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1 화
얼굴이 굳어져 있던 이혜미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죽고…… 싶어요?”
이혜미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자신을 계속 보살펴 주는 사장님을 보고 있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플 겁니다. 차라리 자 신이 없다면…… 이 사장님이 자
유롭게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 테니까요.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을 테고.”
“아…… 하지만 사장님은 그런 마음이 아닐 텐데요?”
“당연하죠.”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은 오혁 씨가 살아서 숨 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 큰 의지 가 될 거예요. 그래서 빨리 가려 고 하지 말라고 한 겁니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사장님 마음을 네가 어떻게 알 아?”
“너는 아닌 것 같아?”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잠시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네 말이 맞다. 내가 보기에도 사장님은 오혁 씨가 살아 있기를 바랄 거야.”
“내가 보기에도 그런데……
강진은 입맛을 다시며 가게 문 을 보았다.
‘사장님은 그러시겠지만, 정작 오혁 씨가 죽고 싶어 한다는 게……
오혁의 마음이 이해는 되었다. 지금 그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 닌 영혼의 상태였다.
이런 상태로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그리고 얼마나 더 외롭게 자신을 지켜보는 이강혜를 바라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니…… 오혁은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플
것이었다.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라 에 이강혜가 살고 있었다. 대기 업 사장이 살기에는 조금은 작은 그런 곳이었다.
물론 강남 논현, 그리고 옆에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있는 곳이 라 작은 빌라지만 한두 푼 하는 집은 아니었다.
그래도 주변에 있는 대저택들에 비하면 소박한 스타일이었다.
스으윽!
자신의 집 문을 뚫고 안으로 들 어간 오혁이 환하게 소리쳤다.
“여보, 나 왔어!’’
물론 자신의 외침을 들어 줄 사 람은 없었다.
왕!
대신 오혁이 들어오자 거실 한 쪽에서 누워 있던 강아지 두 마
리가 작게 짖으며 뛰어왔다.
“아이쿠!”
자신을 보고 달려오는 강아지 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혁이 웃었다.
강아지 두 마리는 흔히 말하는 믹스견이었다. 유기되었던 강아 지를 이강혜가 데려다 키우고 있 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영혼인 오혁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강혜가 출근을 하면 오혁은 하루 대부분
을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자신을 보며 꼬리를 흔들어 대 는 강아지들을 쓰다듬으며 오혁 이 입을 열었다.
“전에 아빠 부하 직원이 개를 길렀거든?”
한쪽 눈에 검은 반점이 있는 강 아지와 눈을 마주치며 오혁이 웃 었다.
“그때 직원이 그러더라고. 나이 먹으니 자기 퇴근했을 때 인사하
러 나오는 건 강아지들뿐이라 고.”
오혁은 웃으며 강아지들의 꼬리 를 보았다. 자신을 보고 좋아서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대는 녀석 들을 보고 있자니 부하 직원이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너희 보고 있으니 그 말이 참 이해가 된다.”
게다가 늦은 밤인 걸 알아서 반 가움의 표시를 작게 짖는 걸로 대신하는 기특함도 좋고 말이다.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은 오혁이 말했다.
“ 엄마는?”
타타탓!
오혁의 말에 강아지들이 후다닥 안방 쪽 문으로 가서는 문을 발 로 긁기 시작했다. 아빠 왔으니 마치 나와 보라는 것처럼 말이 다.
“괜찮아. 깨우지 마. 엄마 자야 지.”
오혁이 급히 애들을 만류하는
사이 안방 문이 열렸다. 그러고 는 잠옷을 입은 이강혜가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왜들 그래?”
이강혜는 웃으며 강아지들의 머 리를 쓰다듬고는 주위를 보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 잠 깐 스치는 사이 오혁이 손을 들 었다.
“나 왔어.”
하지만 이강혜의 시선은 이미 그에게서 지나간 후였다. 그에
어색하게 손을 내린 오혁이 그녀 에게 다가갈 때, 이강혜가 거실 한쪽에 있는 배변 패드를 살폈 다.
“패드도 깨끗하고, 물도 있고.”
아이들 자리를 살핀 이강혜가 강아지들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 다.
“일찍들 자.”
이강혜의 말에 강아지들이 오혁 이 있는 곳을 한 번 보고는 자신 들의 집으로 쏘옥 들어갔다.
그런 강아지들을 보던 이강혜는 몸을 일으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이강혜의 뒤를 따 라 오혁이 방으로 들어갔다. 방 에는 침대가 있고 오혁이 누워 있었다.
양손을 가슴에 올려놓은 채 누 워 있는 오혁을 보다가 이불을 좀 더 끌어올려 덮어준 이강혜가 그의 입술을 손으로 살짝 만졌 다.
“잘 자네.”
웃으며 오혁의 얼굴을 쓰다듬은 이강혜가 침대에 누웠다. 그에 오혁도 자신의 몸에 들어가 옆으 로 누워 이강혜를 보았다.
그렇게 이강혜의 옆얼굴을 볼 때, 그녀가 옆으로 몸을 돌려서 는 그를 보았다.
“여보.”
“옹? 왜.”
“오늘 한끼식당 재밌었어?”
“좋은 곳이더라. 너한테 그런 곳이 생겨서 다행이야.”
“나 가고…… 아버님 거기 가셨 겠지?”
“가셔서 닭발하고 돼지 껍데기 드셨대.”
“강진 씨한테 미안하다. 한 소 리 들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
“괜찮아. 강진 씨는 다 이해하 더라. 그리고…… 너무 이 사장 걱정하는 것 아니야? 나 질투 난 다.”
짐짓 화가 난 얼굴을 보이던 오 혁의 얼굴에 이강혜의 손이 닿았
다.
“질투하지 마.”
“질투 안 하게 생겼어? 내 여자 가 다른 남자 이야기하는데.”
오혁이 작게 투덜거릴 때 이강 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막 질투하고 있지? 그래 도 질투하지 마. 나한테 남자는 당신뿐이야.”
이강혜의 목소리에 오혁이 미소 를 지었다. 입꼬리는 한껏 올라 갔지만, 눈은 웃질 못했다.
‘당신한테 남자가 나뿐이라…… 내가 마음이 너무 아프네.’
미소를 지으며 이강혜를 보던 오혁이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쓰 다듬었다.
“나…… 방법을 찾은 것 같아.”
* * *
아침 일찍 강진은 사료를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늘 가던 시간
에 맞춰 공원에 들어선 강진은 정자 밑에 사료와 물을 놓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도 엄청 덥겠다.”
파란 하늘과 간간이 떠 있는 하 얀 구름들을 보고 있자니 오늘 날씨도 엄청 더울 것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 가 하늘을 보다가 웃었다.
“여름에는 더워야지.”
“그건 그런데…… 너무 더우면 좀.”
강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 다.
“작년 이때쯤에는 공사판에 모 래 짊어지고 오르고 있었는 데…… 지금은 시원한 곳에서 일 을 하고 있으니 정말 너무 좋 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공부하라고 하는 거지.”
“공부?”
“여름에는 시원하게 일하고 겨 울에는 따뜻하게 일하라고 말이
야. 생각을 해 보면 부모님들이 참 생각이 깊어.”
“자식들 고생 안 하기를 바라는 것이지.”
“근데 넌 팔자 좋다.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닌데 시원하고 따뜻한 곳에서 일하는 거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나 서신 대 나온 남자야.”
“아…… 맞다. 너 서신대 나왔 지.”
잊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 이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눈 을 찡그렸다.
“왜. 아닌 것 같냐?”
“역시 사람은 겉만 보면 모르는 법인 거지.”
어쩐지 조금 속이 상하는 말에 강진이 눈을 찡그릴 때, 배용수 가 웃었다.
“사장님 오신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이 강혜가 손수레를 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강진 씨.”
이강혜가 반갑게 다가오는 것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휴! 오늘도 무척 더울 것 같아 요.”
“날씨가 그러네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수레에서 물병을 꺼냈다.
“믹스 커피 좀 드세요.”
“믹스 커피요?”
“오랜만에 시원하게 마시고 싶 어서 만들어 왔어요.”
웃으며 이강혜가 가지고 온 물 병을 꺼내 흔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안에서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자 이강혜가 물병을 몇 번 더 흔들고는 컵을 꺼내 커피를 따라 주었다.
쪼르르륵!
컵에 따라진 믹스 커피 특유의 색과 얼음에 강진이 웃었다.
“아주 시원하겠어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에요. 드셔 보세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피를 마셨다.
꿀꺽!
달달한 커피가 시원하게 넘어가
자 강진이 활짝 웃었다.
“확실히 여름에는 믹스 커피 시 원하게 마시는 것이 좋기는 해 요.”
“그렇죠?”
“저도 여름에 현장 알바 할 때 는 믹스 커피 자주 마셨어요. 그 래야 힘이 나니까요.”
“저도 힘들 때 믹스 커피 한 잔 마시면 힘이 나더라고요.”
웃으며 이야기하던 이강혜가 강 진을 보다가 슬며시 말했다.
“어제 저 가고 혹시 회장님 오 셨었나요?”
“어르신이라면 다녀가셨습니
다.”
“역시……
잠시 말을 멈춘 이강혜가 한숨 을 쉬며 말했다.
“ 죄송해요.”
“죄송하기는요. 오셔서 매상 많 이 올려 주고 가셨는걸요.”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이강
혜가 그를 보다가 입맛을 다시고 는 말했다.
“회장님께서…… 제 남편 걱정 을 많이 하셔서 그래요. 조 금…… 이해를 해 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정말 매상을 많이 올려 주셔서 저는 정말 좋아요.”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이강 혜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 다.
“알겠어요.”
강진이 정말 괜찮아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배 려해 주는 것은 알겠으니 말이 다.
그럼 이강혜를 보던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그리고 어르신 좋은 분이던데 요?”
“안 무섭고요?”
“조금 딱딱한 분인 것 같기는 했지만 무서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었다.
“회장님을 안 무서워하는 사람 은 강진 씨가 처음이에요.”
“그래요?”
“다들 무서워하거든요.”
‘나도 무섭고.’
이강혜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어제 회장님 오셔서 닭발하고 돼지 껍데기 드시고 가셨어요.”
“닭발하고 껍데기를요?”
“며느리가 먹은 것을 먹어 보시 겠다고 해서 가져다드렸는데 꽤 드셨습니다.”
“아……
“그리고 다음에 사장님 오시면 물 말고 소주 한 잔 따라 주라고 하시더군요.”
강진이 웃으며 이강혜를 보았 다.
“가끔은 마음을
다면서요.”
풀기도 해야 한
“회장님이요?”
“네.”
강진의 말에 이강혜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런 이강혜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사장님이 어르신 조금 무서워 하시는 것 같은데.... 무서워하
지 마세요.”
“무서워하지 않아요.”
잠시 말을 멈춘 이강혜가 한숨 을 쉬며 말했다.
“조금 어려울 뿐이에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아마 사장님하고 오혁 씨 처음 닭발하고 돼지 껍데기 먹은 날일 거예요.”
이강혜가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때 오혁 씨가 닭발하고 돼지 껍데기를 사들고 오셨대요. 어르 신하고 같이 한잔하자고 하면서 요.”
“아……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옛 기억 을 떠올리다가 웃었다.
“기억나네요. 그때 혁 씨가 아 버지 가져다드린다고 닭발하고 돼지 껍데기를 포장해서 가져갔 어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어르신하고 닭발에 돼지 껍데 기 두고 소주 한 잔 같이 해 보 세요.”
회장님하고요?”
깜짝 놀라는 이강혜를 보고 강 진이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 말고요.”
“그럼…… 누구?”
이강혜의 물음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요.”
“아……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잖아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잠시 생
각을 하다가 웃었다.
“저희 집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 에요.”
“그런 분위기는 본인이 만들어 가는 거죠. 듣자 하니 오혁 씨는 자기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고 하던데요.”
이강혜가 웃었다.
“그건 그래요. 집에서 유일하게 회장님한테 ‘영감님, 식사했어 요?’ 하는 건 혁 씨뿐이었어요.”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친구 같은 아들이었나 보네 요.”
“맞아요. 그래서…… 아버님이 더 힘들어하셨죠.”
쓰게 웃는 이강혜를 보며 강진 이 말했다.
“그럼…… 사장님이 오혁 씨 같 은 며느리가 되어 보는 것 어떠 세요?”
“제가요?”
“남 같은 며느리보다는 가족 같 은 며느리가 더 좋지 않겠어요?”
말을 한 강진이 웃었다.
‘가족끼리는 친하게 지내야죠.’
다른 건 몰라도 같은 아픔을 가 진 사람끼리 친하게 지내고 위로 하면 좋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