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7화
오혁은 정말 강진에게 고마웠 다. 강진 덕에 아내와 아버지가 웃으며 식사를 했으니 말이다.
강진이 없었다면 이강혜는 여전 히 오문택을 회장님이라 불렀을 것이고, 이렇게 라면을 같이 먹 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젠 아버지 혼자 라면 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 심이 되었다. 자신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같 이 라면을 먹으면 되니 말이다.
애초에 자신의 라면은 라면 두 개를 섞어서 끓이는 거라 혼자서 는 다 먹기 힘들 터였다.
물론 두 개를 끓이고 혼자 먹다 남기는 방법도 있지만…… 이왕 라면을 두 개 끓였으니 둘이 먹 는 것이 가장 좋았다.
오혁의 감사 인사에 강진이 그 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겁니
다. 그러니 매형도 몸 건강하게 깨어나세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잠시 말이 없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그는 강진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럼 나 간다.”
“조심해서 가세요. 몸 밖으로 너무 자주 나오지 마시고요.”
“하하하! 알았어.”
오혁은 웃으며 자신의 집이 있
는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오혁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매형이 빨리 깨어나야 할 텐 데..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허연 욱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허연욱이 명의이기는 하지만, 사 람의 생사를 뒤집지는 못하니 말 이다.
그리고 L그룹 회장이 사랑하는 막내아들이면 국내외의 능력 있 는 의사들이 최첨단 장비들로 검
사를 하고 치료를 했을 것인데 지금 상태인 것을 보아, 허연욱 이라고 해도 별 수가 없을 것이 다.
허연욱이라고 해도 장비의 힘을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점심 장사를 끝낸 강진은 성인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에 가게 앞에서 교통사고가 난 환자
가 생각이 나서 병문안을 가 보 려고 하는 것이다.
병원이 어디인지는 전에 사고자 의 아내가 왔을 때 이야기를 들 어 알고 있었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 강진 은 배용수와 허연욱을 데리고 차 에서 내렸다.
배용수야 강진이 가는 곳은 자 주 따라오는 편이고, 허연욱은 여기 병원에 있는 영혼들에게서 오혁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강진이 데려온 것
이었다.
병원 입구로 걸어가던 강진은 오고 가는 귀신들에게 분무기로 무언가를 뿌리고 있는 JS 직원들 을 볼 수 있었다.
병원 내 몸이 약한 환자들에게 귀신은 독이 될 수 있으니 입구 에서 이렇게 귀기를 없애는 일종 의 방향제를 뿌리는 것이다.
JS 직원들은 강진을 알아보고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강진 도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병 원 안으로 들어가며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한끼식당 이강진입니다. 네, 잘 지내셨죠? 다른 것이 아니라 인사를 드리려고 병원에 왔는데 요. 아…… 아닙니다. 바쁘기는 요. 네…… 알겠습니다.”
보호자에게 병실이 몇 호인지 들은 강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6층에 도 착한 강진이 허연욱을 보았다.
“선생님도 병문안 같이 하시겠 어요? 아니면 영혼들을 좀 찾아 보시겠어요?”
“환자 처음에 살핀 사람이 저이 니 몸이 어떤지 저도 보고 싶군 요.”
허연욱은 병원을 둘러보며 미소 를 지었다.
“환자가 회복되는 것을 보는 것 만큼 의사로서 뿌듯한 일도 없 죠.”
“그럼 뿌듯해지러 가시죠.”
강진이 걸음을 옮기자, 허연욱 이 그 뒤를 따르며 슬며시 말을 했다.
“사실 사장님께서 오혁 씨에 도 움이 될 것이 있는지 알아봐 달 라고 해서 오기는 했는데…… 제 가 아는 영혼들은 대부분 의사소 통을 할 수준의 이성이 없습니 다.”
강진이 보자 허연욱이 말을 이 었다.
“제가 귀신이 된 후에도 여전히 병원에서 오래 머물지 않습니 까.”
“그렇죠.”
“그렇다 보니 병원에서 귀신도 많이 보고, 오혁 씨 같은 영혼들 도 꽤 봅니다. 그런데 그중에 오 혁 씨처럼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 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강진도 귀신이 아닌 영혼은 둘 정도 보았으니 말이다. 그 둘 또 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알아봐 주세요. 하나가 있으면 둘도 있는 법이니 까요. 저 같은 저승식당 사장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잖아요.”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피식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귀신도 있고, 저승식당 사장님도 있는데…… 말이 통하 는 영혼도 더 있을 수 있지요.”
허연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는 오혁이 워낙 특수한 케이스라 비슷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것 을 알지만, 이왕 병원에 왔으니 영혼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육체 를 보면 뭔가 의학적으로도 얻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연욱과 이야기를 나누며 병실
앞에 선 강진이 살며시 노크를 했다.
1인 병실이 아닌 다인 병실이라 딱히 노크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닫혀 있는 문을 보니 노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병실 안에는 병상이 세 개씩 벽 에 붙어 있었다. 병실 안을 훑어 보던 강진에게 낯익은 아주머니 가 다가왔다.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강진은 인사를 하며 들고 온 쇼 핑백을 내밀었다.
“음료수를 가지고 올까 하다가 많을 것 같아서 반찬을 좀 가지 고 왔습니다.”
“뭘 이런 걸…… 고맙습니다.”
감사 인사를 하는 아주머니를 보던 강진은 그녀가 앉아 있던 쪽의 병상을 보았다.
그곳에는 전에 사고가 났을 때 의식이 없던 그 남자가 병상에 누운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강진과 시선이 마주치자 남자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강진을 처음 보기는 하지만, 사 고가 났을 때 자신을 구해 준 사 람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이다.
남자가 자신을 보는 것에 강진 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남자가 웃으며 그를 보았다. 그렇게 잠시간 강
진을 보던 그는 고개를 숙이려고 했다.
“끄으윽!”
물론 목에 하고 있는 깁스 때문 에 고개를 숙이지는 못했지 만…….
“무리하지 마세요.”
강진의 말에 작게 신음을 토한 남자가 쓰게 웃었다.
“생명의 은인에게 인사도 제대 로 못 드리는군요.”
“생명의 은인이라니요. 저야 해 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강진은 웃으며 남자를 보다가 그의 몸을 살폈다. 남자는 목과 발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보기가 별로 안 좋죠?”
남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 개를 저었다.
“보기가 안 좋다니요. 저는 무 척 보기가 좋네요.”
“그렇습니까?”
남자가 의아한 듯 보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남은 흔적이잖아요.”
“그 말이 맞네요. 살았으니 이 러고라도 있는 거겠죠.”
웃으며 남자가 강진을 보았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하다는 인 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 인사 기분 좋게 받겠습니 다.”
“감사합니다. 아, 참. 그러고 보
니 제가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 고 했다면서요?”
“기억이 나세요?”
‘영혼일 때 한 말이 기억이 나 는 건가?’
남자가 이 말을 했던 건 사고 직후 영혼 상태였을 때니 말이 다.
“기억은 안 납니다. 근데 사장 님이 우리 아내에게 제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말씀하셨다 해서 요.”
“아……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이 온전하지 않은데도 오 늘 아들 생일이라고…… 오늘 죽 으면 안 된다고…… 꼭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고 하셨어요.”
“제가…… 그랬군요.”
남자가 작게 웃는 것을 보던 강 진이 아주머니를 보았다.
“그 장난감, 아들이 좋아하던가 요?”
“그걸 어떻게?”
“자동차 조수석에 있는 것을 봤 거든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아내를 보 았다. 그 시선에 아내가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장난감 포장지에 피가 묻어 있 어서 안 주려고 했어요.”
“하긴, 사고의 흔적이 남아 있 으니까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내 가 남편을 보았다.
“그런데 이 사람이 깨어나서는 우리 애 생일 선물 줬냐는 거예 요.”
아내의 말에 남편이 웃었다.
“그거 큰돈 주고 산 거야.”
“피! 애 장난감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놀려고 한 거지?”
“애하고 같이 놀아주라며.”
남편이 웃는 것에 아내가 웃으 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 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살아 있는 건 좋은 거야.’
다치고 아프기는 해도 살아 있 으면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는 것이다.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은 아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애가 좋아하더라고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아이는 아 빠 사고 난 것 아나요?”
“아직 어린애라 알면 걱정만 하 고 무슨 일인지도 모를 것 같아 서 아빠 출장 갔다고 이야기했어
요. 지금은 어머니 집에 있어요.”
이야기를 하던 아내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살아서 너무 장해. 아주 장해.”
남자는 웃으며 그녀를 슬쩍 보 고는 말했다.
“당신 말은 안 했는데 안 서운 해?”
무슨 말이냐는 둣 남자를 보던 아내가 웃었다. 아들 생일이라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고 했던 말에 자신은 없으니 말이다.
“서운해. 많이 서운해.”
“후! 서운해? 그럼 다음 사고 때는 꼭 당신 두고 못 죽는다고
해…… 아얏.”
아내는 남자의 어깨를 꼬집었 다. 그에 남자가 눈을 찡그리자, 아내가 화가 난 눈으로 그를 보 았다.
“무슨 그런 말을 해. 사고라
니...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하고
도 그런 농담이 나와?”
“당신이 서운하다고 해서 그렇
지.”
“안 서운해. 안 서운하니까 앞 으로는 이런 사고 당하지 마.”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에 남자 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 았다.
“알았어. 앞으로는 절대 사고 안 당할게.”
남자가 웃자 아내가 고개를 끄 덕이다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 다.
“내 정신 봐. 음료수라도 하나
안 드리고.”
아내가 서둘러 냉장고에서 음료 수를 꺼내 내밀자 강진은 사양하 지 않고 받았다.
뚜껑을 따고 음료수를 마신 강 진이 웃었다.
“아주 시원하고 맛있네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그를 보며 말했다.
“뜬금없기는 하지만……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강진이 보자 남자가 미소를 지 으며 말을 이었다.
“정신을 차렸는데도 물을 못 마 시게 하더라고요. 그냥 입가만 축이는 정도로만 물을 주는데, 아주 사람 미쳐 버리겠더군요.”
“큰 수술을 하셨으니 물도 부담 이 되겠죠.”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수 액하고 영양제 맞고 있으니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하아! 정말 사람 환장하겠더라고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링거를 보았다. 수액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는다고 해도 사람은 역시 입에 뭔가를 넣고 씹어야 만족하 는 법이다.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니 영양 분이 들어와도 배가 고프고 목도 마를 것이었다. 특히 물은 더욱 마시고 싶었을 것이다. 물은 본 능이니 말이다.
“그래서 물을 마셔도 된다고 했 을 때…… 미친 듯이 마셨습니 다.”
“물을 그렇게 많이 마시면 안 될 텐데요?”
의사가 물을 마셔도 된다고 했 어도 수술을 하고 그렇게 많이 마시라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 다.
“후! 물론입니다.”
남자는 웃으며 강진이 들고 있 는 음료수 캔을 보았다.
“그 음료수 캔 반의반 정도 되 는 물을 마시라고 의사가 직접 주더군요.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마시라고요.”
남자는 멍하니 음료수 캔을 보 며 말을 이었다.
“물을 한 숟가락씩 입에 머금고 있다가 천천히 삼켰는데 너무 행 복하고 감사하더군요. 아…… 물 한 모금이 이렇게 행복하고 이렇 게 감사할 수가 있구나, 하면서 요.”
말을 하던 남자는 깁스가 되어 있는 자신의 팔과 다리를 보았 다.
“멀쩡할 때는 당연하다고만 생 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다쳐 보 니 깨달아지더군요. 아…… 내 몸이 정말 소중하고 물 한 모금 이 이렇게나 달 수 있다는 것이 요.”
남자는 웃으며 다시 강진을 보 았다.
“지금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것 이 뭔지 아세요?”
“뭔데요?”
“몸 회복되면 동네 운동장 전력
질주 하고 싶습니다.”