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5 화
“혁아…… 아버지가…… 너하고 술 한잔하는 것이 너무 그립다.”
안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이종 범이 직원들을 향해 손짓을 하고 는 몇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안에서 자신이 모시는 분의 울 음소리가 들리니 거리를 두는 것 이다.
그에 강진이 자신의 가게를 한 번 보고는 이종범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고는 이강혜를 보았다. 이 강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가게 쪽을 보고 있었다.
“이리 오세요.”
“하지만……
안에서 들리는 우는소리에 이강 혜가 머뭇거리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남자의 눈물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잖아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 강진은 가게를 보다가 문득 이강혜를 보았다.
“사장님.”
강진의 부름에 이강혜가 그를 보았다.
“사장님이라는 표현 이제 좀 불 편하네요.”
“네?”
“누나라고 불러도 될까요?”
“ 누나요?”
“나이도 그런 것 같고…… 강혜 씨라고 부르기에는 저희 좀 친해 졌잖아요. 이제 누나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그를 보 다가 웃었다.
“전 예전부터 강진 씨를 동생처 럼 생각했어요.”
“그럼 앞으로 누나라고 부를게 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강진이 갑자기 누나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 건, 자신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한 것일 테니…….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가게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종범이 전화 를 받고는 말했다.
“들어오시랍니다.”
이종범의 말에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다.
“들어가세요.”
“강진 씨는?”
“씨가 뭐예요. 제가 동생인 데..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이는?”
“저는 이따가 들어갈게요. 지금 은 두 분이서 이야기 나누세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가게 안 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이종범이 강진을 보았다.
“가게가 좋습니다.”
“다음에 가족들 모시고 한번 들 러 주세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 이 와서 먹으면……
이종범은 미소를 지었다.
“웃으며 나갈 것 같습니다.”
“최고의 칭찬이네요.”
“칭찬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이종범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진심입니다.”
식당을 하는 강진에게 있어 손 님이 웃으며 나갈 것 같다는 말 은 최고의 칭찬이었다.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해 준다 고 하던데, 어디까지 해 주는 겁 니까?”
“그것도 조사하셨어요?”
“인터넷에 검색하니 바로 나오 더군요. 조사라고 할 것도 없었 습니다.”
이종범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설명을 해 주었다.
“점심시간은 바빠서 음식을 따 로 해 드리지는 못하고 저희 단 톡방에 메뉴 공지를 합니다. 그 리고 저녁때는 손님이 드시고 싶 은 거로 해 드리는데, 너무 특이 한 식재가 들어가는 요리라던가 회 같은 것만 아니면 바로 해 드 립니다. 아! 특이한 식재가 들어
간대도 예약만 하시면 제가 재료 준비해서 해 드릴 수 있고요.”
“그렇군요. 다음에 정말 가족과 함께 와야겠습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이강혜가 문을 열고 나 왔다.
“강진아, 아버님이 들어오래.”
“네.”
가게 안에 들어간 강진은 조용 히 술을 마시는 오택문을 볼 수 있었다. 강진이 들어오자 오택문
이 그를 보았다.
“자네는 술을 좀 하나?”
“즐길 줄은 알고 있습니다.”
“한잔 받게.”
오택문이 술병을 들자 강진이 빈 소주잔을 가지고 왔다. 그 잔 에 술을 따라 준 오택문이 입을 열었다.
“오늘…… 자네 덕에 좋은 자리 를 하였네.”
살짝 촉촉한 눈으로 말을 하는
오택문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숙 였다.
“감사합니다.”
강진은 술을 마시고는 잔을 내 려놓았다. 그러고는 음식을 보다 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오택문이 문득 그를 보았다.
“자네 라면은 좀 끓이나?”
“라면이야…… 누구나 좀 끓이
지요.”
“그럼 라면 두 개만 끓여 오 게.”
“알겠습니다.”
강진은 주방으로 들어가다가 힐 끗 오혁을 보았다. 오혁은 자신 의 몸에 겹치듯 앉아서 오택문을 보고 있었다.
아까와 조금 분위기가 다른 것 이, 눈물 홀리는 아버지를 보고 충격을 많이 받은 듯했다.
남자의 눈물은 쉽게 볼 수 없
고, 그중 아버지의 눈물은 더 보 기 힘든 것이니 말이다.
주방에 들어온 강진이 이혜미를 보았다.
“혁 씨 좀 불러 주세요.”
이혜미가 홀로 나가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무슨 이야기들 나누셨어?”
“회장님이 미안하다고…… 하셨 어.”
“사과하셨구나.”
“원래는 오혁 씨가 결혼하고 집 에 들어와 살려고 했는데, 회장 님이 나가 살라고 하셨대.”
“자기가 원한 결혼이 아니라서 그렇게 반항하셨나 보네.”
대기업 회장님에게 ‘반항’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자신이 반대한 결혼에 대한 반감을 표현 한 것은 맞으니 말이다.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오혁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살짝 풀이 죽은 듯한 오혁의 목 소리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 다.
“회장님이 라면 드시고 싶어 하 는 것 같은데, 이건 오혁……
강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그 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매형이 회장님 입맛을 가장 잘 알 것 같아서요.”
“매형?”
오혁이 의아한 둣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강혜 누나하고 누나 동생 하기 로 했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혁의 얼굴에 미 소가 어렸다.
“아…… 그랬어? 그럼 내가 매 형이 맞지. 하하하! 이렇게 처남 을 보니 좋구만.”
언제 우울했느냐는 듯 웃으며 말을 놔 버리는 오혁을 보고 강 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적응이 참 빠르시네요.”
“내가 적응력이 좋기는 하지.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미국 음식 이 고향 음식 같더라고. 하하 하!”
기분 좋게 웃는 오혁을 보며 강 진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밝은 사람이네. 이 모습 에 사장님이 반하신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말했 다.
“그럼 라면 어떻게 끓일까요?”
“음…… 너굴이하고 매운 라면 있어?”
“너굴이는 없고 오통통면은 있 는데.”
강진이 오통통면과 매운 라면을 꺼내자, 오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두 개로 끓이면 되겠 어. 오통통면하고 너구리하고 비 슷하니까.”
그 말에 강진이 고무장갑을 그 에게 내밀었다. 오혁은 전에 배 용수가 고무장갑을 끼고 음식을 만들던 것을 봐서인지 망설이지 않고 고무장갑을 손에 끼었다.
그러고는 손을 오므리다가 말했 다.
“참 신기한 것이 많은 곳이야.”
“귀신을 상대하는 것부터 현실 성은 없죠.”
싱긋 웃은 강진이 냄비를 꺼내 주자 오혁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큰 국그릇을 잡았다.
그러고는 국그릇에 물을 두 번 받아 냄비에 부었다.
“이건 나만의 팁인데…… 물을 잡을 때 라면을 담을 그릇으로
물을 잡으면 양이 잘 맞더라고.”
“일리 있네요. 한 그릇에 일 인 분 정도 나오니 그에 맞게 물을 잡으면 되겠어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 혁이 불을 켜고는 라면 수프를 냄비 안에 털어 넣었다.
오통통면과 매운 라면, 두 개의 수프를 모두 넣는 것에 강진이 물었다.
“라면을 섞어서 끓이시려나 보 네요?”
“라면 한 종류 먹는 것보다 여 러 종류 같이 끓여서 먹는 것이 더 맛있고 재미도 있어. 그리고 그중에서 오통통과 매운 라면이 궁합이 좋아.”
“그런데 면발이 달라서 익는 시 간이 다를 텐데요?”
매운 라면의 면발은 보통 굵기 지만, 오통통면의 면발은 두꺼우 니 말이다.
“하하하! 그거야 두꺼운 면을 먼저 넣으면 되는데 무슨 상관이 있나.”
오혁은 냉장고를 열어 김치를 꺼내더니 국자로 김칫국물을 떠 서 냄비에 넣었다.
쪼르르륵!
“국물만 넣으세요?”
"응."
대답하며 냉장고를 이리저리 뒤 지던 오혁이 햄을 찾아서는 그것 도 넣었다.
‘잡탕면 이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오
혁이 파와 마늘을 꺼내서는 썰기 시작했다.
“칼질 잘하시네요?”
“야식 먹다가 걸리면 혼이 나 니, 내가 할 줄 알아야지.”
파와 마늘을 자르던 오혁은 물 이 끓어오르자 굵은 면발을 냄비 에 먼저 넣었다. 그리고 한 삼십 초 정도 기다리더니 이번에는 보 통 굵기인 면을 넣었다.
“계란 두 개.”
강진이 계란을 꺼내주자, 오혁
이 그릇에 계란을 풀고는 빠르게 휘저었다. 그러면서 라면을 유심 히 보던 오혁이 면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가만히 두는 것 에 강진이 말했다.
“면을 들었다 놨다 하면 면발이 쫄깃해지는데.”
“맛 프로에서 그런 말을 많이 하던데…… 귀찮더라고.”
“아......"
“그리고 그냥 둬도 맛있는데 얼
마나 더 맛있게 먹겠다고 그렇게 까지 해. 그렇게 맛있게 먹을 거 면 그냥 아주머니에게 짬뽕이나 요리를 하나 해 달라고 하고 말 지.”
“그건 그렇네요.”
“라면은 그냥 대충 먹는 것이 가장 맛있는 것 같아.”
“대충이라…… 후! 그 말도 맞 네요.”
라면 하나를 끓여도 정말 맛있 게 먹어야겠다면서 파도 넣고 김
치도 넣으며 공을 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물 끓으면 면과 수프를 넣고 기다리는 게 끝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면이 어느 정도 익자, 오혁이 계란 푼 물을 라면 위에 붓고는 기다렸다.
“안 저으세요?”
“먹을 때 저으면 돼.”
계란의 색이 살짝 변하자 불을 끈 오혁은 그 위에 파와 마늘을 부었다.
“끝!”
흐뭇한 얼굴로 라면을 보는 오 혁의 모습에 강진도 라면을 보았 다. 계란은 살짝 익었을 뿐 아직 도 흐물흐물한 상태였다.
하지만 먹을 때 휘저으면 반숙 처럼 맛있게 익을 것이었다. 게 다가 파와 마늘을 마지막에 넣어 서 파 향도 은은하게 올라오는 것이 절로 입맛을 당기게 했다.
강진이 그릇에 라면을 덜려 하 자, 오혁이 만류하며 말했다.
“이대로 가지고 가.”
“덜어서 드시게요?”
"응."
"O' •
오혁은 냄비 뚜껑을 덮었다. 그 러고는 계란을 풀었던 그릇을 내 밀었다.
“이건 강혜에게 줘.”
“새 그릇으로 안 주고요?”
“주면 좋아할 거야.”
오혁의 말에 강진이 계란 푼 그 릇을 보았다. 이 계란 푼 그릇이
무슨 의미가 있기는 한 것 같은 데…… 아무래도 손님에게 요리 에 쓴 그릇을 주는 것이 조금 걸 리는 것이다.
“드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좋아하신다잖아. 손님이 좋아 하면 그게 최고의 그릇인 거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 그릇을 하나 더 꺼냈다.
이강혜야 계란 푼 그릇에 먹는
다고 해도, 오택문은 그릇에 덜 어야 하니 말이다.
강진은 라면과 그릇을 쟁반에 올려 들고 나왔다.
“라면 나왔습니다.”
강진은 테이블 가운데에 라면 냄비를 놓았다.
“가족들끼리 먹는 거라 제가 따 로 안 챙겨오고 통으로 가져왔습 니다. 불편하시면 덜어서 가져다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라면을
지그시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네.”
“그리고 그릇은……
강진은 계란 물이 담겨 있었던 그릇을 이강혜에게 내밀었다.
“여기에다 드셔 보세요.”
그 그릇을 본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남편도 라면 끓이면 계란 푼 그릇에 덜어 먹었는데.”
“손님에게 이런 그릇 드리는 건
아니지만…… 저는 여기에다 라 면을 먹으면 더 맛있더라고요.”
“맞아요. 계란 남은 물에 라면 비벼 먹으면 더 부드럽게 느껴져 요. 그래서 저도 라면 먹을 때는 계란 푼 그릇에 먹어요.”
이강혜는 웃으며 그릇을 보았 다.
“그래서 남편이 이 그릇은 날 꼭 줬는데.”
이강혜의 말에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먹는 것을 좋아 했지.”
한편, 강진이 오택문 앞에 그릇 을 놓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릇은 됐네.”
오택문은 냄비 뚜껑을 잡고는 들어 올렸다.
화아악!
라면 김이 솟구치는 것을 보던 오택문은 뚜껑을 쥐고는 그 위에 면발을 올렸다.
꽤 많은 면발을 뚜껑에 올리는 오택문의 모습에 이강혜가 말했 다.
“아버님, 그릇에 드시지 않고 요.”
이강혜의 말에 오택문이 고개를 저었다.
“혁이가 라면을 이렇게 먹었지. 설거지거리 안 만들겠다고.”
뚜껑에 올려진 라면을 보던 오 택문은 작게 웃고는 그것을 입에 넣었다.
후루룩!
그러고는 오택문이 미소를 지었 다.
‘이렇게 먹으니 맛있구나.’
그릇이 아닌 뚜껑에 먹는 라면 이 뭔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혁이가 설거지거리 때문이 아 니라 그냥 뚜껑에 먹는 것을 좋 아했나 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