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3 화
강진은 젓가락으로 잡채를 더 집어 접시에 올리고는 입에 가져 갔다.
후루룩!
맛있게 먹는 강진을 보며 이강 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양념이 강해요?”
“조금 양념 맛이 강해서 자극적 이기는 한데 맛있어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이상하다 는 듯 잡채를 집어 맛을 보았다.
“맛있는데.”
“제 입에도 맛있어요.”
조금 양념이 강한 느낌이었지 만, 짠맛과 단맛이 서로 잘 어울 렸다. 한쪽 맛만 강하면 맛이 없 겠지만, 두 맛이 잘 어울리니 묵 직한 맛의 펀치를 맞은 느낌이었 다.
강진이 맛있게 잡채를 먹자 이 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제 친구들도 제가 한 음식 맛 있다고 했어요.”
“오혁 씨도요?”
“네.”
그런 이강혜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내가 알기로 그 집안 사람들은 약간 심심하게 간을 한 걸 먹어. 이대로 주면 안 드실 것 같은 데……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말을 이 었다.
“저염으로 드시거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저염…… 으엑!’
저염으로 먹으면 건강에 좋다는 건 강진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몇 번 배용수가 저염 음식을 해 준 적도 있었다.
너무 간이 강한 음식만 먹으면 혀에 좋지 않다면서 트레이닝 하 라고 말이다.
그런데 너무 맛이 없었다. 확실
히 사람이 가장 맛있게 느끼는 맛은 단맛이 아니라 짠맛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남은 잡채를 후루룩 입에 넣을 때, 배 용수가 말했다.
“말 좀 하지.”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말을 했 다.
“너무 자극적인 음식이라 회장 님 입에는 안 맞을 거라고. 그리 고 노령에 안 좋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웃으며 홀로 나왔다. 그리 고 살짝 손가락을 까닥여 따라오 라는 시늉을 하자, 배용수가 그 뒤를 따라 나왔다.
배용수가 나오자 강진이 손님들 반찬을 살피며 작게 말했다.
“너는 사장님이 그걸 모를 거라 고 생각해?”
“무슨 소리야?”
“회장님 식성 알고 있다는 말이 야.”
“그런데 왜 저렇게 해? 엿 먹이 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배용수를 보 며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엿 은 무슨 엿을 먹여.”
강진은 주방을 한 번 보고는 말 했다.
“오혁 씨 사고 나기 전에는 가 끔 시댁에서 식사도 하고 했을 거야.”
“그렇겠지.”
아무리 나와 산다고 해도 가끔 은 집에 가서 식사를 할 테니 말 이다.
“그럼 그 집 음식 취향도 아시 겠지.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말 이야.”
“음……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런데 왜 음식을 저렇게 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 여 주고 싶으신 거야.”
“자신의 모습?”
“맛있는 음식 먹으려면 호텔 일
류 요리사 불러서 음식 만들었겠 지. 하지만 이건 며느리가 아버 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 야.”
“그래서 그냥 자기 식대로 한다 고?”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거니 까.”
“그랬다가 회장님이 싫어하시 면?”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가족이라고 해도 좋은 모습만 있는 건 아니지. 늦잠 자는 모습 도 싫고, 술 마시는 모습도 싫 고, 담배 피우는 모습도 싫 고.. 하지만 가족이라 안고 가
는 거잖아. 좋은 모습만 보여주 는 건 시트콤에서 나오는 가족도 불가능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천생 요리사인 배용수로서는 자 극적인 음식과 양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음식은 양념도 중요하지만……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데.”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웃 으며 그를 보았다.
“그건 우리가 손님들에게 내는 음식에서 보이도록 하고, 저 집 음식은 저 집 스타일대로 가게 하자.”
“몸에 안 좋을 텐데……
“하루쯤은 괜찮아. 그리고 못 먹을 음식도 아니고…… 물 좀
드시면 괜찮을 거야.”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리고 평소 좋은 걸 많이 먹을 테 니 하루쯤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다고 크게 탈이 나지도 않을 것 이다.
“쩝! 알았다.”
배용수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강 진은 손님들 드시는 음식을 살피 고는 반찬들을 더 가져다 담아 주었다.
저녁 7시 20분이 되자, 전에 봤 던 직원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 다. 그들 중 전에 봉투를 줬던 남자 직원이 강진에게 미소를 지 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직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 였다.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고 이틀 연속으로 뵙네요.”
“그래서 저는 반갑습니다.”
웃으며 직원이 말했다.
“안에 잠시 보겠습니다.”
“홀뿐이라면 그렇게 하세요.”
강진의 말에 직원이 같이 온 이 들을 보자 그들이 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남자는 강진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앞으로 종종 뵙게 될 것 같습 니다.”
직원이 내민 명함을 받은 강진 이 그것을 보았다.
〈비서 이종범〉
“명함이 간단하네요?”
소속과 직함이 없는 것에 강진 이 의아한 듯 보자, 이종범이 웃 으며 말했다.
“저를 아는 분들은 다 누구를 모시고 있는지 아니까요.”
둘이 대화를 하는 사이, 이강혜 가 주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강혜의 인사에 이종범이 고개 를 깊이 숙였다.
“사장님.”
“아버님 몸 상태는 요즘 어떠세 요?”
“저번에 검진 결과 잘 나왔습니 다.”
답을 한 이종범이 직원들을 보 았다. 홀을 이리저리 살펴 본 직 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종범 이 이강혜를 보았다.
회장님 곧 들어오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강혜의 답에 이종범이 그녀를 보다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이라……
이강혜뿐만 아니라 친자식마저 도 오택문을 회장님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것은 손주들도 마찬가 지였다.
집에서 어떻게 교육을 하는 것 인지, 어린아이들도 모두 회장님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강혜가 처음으로 아버 님이라 말하는 걸 듣자 이종범은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이 집의 가신 역할을 맡고 있는 자 신이기는 하지만, 늘 이 집안 사 람들은 정이 없어서 아쉬웠던 것 이다.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미소는 금방 사라졌다. 고개를 숙인 이 종범이 직원들과 함께 가게를 나 가자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다.
“어르신 다니는 곳에는 늘 직원
들이 먼저 왔다 가는 모양이네 요.”
“안전 문제도 있고 도청 문제도 있고요.”
말을 하던 이강혜가 강진을 보 았다.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해 요.”
“아닙니다.”
자신은 필요 없다 생각을 하지 만…… 사실 L그룹 총수라면 이 런 경호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가진 것이 많으면 그만큼 노리는 사람도 많을 테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보다 돈 많 은 집이 이 집이잖아.’
L그룹 총수를 그저 돈 많은 집 가장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사람 이니 말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가 게 문이 열리며 이종범이 들어왔 다.
그가 가게 문을 잡아 두자 오택 문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이어 할머니 귀신과 오혁이 따라 들어왔다.
“강진 씨! 이틀 연속으로 보네 요.”
오혁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할머니 귀신은 고개를 작게 숙여 인사를 했다.
“회……
말을 하던 이강혜가 침을 삼키 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
이강혜의 인사에 오택문이 그녀 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강혜가 내심 안도의 한 숨을 토했다.
회장이 아닌 아버님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별다른 말을 하지 않 았기 때문이었다.
“시장하구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이강혜가 자리를 가리 켰다.
“여기 앉으세요.”
이강혜가 의자를 빼 주자, 오택 문이 의자를 잡아당겨 옆으로 치 우고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아버님?”
그에 이강혜가 당황스러운 듯 그를 보자, 오택문이 말했다.
“네 남편도 올 거다.”
“혁이 씨요?”
“네가 처음 해 주는 밥상인 데…… 네 남편도 봐야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식사는 혁이 씨 오면 내올까요?”
이강혜의 물음에 오택문이 고개 를 저었다.
“곧 올 테니 지금 차리면 될 게 다.”
“알겠습니다.”
이강혜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강 진이 그녀를 한 번 보고는 오택 문에게 무언가를 내밀며 말했다.
“오늘 사장님이 열심히 준비하 셨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보 다가 의아한 듯 손에 쥐어진 것 을 보았다.
“그건 뭔가?”
“위 보호제입니다.”
“위 보호제?”
“사장님이 회장님 드린다고 음 식에 힘을 쏟았는데 제가 보니 살짝 양념이 과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위장약을 먹으라는 건 가?”
“보통 드라마 같은 거 보면 회 장님 댁에서는 양념 많이 안 하 고 저염식을 하시던데…… 너무 자극적인 음식을 드시면 위가 놀 라지 않을까 싶어서 제가 하나 사 왔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저었다.
“며느리가 처음 해 주는 밥이 나를 해치려는 것은 아닐 테지. 괜찮네.”
오택문의 말에 강진은 더는 권 하지 않았다. 사실 이 위 보호제
도 배용수가 사가지고 오라고 해 서 사 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노령에 자극적인 음식이 무리가 되기는 하겠지만, 못 먹을 음식 도 아니고 물 좀 많이 먹으면 될 것이다.
‘게다가 못 먹을 것 같으면 자 신이 안 먹겠지.’
그런 생각을 할 때, 오혁이 웃 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 오랜만에 라면 먹
겠네.”
‘라면?’
강진이 힐끗 그를 보자,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만큼 자극적인 음식이라는 말입니다.”
‘아.. ’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혁이 웃으며 할머니 귀신의 어깨를 손 으로 잡았다.
“우리 어머니가 가족 몸 생각해 서 저염식에 양념 적은 음식을 하거든요. 아! 물론 직접 하는
건 아니고 주방 식구들한테 그렇 게 주문들을 했었죠. 그런데 저 염식이 몸에 좋다고 해도 맛 으... O O O I”
'1— — — — •
“얘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할머니 귀신이 당황스러운 듯 급히 말하자, 오혁이 웃으며 말 을 이었다.
“그래서 어머니 주무시면 아버 지하고 나하고 몰래 주방에서 라 면 끓여 먹고는 했습니다.”
오혁의 말에 할머니 귀신이 놀 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라면? 그 몸에 안 좋은 걸 먹 었어?”
“몸에 안 좋기는요. 그런 말 하 면 삼음 그룹 이 회장님이 서운 해하실걸요.”
라면 회사의 회장을 들먹이는 오혁을 보며 할머니 귀신이 급히 물었다.
“그런데 라면은 어디에서 나서 먹었어? 우리 집에는 라면이 없
잖아.”
의아한 듯 보는 할머니 귀신을 보며 오혁이 웃었다.
“없기는. 내 방 서랍에 가면 종 류별로 세 개씩 늘 채워뒀는데. 매운 라면, 오동통면, 자장라면, 짬뽕라면…… 종류도 많았어.”
“너는 언제 그런 걸 다.”
“못 먹게 하니 숨어서 먹는 거 지. 아버지가 라면에 시바스 리 갈 먹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라면에 양주를?”
“그래도 이렇게 오래오래 잘 살 잖아. 전에 건강 검진도 깨끗하 게 잘 나오더구먼.”
오혁은 입맛을 다시며 오택문을 보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없으니 아 버지 그 좋아하는 라면에 시바스 리갈도 못 드셨겠네.”
그는 쓰게 웃으며 오택문의 어 깨를 쥐었다가 놓았다.
“그래도 오늘 자극적인 음식 마 음껏 드셔 보시겠네요. 하하하!
아주 깜짝 놀라실 겁니다. 우리 강혜 음식이 굉장히 불량스럽거 든요.”
웃으며 오택문을 보던 오혁이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아 빠도 가끔은 이렇게 몸에 나쁘지 만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 가끔?”
“그래. 아빠가 나하고 라면에 술 한잔할 때 얼마나 기분 좋아 했는데.”
오혁의 말에 할머니가 그를 보 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랬니?”
“그럼. 정말……
오혁은 다시 오택문을 보며 미 소를 지었다.
“많이 좋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