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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678화 (676/1,050)

678화

입맛을 다시며 돼지 껍데기를 입에 넣는 오택문을 보던 강진이 힐끗 주방 쪽을 보았다. 주방에 서는 할머니가 이쪽을 보고 있었 다.

할머니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가 득했다. 그런 할머니를 보던 강 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오택문을 보았다. 오택문은 말없이 소주를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에 강진이 소주를 잔에 채워 주었다. 그렇게 오택문은 죽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 는 안쓰러운 자식과의 술자리를 떠올리며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 다.

소주 두 병 정도를 비운 오택문 이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강진을 보았다.

“장사하는 것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듭니다.”

“그래? 일자리 바꾸고 싶은 생 각은 없고?”

“네.”

“아쉽군.”

“일자리 주시려고 하셨나 보네 요?”

“음식이 마음에 들어.”

“저는 여기 식당 일이 좋아서 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든 자기가 만족하고 좋아하면 좋은 일이지. 앞으로 일 열심히 하게나.”

“감사합니다.”

강진의 답에 오택문이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말했다.

“출장 요리도 하나?”

“하지 않습니다.”

“흠…… 보육원에 음식 봉사 활 동은 하던데?”

자신에 대해 아는 듯한 오택문

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내 뒷조사를 했다는 것을 너무 당당하게 말씀하시네.’

“어르신이 밥 먹기 힘드시면 봉 사하러 갈 수 있겠지만, 어르신 은 그런 봉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르신이라…… 후! 알겠네. 앞 으로도 이렇게 살게나.”

오택문은 웃으며 걸음을 옮겼 다.

“잘 먹었네.”

직원이 열어주는 문을 통해 밖 으로 나가는 오택문의 뒤를 강진 은 굳이 따라나서지 않았다.

강진도 사람이다 보니 자신의 뒷조사를 한 사람에게 반감이 생 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손님들이 없을 때는 다 른 손님들에게 하던 배웅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강진의 작은 반항 이었고 복수였다.

강진이 홀을 정리할 때, 오택문 을 따라나섰던 할머니 귀신이 가 게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 안 가셨어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회장님이 아직 밖에 계셔서 요.”

“왜요?”

“그냥 하늘을 보고 계시는 데…… 혁이 생각하시는 거겠 죠.”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가

게 밖을 보다가 말했다.

“정신을 못 차리셔도 아직 살아 계신데……

마치 죽은 아들처럼 반응을 하 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재차 한숨을 쉬었다.

“정말 밝았던 아이라서 회장님 이 혁이를 볼 때마다 눈물만 홀 리세요.”

“그럼 자주 안 만나세요?”

“자주 보기는 해도…… 하아.”

할머니 귀신이 연거푸 한숨을 쉬는 것에 강진이 더는 말을 하 지 않았다. 그런 강진을 보며 할 머니 귀신이 말했다.

“회장님이 사장님 뒷조사한 것 나쁜 의도는 정말 하나도 없어 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그러실 테죠. 그냥…… 혼자 남은 며느리가 걱정이 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좀 해 주세요.”

할머니가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젓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옆에서 보고 계셨으 니 저에 대해서 좀 아시겠네요. 어떻게, 저에 대한 뒷조사 내용 이 좀 좋게 나오던가요?”

강진은 마음을 풀기로 하고 웃 으며 말했다. 귀신 속 나쁘게 해 서 좋을 것이 없었다. 툴툴거리 는 건 오택문 회장 한 명에게만 해도 충분하니 말이다.

강진의 기분이 좀 풀린 것 같자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참 좋은 분이시더군요. 시간 날 때마다 보육원에서 봉사 활동 도 하시고요. 아! 회장님도 사장 님 좋은 분이라고 하셨어요.”

“다행이네요. 저에 대한 나쁜 이야기는 안 들어가서요.”

“친척들이 참 나쁘더군요.”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의 얼 굴이 살짝 굳어졌다.

“어떻게 조카를 보육원에 보내 고…… 그러면서 자기들은 잘 살

고 말이죠. 회장님이 그거 보고 화를 내셨어요. 가족을 버리는 놈들은 사람도 아니라면서요.”

할머니 귀신은 강진이 말없이 표정을 굳힌 것을 보고 급히 말 했다.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아닙니다.”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그런데 잘 산다고 하신 것을 보면…… 제 친척들도 조사를 하

신 건가요?”

“아…… 그게 비서들이 조사를 할 때 당사자하고 그 주변도 조 사를 해서요.”

“그럼 어떻게……

말을 하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 다. 어떻게 사는지 물으려고 했 다가 번복한 것이다.

“아닙니다.”

‘이미 나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 들이야.’

자신을 보육원에 보냈을 때부터 이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나도 유서라도 하나 남겨 둬야 하는 것 아니야?’

사람 일이란 것은 아무도 모른 다. 건강한 사람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귀신과 지내는 이 판타지한 생활을 하는 자신 또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결혼을 해서 자식이 있는 상황 이라면 상관없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죽는다면, 끝까지 돌봐주지도 않았던 친척 들에게 상속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강진은 정말 억울 할 것 같았다. 너무나도 억울해 서 배용수와 손을 잡고 귀신이 될 정도로 말이다.

‘내가 만약 결혼도 못 하고 총 각 귀신으로 죽는다면 내 재산은 보육원에 기부를 하겠어.’

강진이 조만간 신수호를 한 번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할 머니 귀신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

다.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사 장님 속상하게 했나요?”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 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잠시 뭐 좀 생각하 느라고요.”

“미안해요.”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 으며 그녀를 보다가 문득 말했 다.

“그런데 할머니는 말씀을 참 예 쁘게 하시네요.”

“말이요?”

“저 보시고 이때까지 계속 존댓 말 하신 것 아세요?”

“친한 사람이면 편하게 말을 하 겠지만, 오늘 처음 본 분인 데…… 그게 이상한가요?”

오히려 의아해하는 할머니 귀신 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보통 드라마에서 보는 재벌가 사모님들은 하대를 자연스럽게

하시잖아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웃 으며 고개를 저었다.

“드라마라 조금 과장하는 거 죠.”

“그런가요?”

“드라마에서 나온 것처럼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들인 거예요. 사람의 인성은 가진 것에 따라 나뉘는 것이 아 니니까요.”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은 조 금 마음이 풀렸다.

‘참 좋은 사모님이시네.’

할머니를 보던 강진이 슬쩍 가 게 문을 열었다. 가게 앞에는 직 원들과 함께 길에 서 있는 오택 문이 보였다.

그런 오택문을 보던 강진이 슬 며시 문을 닫고는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직원들 줄 것까지 믹스 커피를 탄 강진이 그것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어르신.”

강진의 부름에 오택문이 그를 보았다.

“커피 한 잔 드시고 가시죠.”

“커피?’’

오택문이 보자 강진이 쟁반을 들었다. 쟁반 위에 있는 믹스 커 피를 보던 오택문이 손을 내밀어 한 잔을 집었다.

그에 강진이 직원들에게 커피를

내밀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 말에 오택문이 말했다.

“다들 피곤할 텐데 한 잔씩들 해.”

오택문의 말에 직원이 두말하지 않고 잔을 집어서는 다른 직원들 에게 내밀었다.

직원들이 커피를 한 잔씩 받는 것을 보며 강진이 쟁반을 내릴 때, 오택문이 후루룩 커피를 마 시고는 입을 열었다.

“믹스 커피가 말이네.”

혼잣말 같은 오택문의 말에 강 진이 그를 보았다.

“많이 달아.”

“믹스 커피는 그 맛으로 마시는 거죠.”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먹은 노인이 마시기에는 과하게 달지.”

“가끔 한 잔 마시는 정도가 그

리 나쁘겠어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피식 웃 었다. 그러고는 작게 고개를 저 었다.

“자네와 이야기를 하면 재밌 군.”

“그러세요?”

강진의 물음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내가 이야기하면 다들 그냥 고개를 숙이거나 답을 해도 ‘네 알겠습니다.’, ‘맞습니다.’ 그

정도가 다거든. 자네처럼 내가 하는 말에 답을 하는 사람은 없 어.”

말을 하던 오택문이 입맛을 다 셨다.

“내 자식들도 안 그러거든.”

“심심하시겠네요.”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은 무척 심심한 일이었다. 사람 은 혼자 살 수 없으니 말이다.

“며느리가 믹스 커피를 잘 탔는 데……

피식 웃은 오택문이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강진에게 내밀 었다.

“더 마시면 당이 올 것 같아서 그만 마셔야겠군.”

오택문이 잔을 건네자 강진이 그것을 받았다. 커피는 반 정도 줄어 있었다.

“몸이 어디 안 좋으십니까?”

“몸에 좋은 건 해마다 챙겨 먹 어도…… 나이 먹으면 몸이 부실 해지는 건 막을 수가 없군.”

그러고는 오택문이 강진을 보았 다.

“장사 잘 하게나.”

오택문이 승용차에 다가가자 직 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에 오 택문이 차에 타려다가 문득 강진 을 보았다.

“강혜 다음에 오면…… 소주 한 잔 따라주게.”

“ 소주요?”

“가끔은 그 아이도 마음을 풀 수 있게 해줘야지.”

그 말을 끝으로 오택문은 차에 올라탔고, 직원이 문을 닫았다.

스르륵!

그리고 차가 미끄러지듯이 앞으 로 움직였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결혼을 반대했다고 하더니…… 그래도 지금은 예뻐하시는 건가? 아니면 안쓰러워하시는 건가?’

이강혜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오택문을 떠올리며 강진 이 고개를 저었다.

한편, 오택문이 가자 직원들은 서둘러 자신들이 타고 온 차로 향했다.

그러던 와중에 직원 한 명이 강 진에게 다가왔다.

“아크릴 통에 봉투 하나 더 넣 었습니다.”

직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 를 보았다.

“봉투를 몇 개씩 들고 다니시는 겁니까?”

강진의 말에 직원이 웃었다. 그

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오늘 제 첫인상이 안 좋아서 제가 마음에 안 드실 것 같지만, 저는 사장님이 마음에 드네요. 다음에 손님으로 오면 싫다 하지 마시고 맛있는 음식 부탁드리겠 습니다.”

“손님으로만 오신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강진의 말에 직원이 웃으며 고 개를 숙이고는 곧 차를 타고 사 라졌다.

직원들까지 모두 떠나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폭풍이 왔 다가 간 기분인 것이다.

강진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잠그자 여직원들이 홀로 나 왔다.

“다 가셨어요?”

“가셨네요.”

그러고는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 다.

“그런데 너 할머니한테 친절하 더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여사님께서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나 살았 을 때 운암정에서 본 적이 있거 드 ”

“그래?”

“그때는 아직 초보라 많이 혼나 고 그랬었어. 그래서 사람 없는 곳에서 울고 있는데 할머니가 위 로를 해 주셨어.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것도 젊었을 때 특권 이라고, 힘들면 한 번 펑펑 울고

힘을 내라고 하시더라고.”

“그런 일이 있었어?”

배용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 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등 쓰다 듬어 주셨는데 무척 좋더라.”

“따스하신 분이네.”

“맞아. 그리고 명함을 주시더 라.”

“ 명함?”

“어디 병원 명함이었는데……

혹시 일하다가 아프거나 다치면 여기 가서 치료받으라고 하셨 어.”

“병원 명함을 주셨어?”

우는 요리사에게 병원 명함이라 니 조금 뜬금없어 보였다. 강진 의 말에 배용수가 미소를 지었 다.

“젊었을 때 힘들어서 우는 건 괜찮은데, 아파서 우는 건 젊든 나이 먹든 할 짓이 아니라고.”

배용수가 빙그레 웃는 것에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오시면 VVIP로 대우를 해 드려야겠다.”

“한 번 더 오시면 좋겠다. 그때 는 아는 척도 좀 하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마누라한테 좋은 말 해 주셨는데…… 최고의 대접을 해 드려야겠다.’

배용수가 들으면 화를 낼 만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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