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6화
아들이 먹던 방식대로 뚜껑에 면을 올려서 먹던 오택문이 미소 를 지었다.
같은 라면인데도 뚜껑에 먹으니 맛이 더 좋은 거 같은 것이다.
뒤이어 술을 한 모금 마신 오택 문이 다시 라면을 입에 넣었다.
후루룩!
고개를 작게 끄덕이던 오택문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는 잠시 있다가 면을 다시 입에 넣고 이번에는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그렇게 맛을 확인한 그는 놀란 눈으로 강진을 보았다.
“자네......"
그런 오택문을 강진은 의아한 듯 보았다.
“입에 안 맞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오택문은 라면을 보다가 오혁을 보았다.
“혁이가 끓여 준 라면하고…… 맛이 같아.”
“그러세요?”
“혁이가 끓여 준 라면을 먹어 보고 싶어서 몇 번 더 라면을 끓 여 먹어 봤지만 이 맛이 아니었 는데……
오택문의 말에 할머니가 그를 보았다.
“그래서 밤에 가끔 주방 아주머
니에게 라면을 끓이라고 한 거예 요? 혁이가 끓인 라면 먹고 싶어 서?”
할머니의 중얼거림에 오혁이 그 녀를 보았다.
“아빠가 라면을 먹었어요?”
“가끔씩 먹더라고. 나이 먹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할머니의 말에 오혁이 오택문을 보았다.
“아이고 영감님…… 내가 끓여 준 라면이 뭐 별거라고 그걸 먹
겠다고……
오혁이 한숨을 쉴 때, 오택문은 다시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먹 더니 강진을 보았다.
“내 그동안 우리 혁이가 끓여 준 라면하고 같은 걸 다시 먹어 보려고 여러 라면을 먹었지만 조 금씩 다 달랐네. 그런데 이건 정 말 혁이가 끓인 라면 솜씨로군. 대체 어떻게 끓인 건가?”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 맛을 찾기 어려우셨겠 지……. 다른 라면 두 개를 한 냄비에 넣고 끓인 거니까.’
그 혼자 먹는 라면이니 분명 하 나만 끓였을 것이다. 그러니 오 혁이 끓인 라면의 맛을 찾기 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이건 오통통면에 매운 라면을 섞어서 끓인 겁니다.”
“한 라면이 아니라 두 개를 섞 어서 끓인 건가?”
“다른 라면들을 섞어서 끓이면
기존하고 맛이 다르거든요. 그래 서 저는 섞어서 끓이는 것을 좋 아합니다.”
‘내 혀에 농사를 지을 날이 올 지도 모르겠네.’
저승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 의 혀에다 농사를 짓는다. 선의 의 거짓말이라 어떻게 판단될지 모르지만…… 저승식당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되는 강진이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면을 보았다.
“그래…… 라면을 하나로 끓인 것이 아니라서 혁이가 끓인 라면 하고 맛이 달랐던 거야.”
오택문의 말에 이강혜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혁 씨가 이것저것 라면 섞어서 끓이는 것을 좋아했어요.”
“너는 알았겠구나.”
“아버님이 혁 씨가 끓인 라면을 드시고 싶어 하는 줄 알았으면 제가 끓여 드릴 것을 그랬습니 다.”
이강혜야 예전에 오혁이 라면 끓이는 걸 옆에서 봤던 터라 그 가 어떻게 끓이는 줄 알고 있으 니 말이다.
이강혜를 보던 오택문이 강진을 한 번 보고는 라면을 먹기 시작 했다.
라면을 맛있게 먹는 오택문의 모습에 오혁이 웃었다.
“우리 강혜 자극적인 음식에 라 면까지…… 후! 오늘 우리 영감 님 물 많이 드셔야겠네.”
걱정 섞인 말과 달리 흐뭇한 얼 굴로 오택문을 보던 그는 할머니 의 뒤로 가더니 두 팔을 뻗어 그 녀를 안았다.
“ 엄마.”
“이 사장님 보는데…… 왜 이 래.”
할머니가 웃으며 그를 밀어내려 하자, 오혁이 웃으며 말했다.
“아들이 엄마 좀 안는데 누가 뭐라고 하나? 안 그래?”
오혁이 자신을 보자 강진이 웃
으며 슬며시 엄지를 들어 보였 다.
‘보기 좋아요.’
강진의 입모양을 읽은 오혁이 보라는 듯 할머니에게 말했다.
“귀신이 돼서까지 남의 시선을 쓸 이유가 있어? 그냥…… 즐겨. 나처럼 잘생긴 남자가 그것도 뒤 에서 안아주는데.”
“후! 그래. 우리 아들이……
말을 하던 할머니는 앉아 있는 오혁의 육신을 보다가 고개를 돌
려 영혼 상태의 오혁을 보았다.
“잘생겼지.”
할머니의 말에 오혁이 몸을 보고는 그녀를 꼬옥 었다.
“아파서 미안해.”
아파서 미안하다는 말에 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런 말을 왜 해……
“그냥…… 엄마하고…… 테 미안해서.”
자신의
안아주
할머니
아빠한
오혁의 말에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그 손을 쓰다듬었다.
“ 엄마는……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뭐라 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말을 할 수도, 네가 아 파서 엄마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녀는 말을 잇는 대신 그저 오 혁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손길을 느끼던 오혁은 라면 을 먹고 있는 자신의 아내와 아
버지를 보았다.
“아빠하고 강혜하고 둘이 라면 먹는 모습이 이렇게 보기 좋을 줄 몰랐네.”
“그러게…… 보기 좋구나.”
먹는 음식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며느리와 남편이 이렇게 마주하고 라면을 먹고 있다는 것 에 할머니는 기분이 좋았다.
무슨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서 더 기분이 좋았다. 유명 호텔 레 스토랑에서 먹는 것보다 여기에
서 먹는 라면이 더 맛있어 보이 고 더 따뜻해 보였다.
“앞으로는 강혜와 이렇게 사이 좋게 지내세요. 당신도…… 회장 이라는 자리보다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즐거움을 즐기실 나 이가 됐어요.”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피해주 었다. 가족들끼리 식사를 하는 자리에 자신은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다.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냉장고에
서 커피를 하나 꺼내 마시며 주 방 구석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크윽! 시원하다.”
강진이 시원하게 커피를 마시는 것을 보던 배용수가 홀을 보다가 말했다.
“좋아 보인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힐끗 주 방과 홀을 나누는 칸막이를 통해 밖을 보았다.
오택문과 이강혜는 라면을 먹고 있었고, 그것을 할머니와 오혁이
지그시 보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건...... 평범한 것 이 가장 좋은 것 같아.”
강진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그 를 보았다.
“평범한 집, 평범한 식사. 그런 것 말이야.”
“하긴, 가족들이 아버지한테 회 장님이라고 부르는 건 좀 그렇기 는 하지.”
“맞아. 사람은 나이에 맞게 불 려야지. 아들과 딸, 아빠와 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중에 회장 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말을 하던 강진은 고개를 돌려 배용수를 보았다.
“할머니한테 인사드렸어?”
배용수가 주방 초보로 힘들 때 좋은 말을 해 준 것에 대한 인사 를 드렸냐는 말이었다.
“아직 못 드렸어. 인사를 드릴 타이밍을 못 찾겠더라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홀을 보 았다.
“하긴, 끼어들 타이밍이 조금 어렵기는 하겠다.”
가족들이 붙어 있는 곳에 인사 하러 가기 민망할 테니 말이다.
강진이 배용수와 이야기를 나누 며 커피를 마실 때, 이혜미가 말 했다.
“이 사장님이 사장님 찾는 것 같아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은 커피를 쭉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나왔다.
강진이 다가오자 오택문이 그를 보았다.
“오늘 음식 잘 먹었네.”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보 았다.
“원하는 것이 있나?”
“네?”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오택문 이 식탁에 있는 음식들을 보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밥 을 먹었고, 기분 좋게 취했어. 간 단하게 돈으로 지불하고 싶지는 않군.”
그는 다시 강진을 보며 미소 지 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을 해 보게.”
거의 백지 수표를 내민 격이었 다. 그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웃 으며 말했다.
“제가 꿈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 그게 뭔가?”
“나중에 결혼을 하면 애를 한 셋 낳아서 가족하고 화목하게 사 는 겁니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꿈이군. 그래서 원하는 것이 뭔가?”
오택문의 물음에 강진이 식탁을 보며 말했다.
“오늘 식사 자리 정말 마음에 드셨지요?”
“그러네.”
“그럼 오늘 같은 식사 자리 누 나하고 자주 해 주세요.”
“누나?”
오택문이 의아한 듯 보자 이강 혜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강진이 동생 삼았어요.”
이강혜의 말에 오택문이 둘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혁이가 보면 좋아하겠구나.”
“그러게요.”
이강혜가 오혁을 보는 사이, 오 택문이 강진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자네가 원하는 것이 며 느리하고 식사 자리를 자주 하라 는 것인가?”
“자주는 아닙니다. 그저……
강진은 빈 라면 그릇을 보다가 말했다.
“매형이 생각나고 라면이 드시 고 싶으실 때, 누나네 집에서 간 단하게 라면 한 그릇 같이 드시 면 좋겠습니다.”
“라면이라……
오택문이 작게 웃으며 빈 그릇 을 볼 때,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소원이 더 있 습니다.”
“말을 해 보게.”
“라면 드시러 가실 때에는…… 회장님이 아니라 시아버지, 아니 아버지로서 가 주셨으면 합니 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보 다가 이강혜를 보았다. 그러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이 무슨 의미로 말을 하는지 안 것 이다.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걸로 되겠나?”
“저는 누나가 어르신하고 화목 하게 지내는 것이면 충분합니 다.”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잠시 있 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자네가 원하는 것이 그거라면 들어줘야지.”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오택문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오혁의 휠 체어를 잡고는 밀려 하자, 이강 혜가 말했다.
“아버님, 제가 할게요.”
“아니다. 내가 밀고 싶구나.”
오택문의 말에 이강혜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 이강혜의 모습에 오택문이 미소를 지었다.
“자연스럽구나.”
“네?”
“아버님이라는 말.”
“아……
이강혜가 살짝 미소를 짓자 오 택문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직은 내가 익숙하지 가 않구나.”
자신의 말에 이강혜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자, 오택문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익숙해지도록 앞으로 자주 들어야겠구나.”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 이강혜는 긴장이 풀린 듯 제대로 미소를 지었다.
“자네도 앞으로는 날 회장님이 라 부르지 말게. 여기는 편한 노 인으로 오고 싶으니.”
오택문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저…… 한 번도 회장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는데요.”
강진의 말에 오택문이 그를 보
다가 웃었다.
“하하하! 그래 자네는 나에 게 회장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 군.”
강진은 처음부터 ‘어르신’이라고 불렀으니 말이다.
기분 좋게 웃으며 오택문이 휠 체어를 밀자 이강혜가 급히 가게 문을 열었다.
그에 오택문이 휠체어를 밀며 가게 밖으로 나가자 강진이 그를 배웅했다.
오택문과 이강혜를 태운 차들이 출발하는 것을 보던 오혁이 할머 니를 보았다.
“엄마, 가!”
“그래.”
차 뒤로 빨려 들어가듯 멀어져 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오혁이 걱 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저 모습 볼 때마다 놀래. 넘어 지면 어쩌나 싶고.”
오혁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멀리 사라지는 할머니 귀신을 보다가 말했다.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죠.”
비록 귀신이라 다칠 일은 없겠 지만, 아들로서는 걱정이 될 수 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같이 안 가세요?”
오혁은 대답하는 대신 강진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 모 습에 강진도 급히 고개를 숙였 다.
마주 고개를 숙이면서 어리둥절 해하던 강진에게 오혁이 말했다.
“뭐라 감사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정말 고맙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