십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닭발은 맵 게?”
“닭발은 맵게죠.”
“그럼 돼지 껍데기는 어떻게 구 워 드릴까요?? 아니면 양념해서 붉게?”
돼지 껍데기는 두 가지로 먹는
다. 간장 양념을 살짝 한 뒤 직 화로 구워서 콩가루에 찍어 먹거 나, 고추 양념을 해서 볶아 먹는 것이다.
전자로 하면 꼬들꼬들한 식감을 즐길 수 있고, 후자는 쫀쫀한 식 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강진은 식 감 때문에 불에 구워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양념해서 붉게 부탁드리겠습니 다.”
도원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료들을 꺼내 양념
을 만들어 껍데기에 바르다가 말 했다.
“밖에 혼자 있지 마시고 이거 만드는 동안 여기에 좀 편히 있 으세요.”
“밖도 편합니다.”
“편하기는요. 계속 서 있으시던 데.”
말을 하며 강진이 옆에 있는 플 라스틱 의자를 가리키자, 도원규 가 홀을 한 번 보고는 자리에 앉 았다.
“그런데 사장님이 닭발하고 껍 데기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강진의 말에 도원규가 홀을 보 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이대 여자들처럼 좋아하 십니다.”
“그 나이대?”
강진이 보자 도원규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사장님을 모시기 전에 본 부장님…… 아…… 남편분을 먼 저 모셨습니다.”
“그렇군요.”
“수행비서로 본부장님 차량 운 전과 보디가드를 했지요.”
“보디가드라…… 멋지네요.”
강진의 말에 도원규가 고개를 저었다.
“대한민국에서 위험한 일이 몇 이나 되겠습니까. 말이 보디가드 지, 평소에는 운전만 할 뿐입니 다.”
“그래도요.”
“어쨌든 처음 사장님이 저희 회……
말을 하던 도원규가 입을 다물 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말해 도 되는 내용이 아니었던 것이 다. 비서의 가장 중요한 일은 모 시는 분의 사생활을 남에게 알리 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지금도 말을 많이 했다 생각을 한 도원규가 정신을 차리고는 말 했다.
“어쨌든 사장님이 닭발하고 돼 지 껍데기를 좋아하십니다.”
도원규가 급히 말을 마치는 것 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사정인지 대충 이해가 되었다.
두 사람 다 오혁의 비서이니 가 끔 한잔하면서 닭발과 돼지 껍데 기를 씹었을 수도 있다.
‘이야기를 안 하는 건 모시는 사람 사생활을 누출할 수 없어서 겠지.’
황민성도 비서를 뽑을 때 입이 무거운 것을 가장 중하게 생각하 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강진의 손에 서 닭발과 돼지 껍데기가 매운 냄새를 내며 볶아지기 시작했다.
홀에서 오혁은 맛있게 음식을 먹는 이강혜를 지그시 보고 있었 다. 그러다 자신의 몸에서 나와 이강혜의 앞자리로 가서 몸을 조 금 숙이고는 그녀를 보았다.
“당신은 늘 잘 먹고 많이 먹 네.”
맛있게 음식을 먹는 이강혜를
보는 오혁의 눈빛에는 흐뭇함이 가득했다.
그는 어렸을 때, 잘 먹는 여자 를 보며 사랑에 빠지는 재벌가 남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를 이 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강혜와 처음 밥을 먹 을 때 알았다. 재벌가 남자들은 잘 먹는 여자를 보고 반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음식을 잘 먹는 걸 보며 사랑에 빠지는 것이란 걸 말이다.
이강혜를 보며 미소를 짓던 오
혁은 자신이 서 있던 곳에 있는 의자가 뒤로 나오는 걸 보았다. 강진이 의자를 빼주고 있는 것이 었다.
‘여기 앉아서 보세요.’
강진은 작게 입모양으로 말을 하고는 옆 탁자에 놓아둔 도fl 지 껍데기와 닭발 볶음을 식탁에 놓 았다.
“2차전 나왔습니다.”
“닭발하고 돼지 껍데기네요.”
“도 실장님이 사장님 좋아하신
다고 부탁하더라고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웃었다.
“우리 아내가 이것도 참 좋아합 니다.”
이강혜가 두 음식을 보다가 웃 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저야 음식을 했을 뿐이고, 음 식을 해 달라 하신 분은 도 실장 님이죠.”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도원규를 보았다.
“고마워요.”
이강혜의 말에 도원규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