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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677화 (675/1,050)

677화

달궈진 불판에서 음식이 익어가 는 소리를 내자 강진이 프라이팬 을 흔들었다.

이렇게 흔들면서 해야 음식이 달라붙지 않으니 말이다.

촤아악! 촤아악!

강진의 손길을 따라 음식이 익 어가는 것을 보던 할머니가 한숨 을 쉬며 말했다.

“우리 며느리가 비서였어요.”

“오혁 씨에게 들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혁이 만났군요.”

“아..”

강진이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 니는 귀신이니…… 영혼 상태의 오혁을 봤을 것이다.

‘이 두 분…… 가슴 많이 아팠 겠구나.’

엄마는 아들이 영혼으로 몸 밖 에 나와 있으니 슬플 것이고, 아 들은 엄마가 귀신이 되어 있으니 슬플 것이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젓다가 문 득 물었다.

“사장님 예쁨은 받으시나요?”

그것이 조금 걱정이었다. 드라 마에서도 평범한 집 딸이 재벌가 에 시집을 가면 고생들을 많이 하니 말이다.

“강혜가 예쁘고 착하잖아요. 그

리고 우리 애가 좋아하고…… 그 래서 많이 예뻐했어요. 일단 우 리 혁이가 사랑하는 여자인데 안 예쁠 리가 없지요.”

할머니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어르신은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는 표정을 굳히더니 한숨을 쉬었다.

“회장님은…… 마음에 안 들어 하셨어요. 원래 혁이가 결혼하기 로 한 집이 있었거든요.”

“정략결혼 그런 건가요?”

“정략결혼이라기보다는 그 집 아이도 무척 예쁘고 좋은 아가씨 였거든요. 회장님이 어릴 때부터 혁이하고 결혼을 시키려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조금씩 줄어 들었다. 이래저래 얘기해도 결국 은 변명이었다.

재벌가와 재벌가 혹은 재벌가와 권력가 집안끼리 결혼을 하는 것 은 흔한 일이니 말이다.

그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후우! 우리 집안이면 그래도 돈 없는 집안이 아닌데 왜 그리 좋은 집안을 따졌는지. 지금 생 각하면 다 부질없는 일인 건데 요.”

할머니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그게 꼭 돈 때문이겠어요. 아 들이 좋은 여자에게 장가가기를 원한 거겠죠. 그건 욕심이 아니 라 아들 둔 부모, 아니 자식을 둔 부모라면 모두 같은 마음일 거예요.”

강진은 슬쩍 배용수를 보았다. 어쩐지 배용수가 할머니에게 호 감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보통은 돈 많은 집이라고 투덜 거릴 텐데.’

물론 할머니는 오혁의 장가를 찬성했지만, 회장님은 아니니 말 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어느 새 다 익은 음식들을 접시에 담 았다. 그러고는 남은 음식을 접 시에 따로 담아 할머니 앞에 두 었다.

“이것도 드셔 보세요.”

할머니는 조금 망설이다가 젓가 락으로 돼지 껍데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씹는 할머니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입에 안 맞으시면 억지로 드시 지 마세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작게 웃 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맛있어요. 다만…… 안 먹어 보던 음식이라 손이 안 가네요.”

할머니 말은 진심이었다. 맛은 있었다. 다만 생전 먹어 보던 음 식이 아니고, 마음에 들어 하던 음식도 아니라서 거북했다.

오리고기가 맛있지만, 오리고기 를 안 먹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도 그냥 취향 문제 였다.

그래도 최대한 완곡히 표현하는 할머니를 보며 웃은 강진이 만들 어진 음식을 들고 홀로 나왔다.

음식을 식탁에 놓은 강진이 오 택문을 보았다.

“음식이 많이 식었는데 새로 해 다 드릴까요?”

“괜찮네.”

오택문은 음식들을 보다가 젓가 락을 들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 하던 그는 반찬들을 하나씩 집어 입에 넣었다.

몇 가지 음식을 입에 넣고 천천 히 씹던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 다.

“맛이 아주 좋군. 음식 솜씨가 좋아.”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냥 칭찬하는 것이 아닐세. 정말 맛이 좋군.”

고개를 끄덕인 오택문이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닭발을 집었다.

젓가락에 들린 닭발을 보던 오 택문이 강진을 보았다.

“이건…… 뭘 먹는 건가?”

오택문의 물음에 강진이 앞으로 나서서는 젓가락으로 닭발을 하 나 집었다.

“제가 하나 먼저 먹어도 되겠습 니까?”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닭발을 입에 넣고는 능숙하게 발가락을 뜯어 씹었다.

“이 발가락 부분은 그냥 씹어 드시면 되고, 이 큰 뼈는 겉에 붙은 힘줄하고 피부를 드신다 생 각하시면 됩니다.”

“발가락에 뼈가 있을 텐데?”

“그 뼈도 발골해서 드시는 분들 도 있는데, 그건 너무 번거로워 서 저는 그냥 씹어 먹습니다. 취 향대로 드시면 됩니다.”

오택문은 한차례 입맛을 다시고 는 닭발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 다. 그러던 그의 얼굴이 붉어졌 다. 매운 것이다.

하지만 뱉지 않고 뼈를 우두둑 씹기 시작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씹으며 겨우

하나를 먹은 오택문이 뼈를 내려 놓았다.

처녀 귀신들이 보면 아깝다고 할 정도로 겨우 겉만 먹은 모습 에 강진이 속으로 웃을 때, 오택 문이 눈을 찡그렸다.

“양념이 강해서 무슨 맛인지 모 르겠군.”

“양념 맛하고 닭발 식감으로 먹 는 겁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자신이 뱉은 닭발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

다.

“이런 것이 뭐가 맛있다고.”

입맛을 다시는 오택문을 보며 강진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은 좋아하는 음식이 있 으십니까?”

“ 나?”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택문 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미식가라 맛있는 것을 좋 아하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요?”

“흠…… 전에 북경 갔을 때 북 경오리를 먹었는데 그것도 맛있 었고, 운암정에서 먹은 진상정식 도 맛이 좋았지.”

“진상정식요?”

그동안 여러 차례 갔던 운암정 에서 진상정식이라는 메뉴는 보 지 못한 것이다.

“조선 시대 왕에게 진상이 되던 전국 각지의 식재로 만든 건데

맛이 좋지. 그리고 철마다 메뉴

가 바뀌는 것이라서 철이 바뀔 때마다 가서 한 번씩 먹고는 하 지. 그리고 보리 굴비도 좋아하 네. 입맛 없을 때는 녹차에 밥 말아 먹으면 입맛 살리는데 아주 좋지.”

오택문은 자신이 먹어 본 음식 중 몇 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다시 음 식을 먹으려다가 문득 그를 보았 다.

“자네는 뭘 좋아하나?”

별다른 의미가 없는 물음이었 다. 그는 며느리가 먹은 닭발볶 음과 돼지 껍데기 중 남은 돼지 껍데기를 먹으려다 보니 조금 손 이 가지 않았다.

흐물흐물해 보이는 돼지 껍데기 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아 먹기를 보류하고자 강진에게 말을 건 것 이다.

“저는......"

강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

을 열었다.

“어머니가 해 주던 밥이 가장 맛있습니다.”

“어머니가?”

“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좋은 모양 이군.”

“자식 입에는 어머니가 해 준 김치가 가장 맛있죠. 그리고 어 머니가 해 준 김치찌개도 맛있 고…… 그 음식을 가족과 같이 먹을 때가 가장 맛있습니다.”

강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 저는 두 가지 음 식이 가장 좋은 것 같네요.”

“두 가지 음식이라…… 첫째는 어머니가 해 준 음식인 것 같고, 두 번째는 뭔가?”

“제가 좋아하고,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같이 먹는 음식입 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가장 싼 라면을 끓여서 먹어도 맛이 있죠.”

“좋아하는 사람들?”

“학생 때 돈이 없어서 제일 싼 라면을 끓여 친구들이랑 나눠 먹 은 적이 있는데 정말 맛있게 먹 었거든요.”

“그래?”

“아실지 모르겠지만 라면 열 개 를 한 솥에 넣고 끓이면 처음에 는 몰라도 나중에는 면이 푹 퍼 지거든요. 그런데도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말을 하던 강진이 닭발과 돼지 껍데기를 가리켰다.

“아드님께서도 아내분과 같이 먹어서 맛있게 드셨을 겁니다.”

아드님이라는 말에 오택문은 말 없이 닭발과 돼지 껍데기를 보았 다. 잠시 두 음식을 보던 오택문 이 입을 열었다.

“소주 한 병 주게나.”

뒤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급 히 냉장고로 가서는 소주와 잔을 꺼내자, 오택문이 말했다.

“잔은 여기 있으니 소주만 가져 오게.”

오택문의 말에 직원이 소주를 가지고 와서 뚜껑을 따서는 내려 놓았다.

직원이 주는 소주를 받은 오택 문은 잠시 있다가 돌연 일어나더 니 자리를 옮겼다. 오혁의 휠체 어가 있던 곳 맞은편으로 말이 다.

맞은편에 앉는 오택문의 모습에 직원이 그의 식기와 밥그릇을 그 의 앞으로 옮겼다.

오택문은 테이블 위에 있던 잔 두 개를 가져다가 소주를 따랐

다. 그러고는 한 잔은 자신의 앞 에, 다른 한 잔은 오혁이 앉아 있던 곳에 놓았다.

꿀꺽!

소주를 마신 오택문이 돼지 껍 데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 고는 천천히 씹던 오택문이 미소 를 지었다.

“맛있구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님을 알 기에 강진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 고, 직원 역시 문 쪽으로 걸어가

서 자리를 벌렸다.

“자네, 이리 와서 나와 한잔하 겠나?”

오택문의 말에 강진과 직원이 서로를 보았다.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 모습에 오택문이 피식 웃고 는 말했다.

“사장, 자네 말이네.”

오택문의 말에 직원의 얼굴에 살짝 아쉬움이 어렸다.

강진은 소주잔을 하나 챙겨 들 고 자리에 앉았다. 강진이 앉자 오택문은 소주를 따라 주더니 지 그시 쳐다보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오택문 이 입을 열었다.

“우리 며느리가 이곳을 좋아하 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왜 좋아하는데요?”

“자네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마 음이 편해지는군.”

“음식을 먹으면 배도 부르지만, 마음도 편안해져서 그런 것 같습 니다.”

“그런가?”

“듣자 하니,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는 점심시간 지나고 나서 하는 것이 좋다고 하더군요.”

“점심시간 이후에?”

“점심 먹기 전에는 배도 고프고 조금 날카로워지는데, 점심을 먹 고 난 후에는 배도 부르고 나른 해지는 만큼 마음도 한결 편안해

진다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 식 당에 오시는 분들은 음식 드시고 난 후에는 마음이 많이 편해지시 는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잠시 그 모습을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 덕였다.

“어쩐지 일리가 있는 말 같군.”

오택문이 소주를 마시자 강진이 빈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그 런 강진을 한 번 본 오택문이 입 을 열었다.

“옛날에 우리 아들이……

잠시 멈칫한 오택문은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건강했을 때, 저녁에 뜬금없이 이 두 음식을 사 가지고 들어오 더군.”

강진이 보자 오택문이 말을 이 었다.

“사실 이런 음식은 그 아이도 나도 먹어 본 적이 없네. 그런데 뜬금없이 이 두 안주를 人} 와서 는 자기가 먹어 봤는데 맛이 좋

다면서…… 내 생각이 나서 사 왔다고 하더군.”

-소주하고 먹으니 맛이 아주 좋더라고요. 아버지하고 같이 한 잔하면서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사 왔습니다.

오혁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오 택문이 말을 이었다.

“황당했지. 이 녀석이 밤에 갑 자기 이런 것을 人} 오니 말이

야.”

오택문은 돼지 껍데기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지그시 그것을 보다가 입에 넣었다.

천천히 돼지 껍데기를 씹던 오 택문이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근데 그때는 먹기가 좀 그렇더 군.”

“한 번도 안 드셔 봤으면 그럴 수 있죠.”

“못 먹던 시절에도 안 먹어 본 것을 지금 굳이 먹을 이유가 있

나 싶었지. 닭이 먹고 싶으면 닭 을 먹으면 되지, 굳이 발을 먹어 야 할 이유가 없고 돼지가 먹고 싶으면 돼지고기를 먹으면 되지, 돼지 껍데기를 왜 먹나 싶었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택 문이 음식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안 먹은 것이 후회스럽군.”

“네?”

“그때 그 아이가 가져온 닭발과 돼지 껍데기를 먹었으면…… 그

아이가 보고 싶을 때 이 음식을 먹으면서 소주 한잔하면 좋지 않 겠나?”

“그…… 아드님 아직 안 죽으셨 는데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쓰게 웃 었다.

“안 죽었지.”

‘하지만 나에게 다시 한잔하자 면서 이 음식을 들고 오지는 못 하겠지.’

작게 한숨을 뱉은 오택문이 고

개를 저었다. 말 그대로 후회스 러웠다.

그날 닭발과 돼지 껍데기를 먹 으며 아들하고 한잔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아들의 밝은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거리가 하나 더 생길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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