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4화
“많이 좋아했어.”
오혁이 웃으며 하는 말에 할머 니 귀신이 오택문을 잠시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그렇게 쉬었군요.”
오택문을 보던 할머니 귀신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 자리가 있으면 나한테 이 야기라도 해 주지 그랬어요. 그
럼 나도 그 자리에서 한 잔 같이 했을 텐데…… 좋은 건 다 당신 만 하는군요.”
할머니 귀신이 오택문을 장난스 럽게 쏘아 보는 것에 오혁이 웃 었다.
“어머니는 라면이 아니라 다른 것을 주셨겠죠. 그것도 저염식으 로.”
“저염식이 몸에 좋은데……
할머니 귀신이 주방 쪽을 보다 가 슬며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
자, 오혁이 급히 그녀를 잡았다.
“그냥 하게 두세요.”
“아니, 그래도 간이 너무 강하 면 회장님 몸에 안 좋을 텐데?”
“매일 몸에 좋은 것만 드시는 분인데 가끔 몸에 좀……
말을 하던 오혁이 고개를 저었 다. 자신의 아내가 한 음식이 먹 지 못할 음식인 것처럼 말을 하 고 있다는 걸 자각한 것이다.
“좀 양념이 강해도 맛은 있어. 걱정하지 마. 맛있게 먹으면 살
안 찐다는 말도 몰라?”
“얘는 어디서 이상한 말만 듣고 와서는.”
“하하하! 걱정하지 마. 우리 영 감님 이 정도 먹고는 안 죽으니 까.”
‘영감님? 정말 친하게 지내시기 는 했나 보구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이 강혜가 쟁반에 음식들을 들고는 나왔다. 그 모습에 이종범이 급 히 다가왔다.
“사모님, 제가……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무거우실 텐데……
“비서님이 앞을 막고 있어서 더 무겁네요. 좀 비켜 주실래요?”
이강혜의 말에 이종범이 급히 옆으로 피했다. 그에 이강혜가 오택문 옆 테이블에 쟁반을 놓고 는 음식들을 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오택문이 그녀를 보 았다.
“안 무거우냐?”
“괜찮습니다.”
음식들을 탁자에 놓는 이강혜를 보던 오택문의 눈이 살짝 굳어졌 다. 이강혜의 손가락에 붙어 있 는 밴드를 본 것이다.
“다쳤니?”
“아…… 음식 하다가 조금요.”
“병원 가야 하는 것 아니니?”
“조금 다친 것이라 괜찮습니 다.”
“다치는 것에 조금이고 큰 것은 없다. 다치면 다친 것이다.”
오택문은 비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생 하나 이곳으로 오라고 하 지. 성형외과로.”
오택문의 말에 이종범이 핸드폰 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 다.
그 모습을 보던 이강혜는 정말 별것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는 걸 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살짝 미
소 지었다.
그래도 아버님이 자신을 생각해 서 이러는 것이니 말이다.
음식을 다 놓을 때, 가게 문이 열리며 휠체어를 탄 오혁이 들어 왔다.
오혁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의 사 가운을 입고 있는 남자였다. 남자가 조심히 오혁을 밀고 들어 오자 이강혜가 말을 했다.
“제가 할게요.”
“알겠습니다.”
의사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려 하자, 오택문이 입을 열었다.
“자네 전공이 뭔가?”
“응급의학과입니다.”
의사가 답하자, 오택문이 이강 혜를 보았다.
“이 사장이 음식 하다 손을 좀 베인 모양이야. 봐 줄 수 있겠 나?”
말 자체는 부탁하는 것이었지 만, 누구도 그것을 부탁이라 생 각하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의사가 이강혜를 보자, 그녀는 난감한 듯 손가락을 내밀었다.
“정말 별거 아닌데……
“별거 아닌 상처로 크게 다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감염이라도 됐 으면 큰일입니다.”
의사는 밴드를 조심히 떼어내고 는 상처를 확인했다. 그리고…….
‘정말 별거 아니네.’
속으로 중얼거린 의사가 말했
다.
“차에서 약 가져오겠습니다.”
의사는 소독약과 연고를 가져와 서는 간단하게 치료를 하고는 밴 드를 다시 붙여 주었다.
“물에 닿으시면 안 됩니다. 씻 으실 때는 이 장갑 끼시고 하십 시오.”
의사는 의료용 라텍스 장갑이 든 상자를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고개를 숙인 의사가 가게를 나 가자, 이강혜는 오혁을 식탁에 가까이에 앉히고는 자리에 앉았 다. 그 모습을 보며 오택문이 입 을 열었다.
“혁이가 시간 잘 맞춰서 왔구 나.”
오택문은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는 오혁을 보다가 표정을 굳혔 다.
자신에게 있어 가장 아픈 손가
락인 오혁을 보던 오택문은 고개 를 젓고는 음식을 보았다.
“이게 다 네가 한 것이냐?”
“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수고했다는 말에 이강혜가 미소 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자, 오택 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숟가락 을 들었다.
“밥 먹자.”
조개를 넣고 맑게 끓인 미역국 을 한 숟가락 떠먹은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좋구나.”
“감사합니다.”
오택문의 칭찬에 이강혜가 재차 미소를 짓자, 오혁이 웃으며 말 했다.
“다른 음식은 미역국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조개 미역국이야 양념이 강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정말 맛이 좋구나. 시원하면서 감칠맛이 좋아.”
“사장님이 좋은 식재를 쓰시더 라고요. 조개도 신선하고.”
이강혜의 말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에 기본이 가장 중요한 법이지.”
말을 하던 오택문이 이강혜를 보았다.
“음식의 기본이 좋은 식재라면 사업의 기본은 뭔지 아느냐?”
“사람입니다.”
이강혜의 답이 마음에 드는지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사람을 잘 써야 사업이 든 뭐든 일이 돌아가는 법이다. 그러니 사람을 잘 쓰고 사람을 잘 봐야 한다.”
그러고는 오택문이 힐끗 강진을 보았다. 마치 사람을 잘 보았다 는 듯 말이다.
“혁이 씨도 자주 하던 말입니 다.”
이강혜의 말에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하고 라면 먹으면서 이 런 이야기 되게 많이 들었는 데……
“그게 다 회장님이 너 경영 수 업을 시켜 주신 거야.”
“지금이야 알지만, 그땐 ‘영감님 요즘 일이 힘든가?’ 했었죠.”
오혁은 웃으며 중얼거리고는 훙 미로운 눈으로 오택문을 보았다. 오택문이 음식을 어떻게 먹을지
궁금한 것이다.
오택문은 제육볶음을 집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음식을 씹는 오택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던 오혁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어? 잘 드시네.”
가끔 자신과 라면을 먹었던 아 버지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오래 전 일이다.
그럼 그동안 자극적인 음식이라 고는 젓갈이나 김치를 먹은 게
전부일 텐데, 생각보다 더 잘 먹 는 것이다.
제육볶음을 먹은 오택문은 잡채 와 다른 음식들도 한 젓가락씩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음식을 씹던 오택문이 입을 열었다.
“이게 다 네가 한 음식이더냐?”
아까 한 질문을 다시 하는 오택 문의 말에 이강혜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네. 혹시 입에 안 맞으세요?”
“아니다. 맛이 좋다.”
오택문은 오혁을 보고는 말했 다.
“혁이가 늘 네가 한 음식을 먹 었다고 했었는데, 늘 이런 식단 이었던 거니?”
“네.”
이강혜의 말에 오택문이 음식을 집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도시락도 싸 줬다고?”
“제 음식이 맛있다고 도시락 싸 달라고 해서요.”
“도시락이라......"
오택문이 오혁을 볼 때, 영혼 상태의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아빠도 도시락 싸서 드셔 보세 요. 재밌어요.”
“도시락이 재밌어?”
할머니의 물음에 오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우리 아내가 무슨 음식 을 넣어 줬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거든요. 기대하며 도시락 뚜껑 열었다가 정성껏 담겨 있는 반찬
을 보면 아…… 내가 결혼을 했 구나. 나한테 사랑하는 여자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혁의 중얼거림에 할머니가 이 강혜를 보다가 그녀의 머리를 쓰 다듬었다.
“내가 살아서 김치도 보내주고 반찬도 보내주고 했어야 했는 데.”
할머니의 말에 오혁이 웃었다.
“어머니가 보내 주셔도 다 주방 이모들이 해서 보내는 거잖아
요.”
“얘는. 누가 하는 것이 뭐가 중 요하니. 보내주는 것이 중요하 지.”
말하면서도 무안한지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한 것보다는 아주 머니들이 한 음식이 더 맛있어.”
두 귀신이 하는 말을 들으며 강 진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다 급식이지만, 강진이 아직 어릴 때는 도시락이었다.
‘나도 도시락 참 좋아했는데.’
오늘은 무슨 반찬이 들었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 때문에 말이 다. 그리고 맛있는 반찬이 들어 있는 날이면 후다닥 먹고는 했었 다.
‘밥 많이 먹고 비엔나 조금 뜯 어서 먹어도 맛있었는데.’
밥 한 수저에 비엔나 조금 뜯어 서 먹으면 밥에서 단맛도 나면서 비엔나의 짠맛이 돌아서 그것도 꽤 맛있었다.
‘저승식당 시간에 그렇게 한 번 먹어봐야겠다.’
밥에 비엔나 조금 뜯어서 먹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오택 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사장.”
“네.”
“술 좀 내오게.”
“술 뭐로 드릴까요?”
“ 소주......"
말을 한 오택문이 이강혜를 보
았다.
“소주 괜찮겠니?”
“오늘은 제가 술을 준비했습니 다.”
“네가?”
“네.”
이강혜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방에서 쇼핑백을 하나 들고 나 왔다. 그리고 쇼핑백에서 술 상 자를 꺼내 놓았다.
“혁 씨가 아버님이 이 술에 반
주하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요.”
이강혜가 꺼낸 것은 시바스 리 갈이었다. 그것을 보고 오혁이 미소를 지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오택문은 시바스 리갈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12년산이군.”
“회장님이 12년산을 좋아하신다 고 해서요.”
시바스 리갈은 12년, 18년, 25 년짜리가 있지만, 오택문은 그중 가장 저렴한 12년산을 좋아했다.
음식이 개인 취향이라면 술도 개인 취향이 많은 쪽이었다. 그 러니 맥주도 종류가 여럿인 것이 고 말이다.
“비싸다고 다 맛이 있는 건 아 니지.”
시바스 리갈을 손으로 쓰다듬는 오택문을 보던 강진이 소주잔을 세 잔 가지고 왔다.
“양주잔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상관없네.”
오택문이 술병 뚜껑을 따고는 잔에 따르려 하자 이강혜가 급히 말했다.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이강혜의 말에 오택문이 그녀를 보다가 술병을 내밀었다.
“그래. 며느리가 따라주는 술 한 번 받아 보자.”
오택문의 말에 이강혜가 술병을
들고는 그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 다.
쪼르륵!
그러고는 병을 내려놓자, 오택 문이 그것을 집어서는 그녀에게 내밀었다.
“너도 한 잔 받거라.”
“ 저는……
“괜찮다. 사람들이 술이 안 좋 다 하지만, 마음이 허전하고 외 로울 때 이만한 친구도 없는 법 이지. 그리고……
오택문은 오혁을 보았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 술 한 잔이 빠질 수 없지.”
이강혜의 잔을 채워주고 술병을 내려놓을 때, 강진이 슬며시 빈 잔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그에 오택문이 보자 강진이 오혁을 가 리켰다.
“가족이 모여 있는데 술 한 잔 이 빠질 수 없죠.”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오혁을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고
는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쪼르륵!
오택문은 잠시 채워진 잔을 보 다가 그것을 오혁의 앞으로 밀었 다.
스륵!
“혁아, 한 잔……
말을 하던 오택문이 입을 다물 었다. 그렇게 한참 침묵하던 그 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시 다들 나가 있게.”
오택문의 말에 이강혜가 걱정스 러운 눈으로 그를 볼 때, 강진이 슬며시 눈짓을 했다. 그에 이강 혜가 일어나서는 강진과 함께 가 게를 나섰다.
두 사람이 가게를 나서자 희미 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너와 라면에 한잔했으면…… 내 소원이…… 흑흑흑!”
안에서 들려오는 낮은 오택문의 울음소리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 다.
오택문이 L그룹의 회장이든 아 니면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든…… 지금의 그는 아픈 아들을 둔 한 명의 아버지일 뿐이었다.
‘술 한 잔이 정말 별거 아닌 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네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