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9화
강진은 저승식당 영업을 준비하 며 오랜만에 닭발과 돼지 껍데기 를 볶고 있었다. 저승식당 영업 시간에 두 메뉴를 내는 것도 오 랜만이었다.
처녀 귀신들은 무척 좋아하는 메뉴였지만, 일반 귀신들은 이것 을 잘 시키지 않았다. 이유는 간 단했다.
귀신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만들
면 용케 음식 냄새를 맡고 찾아 오는 것이다.
그래서 저승식당 초기에 처녀 귀신들 만나려고 매운 고추 넣고 매운 음식을 만들기도 했었고 말 이다.
일반 귀신들은 처녀 귀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지 않는 다. 괜히 처녀 귀신들이 냄새 맡 고 오면 불편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향수가 있으니 상 관이 없었다. 처녀 귀신들이 오 면 향수를 뿌려주면 되니 말이
다. 지금 만드는 음식은 그저 강 진이 먹고 싶어서 만드는 것이었 다.
촤아악! 촤아악!
음식을 볶던 강진이 홀을 보았 다.
“혜미 씨, 손님들 더 왔는지 확 인 좀 해 주실래요?”
“네.”
이미 줄을 서 있는 손님들에게 는 메뉴를 미리 받아서 요리를 다 해 놓은 상태였다. 요리를 하
는 사이에 새로 온 손님이 있으 면 메뉴를 더 받아서 미리 만들 생각이었다.
이혜미는 가게 밖에 나가 슥 둘 러보고는 들어왔다.
“김치찌개 먹고 싶다는 손님 두 분 더 있는데 해 놓은 것 있으니 따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요.”
“오케이!”
강진이 웃으며 답을 할 때 이혜 미가 말했다.
“그런데 밖에 오혁 씨 와 있는 데요?”
멈칫!
강진은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 다.
“오혁 씨요? 사장님하고 같이 오셨어요?”
“아니요. 혼자 오셨어요.”
“혼자요?”
강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 거렸다.
“그렇게 몸에서 멀리 떨어져 계 셔도 되는 건가?”
강진은 배용수를 보았다. 혼잣 말 같지만 배용수에게 묻는 것이 다.
“나도 모르지.”
“몰라?”
배용수는 보송보송한 계란 프라 이를 만들다가 말했다.
“귀신이라고 다 아는 것도 아니 고…… 그리고 그런 쪽은 귀신보 다 더 드물어서 보기 쉬운 것도
아니고. 설령 그런 쪽 만나봤다 고 해도 원래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쪽이라 이야기를 많이 나눠 볼 수도 없어.”
“결론은 모른다는 거네?”
“결론은 그렇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프라이팬 을 흔들고는 말했다.
“이것 조금만 더 하고 꺼줘.”
"응."
강진은 프라이팬을 배용수에게
넘기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 앞 에 모여 있는 귀신들은 강진이 나오자 반갑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 음식 잘 되고 있습니 까?”
한 귀신이 웃으며 말을 걸자 강 진도 웃으며 답했다.
“저희 가게 음식이 언제 잘 안 된 적이 있나요?”
“하하하! 그것도 그렇습니다.”
귀신들과 웃으며 농을 한 강진 은 한쪽에 서 있는 오혁을 보았
다.
오혁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귀 신들을 보다가 강진을 발견하고 는 웃으며 손을 들었다.
“사장님.”
오혁의 아는 척에 강진이 다른 귀신들과 작게 눈인사를 하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아까 용수 씨가 여기 11시부터 저승식당 오픈한다고 해서 호기 심에 한 번 와 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귀신이 많네요. 저 이렇게 많은 귀신은 처음 봅니다.”
싱긋 웃는 오혁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와 계셔도 되 는 건가요?”
“왜요?”
“전에 제가 들었는데 영혼이 몸 에서 오래 나와 있으면 아주 안 좋다고 하던데……
강진의 말에 오혁이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 진짜요?”
오혁이 너무 놀라는 것에 강진 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 다.
“모르셨어요?”
“몰랐네요. 그런데 정말 나와 있으면 몸에 안 좋습니까?”
“오혁 씨는 귀신이 아니고 영혼 이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아직 몸과 연결이 되어
있고요.”
오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말을 이었다.
“몸에 있어야 할 영혼이 밖에 나와 있으면 당연히 안 좋죠. 몸 에 있어야 할 것이 빠진 셈이니 까요.”
“아…… 그렇구나.”
대답하던 오혁이 고개를 갸웃거 렸다.
“그런데 저는 제 몸에서 꽤 오 래 나와 있었는데…… 제 몸은
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던데요?”
“얼마나 오래 나와 계셨는데 요?”
“전에는 간간이 몸에 들어갔는 데, 요즘은 들어가도 딱히 할 것 도 없고 몸하고 저하고 일체감도 없고 해서 작년 이후론 안 들어 갔던 것 같은데.”
“작년요?”
“아! 생각해 보니 아까 제 몸에 한 번 들어가기는 했네요. 하하 하!”
강진은 크게 웃는 오혁을 황당 한 눈으로 보았다. 오늘 몸에 들 어갔다는 것은 아까 이강혜가 밥 을 먹을 때 자신의 몸에 들어갔 었던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 일 년 동안 안 들어갔던 거예요?”
“들어가도 딱히 할 것이 없으니 까요. 그래서 아내 보기도 하고 엄마 보러 가기도 하고. 아!”
말을 하던 오혁이 강진을 보았 다.
“저희 아버지 왔다 갔죠?”
“어떻게 아셨어요?”
“아버지 손과 발들이 가게 앞에 서 있는 거 보니 근처에서 아버 님이 있을 것 같았죠.”
“손과 발?”
“아버지 직속 특수 부대라고 보 면 됩니다.”
싱긋 웃는 오혁의 모습에 강진 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니, 그것보다 이렇게 나와 계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글쎄요.”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오혁이 웃었 다.
“이때까지 괜찮았으면 앞으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하하!”
무척 낙관적인 성격인 듯 걱정 을 하나도 하지 않는 오혁을 보 며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성격이 참 밝으시네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 습니다.”
웃으며 답한 오혁은 가볍게 어 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제가 막 성격만 밝은 놈은 아닙니다. 내가 또 일을 할 때는 얼마나 잘하는데요. 한창 일할 때는 냉철한 본부장이라고 도 불렸습니다. 회의 한 번 하면 부하 직원들이 벌벌 떨었지요.”
자신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듯 대놓고 자랑하는 모습이었지 만, 거만해 보이거나 기분 나쁘
지는 않았다.
‘참 밝으신 분이네.’
말 그대로 그냥 밝은 스타일이 었다. 그런 오혁을 긍정적으로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럼 자주 몸 밖에 나와 계시 던 것 같은데 왜 이 사장님 주위 에서는 못 뵈었죠?”
“제가 스토커가 아니잖아요.”
“스토커?”
“우리 강혜도 개인 생활이라는
것이 있는데 제가 그 옆을 졸졸 따라다닐 수는 없죠.”
“그래도 보고 싶을 텐데요.”
“집에는 오잖아요. 그럼 집에서 보면 되죠.”
말을 하던 오혁이 살며시 목소 리를 낮췄다.
“그리고…… 부부간에도 감춰야 할 비밀 같은 것이 있는 겁니 다.”
“부부간에 비밀요?”
“어떤 사람은 부부간에 비밀이 없어야 한다 하고, 어떤 사람은 부부간에도 숨겨줘야 할 비밀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후자예 요. 특히 연인이든 남편이든 보 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나 비밀 은 있을 테니까요.”
“그건 그러네요.”
“그래서 저는 우리 강혜 뒤를 따라다니지 않아요. 그녀에게도 감추고 싶은 자신만의 비밀이 있 을 텐데…… 내가 따라다니면 그 것을 보게 되고, 그건 그녀의 사
생활을 침범하는 거니까요.”
“그럼 평소에는 뭐하세요?”
“집에 있거나 강아지들하고 놀 거나, 아니면 아버님한테 갑니 다.”
“아버님요?”
“아버지 옆에는 어머니가 있으 니까요. 어머니하고 이야기하면 서 아빠 욕도 좀 하고…… 하하 하! 뭐 그러고 있습니다.”
오혁의 말에 강진이 황당한 듯 물었다.
“왜 어머니하고 아빠 욕을 하세 요?”
“저희 어머니가 나하고 아빠 욕 할 때 재밌어하거든요. 아! 물론 쌍욕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걱정을 조금 하는 겁니다. 하하 하.”
오혁이 웃는 것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당사자 없을 때 그 사람 걱정 해 주는 것이 뒷담화인데……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귀
신 한 명이 말했다.
“이 사장, 오픈 시간 됐어.”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입구로 가서 문을 열었 다.
“저승식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 니다.”
“하하하! 오늘은 서비스가 좋 네.”
평소 이런 말을 하지 않으니 말 이다.
“오늘은 새로운 손님이 오셔서 분위기 좀 내 봤습니다. 들어들 가세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하나둘씩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태천 씨 일행분들은 이쪽요. 오삼불고기에 계란말이.”
“영숙 언니는 이쪽요. 오징어 숙회에 콩나물국.”
귀신들이 들어오자 직원들이 미 리 세팅을 해 놓은 식탁으로 손 님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오혁을 보 았다.
오혁은 가게 문 앞에서 신기한 눈으로 귀신들을 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귀신이었던 이들이 사람의 모습을 한 채 자리를 찾 아가고 있으니 신기한 것이다.
“정말…… 사람으로 현신을 하 는군요.”
신기한 듯 가게 입구와 밖의 경 계를 살피는 오혁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들어오세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발밑의 문 턱을 보다가 슬며시 다리를 안으 로 뻗었다.
화아악!
그러자 오혁의 다리가 조금은 뿌옇지만 모습을 드러냈다.
“아……
오혁은 미소를 지으며 실체화된 자신의 다리를 보았다. 그러다가 웃으며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화아악!
약간 불완전한 모습으로 현신을 한 오혁이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러고는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 었다.
“기분이 좋네요.”
“그러세요?”
“영혼으로 있을 때는 느끼기 힘 들었던 이 온도…… 그리고 몸이 움직이는 감각. 찌릿찌릿하네요.”
오혁은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오른손을 보았다. 살짝 뿌연 것
이 의아하기는 했지만, 오혁은 기분 좋게 주먹을 쥐었다.
우두둑! 우두둑!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주먹이 강하게 쥐어졌다.
“기분 좋네요.”
“그래서 손님들이 가게 안에 미 리 있지 않고 밖에서 안으로 들 어오는 겁니다. 들어올 때 현신 하는 기분을 즐기려고요.”
“그럴 것 같습니다.”
강진은 한쪽 자리를 가리켰다. 그곳은 강진과 용수가 종종 자리 를 하는 곳이었다.
“이제 음식 좀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자신의 주 먹을 보다가 자리로 걸으며 말했 다.
“그런데 저는 현신이 제대로 되 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건 뭐 반 귀신 형태인데요?”
다른 귀신들과 달리 조금은 뿌 연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몸
을 내려다보는 오혁을 보며 강진 이 설명을 해 주었다.
“오혁 씨는 귀신이 아니라 몸과 연결이 된 영혼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신을 해도 완전하게 되 지는 않습니다.”
“아! 차별이다.”
갑작스러운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네?”
“왜 영혼하고 귀신을 차별합니 까? 해 줄 거면 다 같이 현신을
하게 해 줘야지.”
오혁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으 며 고개를 저었다.
“차별은 같은 조건에서 하는 거 고요. 오혁 씨하고 여기 있는 분 들은 같은 조건이 아니잖아요.”
“그런가요?”
“그럼요. 이분들은 육신이 죽어 서 귀신이 되신 분들이고, 오혁 씨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요. 뭐, 현신이 좋으시면 죽으시면 되는데…… 그건 또 아니잖아
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웃었다.
“하하하! 그건 또 아니네요. 제 가 죽으면 우리 강혜가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그러니 차별이란 말 취소합니다.”
강진은 오혁을 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소주 뚜껑을 따서는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현신이 반만 되기는 했지만 음 식 맛은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겁 니다.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웃으며 잔 을 들다가 소주병을 잡았다.
“갑자기 찾아왔는데 이렇게 반 갑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말과 함께 오혁이 잔에 술을 채 우자 강진이 그것을 받았다.
“갑자기 찾아오시는 분들 맞이 하라고 있는 곳인걸요.”
강진이 잔을 들자 오혁도 같이 잔을 들고는 가볍게 맞부딪친 뒤 마셨다.
“끄윽! 좋다.”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겠네요.”
“정말 오랜만이죠.”
웃으며 오혁이 잔에 소주를 채 우고는 돼지 껍데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음, 맛있다.”
오택문과 달리 오혁이 기분 좋 게 돼지 껍데기를 먹는 것에 강 진이 웃었다.
‘식성은 둘이 다른 모양이네. 아
니면 이 사장님이 가르쳐 준 건 가?’
생각을 하던 강진이 피식 웃었 다. 결혼을 하면 입맛이 아내의 손맛을 따라간다던 말이 떠올랐 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